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4화 (354/521)

그날 밤, 요젠은 따뜻한 온기와 함께 잠을 청했다. 처음에는 침대의 안락함에 적응하지 못해 뒤척이던 그는, 새우처럼 등을 말아 몸을 한껏 웅크리고서야 겨우 얌전해졌다.

카델은 침대맡에서 어린 요젠을 지켜보았다. 그는 바깥의 작은 소음에도 곧장 반응하며 깨어났고, 어두운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부드러운 이불 위에 뺨을 문질러 보기도 했다.

고작 편안한 잠자리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요젠은 천금을 가진 사람처럼 한없이 벅차했다. 그것이 카델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앤디와 헬레나는 요젠이 고아라는 사실과 그가 지금까지 용병단의 군식구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용병단에서 당해 왔던 일들을 전해 들은 그들은, 요젠을 양아들로 삼아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세 달 뒤.

“요젠, 같이 사냥 나가지 않을래? 간만에 고기가 먹고 싶어서 말이야. 사슴을 잡아 볼 생각이야. 어떻니?”

“좋아요.”

“좋아, 그럼 실력 발휘 좀 해 보자꾸나.”

앤디와 헬레나는 형편은 좋지 못해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부부였다. 그들은 요젠에게 처음으로 사랑과 관심을 베푼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배려 속에서, 요젠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갔다.

한 번 웃는 일 없던 비굴한 표정에 온화함이 스며들었다. 상처와 부기 없는 얼굴은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 요젠은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띌 만큼 아름다운 미소년으로 자라났다. 쭉 그를 지켜보던 카델조차 같은 사람이 맞는지 혼란스러워했을 정도였다.

“저쪽에서 기척이 느껴져요, 아저씨.”

“응? 저쪽? 이쪽이 아니라? 발자국은 여기로 이어져 있는데…….”

“저쪽.”

“……그래. 이런 건 항상 네가 옳았으니까. 가 보자.”

앤디는 요젠을 따라 나무 사이를 가로질렀다. 사냥을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닌지, 요젠은 산길을 막힘없이 내달리며 기척에 집중했다.

그의 눈빛은 침착했고, 나뭇가지와 돌부리를 능수능란하게 피해 가는 발놀림은 깔끔했다. 반면 앤디는 숨소리조차 요란했다. 그는 요젠이 조용히 움직이는 보람도 없이 온몸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했다.

결국 앤디가 사냥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인정한 요젠이 걸음을 멈춘 채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땀에 젖은 얼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부턴 저 혼자 갈게요.”

“뭐? 왜?”

“……둘 다 쫓아가면 사냥감이 눈치챌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가야지. 너 혼자 사냥하게 둘 순 없어. 위험하잖아.”

“사냥은 항상 제가 해 왔잖아요.”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우린 항상 힘을 합쳐서 잡아 왔잖아? 협동심을 발휘해서!”

“금방 다녀올게요. 위험하면 소리 지를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요젠은 앤디의 걱정이 이어지기 전에 빠르게 몸을 돌려 달려갔다. 그를 쫓아가려던 앤디는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벌리는 요젠의 뒷모습에 곧 허망하게 멈춰 섰다.

“하지만 활은 내가 들고 있는데…….”

한편, 손쉽게 앤디를 떨쳐 낸 요젠은 멀지 않은 곳에서 사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사슴은 호숫가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자신을 노리는 사냥꾼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몸짓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데 눈치채지 못하다니……. 역시 재능이야.’

요젠은 바로 지척에서 사슴을 주시하고 있었다. 활을 쏘면 못 맞히는 게 이상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으나, 안타깝게도 요젠에겐 활이 없었다. 대신 그는 품속에 숨겨 두었던 단검 두 자루를 꺼냈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접근하는 그에게선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요젠보다는 조금 엉성해 보이긴 해도, 사슴 한 마리를 습격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은신이었다.

그렇게 요젠이 사슴의 숨통을 끊어 내기 가장 적합한 거리까지 좁혀들었을 때.

“요젠! 거기 있니?”

기어코 요젠을 쫓아온 앤디가 우렁차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

나뭇가지에서 쉬던 새까지 날려 보낼 만큼 우렁찬 외침에 사슴이 반응하지 않을 리 없었다. 사슴은 요젠이 이 황당한 사태에 직면함과 동시에 반대편으로 도주했다. 순식간에 코앞의 사냥감을 놓쳐 버린 요젠의 표정에서 허무함이 맴돌았다.

“아, 요젠! 거기 있었구나. 너 말이야, 활도 가져가지 않고 어떻게 사냥을 하겠다고 그래? 내가 안 찾아왔으면 어쩔 뻔했어?”

