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9화 (35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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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의 갱도. 너비도, 높이도 적당하다. 조금 더 탁 트인 공간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기사들과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요젠이 정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아래로는 새까만 암기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오랜만에 사용하네.’

마지막으로 이 기술을 사용한 게 언제였더라. 5년 전쯤, 꽤 실력 좋은 도적단을 상대했을 때였던 것 같다. 대낮이었던 데다, 몸을 숨길 장소도 마땅치 않아 별수 없었지.

상당량의 암기를 필요로 하는 기술이었다. 이 정도 힘까지 발휘해 성에 차지 않는 인간들을 구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없으면 포트라는 마족을 상대할 수 없다는데. 자신의 존재가 살인이 아닌 생존에 기여하는 경험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별로 익숙해질 필요도 없고.’

반박하듯 잡념을 떨쳐 낸 요젠이 정면으로 손을 뻗었다. 구부러진 손끝이 마치 무언가를 집어내듯 단단히 고정되고. 그 안으로 암기의 덩어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둥글게 뭉친 암기가 점점 크기를 불리며 요젠의 손아귀를 채워 갔다. 그와 함께 웅덩이처럼 고여 있던 암기 또한 세찬 물줄기가 되어 거침없이 갱도의 바닥을 뒤덮었다.

흐르고, 고인다. 반대되는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요젠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카델은 불꽃을 피워 어두웠던 갱도를 밝혀 갔다.

시야를 되찾은 기사들은 포트가 남긴 짧은 비명을 유일한 단서 삼아 그 방면을 헤집었고, 카델은 장막을 보충하며 곧 포트의 위치를 파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흘렸다.

요젠은 그 모든 것을 감지했다. 거친 숨소리와 허공을 찌르는 검의 파공음, 소란한 대화와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 땀을 훔쳐 내는 소리, 익숙한 음성과 낯선 음성, 유독 도드라지는 한 인간의 기척까지.

모든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제 안에 새겼다. 그 행위의 다음은, 발산하는 것. 천천히 손목을 돌리자 지면을 향했던 손끝이 천장을 노렸다. 구부러진 손안 가득 암기의 덩어리가 차 있다. 요젠은 그것을 제 입가로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손안의 암기가 연기처럼 흩어지며, 갱도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암흑도시].

상대의 방어, 은신, 회피 상대를 무시하는 광범위 공격. 이것이 바로 요젠이 상위 콘텐츠에서 필수 기사로 꼽히던 이유였다.

‘이런 느낌의 기술인지는 전혀 몰랐는데.’

카델은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요하고, 어둡다. 불꽃을 피워 냈음에도 불덩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열기는 느껴지나, 불덩이의 빛과 형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를 지워 버린 것처럼.

‘온통 새까만데도 불을 피웠던 갱도 안보다 환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카델이 선 공간에는 한 점의 빛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장과 바닥, 벽의 위로는 온통 암기가 덧씌워져 앞뒤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시야는 전보다 훨씬 또렷했다. 어쩌면 변해 버린 몸 때문일지도 몰랐다.

‘……꼭 그림자 분신이 된 기분이란 말이지.’

슬쩍 시선을 내리자, 암기로 덮인 그림자 같은 몸체가 보였다. 일순 점멸하듯 차단되었던 시야를 회복하자마자 이 상태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암기에 적셔져 검게 물들었다. 변한 것은 외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리 힘차게 걸어도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으며, 귀도 먹먹하게 막혔다.

만약 이것이 요젠의 기술임을 몰랐더라면, 지금쯤 어찌할 바를 몰라 패닉에 빠졌을 테다. 변해 버린 몸을 제외하더라도 그랬다.

그의 앞에는 암기로 빚어진 높은 건물들이 있었다.

‘갱도의 천장보다 높아. 공간을 이동했을 리는 없으니…… 환상인가?’

건물들은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로 사위를 빼곡하게 채웠다. 사방이 좁은 골목이었고, 이토록 많은 건물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음에도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입구가 존재하지 않는 탓이었다.

카델은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다, 이내 성큼성큼 나아가기 시작했다. 위험이 될 만한 요소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어딜 가든 요젠의 공격 범위 안이야. 여기서 내가 다치거나 위험해질 확률은 낮다. 다만…… 함께 있던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조금 찜찜하네.’

단원들은 걱정되지 않는다. 요젠이 그들을 해칠 리 없으니까. 그러나 그림자 기사단의 안위는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요젠이 그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안다. 카델이 염려하는 것은 바로 제프리 홀리벤. 혹시라도 요젠이 마족과 함께 그를 죽여 버린다면.

‘요젠은 포트의 위치만 찾아 주는 게 아니라, 공격까지 가능한 기술을 사용했어. 직접 움직일 생각이겠지. 만약 그 선택의 이유에 제프리가 포함돼 있다면…….’

모든 전투가 끝난 뒤. 카델은 지금의 기술이 자신의 부하, 요젠의 것임을 밝혀야 했다. 그런데 그가 여기서 제프리를 죽이게 된다면, 제프리의 죽음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며 그림자 기사단을 설득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문제는 요젠이 그 설득에 따라 주지 않았을 때 벌어진다. 그가 설득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 발언을 거부하고, 기사단을 떠난다는 선택지를 고려하게 될까 봐. 그것이 불안했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 있어. 라이돈의 환혹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술이다. 요젠의 암기는 사물을 가릴 수는 있어도, 없애거나 바꾸지는 못해.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요젠이 나쁜 마음을 먹기 전에 먼저 제프리를 찾아내야 했다. 또다시 요젠의 암살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에게 빠져나갈 구멍 정도는 만들어 줘야지 않겠는가.

