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돈은 미노를 안아 든 채 전사들을 피해 숲의 바깥으로 날았다. 인간들이 아직 숲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싸움은 피할 수 있다.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라이돈의 얼굴은 다급한 두려움으로 엉망이 돼 있었다.
그리고 같은 불안감을 품고 라이돈을 앞질러 가던 카델은, 곧 우려했던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안 돼…….’
그들은 이미 숲의 입구를 넘어 안쪽으로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라이돈의 표정이 낭패로 물들었다. 미노의 부모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 용병까지 고용해 데려온 듯했다. 얄팍한 검기와 느린 템포로 발사되는 암석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인간들의 기세등등한 욕설 사이사이로 미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빠른 비행에 두 눈을 꼭 감고 라이돈의 품에 매달려 있던 미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했다. 아이는 스무 명은 훌쩍 넘어 보이는 무리 속에서 단숨에 제 아버지를 찾아냈다. 며칠간 보지 못한 그리운 얼굴을 발견한 아이가 큰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했으나.
“으읍! 웁!”
“들키면 안 돼.”
라이돈이 미노의 외침을 막았다. 당장 미노를 인간들에게 내어 준대도 늦었다. 그들은 이미 전사들의 눈에 들었으니.
“침입자를 처단해라! 돌격!”
절도 있는 지시와 함께 폭우처럼 쏟아지는 얼음 창이 인간들을 덮쳤다. 그것은 카델 또한 라이돈의 환혹술으로 간신히 피할 수 있던 협동 마법이었다. 그것을 몇 명의 어설픈 용병만으로 떨쳐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공격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이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간신히 빗겨 친 얼음 창은 그들의 팔다리를 할퀴었고, 퇴로를 막았으며, 기어이 쓰러뜨리기도 했다.
환혹의 숲에 있는 요정은 그 전투력이 배로 증가한다. 실력 좋은 기사가 들어간대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장소. 오래된 과거래도 그 사실이 달라질 리 만무했다.
“우우웁! 읍! 크흡…!”
미노는 바로 아래서 쓰러져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발버둥 쳤다. 공포에 질린 시선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나무 뒤에 웅크린 아버지를 향했다. 어린아이가 지켜보기에는 너무도 잔인한 장면이었다.
‘여긴 인간 편을 들어줄 요정이 없어. 아무도 저 사람들을 지켜 주지 못할 텐데, 그렇다면 설마…….’
이곳에서 미노를 구하러 온 인간이 전부 죽게 되는 걸까. 끔찍한 상상을 하며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카델이 시야를 옮겼다.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요정족과 인간들의 일방적인 전투를 응시하던 라이돈이 하강하고 있었다.
땅 위에 미노를 내려놓자, 패닉에 빠진 아이가 몸을 떨며 발작하듯 말했다.
“아, 아버지가… 라이돈, 우리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
“아버지를 구해 줘! 주, 죽을 거야!”
“이쪽으로 쭉 뛰어가면 나갈 수 있어. 지금이라면 혼자서도 나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가!”
“계속 시끄럽게 굴면 다 죽여 버릴 거야.”
“읏…….”
미노를 담아내는 라이돈의 눈동자는 전에 없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 냉랭한 시선에 겁을 먹은 듯, 움찔거리던 미노가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뛰어. 딴 길로 새도 바로 죽일 거니까, 앞만 보고 가는 게 좋아.”
“왜, 왜 그렇게 무섭게 구는 거야.”
“가.”
라이돈이 위협하듯 한 발짝 내딛자, 망설이던 미노가 뒤를 돌아 달려 나갔다. 그가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라이돈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꾹 쥐었던 손을 펼쳐 하얀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손을 맞잡아 주고 싶었으나, 카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라이돈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하루만 있다가 보내 주려고 했어. 하루만 더 기다렸으면 됐잖아. 난 네 아들을 잡아먹지 않아. 해치지 않아. 그냥…… 조금만 더 얘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려다본 숲에는 시린 한기와 뜨거운 선혈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라이돈은 바닥에 쓰러진 인간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전부 멍청해. 너희 같은 멍청이들이 사는 땅이라면, 분명히 지루할 거야.”
