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델 라이토스의 의지. 빙의된 후부터 그의 영혼이 계속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음은 익히 아는 바였다. 자신의 모든 행동과 선택이 그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잊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이 ‘시스템 버프’의 한 종류로 발현되고 있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델!”
“단……!”
어렴풋이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물에 잠긴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주변의 소음이, 비명과 함성, 소름 끼치는 웃음, 날붙이가 맞부딪히고, 살점이 찢기는 소리가 온 감각을 틀어막았다.
익숙한 적이다. 항상 상대해 왔던 마족과 마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흉측한 모습은 오늘 처음 목도한 것처럼 너무도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어 꼼짝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 당해 낼 수 없다. 자신은 인간이었다. 한낱 인간이 어떻게 저런 괴물들을 상대한단 말인가.
지금껏 질리게 상대해 온 적을 보면서 그따위 감상을 느꼈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널뛰었다. 그 불규칙한 박동이 꽉 막힌 귓구멍을 울렸다. 숨마저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스쳐 가는 기사들이, 튀어 오르는 피와 살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마물과 현실감 없는 날개가. 전부 두려웠다.
제자리에 못 박힌 채 호흡만 간신히 이어 갔다. 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애초에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저들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도망가고만 싶었다.
용감하게 싸운다 한들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싸운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로 느껴졌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독한 악몽을 꾸는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기만 했다.
슬로우에 걸린 화면처럼 눈앞의 장면이 느려졌다. 숨소리가 늘어지며,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목숨이 걸린 싸움이었으며, 조금만 방심해도 단숨에 목이 날아가는 긴박한 전투였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런 싸움을 이어 왔던 걸까? 자신은 평범한 삶을 살아왔고, 그것은 싸움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 싸움이 배척되는 사회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주제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목숨을 걸고 싸웠다. 심지어 대상은 인간이 아닌 마족.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악독한 존재였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았다. 싸워 이기겠다는 투쟁심만 가득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카델 라이토스 없이는, 싸울 수 없어…….’
전투의 목적이나 방향성은 머리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당장 이 자리를 뜨고 싶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델!”
불시에 날아든 투창이 코앞으로 드리웠다. 카델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떴다. 금방이라도 눈알을 꿰뚫을 듯 날카롭게 벼려진 창끝. 만약 자신이 한 발짝만 더 앞에 있었다면, 꼼짝없이 머리통이 박살 났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몸에 힘이 풀렸다. 영혼이 쑥 빠진 것처럼 맥없이 주저앉자, 그제야 투창을 막아 준 이가 눈에 들어왔다.
요젠이었다. 짙은 남색의 머리칼과 그 사이로 언뜻 비치는 하얀 붕대. 그 익숙한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카델,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네 심장 소리가 너무 커.”
“요젠…….”
잡고 있던 투창을 바닥에 내던진 요젠이 카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공격이 그의 몸을 할퀴었으나, 상처에서는 피가 아닌 검은 암기가 튀어 올랐다. 눈앞의 이는 요젠이 아닌 그의 분신인 듯했다.
카델의 시선이 조금씩 움직였다. 괴물만을 담아내던 시야 속으로 차근차근 부하들의 모습이 비쳤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곳에서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차례차례 부하들을 돌아볼 때마다, 불안한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은 갑작스레 패닉에 빠진 단장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괘, 괜찮…… 괜찮아.”
바닥을 파내듯 힘을 주어 주먹을 그러쥐었다. 꾹 틀어막힌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으나, 카델은 고집스레 괜찮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두려웠다. 괴물이 두렵고, 지척에 드리운 죽음이 두려웠으며, 한순간에 자취를 감춘 익숙함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이 감정을 솔직하게 내뱉어선 안 된다는, 얄팍한 이성이 그를 붙들었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부하들이 알아챈다면, 그들 역시 위험해지리란 직감에 의한 것이었다.
“괜찮지 않아 보여. 너 설마…… 무서운 거야?”
“신경 쓰지 마.”
“카델.”
“싸워! 난 괜찮으니까.”
시선을 땅에 처박은 채 발악하듯 외쳤다. 힘 풀린 몸을 꾸역꾸역 일으키자, 말없이 카델을 마주하던 요젠의 분신이 녹아내렸다.
‘왜…….’
생각보다 ‘카델 라이토스의 의지’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는 것도. 그의 의지가 시스템이 부여한 ‘버프’의 일종이었다는 것도. 전부 충격적이었지만, 당장은 꾸역꾸역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그 원인을 알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조치를 취하면, 평소처럼 이 모든 두려움이 가시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멀쩡한 척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마력을 다루는 법을 잊은 건 아니야. 나는 내 몸을 지킬 수도, 저 괴물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할 수 있어.’
