이게 말이 되는 위력인가?
온몸이 찢겨 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기어이 황당한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지상을 뒤덮던 무수한 마기 줄기가 모조리 한데 뭉쳐 몸집을 부풀렸다. 꼭 포악한 신이 휘두르는 둔기처럼, 거대하고 뭉툭하게 변화한 마기의 덩어리.
이 우악스러운 공격에는 거침이 없었다. 카델은 맥없이 흩어지던 회오리와 그 너머로 비치던 마족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과 무감한 표정. 몸뚱이에서부터 피어난 마기의 줄기는, 그녀를 실 풀린 인형처럼 조금씩 작게 만들었다.
그렇다. 아군을 위협하던 마기. 그 촘촘하던 마기 줄기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녀의 육체 그 자체였다. 그리고 현재.
쾅! 콰광!
그녀의 몸은 카델과 라이돈을 추락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을 땅속 깊이 처박겠다는 듯 끊임없이 내리찍고 있었다.
‘이런 미친……! 언제까지 칠 작정인 거야!’
장막을 아무리 강화해도 소용이 없다. 자신은 물론 라이돈의 장막도 더해졌고, 비늘 갑옷까지 둘렀다. 그럼에도 충격이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 마법으로 공격을 튕겨 내 보려 해도, 마력을 모을 틈조차 주지 않으니.
‘라이돈은 더 버티기 힘들 거야.’
배 속의 장기가 둥둥 울리는 불쾌한 감각. 살갗이 팽팽하게 땅겨 조금씩 찢어지는 듯한 고통. 산만해진 정신 속에서도, 자신을 감싼 채 추락한 라이돈의 상태가 걱정됐다. 라이돈은 여전히 카델의 아래에서 그를 끌어안고 있지만, 얼음 장막의 유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벗어날 수가 없어!’
마기의 덩어리가 지면을 내리찍고 올라가는 찰나. 그 반동의 순간을 노리려 했으나, 이 마기는 뭔가가 달랐다. 마치 인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기를 따라 몸이 조금씩 당겨지는 탓에, 빈틈을 노리기가 어려웠다.
‘계속 맞고 있다가는 장기가 모조리 터져 나간다.’
정면에서 공격을 막고 있는 자신은 물론, 뒤에서 자신의 무게가 더해진 충격까지 감당하고 있을 라이돈도. 자력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카델은 꾸역꾸역 장막을 강화하며 아군의 도움을 기다렸다. 화려하게 추락했으니 누구든 이쪽을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단장!”
헐떡이는 카델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며, 연달아 이어지던 둔탁한 고통이 가셨다. 그에 꾹 다물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린 카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
“괜찮아요? 대체 어떤 미친 자식이…….”
마기와 카델의 사이, 좁은 틈새로 대검을 밀어 넣은 반이 힘을 주어 팔을 치켜들었다. 바짝 긴장한 팔 근육이 도드라지며, 목선을 따라 굵은 핏줄이 돋았다. 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새빨간 오라는 마치 힘겨루기를 하듯 가까스로 마기를 밀어 내고 있었다.
“어서 벗어나세요! 뒤에 요정 놈도…….”
다급히 카델과 라이돈을 훑어내던 반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카델의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왜 그래?”
불안한 반응에 카델이 재빨리 몸을 돌려 라이돈의 위에서 벗어났다. 떨리는 시선이 곧장 라이돈의 상태를 살피고.
“라이돈!”
“아무나 라이돈 좀 데려가!”
그는 카델을 감싸 안은 채 딱딱한 지면에서 가장 큰 충격을 흡수했다. 장막 또한 본인이 아닌 카델의 앞쪽에 둘렀으니.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을 리 없었다.
카델은 찡그린 얼굴로 왈칵 피를 토해 내는 라이돈의 뺨을 쥐며 허둥거렸다.
“라, 라이돈. 정신 차려 봐. 눈 감지 말고, 나 똑바로 봐. 가르엘을 불러올게.”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인지, 라이돈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버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몸으로 장막을 유지했던 것인가. 의식이 있으니 상태가 심각하진 않을 거라 여겨 방심했다. 이런 부하를 두고 무력하게 얻어맞고만 있었다니.
자책하는 카델의 뒤편으로, 루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돈을 넘겨, 대장! 가르엘 경에게 데려갈게.”
“응, 부탁할게.”
루멘이 라이돈을 둘러메는 동안, 대검을 압박하던 마기의 덩어리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공격을 이어 가는 대신 몸을 수복하길 택한 것이다.
“단장, 조금 전의 공격은 어떤 마족의 짓이죠? 지금까지 상대했던 마기와는 달랐어요. 꼭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은…….”
“아마 맞을 거야. 본인의 몸을 마기로 바꿔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는 마족……일 거라고 생각해.”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적이기에 추측마저도 조심스러웠다. 카델은 자신의 곁을 지키듯 선 반의 옆에서 루멘과 라이돈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머릿속에서 빨간 머리 마족의 공략법과 라이돈에 대한 걱정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아르파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은 충분했어. 범위기로도 위협적이지만, 단일로 맞닥뜨린다면 목숨을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다. 최대한 일대일 구도를 피해야 해.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아군을 모아 다각도에서 공격을 퍼부어야 하나? 마법사들의 범위 마법은? 고민하던 카델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저게 뭐지?”
그의 시야 속에는 여전히 루멘과 라이돈이 담겨 있다. 그러나 가르엘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루멘의 발아래. 지면에 웅덩이진 검은 기운이 그림자를 흉내 내며 그를 따라붙고 있었다.