느리게 손바닥을 맞댄 라이돈이 마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생성된 얼음 결정들이 회오리치며 라이돈을 감싸고. 결정이 일궈 낸 눈보라가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렸다.
“……안 봐도 뻔하다고.”
회오리를 둘러싸며 차례차례 떠오르는 푸른빛의 마법진. 그것을 발견한 카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설마 바깥에서 라이돈이 했던 그…….’
제국을 통째로 얼려 버린 대마법. 설마 이곳에서 똑같은 마법을 전개할 작정인 걸까.
‘여기서 그런 걸 했다간 다른 요정들까지 얼어 버릴 거야.’
한 단계씩 증폭하는 한기를 감지한 듯, 인간들을 공격하던 전사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널브러진 인간들의 몸에는 살얼음이 끼고, 두 종족의 사이로 눈보라가 스며들며 시야를 방해했다. 살을 에는 한기는 인간은 물론 요정까지 공포에 질리게 했다.
막을 방도가 없는 과거의 일임에도 카델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다른 요정이나 인간들의 목숨도 걱정됐지만, 그보다 걱정인 것은 삐거덕거리는 대마법을 억지로 유지하는 라이돈의 상태였다. 아무리 타고난 마법사라 해도 그는 어린 요정이었다. 이 정도의 대마법을 무리하게 시전했다간 몸이 크게 상할 것이다.
그렇게 기어이 날개가 얼어붙어 추락하는 전사들의 비명이 이어지던 찰나.
‘라이돈!’
섬광처럼 쏘아진 무언가가 라이돈을 지면으로 내리찍었다.
쿠웅!
둔탁한 소리가 지면을 울리며 흙먼지가 일렁였다. 카델은 다급히 시야를 옮겨 라이돈을 찾아갔다. 자욱한 흙먼지를 헤치며 나아가자, 곧 땅 위에 처박힌 라이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위에는, 지금껏 라이돈의 과거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이론. 요정 왕이었다.
“라이돈.”
하이론은 라이돈의 목덜미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싸늘하게 물었다.
“대답하렴. 무슨 생각으로 그 마법을 전개했지?”
라이돈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등장에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는 입을 다문 채 침묵을 고수했고, 하이론은 그런 아들의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러나 라이돈이 풀려난 몸을 일으키기도 전. 허공에서 나타난 얼음 손아귀가 라이돈을 강하게 낚아챘다. 라이돈을 포박한 손아귀는 그를 하이론과 마주 보도록 강요했다.
하이론을 정면으로 마주한 라이돈이 꾹 입술을 깨물었다. 하이론은 지켜보던 카델이 위축될 만큼 냉담하고도 매서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네 꼬마 친구를 인질로 삼고 싶진 않구나. 그러니 어서 대답하는 게 좋아.”
하이론은 이미 미노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성에 있는 수정구로 숲의 모든 곳을 살펴볼 수 있으니.
미노까지 언급되었으나, 라이돈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는 한참 시선을 내리깐 채 대답을 미루다, 땅에 쓸린 상처에서 피가 맺힐 즈음에야 중얼거리듯 말했다.
“싸움을 멈추려고 했어요.”
“누굴 위해서?”
“…….”
라이돈은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이론은 더 이상 그를 채근하지 않았다. 대신 상처 난 아들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라이돈은 고개가 돌아갈 만큼 강한 따귀를 맞았음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를 지켜보던 카델만이 경악하며 하이론에게 욕을 퍼부을 뿐이었다.
“이곳은 요정을 위한 터전이다. 이 넓은 세계에서 오로지 이 숲만이, 환혹의 숲만이 우리의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야. 라이돈. 이번에도 침략자는 인간이다.”
“…….”
“그러니 너는 동족을 위해 싸웠어야 해. 동족을 지키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어야 해. 우리의 힘은 우리의 투쟁을 위한 것이지, 침략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야.”
라이돈을 쥔 손아귀가 조금씩 조여들었다. 그럴수록 하이론의 눈빛은 점점 더 가라앉았다. 그는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인상을 구기지도 않았지만, 그럼으로써 더없이 큰 분노를 드러냈다.
“인간을 구하면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니? 그 아이가 네게 바다를 보여 줄 것 같았어?”
“……약속했어요. 아주 잠깐, 하루 정도면 저도 숲을 나갈 수……!”
