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2화 (35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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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돌아오는 시야와 함께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둔중한 타격음. 뭔가를 으깨는 소리 같기도 했고, 가죽을 세게 내리쳐 다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히 돌아온 시야 속, 카델이 발견한 것은 둘 중 무엇도 아니었다.

‘저게 지금… 뭘 하는 거야?’

앞에 자리한 이들은 두 명의 건장한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년이었다. 한 명은 작은 소년을 벽에 밀어붙인 채 사정없이 걷어찼고, 다른 한 명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자비한 자신의 동료를 지켜봤다.

얼마 안 가 카델은 자신이 들었던 타격음의 정체를 깨달았다. 다급히 벽 앞으로 시야를 이동하자,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린 소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소년은 신음 한 번 내지 못하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구타를 견뎌 내고 있었다.

짙은 남색의 머리칼과 왜소한 체구를 가진 소년. 드러난 살갗 곳곳이 생채기로 가득해, 원래 피부색을 유추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카델은 직감적으로 소년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온몸에 불행이 묻은 듯한 이 가련한 소년은, 다름 아닌 요젠 바르딕타의 어린 시절이다.

‘이 미친 새끼들이……! 때릴 곳도 없는 어린애한테 뭐 하는 짓이야!’

머리끝까지 열이 몰리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당장이라도 요젠에게 발길질을 해 대는 저 남자의 사지를 떼어 내야 성이 풀릴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더 요젠을 걷어차던 남자는,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꺾었다. 남자의 얼굴 위로 하찮은 충족감이 아른거렸다.

그는 경련하듯 떨고 있는 요젠의 앞에 가래침을 뱉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뭔가를 꺼내 들었다. 주먹만도 못한 작고 못생긴 빵 덩어리였다. 그것을 요젠에게 던진 남자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진짜 병신 되기 싫으면 제대로 일해, 꼬맹아. 우리는 쓸모없는 놈을 거두지 않아.”

요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래침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빵을 거둘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짜증스레 혀를 차며 돌아섰다.

그는 뒤에 있던 동료의 어깨를 밀치듯 두드리며 지나쳤다. 폭행을 관망하던 남자였다. 흑갈색 머리칼과 기분 나쁜 미소 가진 남자는, 동료를 따라 돌아가는 대신 요젠의 앞으로 다가갔다. 구부정하게 쭈그려 앉은 그가 시체처럼 축 늘어진 요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램프가 널 싫어해서 저러는 건 아니야. 표현이 서투른 친구라서 그래. 사냥이 실패해서 화가 난 모양이지. 내일이면 풀릴 거야.”

“…….”

“요젠, 너만 이해해 준다면 우린 다시 평소처럼 지낼 수 있어. 맛있는 밥도 나눠 먹을 거고, 따뜻한 옷도 구해 줄 거야. 그러니까…… 용서해 줄 거지?”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목소리였다. 요젠의 옆에서 남자를 경계하던 카델은, 위로를 가장한 세뇌를 들으며 가슴이 턱 막히는 분노를 느꼈다.

‘어디서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다 큰 성인이 어린아이를 죽도록 때리며 학대했다. 그 모든 장면을 지켜만 보던 놈은, 상처를 치료하거나 아이를 대피시키기는커녕 가증스러운 말로 폭력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었다.

분노로 띵띵 울리던 머리는 이어지는 요젠의 대답과 함께 맥이 풀렸다.

“……네. 용서할게요.”

목구멍에 피가 끓어 끝이 뭉개진 처량한 쇳소리. 남자는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요젠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당연하게도 요젠을 일으켜 주거나 안아 드는 배려는 없었다.

“내일모레 다시 출발할 거야. 그때까지 저번 사냥을 반성하고, 제대로 성공시키자.”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남자가 주저 없이 골목을 벗어났다.

‘하…….’

과거 회상의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해 버렸다. 카델은 멍해진 기분으로 어린 요젠을 돌아보았다.

비록 부기와 멍으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진 못했지만, 과거의 요젠에겐 멀쩡한 두 눈이 있었다. 검은색 눈동자였다. 어린 소년의 눈빛이라면 응당 호기심과 장난기로 반짝거려야 하건만. 요젠의 눈은 깊은 심연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요젠은 앙상하게 마른 몸을 비척비척 일으켜는가 싶더니, 이내 쓰러지듯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숨소리조차 버겁게 들렸다.

