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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꿀 같은 단잠에 빠져 있던 단원들에게, 라이돈의 실종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오래 살았죠, 그 요정 놈. 슬슬 보내 줄 때가 되긴 했어요.”
반은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잠에 찌든 채로도 진심이 절반은 담긴 발언이었지만, 곧바로 날아드는 카델의 날 선 시선에 금세 말을 바꿨다.
“슬슬 단장 곁으로 보낼 때가 됐죠.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혼자 그런 일을 겪은 건지.”
당시 카델과 라이돈은 작은 틈도 없이 몸을 딱 붙인 채로, 함께 막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이라곤 카델에겐 방울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 않았다는 것뿐.
“……라이돈은 뭔가에 홀린 것 같았어. 내가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거든. 전부 무시하고 그 공기 방울의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지.”
물론 라이돈의 성격상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대로 행동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본능대로 사는 그라고 해도, 자신의 부름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일은 없었다.
카델이 라이돈의 이상을 확신하자,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루멘이 입을 열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행동을 했어. 그런데도 한 명은 멀쩡하고, 한 명은 정신을 교란당했다는 건가? 분명 뭔가의 차이가 있었을 거야. 잘 생각해 봐, 대장.”
카델은 라이돈과의 입수를 차근차근 되짚으며, 그와 자신이 했던 다른 선택, 행동을 발견해 보려 애썼다.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히 다른 행동을 했던 적은 없어.”
“그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된다고 해도 생각나는 게 없는걸.”
카델이 괴로운 듯 머리를 싸매자, 가르엘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단장님이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웬만해선 눈치채기 어려운 부분일 거예요. 아니면 아예 발동 조건이 없는 정신 교란일 수도 있죠.”
“조건이 없다?”
“무작위 대상을 홀리는 걸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한 번에 한 명밖에 홀릴 수 없어서, 운 나쁘게 라이돈 경만 걸린 걸지도 모르죠.”
“……뭐,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군요.”
만약 가르엘의 말대로 무작위 대상을 홀려 방울의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면.
“혼자서는 절대 탐색할 수 없겠네요. 요정 놈을 구하기 위해선 방울의 정체를 밝혀야 하고, 그러려면 미끼로 쓸 몇 명을 대동하는 게 좋겠어요.”
또 다른 누군가를 물거품으로 만들어야만 라이돈을 되찾을 단서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경악스러운 결론이었지만, 다른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필 무인도라 갈 수 있는 인원이 부하들밖에 없어.’
소중한 이를 구하기 위해 소중한 이들을 위험으로 내몰아야 한다니. 카델은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착잡함을 달래려 노력했다.
만약 그 위험한 도박으로 방울의 정체를 밝혀 구조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면. 희생당한 다른 부하들도 전부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요젠.”
“응.”
“라이돈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어?”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올린 카델이 요젠을 바라보았다. 요젠은 잠시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느껴지지 않아. 바닷속은 수심이 얕은 곳만 식별할 수 있거든. 그러니 만약 라이돈이 살아 있다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는 거겠지.”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말문을 잃은 카델의 입가가 잘게 떨리며, 눈매가 일그러졌다. 왜 그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물체를 확인하러 갔을까. 라이돈이 가고 싶다 했어도, 자신의 선에서 말려야 했다.
밀물처럼 몰려드는 자괴감이 카델을 괴롭게 만들었다. 그는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렸고, 부하들은 함께 침묵을 지켰다. 그 갑갑한 시간의 종지부를 찍은 이는 바로 가르엘이었다.
“단장님은 이곳에 계세요. 저희가 한 번에 내려가서 그 방울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명이 한꺼번에 간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죠.”
만약 무작위로 한 명의 대상만을 현혹한다는 가정이 맞다면. 가르엘의 말처럼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최대한 많은 이들이 방울을 확인해 단서를 찾아내는 편이 나았다.
나머지 부하들 역시 가르엘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그에 카델은 자신도 함께 가겠노라 선언했지만.
“모두가 모은 단서를 종합할 사람이 필요해. 대장은 이곳에 남아.”
카델을 모래사장 위에 억지로 주저앉힌 루멘이 단호히 말했다. 그랬다가 혹시라도 가정이 틀려 모두가 위험해질 상황이 벌어진다면. 걱정을 토로할 틈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부하들이 바닷가를 향했다.