“넌 나갈 수 없다.”
“왜요? 내가 요정 왕의 후예니까? 대를 이어야 하니까?”
“네게는 봉인이 걸려 있으니까. 넌 이 숲을 나가서도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어. 널 노리는 인간들에게서 네 한 몸을 지킬 수도 없지. 이 숲을 나간다면 넌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채 핍박 속에서 죽어 갈 거야. 또한 네 죽음은 너만의 끝이 아니다. 네가 죽는다면 핀하이족의 아이들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해.”
하이론은 핏발 선 눈으로 고요히 읊조렸다. 바짝 조여진 손아귀는 금방이라도 라이돈을 으스러뜨릴 듯했다.
“그런데도 나가겠니? 제 아비가 왜 이곳에서 공격받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인간의 약속을 믿고?”
“나는…….”
“나가야겠다면 네 손으로 직접 동족을 몰살하렴, 라이돈. 네 자유를 위해 모두를 죽이고 떠나.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극단적인 훈육이었다. 그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카델은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라이돈의 눈에 비친 절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니요.”
그 우울한 대답에 드디어 라이돈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떨어진 라이돈이 힘겹게 중심을 잡고 일어서자, 공중으로 떠오른 하이론이 낮게 일갈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돌려보내마. 두 번의 실수는 없기를 바란다, 아들아.”
지금의 라이돈은 숲을 빠져나와 온몸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도 가고 싶어 하던 바다의 진실을 알았고, 달콤한 사탕도, 새로운 나라도, 새로운 인간도 접하며 조금씩 세상과 어우러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 2년 남짓한 시간일 뿐이다. 라이돈이 숲속에 갇혀 지독한 고독과 권태를 느끼며 미쳐 간 세월에 비하면, 찰나에 가까운 시간. 그것이 카델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아지트로 돌아온 라이돈은 암울한 낯으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다. 하이론이 상황을 정리하는 중인 듯 근처에서 자그마한 웅성거림이 들려왔으나, 라이돈은 그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탁해진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땅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는 울지 않았다. 카델의 앞에서 그는 곧잘 울음을 터뜨렸고, 울상도 잘 지었으며, 조금만 억울해도 금세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진심으로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 라이돈은 울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모조리 메마른 것처럼 무감하게 숨을 골랐다.
‘……라이돈.’
그가 들을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연신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조금만 기다리면 꼭 숲을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그가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몇 번이고 약속해 주고 싶었다. 암울한 미래에 잡아먹히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카델의 간절한 약속은 끝내 닿지 않았다. 그는 날짜를 세기 어려울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하늘의 색이 바뀌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해가 뜨는 것이 몇 번이나 반복된 후에야. 그러고 나서야 처음보다 핼쑥해진 모습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건조하던 눈빛에서 희미한 이채가 감돌았다. 어슴푸레한 새벽하늘 아래, 라이돈은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묵묵히 뒤를 따르던 카델은 문득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 길은 바깥으로 나가는 길 아닌가?’
그는 숲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설마 숲을 빠져나가려는 걸까. 시도가 성공할 리는 없으니, 또 하이론이나 멜피스에게 붙잡힐지도 모른다.
라이돈의 표정은 어딘가 고집스러웠으며, 묘하게 필사적이기까지 했다. 카델은 해결할 방도가 없는 불안감을 떠안은 채 계속해서 라이돈을 따라갔다.
아무런 반전도 없이, 라이돈이 도착한 곳은 숲의 입구였다. 그는 입구에 난 나무를 경계선으로 삼아 바로 코앞에 발끝을 댔다. 저 멀리 펼쳐진 평원을 응시하던 라이돈이 느리게 시선을 옮겼다. 고개가 돌아간 방향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저건…….’
미노였다. 라이돈과 마찬가지로 숲의 입구에 있으나, 안쪽에 발을 걸친 라이돈과는 달리 그는 숲의 바깥에 서 있었다.
미노는 라이돈만큼이나 수척해 보였다. 시야를 라이돈 쪽에만 집중했기에 미노와 다른 인간들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이 역시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둘은 말없이 눈을 맞췄다. 라이돈은 미노의 충혈된 눈을 보았고, 미노는 라이돈과 그 너머의 숲을 번갈아 보았다. 그렇게 잠시 대치하듯 서로를 노려보다, 라이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바다를 보여 줘.”