그에 이상을 느낀 카델이 경고의 말을 외치려 했으나.
“루멘!”
웅덩이에서부터 솟아오른 기운이, 열댓 개의 창날이 되어 그들을 관통했다. 루멘은 반사적으로 공격을 피했으나, 완벽히 회피하지는 못했다.
라이돈을 둘러멘 왼쪽 반신은 가까스로 창날을 피했다. 그러나 오른쪽 반신은 아니었다. 발등을 관통한 기운이 그의 몸을 붙들고, 허벅지와 팔뚝, 허리를 찢었다.
예상치 못한 습격에 카델의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충격에 굳어 버린 그의 옆에서, 반이 중얼거렸다.
“저건 암기잖아.”
“……뭐?”
“그 마족이에요. 단장의 힘을 흡수했던 놈. 그 자식이 요젠의 암기를 흡수했거든요. 제대로 사용할 순 없을 거라더니…….”
아르파. 그 녀석이 기어코 요젠의 기운까지 빼앗았단 말인가. 꽉 깨문 어금니가 갈리며, 분노로 형형해진 눈빛이 매섭게 사위를 훑었다.
“반, 너는 가서 루멘을 도와. 난 그 마족을 죽여 버려야겠으니까.”
“……그건 힘들 것 같은데요.”
“뭐?”
“물러나요, 단장.”
반은 당장이라도 아르파를 찾아가려는 카델을 뒤로 물렸다.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바쁘다, 바빠. 여기저기서 살겠다고 발악을 해 대니, 일일이 죽이는 것도 힘들단 말이야.”
마기의 방패를 든 마족, 로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오는 길에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인 것인지, 방패는 물론 전신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반은 대검을 고쳐 쥐며 로딘을 향해 물었다.
“나와 같이 있던 인간은 어떻게 한 거지?”
“응? 아아, 그 암기를 사용하던 인간? 걘 한창 싸우다가 갑자기 사라졌어.”
“……사라져?”
“그래, 사라졌어. 그 녀석을 찾는 것보단 널 찾는 게 훨씬 쉬워서 직접 찾아왔지.”
요젠이라면 로딘이 카델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카델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대체 무엇이길래 자취를 감췄단 말인가. 반은 조금씩 들어차는 불안감을 떨치며 오라를 개방했다.
“잘 찾아왔어. 덕분에 수고를 덜었군.”
⚔️
바로 앞에서 루멘이 꿰뚫리고, 만신창이가 된 라이돈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당장 달려가 치유술을 사용해 줘야 했다. 자신의 역할은 동료들이 부상에 연연하지 않고 전투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가르엘은 그들에게 다가갈 수도, 마기를 개방해 치유술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컥… 커헉…….”
마기의 줄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처음엔 모든 인간을 노리고, 다음엔 카델과 라이돈만을 노리던 그 마기가. 이제는 가르엘을 노리고 있었다.
카델과 라이돈을 공격했던 것처럼 거대하진 않다. 고작 열댓 개의 줄기가 뻗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줄기가 가르엘을 노렸고, 그에겐 마기를 막을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의 주위를 둘러싼 암기. 견고하게 쌓인 암기의 벽이, 적과의 싸움에 한창인 아군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
‘이건 분명 요젠 경의 기운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절대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니까.’
요젠의 암기임이 분명했음에도, 요젠의 짓이 아니라 확신할 수 있었다. 카델처럼 기운을 빼앗긴 거겠지. 요젠이 아무리 자신을 성가셔한다 해도,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들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가르엘은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몸 위로 재생을 위한 마기가 피어났으나, 안타깝게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내가 뛰어난 치유사란 걸 파악하고 먼저 해치우려는 모양이지.’
얌전히 당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머리를 쥐어짜 고위 마족의 파훼법을 찾는 것보다, 바깥에 쓰러져 있을 동료의 치료가 시급했다. 어떻게든 자신을 감싼 암기의 벽을 뚫어야 했다.
‘처음 건드렸을 땐 내 기운을 그대로 흡수해 버렸지. 무시하고 통과하려 든다면 루멘 경처럼 꿰뚫리게 될 거야.’
요젠의 암기로 입은 상처라면 재생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랄 것은, 재생이 진행되는 동안 다시 마기 줄기가 나타난다면. 자신은 재기 불능이 되어 버릴 것이란 사실이었다.
‘뭔가 방법이…….’
암기의 벽을 무사히 뚫고 지나갈 만한 방법을 고민하던 때. 또다시 생겨난 마기가 가르엘이 선 땅을 채웠다. 암기의 벽이 만들어 낸 공간을 빈틈없이 가로지르는 마기의 줄기.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대한 급소를 피해서 서는 수밖에.’
이 이상 상처를 허락한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전투를 이어 가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르엘은 암기의 벽 가까이 몸을 붙인 채 마기가 닿은 가슴과 팔꿈치를 일별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을 것 같았다.
키잉―
관통 직전의 마기가 팽창하며 날카로운 공명음이 울렸다. 이어질 고통을 직감한 가르엘이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
뭔가가 그의 목덜미를 거칠게 잡아채 암기의 벽 바깥으로 훅 끌어당겼다. 동시에 눈앞에서 발사된 마기가 잔상을 남기고. 간신히 중심을 잡은 가르엘의 귓가로 짜증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난 지금부터 저 거슬리는 마족 마법사를 죽일 거야. 그러니 넌 루멘이랑 라이돈을 고쳐 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