그렇게 점점 빨라지는 걸음을 따라 눈앞에 펼쳐진 건물의 수도 늘어났다. 달려가면 달려갈수록 길목의 너비가 넓어졌고, 건물의 높이도 높아졌다. 온통 검게 물든 세상 속에서, 카델은 고요한 뜀박질을 이어 갔다.

그리고 이내 또 다른 인간을 조우할 수 있었다.

‘다스토 경……?’

다스토의 눈에도 자신이 이렇게 비치고 있을까. 카델은 먹을 뒤집어쓴 듯 검게 젖은 다스토를 바라보았다.

서로 열심히 입을 벙긋거렸으나, 오가는 대화 소리는 없었다. 곧 평범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두 남자는 간단한 수신호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전할 내용은 간단했다. 현 상황이 적의 계략이 아니라는 점과, 기사들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것.

신호를 알아들은 다스토는 단원 수색은 각자 진행하자는 의견을 냈다. 카델 역시 바라던 바였기에, 두 단장은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라지게 됐다.

‘일단 이 공간에 다른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어. 요젠이 어떤 이유로 사람들을 격리한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다스토를 금방 만났으니 나머지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자신감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카델은 다스토와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다른 기사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이상할 정도로 한적했다.

그림자 기사단은 호계 기사단처럼 대대 단위가 아니니 인원이 적긴 하지만, 이곳은 도시로 눈속임을 한 갱도다. 넓은 초원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의문이었다.

‘심지어 건물들 때문에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은 원래보다 훨씬 좁아졌어. 그런데도 그림자 기사단은커녕 내 부하들까지 보이지 않는다니. ……뭔가 이상해.’

포트도 마찬가지였다. 게임 속 놈의 본 모습은 보통 마족보다 훨씬 신장이 크고 몸이 길쭉했다. 놈이 암기에 덮였다면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다스토와 제대로 대화할 수 있었다면 이 상황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원활한 정보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그렇게 의문만 가득한 의미 없는 걸음을 이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잠깐.’

카델의 시선이 문득 건물을 향했다. 지금껏 마땅한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저 현실 감각을 낮추기 위한 구조물이라 여겼던 것.

조심스럽게 건물에 접근한 그가 외벽을 훑었다. 손끝으로 매끈한 암기의 촉감이 느껴졌다.

‘환상이 아닌 실재하는 것. 없애지 않고, 가려 둘 뿐인…….’

여전히 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입구가 없다고 내부를 살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마법은 사용할 수 있어.’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그가 양손을 펼쳐 화염 마력을 응축시켰다. 불꽃이 모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후끈한 열감이 이곳에서 마법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렸다. 익숙하게 마력을 조절한 그가 막힘없이 화염구를 쏘아 날리고.

꾸르륵. 꾸륵.

건물을 직격한 화염구가 외벽에 커다란 구멍을 내며,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빠르게 내부를 훑어 내던 카델의 시선이 멈칫했다.

‘내 짐작이 맞았어.’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부하는 아니다. 그림자 기사단의 단원 중 한 명인 듯했다. 그는 건물에 구멍이 난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내벽에 기대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자리한 익숙한 인형.

요젠이었다. 그 또한 그림자 분신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고, 카델이 등장했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카델은 천천히 구멍을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기사는 카델이 지척으로 다가온 뒤에야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몸을 떨었다.

‘……제프리는 아니야. 계속 이 안에 갇혀 있었던 건가? 그런데 왜 나가려고 하지 않고 여기서 요젠이랑 함께 있는 거지.’

요젠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제프리도 아니고, 포트도 아니다. 별 두각도 없던 평범한 기사를 감시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러한 의문은 오래지 않아 해결됐다.

“포트는 알아서 처리할 테니, 기술이 끝날 때까지 여기 있어.”

깊은 적막 속에서, 요젠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카델은 넘쳐나는 할 말을 꺼내기 위해 간절한 눈빛으로 요젠을 보았으나, 그는 카델을 보지 않았다. 그의 고개는 제 앞에 앉은 기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카델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자는 요젠이 아니다. 요젠의 진짜 그림자 분신. 모두가 분신처럼 암기에 젖어 있었기에 단박에 알아보지 못했다.

‘혹시 이런 식으로 건물마다 사람들을 가둬 놓고 나오지 못하게 한 건가? 그렇다면 다스토는 왜…….’

잠시 생각하던 카델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 앞의 기사는 요젠의 말을 믿고 지금껏 건물에 앉아 휴식하고 있었다. 그가 포트를 죽이리라 생각해 굳이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아마 자신의 부하들 역시 요젠을 믿고 건물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다스토는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암살자인 요젠을 경계했고, 적으로 의심하기도 했다. 또한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이기도 했으니. 부하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아마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건물을 부수고 나왔겠지.

그에게 그런 비화를 전해 듣지 못한 이유는,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손짓만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다스토는 카델 역시 똑같은 과정을 겪었으리라 짐작했을 테니.

‘그게 사실이라면 요젠은 모두를 격리하고 혼자 포트를 상대하고 있다는 얘기가 돼.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포트를 혼자 처리하려는 거지?’

혼자만의 힘으론 무리일 것이다. 그의 계획이 무엇이든, 부하를 위험한 전투에 무방비하게 노출할 순 없다. 카델은 당황한 기색인 기사에게 대기하고 있으란 신호를 보낸 뒤, 곧장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주변 건물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포트도 건물 안에 있을 거야. 그 기다란 놈이 여태껏 보이지 않을 이유는 그것밖에 없어.’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싼 건물을 일일이 깨부수며 내달렸다. 건물 안에는 기사가 있기도 했고, 어느 곳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부하들을 발견했다면 좋았겠지만, 불운하게도 근방에 있는 이들은 그림자 기사단뿐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건물을 부쉈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더는 달리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설 무렵. 카델은 포트가 있는 건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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