오래 말을 하지 않아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 듯한 얼굴을 하고, 라이돈은 미노에게 둘만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 짧은 한마디에 미노의 표정이 변화했다. 딱딱하던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분노인지 치욕인지 모를 것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어깨에 힘을 준 채 씩씩거리던 미노가 내내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라이돈에게 닿지 못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정확하게 라이돈의 머리를 가격했다.
“…….”
돌이었다. 자그맣고, 뾰족하게 모가 난 돌멩이. 돌에 찍힌 눈썹 아래로 얇은 핏줄기가 흘렀다. 눈꺼풀을 타고 흐르는 핏물에도 라이돈은 표정 없이 미노를 응시했다.
“약속 지켜.”
되풀이되는 건조한 음성에 미노가 악을 지르며 또 다른 돌을 던졌다. 라이돈은 피하지 않았으므로, 그에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아버지가 아직도 깨어나지 않아. 팀보 아저씨도 크게 다쳤고, 에릭 형은 죽었대. 전부 너희 때문에!”
“보여 주기로 했잖아.”
“네가 날 숲에 끌고 가지만 않았어도! 빨리 돌려보내 주기만 했어도!”
“거짓말이었어?”
“너흰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괴물이니까 그런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평생 거기 박혀서 나오지 마! 아무도 너희가 나오길 바라지 않아!”
작은 손이 열심히 새로운 돌을 주워 내던졌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라이돈의 뺨을 긁었고, 이마를 할퀴었고, 머리를 찍고 눈을 때렸다. 라이돈은 다친 왼쪽 눈을 감싼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말 거짓말이었구나.”
카델은 라이돈이 반격하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상대가 어린아이래도 인간이었고, 라이돈은 크게 상심한 상태니까. 계속 맞아 주며 참을 이유가 없었다.
“살려 내, 이 괴물아! 사람들을 살려 내라고!”
하지만 라이돈은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았다. 가벼운 위협도 없이, 힘 빠진 몸을 돌려 숲 안쪽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계속 돌이 날아옴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노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어디서도 돌이 날아오지 않을 때가 돼서야. 라이돈은 우뚝 멈춰 섰다.
라이돈의 표정에 조금씩 균열이 번졌다. 몇 날 며칠을 자리에 굳어 감정을 삭이던 그는, 미노에게 버림받았음을 확인한 후엔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애처롭게 떨리는 눈가로 눈물이 맺혔다. 무너진 둑처럼 왈칵 차오른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얼굴을 뒤덮은 상처에 스며들고, 흙바닥을 물들였다. 라이돈은 가엾게 어깨를 움츠린 채 연신 축축한 얼굴을 닦아 냈다. 울음소리를 참으며 처량하게 끅끅거렸다.
‘제발 울지 마.’
그를 안아 주고 싶었다. 이 불쌍한 요정을 꽉 끌어안고, 상심할 필요 없다며 위로하고 싶었다. 항상 웃던 그에게도 당연히 이런 고독한 과거가 있으리라는 걸, 조금이라도 더 빨리 눈치채 줘야 했다. 그랬다면 모든 사랑을 짜내 네 메마른 과거를 적셔 줬을 거다. 더는 마르지 않게, 빈 땅을 네 눈물로 채우지 않아도 되도록.
“날 데려가 줘…….”
라이돈은 축축하게 젖은 얼굴로 기도하듯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울먹임 가득한 소원은, 카델의 심장을 짓이기며 파고들었다. 어떻게든 데려가겠다고, 널 바깥에 데려가 원하는 것은 뭐든 보여 주고, 느끼게 해 주겠다고. 쉼 없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관망자일 뿐이었다. 눈앞의 장면이 서서히 멀어졌다. 서러운 흐느낌도, 괴로운 떨림도 희미해졌다. 곧 그가 겪었을 아득한 외로움을 간단히 뛰어넘은 카델의 시야가 점멸했다.
「라이돈의 기억 – 과거 스토리(호감도 70 돌파)의 시청을 완료하였습니다.」
「피로 회복도가 50% 감소합니다. 육체 피로도에 유의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