부하들이 헤엄쳐 들어간 바다는 고요하기만 했다. 카델은 무릎 언저리까지 잠긴 채 더 들어가지도, 아예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절절맸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만약 지금 다들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린 거라면? 하지만 괜히 설레발쳐서 들어갔다가 나 때문에 문제라도 생기면…….’
앞장서서 부하들을 지키고 싶단 마음과 그들을 믿고 기다려 보자는 마음이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울상이 된 카델이 무의식적으로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부하들이 입수한 뒤, 그는 가장 먼저 쿤라를 불렀다. 쿤라라면 중요한 단서를 알려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쿤라는 카델의 간절한 부름을 듣고도 성의 없이 대꾸할 뿐이었다.
[반쪽이, 너라면 할 수 있을 테니 걱정 마라.]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애매한 격려는 필요 없으니 당장 나와 도와 달라고 화를 내도, 쿤라는 반응이 없었다. 바쁜 것은 알겠다만, 그래도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아니던가. 자신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이 세계선은 삭제된다. 또한, 부하들이 없다면 자신의 승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모르는 거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야. 짜증 나는 용 대가리.’
그렇게 신경질을 참다못한 카델이 펜던트를 부술 듯 힘을 주고 있을 무렵. 잠잠하던 수면이 일렁이더니, 이내 누군가가 머리를 내밀었다.
“……!”
카델은 곧장 불덩이를 피워 누군가 떠오른 수면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가라앉아 있던 모두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과 불안이 담긴 시선이 불빛에 비친 부하들의 면면을 살폈다.
‘전부… 전부 다 있어…….’
반, 루멘, 가르엘, 요젠. 네 명의 얼굴을 몇 번씩이나 확인한 카델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카델이 있는 해안가로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
“얘들아,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거의 수영할 기세로 허우적거리며 다가오는 카델의 모습에, 가장 먼저 달려온 반이 그의 허리를 낚아채 바깥으로 날랐다.
“왜 여기까지 나온 거예요, 단장. 계속 젖어 있으면 감기 걸린다고요.”
“어차피 난 불로 말리면 돼.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다친 곳은. 뭐 이상한 일을 당했다거나, 그러진 않았어?”
다급한 물음에 젖은 머리를 털며 다가온 루멘이 대답했다.
“보다시피 넷 다 멀쩡해. 아무래도 가르엘 경의 가정은 틀린 것 같더군.”
“이야, 꽤 그럴듯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넷 중 한 명이 정신 교란에 당한다면, 그게 제발 나는 아니어라. 기도한 보람이 없지 뭐예요.”
키들대는 가르엘의 뒤로는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요젠이 있었다. 요젠은 카델에게 맡겨 두었던 붕대를 돌려받고는, 자신이 발견한 정보들을 조곤조곤 나열했다.
“바닷속이라 암기를 내 마음대로 퍼뜨리기 어려워. 그럴싸한 정보를 얻기엔 무리가 있었어.”
그럼에도 요젠은 방울의 중심부, 매서운 회전체 속에서 어렴풋이 라이돈의 기운을 느꼈다고 했다. 그것이 내뱉는 물거품은 평범한 거품과는 달랐고, 특별한 마력이 섞여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루멘은 요젠의 이야기에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덧붙였다.
“그 회전체는 우리가 낮에 봤던 해룡과 비슷한 형체를 갖추고 있었어. 워낙 회전 속도가 빨라서 똑같은 모습이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평소에도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자신의 압도적인 공속을 뒷받침하는 루멘이었기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였다. 그가 보았던 회전체는, 해룡의 작은 미니어처 같았다고 했다.
“오라와 마기로 방울의 겉면을 건드려 봤지만, 웬만한 공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아니, 애초에 일반적인 공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방울인지부터가 의문이었습니다.”
가르엘과 반은 물속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원거리 공격이 가능했다. 두 남자는 여러 차례 방울을 건드려 보았으나,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그들의 힘으로도 방울을 터뜨릴 수 없다면, 라이돈이 안쪽에 있다 해도 구조가 어려울 것이었다.
“라이돈처럼 직접 방울을 만져 본다면 안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똑같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안전하게 들어갈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카델은 반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돈을 구하려다 모두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안전하게 진입할 방법을 찾아낼 동안 라이돈이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감지했던 라이돈의 기운.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거든.”