카델은 당연한 사실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주입했다. 자신은 이곳에서 허무하게 죽을 만큼 약한 인간이 아니며, 주변에는 자신을 지켜 줄 동료들이 있다. 그러니 괜찮았다. 차분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처럼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시도해 본다면…….
“마법사 발견!”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두워진 시야에 머뭇머뭇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헤헤,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가,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인간이지만 당신은 꼭 편하게 죽여 줄게요.”
태양을 가린 채 넓게 펼쳐진 칠흑의 날개. 강한 날갯짓을 따라 떨어지는 깃털과 마기의 가루. 음험한 날개와는 상반되는 눈부신 백금발이 중력을 따라 늘어지며,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양팔을 벌렸다.
“하늘을 봐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눈물 나게 멋진 풍경으로 장식하자고요!”
비어 있던 그녀의 양손으로 투창이 생성되며, 날카로운 창끝에 마기가 뭉쳤다. 조금 전, 요젠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공격.
막을 수 있다. 속도에 반응하지 못한다면, 반격을 포기하고 방어에만 집중하면 될 일이다. 평소의 장막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런 표정은 금지예요. 인간의 겁에 질린 표정은 제 안의 좋지 못한 본능을 깨운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할 수 없었다. 마력을 끌어 올리려 해도, 이 생소한 기운의 흐름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지금의 그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눈앞에 거대한 날개를 가진 마족이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마기에 물든 창끝이 점점 어두워졌다. 곧 공격당한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마력을 다루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어렵사리 마력을 모아 장막 생성을 시도했으나, 완성된 것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초짜의 장막. 불꽃이 섞인 바람 장막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일렁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투쾅!
카델을 탐탁지 않게 응시하던 그녀가 투창을 내던졌다.
“단장님!”
“대장!”
부하들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스치듯 그들의 굳은 얼굴을 본 것도 같았다.
‘이런 미, 친……!’
일순 두려움마저 사라질 만큼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카델은 투창의 힘에 떠밀려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복부에 박힌 투창이 끝도 없이 그를 밀어 냈다. 얄팍한 장막은 투창에 닿자마자 깨져 버렸다. 보통이었다면 장막이 깨짐과 동시에 충격파를 버티지 못하고 터져 죽고 말았겠으나.
카델은 살았다. 살아서 투창에 밀려 날아가는 동안 거친 감상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 전부 그의 몸을 두른 비늘 갑옷 덕이었다.
“커헉! 으윽…….”
투창은 카델을 마법진의 외곽,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어느 나무 기둥에 처박고서야 맹렬한 질주를 멈췄다. 전신을 타고 오르는 통증과 함께 투창이 힘을 잃었다. 주르륵 몸이 미끄러지며, 쓰러진 그의 주위로 비늘 갑옷의 파편이 흩어졌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피가 역류했다. 내장이 경련하듯 꼬였고, 숨을 쉬고 뱉을 때마다 온몸이 수축하는 것처럼 버거운 고통이 느껴졌다.
낯선 통증은 아니다. 오히려 지겹도록 겪어 왔고, 이전에 겪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축에 들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자신이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또 언제 다음 고통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철저하게 정신을 망가뜨렸다.
“그만…. 제발 그만 좀 해……!”
머리를 감싼 채 몸을 둥글게 말았다. 당연히 느꼈어야 했으나,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이대로 간다면 시스템 오류의 원인도 찾지 못하고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 같았다.
그래선 안 됐다. 전장엔 아직도 부하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 그런 부하들의 앞에서 꼴사납게 움츠러든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일그러진 입새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카델은 만신창이가 된 몸에 힘을 주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당장 부하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그를 집어삼킨 탓이었다. 그렇게 카델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순간.
“기억났다.”
그의 앞으로, 이제껏 어떤 부름에도 답하지 않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의 편린이, 드디어 떠올랐어.”
“쿤라……?”
쿤라의 모습을 발견한 카델이 저도 모르게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엉망으로 보였다. 수척해진 뺨과 충혈된 눈, 한계까지 내몰린 자의 지친 표정. 죽을 때까지 쿤라에게선 찾아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고통과 피로가 그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카델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물린 카델의 등이 나무에 부딪히고. 짧은 신음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자, 쿤라가 강하게 어깨를 잡아채며 말했다.
“반복되고 있었어.”
“네……?”
“카델 라이토스의 몸 안에 들어왔던 건 너 혼자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뻗친 세계선의, 수없이 많은 카델 라이토스가 몸을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어 갔어.”
코앞으로 다가온 쿤라의 얼굴은 히스테릭한 격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위태로워 보였다. 카델은 쿤라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듬어지지 않은 숨을 제멋대로 내뱉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쿤라. 난…… 난 지금 뭔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209번의 반복이었다. 지금까지 209명의 카델 라이토스가 죽었어. 이세계의 이방인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무게의 싸움이었던 거야.”
