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4화 (32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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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소환 진행도 : 41%」

「인간계 침략 진행도 : 73%」

말도 안 된다. 대체 어떻게?

“단장님, 지원군의 이동이 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방어전을 이어 가는 건 의미가 없어요.”

“단장, 저희가 마법진을 파괴했던 구역에서 마기가…….”

“도시가 다시 상승하고 있어.”

몰려오는 마족을 확인하고, 동맹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마족이 전부 퇴각한 동맹국은 제국의 위기를 인지하고 곧장 병력을 지원했다. 마법사의 수가 비교적 많은 국가에선 이동 마법으로 병력의 일부나마 우선적으로 보내겠노라 약속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버티면 안팎으로 마족을 포위하고 몰아붙일 수 있었는데.’

카델의 굳은 시선이 시스템 창을 향했다.

‘마족은 전부 제국으로 몰렸어. 파괴된 마법진을 노리는 마족이 있다는 보고도 없었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단숨에 마법진을 복구했지……?’

마족이 인간 몰래 마법진을 복구한 게 아니라면, 이런 일이 가능한 인물을 한 명뿐이다. 대마법진의 주인이자 마계 공주인 에밀리아. 하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혼자서 대마법진을 통째로 복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동맹국의 마법사들은 도착하기도 전에 자국 마법진을 파괴하러 복귀했어. 마법사들 없이는 이동 관문을 탄대도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가 있다. 지원군이 달려오길 멀뚱히 기다리기엔 얼음 장벽을 그렇게 오래 유지할 순 없어. 게다가 이런 상황에선 이쪽도 장벽 안에 머무르기 힘들다고.’

타국뿐 아니라 제국 근방의 마법진도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그 마법진을 파괴하려면 바깥의 무수한 적들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너무 위험한 모험이었다. 그렇다고 전투를 피하기엔, 마법진 방치가 불러올 참사가 빤했다. 마계 도시의 상승은 마족의 침략보다도 위험했으니.

차근차근 현실을 파악할수록 해답이 멀어졌다. 카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가르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울로]를 줘, 가르엘. 일단은 외곽 마법진을 다시 파괴하는 게 우선이야. 우린 장벽 바깥에서 전투한다. 마법사들이 이동 관문까지 가는 길을 뚫어 줘야 해.”

그렇게 [울로]를 받아 낸 카델이 제국 병력에 지시 사항을 전달하려던 때였다.

“카, 카델…….”

뒤편에서 힘겹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한 팔로는 배를, 한 손으로는 피가 흥건한 코와 입을 가린 라이돈.

“몸이, 이상해…….”

비틀거리며 다가오려던 그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라이돈! 가, 갑자기 왜……. 가르엘! 어서 치료해 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장난 같은 게 아니다. 그런 건 창백하게 질린 낯빛이나 카델보다 혼란스럽게 떨리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서둘러 달려온 가르엘이 치유술을 전개했다. 그리 싫어하던 마기가 몸속에 침투함에도 라이돈은 꼼짝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코피를 쏟아 냈고, 헛구역질했다. 갑작스러운 라이돈의 변화에 카델은 물론 반과 요젠, 치유술을 진행하던 가르엘조차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마력 폭주가 시작되려고 해요.”

“뭐?”

“마력의 흐름이 너무 거셉니다. 라이돈 경의 마력관이 담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이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된 것 같은데…….”

임시로 라이돈의 출혈을 막은 가르엘이 심각한 얼굴로 카델을 돌아보았다. 카델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력 폭주라고……?’

[빙결의 핵]에 그런 부작용이 있었던가? 알 수 없다. 그것은 일시적인 능력 향상을 위한 버프용 아이템일 뿐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카델은 ‘얼음 속성 마법사에게 사용하면 능력치가 7배 증가한다’라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췄다.

라이돈의 몸이 7배 증가한 마력을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게임에선 얼음 속성 마법사가 먹든, 타속성 마법사가 먹든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니까? 바보 같은 소리였다. 지금껏 게임대로 흘러가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부하에게 마족의 심장을 먹이기 전, 그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했다니. 이게 무슨 머저리 같은 짓이란 말인가.

“내가… 내가 멈춰 볼게.”

괴로워하는 라이돈 앞에 꿇어앉은 카델이 조급하게 그의 뺨을 감쌌다. 고통에 일그러진 붉은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라이돈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카델이라는 걸 인지하고는, 힘 빠진 손으로 힘겹게 그를 밀어 냈다.

“하지 마, 카델.”