요젠의 말에 카델의 표정이 굳었다. 안정적이지 못했다니. 대체 방울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급격히 들어차는 불안감에 근육이 빳빳하게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다. 말문을 잃은 카델을 앞에 두고, 루멘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라이돈의 상태가 어떻든, 한시라도 빨리 녀석을 구해 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어. 아직 어떤 기준으로 정신 교란을 당하는지, 정신 교란이 있기는 했던 건지조차 알아내지 못했으니. 조금 더 살펴봐야겠지.”
고작 한 번의 수색만으로 모든 단서를 찾아낼 순 없었다. 굳어 있는 카델을 뒤로한 채, 부하들은 다시 한번 입수했다.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카델이 손등으로 차게 식은 뺨을 문질렀다.
“……괜찮아. 구할 수 있어. 나라면 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떨지 말고 침착하게. 부하들이 가져온 정보를 종합하여, 방울을 뚫고 라이돈을 구조할 작전을 세워야 했다.
카델은 부하들이 사라진 바닷가에서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조급함도, 불안함도, 이성적인 판단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카델이 가까스로 되찾은 침착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0분.”
부하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지 10분이 지났다. 회중시계의 뚜껑을 닫은 카델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방금은 5분 만에 올라왔는데.”
부하들의 폐활량은 상당하다. 잠수도 제법 오랫동안 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들에게 10분 정도는 그리 긴 시간도 아닐 것이다. 그들을 자신과 같은 평범한 인간으로 여겨선 안 된다.
‘결정적인 단서라도 찾아낸 건가? 아니면 조금 시간이 걸리는 실험 중이라든가.’
어쩌면 바로 라이돈을 구조할 방법을 찾아내서, 조금 무리하더라도 보고 대신 곧장 라이돈을 데려오는 선택지를 고른 것일 수도 있다. 카델은 애써 불길한 상상을 떨쳐 내며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몸은 점점 바닷가와 가까워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철벅거리는 파도가 배꼽 언저리까지 다다를 때에야 겨우 나아가는 것을 멈췄다. 다시 한번 회중시계를 확인한 카델의 입꼬리가 경직됐다.
‘13분.’
슬슬 한두 명 정도는 올라올 때가 되지 않았나. 아무리 잠수를 잘한다 해도 별다른 장비 없이 13분씩이나 물속에 있다니. 그런 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발을 구르며 간절하게 부하들을 기다리던 때였다.
‘……저게 뭐지?’
짙은 어둠에 잠긴 수면 위로,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떠올랐다. 잔잔한 파도를 따라 들썩이는 무언가를 응시하던 카델의 눈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요젠!”
그것은 요젠의 붕대였다. 다시 맡기고 간다는 것을 까먹었는지, 그대로 물속에 가지고 들어갔던 그의 붕대. 그것이 주인도 없이 홀로 덜렁 떠오른 것이다.
카델은 허둥지둥 헤엄쳐 붕대를 낚아챘다. 물먹은 붕대를 꽉 움켜쥔 카델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왜 이것만 떠올랐지……? 요젠은?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당장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고 잠수한다면, 모두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카델은 그럴 수 없었다. 만약 부하들이 라이돈과 같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 버린 거라면. 그들이 전부 사라진 거라면. 그들을 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일단은 이곳에서 떨어져야 했다. 카델은 요젠의 붕대가 구명줄이라도 되듯 필사적으로 움켜쥔 채 모래사장으로 빠져나갔다. 거칠어진 호흡을 사납게 내뱉고, 웅크려 앉아 붕대 쥔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제발 아니어라, 제발…….”
요젠은 실수로 붕대를 놓친 것뿐이고, 대단한 잠수 실력을 갖춘 부하들은 차례차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것이다. 그 틈에는 라이돈이 있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경험이었다며 한바탕 시끄럽게 웃어 대고는, 피곤하다고 야영지를 찾아가겠지. 진이 빠진 자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두의 몸을 덥힐 불을 피울 것이다.
그렇게 모두를 되찾고, 날이 밝는 대로 다 함께 모여 글귀를 해석하겠지.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몸을 끌고 힘들지만 즐겁게, 그렇게…….
“……글귀.”
최선을 다해 최악의 상황을 외면하려던 카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뭔가를 떠올린 듯 크게 뜬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그가 허겁지겁 일어나 모래사장의 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소라 껍데기로 눌러둔 양피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둘러 양피지를 펼친 카델이 안쪽의 글귀를 읽어 내렸다. 열심히 문장을 훑어 내리던 손끝이 이내 한 곳에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