간헐적으로 역류하는 피를 질질 흘리며 곧 죽을 사람처럼 헐떡이던 요젠은, 곧 보물인 양 품고 있던 빵 덩이를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목이 막힐 텐데도 멍으로 가득한 가슴을 두들기며 꾸역꾸역 배를 채웠다.

이 어린 소년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처절하기까지 한 생존 본능에, 카델은 지독한 무력감과 슬픔을 느꼈다. 요젠의 과거가 심상치 않으리라는 건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상상 이상이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이고, 요젠은 왜 저런 인간 말종들과 어울리는 것이며, 무엇을 함께하는 것인지. 호기심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불행한 삶을 견뎠던 거야.’

요젠의 침실은 마구간이었다. 그는 말똥과 여물이 가득한 마구간에서 짚단을 침대 삼아 잠을 청했다. 여전히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으므로, 마구간은 요젠의 신음과 말들의 콧김 소리로 가득했다.

추위와 고통으로 떨리는 몸이 안쓰러웠다. 괜히 옆을 서성이며 무엇이라도 도와줄 방도가 없는지 고민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던 요젠은 이내 잠꼬대처럼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귀를 기울이자, 어설프게나마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살, 려 주세요…. 아파…….”

사람이 이리도 끔찍한 분노를 느낄 수 있던가. 누군가 심장을 도려내 내동댕이친 기분이었다. 아니, 눈앞에서 제 심장을 먹어 치우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분노로 머리가 뜨끈했으나, 어디에도 방출할 곳이 없었다.

카델은 들리지도 않을 위로를 하며 고통스레 일그러진 어린 얼굴을 어루만지려 노력했다. 지금의 요젠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탄탄한 몸도,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도, 부기 빠진 날렵한 얼굴도 없다. 어린 시절의 요젠은 유약했고, 무력했으며, 모든 폭력과 고통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정말 어디에도 그를 보호해 주는 이가 없었던 걸까.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이런 과거에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인간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생각은 다음 날이 되어도 여전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일해, 이 머저리야!”

요젠은 불편한 잠자리에서 오래 눈을 붙일 수도 없었다. 새벽부터 마구간에 쳐들어온 사내는 멍투성이의 몸을 거칠게 흔들어 깨우고는, 그 앞에 수십 자루의 검을 쏟아부었다.

“핏자국 하나 없이 반짝반짝하게 닦아. 이 빠진 놈 있으면 모아다 헨리한테 가져가고.”

잠도 덜 깬 얼굴로 사내의 말을 듣던 요젠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바, 밥 주실 거예요……?”

“쯧, 누가 식충이 새끼 아니랄까 봐. 그래, 일 다 하면 줄게. 대신 조금이라도 대충 한 흔적이 보이면 굶을 줄 알아.”

요젠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살피기 시작하자, 사내는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 갔다.

‘저 새끼는 또 뭐야? 대체 여기가 어디길래 날마다 새로운 쓰레기가 생성되는 거냐고. 싹 다 모아서 태워 버리고 싶네.’

머릿속이 온통 살벌한 충동으로 가득했다. 요젠은 어제보다 두 배는 부은 상처를 달고 핏자국이 눌어붙은 검날을 벅벅 닦아 댔다. 저렇게 열심히 일해 봤자 얻어먹는 것은 고작 빵 몇 덩이일 테다. 물이나 주면 다행일까.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카델은 날에 베여 기어코 피를 본 요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마구간을 벗어났다. 더 이상 참고 볼 수가 없었다. 당장 요젠에게 이런 짓을 하는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용병단이었다. 무명 용병단인 그들은 의뢰보다 마물을 소탕해 나온 재료를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듯했다.

그들이 묵는 낡은 여관의 뒷골목. 그곳에 요젠을 구타하던 램프라는 남자와, 그를 관망하던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블린 가죽만 팔아서는 이번 달도 용병단 운영이 빠듯할 거야. 와이번 송곳니 정도만 돼도 자금이 넉넉해질 텐데.”

“그놈은 비행 마물이잖아. 잡기 까다로워. 비슷한 급은 오우거 정도인데, 그놈들을 잡으려면 우리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고블린 가죽만 한 게 없어.”