“쿤라…….”
“하지만 넌 해내야 해. 넌 유일하게 나의 힘을 나눠 받은 인간이다. 내가 선택한 유일한 인간이야. 너만이 이 끔찍한 굴레를 끊어 낼 수 있다. 너의 성공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주제에,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이 카델 라이토스의 의지가 사라진 여파인지, 무의식적으로 쿤라의 말을 이해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쿤라는 흐느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카델을 바라보았다. 몰아붙이듯 제 할 말만 하던 것을 멈추고,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느리게 굴러가는 눈동자가 차분히 카델을 훑어내렸다. 그의 존재를 각인하듯 한참을 응시하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다정하게 넘겨 준 쿤라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네 진짜 모습이구나.”
“무서, 무서워요. 싸우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싸우지 않으면 부하들이…….”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감정의 격랑에 카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하들을 곤란하게 만들 순 없다는 일념하에 버티고 있으나, 쿤라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카델은 전장에 설 수 없다. 적어도 그가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적응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력하게 끌려오는 몸을 품에 안은 쿤라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대량의 마기와 마력이 격동하고,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전투의 기척이 감지됐다. 그중 카델과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가까워지는 기척에 집중했다. 카델의 부하들이었다.
다시 눈을 뜬 그가 카델의 뒷머리를 힘주어 쓰다듬었다. 그러자 잠시 움찔하며 놀란 듯하던 몸이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중요한 건 전쟁이 아니야. 바로 너다.”
정신을 잃은 카델의 귓가에 속삭인 그의 몸이 붉게 발광하더니, 이내 적룡의 본 모습으로 변화했다. 쓰러진 카델을 등에 올린 그가 거침없이 하늘을 날아올랐다.
*
카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은 단원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 그를 보살피려는 이는 없었다. 카델은 그들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내였으나,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이기도 했으니.
여태껏 카델은 그 어떤 시련도 보란 듯이 이겨 내며 단장의 권위를 보여 주었다. 그런 그를 믿었기에, 단원들 또한 매번 자신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믿음직하게 전장을 호령하던 그들의 단장은, 별것 없는 마족의 일격에 무참히 날아갔다. 그것이 단원들에게 있어선 무엇보다도 큰 충격이었다.
“젠장! 적룡이야. 적룡이 단장을 데려갔다고!”
대검을 팽개친 반이 하늘을 올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반사적으로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처음 고요에 산맥에 입성했을 때도, 적룡은 단숨에 카델을 데리고 달아났다. 지켜 주겠다던 다짐이 무색할 만큼 몹시도 간단하게.
“쿤라 님은 적이 아닙니다. 단장님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잠시 대피시킨 걸 수도 있어요.”
가르엘은 대검을 주워 반에게 돌려주었다. 달래는 말을 건네면서도, 표정은 굳어 있었다. 카델은 부하를 버리고 홀로 후퇴하는 책임감 없는 단장이 아니다. 오히려 무리해서라도 끝까지 버텨 싸움을 끝내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말도 없이 전장을 떠났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것.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카델은 지금 이곳의 누구보다 강력한 존재의 옆에 있고, 남은 자신들은 카델의 빈자리를 대신해 싸움을 이어 가야 한다.
“요젠, 대장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나?”
“그림자 분신으로 봐선 이미 쓰러진 것 같아. ……오늘의 카델은 이상했어. 어쩌면 적룡이 문제일지도 모르지.”
“흐응, 그건 아닐걸.”
하늘에선 더 이상 쿤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적룡의 꽁무니를 쫓던 시선을 내린 라이돈이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저 도마뱀은 우리 자기한테 약해. 그리고 아주 짜증 나는 사실이지만, 카델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도마뱀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야.”
몸이 좋지 않다면 가르엘에게 치유술을 부탁하면 된다. 기분이 좋지 않다면 카델은 모든 싸움이 끝난 뒤에야 어렴풋하게나마 티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카델은 전장에서 쓰러질 만큼 심각한 본인의 상태를 방치했다. 그것은 그의 문제를 이곳의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일 터.
라이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 루멘이 검집을 그러쥐었다.
“대장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 돌아온 대장에게 패배를 안겨 줄 수는 없지. 난 돌아가 싸우겠어.”
카델이 없다면 남은 이들이라도 그의 의지를 이어야 했다. 그들에겐 돌아온 카델이 안심하며 웃을 수 있는 확실한 승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루멘은 단호하게 전장으로의 복귀를 택했으나, 몇몇 단원들은 쉽사리 등을 돌리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쿤라의 곁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만약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힘들어하는 그의 옆을 지키고 싶다는 욕구는 그리 쉬이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