“지금 네가 가진 마력은 평소의 7배 이상은 돼. 이대로 폭주하면 절대 멀쩡히 살아남지 못할 거야, 라이돈.”

“……하지 마.”

라이돈은 자신을 당기는 카델의 손길을 억지로 뿌리치곤, 가쁜 숨을 골랐다.

마력 폭주에 돌입한 마법사를 진정시키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스스로 넘쳐난 마력을 갈무리해 온전히 흡수하거나, 타인의 힘으로 수용량을 넘긴 마력을 빼내거나.

까다롭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지만, 두 번째 방법은 마력을 빼내는 상대의 위험도가 크다. 예전 관문 전투에서 라이돈 역시 제리엘의 폭주를 멈추려다 되레 자신이 폭주 상태에 돌입해 생사를 오간 적이 있었다.

“버틸 수 있어.”

단호한 말과는 달리 잠시 멎었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하얗게 질린 뺨과 손등, 허벅지 위로 살얼음이 덮이며 한기가 흘러나왔다.

“뭘 버틸 수 있다는 거야!”

기어코 피를 토해 내는 라이돈의 모습에 카델이 버럭 성을 냈다. 라이돈의 고집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자신의 안일함에 화가 난 것이었다.

간신히 침착함을 끌어모은 카델이 어떻게든 라이돈을 달래 마력 폭주를 멈추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마력을… 마력을 방출하면 돼. 넘치는 만큼 써 버리면, 나머지는 내가 해결할 수 있어.”

어떤 꼴이 되어도 웃음을 잃지 않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웃음을 꾸며 낼 여유조차 없다는 소리였다. 과거의 어떠한 위기보다도 훨씬 위험한 상태라는 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다. 그런데도 라이돈은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마족이 몰려오고 있다고 했지? 한심한 인간들은 마족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고, 그래서 위험해진 거잖아?”

“라이돈. 내 말 들어.”

“전부 얼릴게. 그다음은, 카델이 해 줘.”

무슨 말을 해도 붙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라이돈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카델을 보며 어렵사리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여전히 고통은 지워 내지 못했으므로, 그 미소는 상대를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정도 마력이면 정말 재밌는 마법을 쓸 수 있거든. 그러니까 카델은 얌전히 내 활약을 지켜보다가, 수고한 나를 안아 주면 되는 거야. 알겠지?”

막을 새도 없이 날아오른 라이돈이 하늘 높이 멀어지고. 그를 이대로 보낼 생각이 없는 카델은 쿤라를 불러 그를 뒤쫓으려 했다. 하지만 반이 그를 막았다. 반은 펜던트를 움켜 쥔 카델의 팔을 끌어 내리며 말했다.

“라이돈은 할 수 있어요, 단장.”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저대로 폭주에 돌입하면 라이돈은……!”

“라이돈을 멈추려다 단장까지 폭주해 버리면요? 그땐 정말 끝이에요. 지금은 라이돈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거 알잖아요.”

반은 씩씩거리는 카델의 어깨를 움켜 쥐곤, 저 멀리 보이는 장벽을 일별했다.

“라이돈이 성공하면 이 위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어요. 그럼 다른 마법사들을 불러서 저 요정을 제대로 고쳐 놓자고요.”

“…….”

“단장. 저 녀석은, 적어도 전투에서만큼은 한 번도 단장을 실망시킨 적이 없던 놈이에요.”

카델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고, 불안에 잠식된 잿빛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제야 조금씩 카델의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반을 마주하던 카델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어. 대신, 조금이라도 위험한 낌새가 보이면 쿤라를 불러서 라이돈을 찾아갈 거야. 그땐 다들 제압을 도와줘.”

아직까진 라이돈이 만들어 낸 장벽에 이상이 없었다. 마력을 제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반의 말대로 라이돈이 완전한 마력 폭주에 돌입하기 전, 스스로 상태를 호전시키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원군의 도착이 지연됐고, 한번 저지했던 대마법진이 재발동되었으며, 마족은 초마다 그 물량을 늘리며 공격해 왔다. 현재 장벽 바깥의 상황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루멘은 기어코 장벽을 끝까지 올라탄 마족을 베어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일이 끔찍하게 흘러가는군. 지원군이 제때 오지 못한다면 일부라도 장벽을 넘어서 마법진 발동을 저지해야 해.’

아마 카델의 생각도 비슷할 테다. 여기서 라이돈의 장벽이 허물어지면 제국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테니, 방어전의 형태를 유지하며 골칫거리를 차근차근 제거해 가는 것이 중요했다.