“젠장…….”

“벌써부터 좌절하지 마, 램프. 우린 물량으로 승부 보면 되지. 한탕 쓸기 좋은 미끼도 있잖아?”

남자가 램프를 위로하듯 등을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그러자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던 램프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요젠, 그 꼬맹이는 겁이 너무 많아. 다른 거지새끼를 주워 와야겠어, 사이론.”

“재밌는 소리를 하네. 요젠이 지금까지 미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야. 겁이 많아서. 용감하고 무식한 놈들은 쉽고 빠르게 죽지.”

“……그런가.”

“그래. 잘만 구슬리면 오래 써먹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성과 좀 못 냈다고 그렇게 때리지 마.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

“제깟 게 물어 봤자 간지럽기만 하지.”

날카로운 조소를 뱉은 램프가 사이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러고는 묘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쓸모가 있으니 그런 식충이를 잡아 두고 있는 거지만 말이야……. 그 꼬맹이만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

“기분이 나쁘다고? 그건 요젠이 너한테 해야 할 소리 아닌가?”

“닥쳐.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니야.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는 얘기라고.”

램프의 말에 사이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동족 혐오?”

“죽고 싶으면 계속 떠들어 봐.”

“아니, 램프. 그런 게 아니라면 그 작고 병든 닭 같은 꼬마가 왜 기분이 나쁜 건데?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느끼는 건 아니고?”

“그딴 말랑한 감정이 아니야. 그냥……. 그 꼬맹이는 꽤 오랫동안 미끼 역할을 해내고 있잖아.”

“그렇지.”

“열 살도 안 된, 뭐 배운 것도 없는 고아 녀석이 지나치게 오래 살아남았다고. 그게 종종 소름 끼치게 느껴져.”

램프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으나, 사이론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는 크게 웃으며 램프의 어깨를 주물렀다.

“돈 없는 건 참아도 겁 많은 단장님은 못 참아. 이대로 탈주하기 전에 헛소리는 다시 입 안으로 넣어 둬.”

“……개 같은 녀석.”

두 남자는 깔깔거리며 서로에게 협박 같은 농담을 던져 댔다.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나, 그들을 지켜보는 카델의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 갔다.

미끼. 저들은 요젠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요젠을 이용하는지는 모르나, 분명 생사를 넘나드는 일일 테다. 그 작고 어린아이를 본인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저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짐승보다도 못한 폐기물이었다. 카델은 몇 번이고 램프와 사이론의 이름을 곱씹었다. 만약 이 과거가 끝날 때까지 저 두 놈이 무사히 살아있다면, 직접 찾아가 목을 베어 버리리라.

용병단을 훑어본 뒤에는, 다시 요젠을 찾아 돌아갔다. 용병단의 인원은 적은 편이 아니었으나, 그중 이 외로운 소년을 챙기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이렇게 굴려 대면서 주는 거라곤 고작 빵 하나랑 수프 한 접시라니.’

그새 할당량을 채운 요젠은 보상으로 받은 빵과 수프를 허겁지겁 해치우고 있었다. 밥 정도는 바깥에서 먹어도 될 텐데. 요젠은 냄새나는 마구간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했다. 내부가 좁은 탓에 밥을 먹다가 말꼬리에 머리를 얻어맞거나, 호기심 많은 말이 코앞으로 얼굴을 내밀어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말문이 막힐 정도로 불쌍했다. 카델은 퍽퍽한 빵을 꾸역꾸역 씹어 넘기는 작은 아이의 옆을 지켰다. 이 좁고 쾌쾌한 공간이 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임을 통탄하며.

이후에도 요젠은 여기저기서 떠넘기는 잡일을 해치우고, 저녁으로 받은 육포 한 조각을 사탕처럼 빨아 먹다 지쳐 잠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온 다음 날 아침. 용병단은 사냥에 나섰다.

*

용병단의 목적지는 고블린으로 골머리를 썩인다는 어느 오지 마을의 뒷산이었다. 요젠은 새벽부터 그들의 손에 질질 끌려 동행했다. 이동하는 내내 마차의 짐칸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거나, 개인에게 배당된 빵을 다른 용병에게 빼앗기거나, 온갖 잡스러운 심부름으로 고생하는 등. 카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은 차고도 넘쳤다.