앤디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요젠은 어깨에 커다란 사슴을 이고 풍족한 식사를 즐겼을 테다. 그 당연한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앤디는 설렁설렁 요젠에게 다가가다,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을 발견하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 단검을 챙겨 왔던 거니?”

“…….”

“혹시 내가 방해한 거야?”

“…….”

“……사과하면 받아 줄래?”

이러나저러나 요젠은 순한 아이였다. 그는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미안해하는 앤디를 오래 방치하지 못했다. 그들은 짧은 어색함을 딛고 의기투합하여 사냥을 재개했다. 의욕이 넘쳐나 당장 곰을 맞닥뜨린대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저씨, 화살을 거기 꽂으면……!”

“어어, 저기 간다! 요젠, 저기! 저기야!”

“소리 좀 줄이세요……!”

“어어, 내가 쐈어! 쐈…… 응? 나무에 박혔네?”

“그렇게 막 뛰지 마세요!”

“아야! 가시에 찔렸어!”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사냥을 해 온 것인지. 앤디의 실력은 처참하기만 했다. 사냥꾼이라기보단,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방해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요젠은 당장이라도 앤디를 떨쳐 내고 싶은 기색이었으나, 차마 입 밖으론 꺼내지 못하고 한숨만 집어삼켰다. 단검을 쥔 손이 하얗게 질린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답답한 듯했다.

결국 두 남자는 사냥에 실패했다. 앤디도 자신의 존재가 방해였다는 걸 깨달았는지, 호숫가에 앉은 요젠의 낯빛을 살피며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꺼낸 사과 한 알을 내밀었다.

“자. 이거 먹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먼저 돌아가세요. 토끼라도 잡아 갈게요.”

“에이, 됐어. 그렇게까지 힘들게 잡을 필요는 없어.”

“아줌마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요젠은 한숨과 함께 앤디에게 받아 든 사과를 베어 물었다. 다 잡은 사냥감을 몇 번씩이나 놓친 탓에 정신적 피로까지 쌓인 듯했다.

“……여기서 물고기나 잡아 갈까?”

“생선으로 될까요?”

“헬레나는 생선도 좋아하거든. 신선한 야채도, 숙성된 고기도 좋아하지.”

앤디는 작게 웃으며 하늘을 올려 보았다. 천천히 노을 지는 하늘을 담아내는 그의 눈빛에선 은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요젠.”

“네?”

“우리와 함께해서 즐거우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요젠의 고개가 돌아갔다. 하늘을 올려보던 앤디가 시선을 옮기자, 슬쩍 눈을 피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앤디가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네게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

“이미 충분히 좋은 분들이세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사실, 조금 걱정이 됐거든.”

앤디는 어색하게 굳어 있는 요젠의 어깨를 감싸 장난스레 끌어당기고는, 반쯤 먹은 사과를 빼앗아 베어 물었다.

“네가 용병단에서 겪었던 일들은 정말 끔찍했으니까.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는대도 이상할 게 없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꼭 알려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은 훨씬 많다는걸.”

“…….”

“선의는 선의를 낳는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산다면, 세상은 계속해서 아름다워질 거야. 그 아름다운 세상에서 네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게 나와 헬레나의 꿈이야.”

“……그렇다면요, 아저씨.”

“응?”

“선의가 선의를 낳는다면, 악의도 악의를 낳는 걸까요?”

조용한 물음에 앤디는 잠시 침묵했다. 허공을 응시하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이내 쾌활한 어투로 답했다.

“아니! 악의가 낳은 악의는 언제든 끊을 수 있는 굴레야.”

“어떻게 끊을 수 있는데요?”

“용서. 만약 나의 용서로 그 지저분한 굴레를 부술 수 있다면, 나는 몇 번이라도 상대를 용서할 거다.”

“……그런 게 가능한 거예요?”

“그럼. 그런 못된 심보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내 삶이 너무 소중한걸.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이야. 그러니 요젠, 너도 현재를 살렴. 과거를 딛고 앞만 보자꾸나. 그 앞엔 언제나 우리가 있을 테니.”

사냥에는 재능이 없었으나, 앤디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택한 아이의 행복을 위해 흘러넘치는 사랑을 퍼다 주었다.

요젠은 앤디의 애정을 받으며 수줍게 몸을 움츠렸다. 평생 받아 본 적 없던 애정은 그를 느리지만 착실하게 녹여 내고 있었다.

만약 이 평화가 쭉 이어졌다면, 요젠은 암살자가 될 일도, 혼자이길 택할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요젠의 미래는 정해졌다. 그리고 카델은, 그의 평화로운 미래를 망친 원흉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저 녀석은…….’

앤디와 요젠이 살 오른 생선을 잔뜩 잡아 돌아온 오두막. 그곳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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