그러나 용병단이 뒷산 앞에 도착한 정오. 카델은 지금까지 그들이 벌여 온 모든 추잡한 행동들이 새 발의 피였음을 깨달았다.

‘저, 저게 대체… 뭐 하는 거야……?’

과도하게 충격적인 일을 목도하면 사고가 정지하고 마는구나. 카델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 바가지 더 부어!”

용병들은 움츠러든 요젠을 우악스레 끌고 와서는, 짐칸 한구석에 있던 오크통을 들고 그 안의 내용물을 들이부었다. 보통 오크통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술이 아니던가. 그러나 요젠의 위로 쏟아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피였다.

검붉은 핏물이 순식간에 요젠의 전신을 적셨다. 양팔이 결박당한 그는 얼굴조차 가리지 못한 채 정면으로 핏물을 맞아야 했다. 호흡과 함께 스며든 핏물에 요젠이 괴롭게 기침했다. 역겨운 냄새에 헛구역질하기도 했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었다. 카델은 화를 내야 한다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그들을 지켜보았다.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요젠은 용병들이 팔을 놓아준 뒤에야 얼굴을 문지르며 가쁜 숨을 골랐다. 그런 그의 앞으로 램프가 다가왔다.

“오늘은 똑바로 미끼 역할을 해. 평소보다 많이 모일 거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엉덩이에 불붙은 것처럼 달리라고.”

“큽… 후우…….”

“알아들었어?”

“……네.”

기괴한 꼴을 한 요젠이 고개를 끄덕이자, 램프는 부하들을 이끌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입까지는 다 함께 오르더니, 중턱에 다다라서는 뒤따라오던 요젠을 끌어 앞세웠다. 그러고는 모두가 합심한 것처럼 요젠만을 놔두고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

요젠은 순식간에 혼자가 되었다. 적막한 산속에서 피 칠갑을 한 어린 소년이 우두커니 섰다. 유일하게 피에 물들지 않은 검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굴러갔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한참을 자리에 서 있던 요젠이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떨림은 숨길 수 없었다. 바짝 긴장한 몸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발발 떨렸고,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카델은 사라진 용병들의 위치를 가늠하며 요젠을 쫓아가면서도, 들어차는 끔찍한 상상을 떨쳐 내지 못했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런 일을 겪었을 리가 없잖아. 그런 건 악마도 시키지 않을 짓이라고.’

놈들이 부르던 미끼라는 호칭, 정체불명의 피를 뒤집어쓴 요젠, 고블린 부락이 위치한 뒷산, 고블린 가죽을 팔아 생계를 이어 가는 용병단.

이 모든 단서는 요젠이 지금부터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알려 주었지만, 카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오, 온다.”

몸을 웅크린 채 나아가던 요젠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잠잠하던 수풀이 들썩이며 사방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키에엑!

고블린이었다. 불시에 뛰쳐나온 놈들은 두꺼운 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상대가 힘없는 소년임을 인지한 것인지, 거침없이 포위망을 형성하며 기세등등하게 접근했다.

제 주위를 둘러싼 괴물의 향연에 요젠의 낯빛이 흐려졌다. 호흡을 가다듬듯 숨을 멈추고 있던 그는, 이를 앙다문 채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먹잇감의 도주 시도에 고블린들이 우악스럽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지금의 요젠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전부 피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두툼한 방망이가 포위망을 빠져나가려는 소년의 어깨와 넓적다리를 매섭게 후려쳤다.

그대로 달리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도, 요젠은 짧게 비틀거릴 뿐 비명 한번 내지 않고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도주를 이어 가는 요젠의 눈빛에선, 학대를 버틸 때도 보이지 않던 독기가 어려 있었다.

더 이상의 부정은 의미가 없다. 요젠은 완벽한 미끼였다. 이 어린 소년이 피를 뒤집어쓰고 산속으로 들어간 것은, 피 냄새로 마물을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용병단은 한데 모인 마물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요젠을 이용했다. 어린 미끼의 생사 따위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젠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도망치지 못한다면, 자신은 고블린 떼에게 개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걸. 도망쳐 살아남는다 해도 똑같다. 미끼 역할을 해내지 못한 그는 쓸모없다는 이유로 버림받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요젠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더 믿기지 않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 유약한 몸으로 미끼 역할을 하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공포에 가까운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해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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