“드레프 경, 저는 북서 관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드레프는 부하에게 무어라 고함치며 지시를 내리기 바빴다. 루멘은 싸움에 한창인 아군의 틈에서 이동 관문을 찾아냈다.

그에겐 이동 관문을 작동시킬 마력이 없었지만, 이곳에 오기 전 카델이 챙겨 준 ‘마력 주입기’가 있었다. 이것을 사용하면 관문을 넘나들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남쪽 장벽은 멀쩡했어. 라이돈이 생각보다 잘 버텨 주고 있나 보…….’

그대로 주입기를 꺼내 이동 관문을 작동시키려던 루멘이 멈칫했다. 새하얀 눈발이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급히 시선을 돌린 루멘의 표정이 굳어 갔다. 눈발은 그의 주변뿐만 아니라 장벽 위의 아군과 대치 중인 마족, 아래쪽 마물의 틈새까지 파고들며 몰아쳤다.

빠른 속도로 온도가 내려가며, 극심한 한기가 끼쳐 왔다. 인테 설원. 아니, 그곳에서 느꼈던 추위보다 더한 한기였다.

얼어붙은 공기와 함께 눈발이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루멘은 빨갛게 얼어붙은 제 손등을 일별하곤, 차게 식은 낯으로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세차게 용솟음치는 얼음 결정. 그리고 그 주위를 감싸듯 자리한 수십 개의 푸른 마법진이었다. 보이지 않으나 알 수 있었다. 저 중심에는 라이돈이 자리하고 있으리라는 걸.

그 짧은 깨달음과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몸을 감쌌다.

*

핀하이족의 후계자에게만 계승되는 비기. 그 두 번째 마법.

[영구동토].

마력관을 터뜨릴 듯 팽창 중인 마력을 방출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둔 적 없던 마법.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핀하이의 힘을 물려받은 그로서도 완벽한 성공을 거두기 힘든 대마법이었기 때문에. 아직 요정 왕이 되지 못한 그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성공해선 안 됐기 때문에.

[영구동토]는 그가 방출한 마력의 범위만큼 대지와 그 위의 생명까지 모조리 얼려 버리는 마법이었다.

‘이걸 다시 시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미세한 호선을 그렸다. 미친 듯한 기세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마력관은 빠르게 부풀었고, 몸을 뒤덮은 얼음이 깨어지고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전신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각 또한 생생했다.

라이돈은 위태로운 호흡을 가다듬으며 [영구동토]의 술식을 하나씩 완성해 갔다. [영구동토]는 술식 하나만으로 완성되는 마법이 아니었다. 복잡한 술식이 수십 개는 필요한 데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유지해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를 가두듯 둘러싼 무수한 마법진들이 그 증거였다. 마법진은 거센 눈보라 속에서 주인의 마력을 끊임없이 흡수했다. 마력이 머금은 마법진은 시린 빛을 내뿜으며 더욱 날카로운 한기를 흩뿌렸다.

마법은 제국의 땅과 그 바깥,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얼어 붙이려 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라이돈은 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카델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인간을 지키고, 동료를 지키고, 자신을 지켜 줄 것이다. 언제나처럼.

“……성공했어, 카델.”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발광하는 마법진 사이, 라이돈을 둘러싼 얼음 결정이 서서히 흩어졌다. 그렇게 눈보라가 멎고, 한계까지 발광하던 마법진의 빛이 사그라졌을 때. 라이돈은 모든 힘을 잃고 추락했다.

이대로 땅에 처박힌다면 기껏 마력을 방출한 보람도 없이 죽게 되리라. 의식이 희미한 와중에도 생존 본능이 피어났다. 그는 간신히 날개를 움직여 어느 건물에 난 작은 구멍 안으로 추락하는 몸을 내던졌다.

“으으…….”

딱딱한 바닥에 처박힌 라이돈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 급한 불을 껐음에도 마력의 흐름은 여전했다. 서둘러 통제하지 않으면 또다시 폭주가 도질 테다.

‘정신, 차려야…….’

좋은 것을 떠올리고자 했다. 자신을 향한 카델의 다정한 눈빛이라든가, 밝은 웃음소리, 따뜻한 품, 부드러운 목소리, 기분 좋은 향. 그런 것들을 되뇌고, 또 되뇌며 지독한 고통을 견뎌 냈다. 넘쳐나는 마력을 억지로 체내에 흡수시키며 간당간당한 의식을 수차례 채찍질했다.

“…….”

한참을 용쓰고서야 잠잠해진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라이돈은 쌕쌕 숨을 고르며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해냈다. 당장이라도 카델에게 달려가 잔뜩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대체 자신에게 뭘 먹였던 거냐고 추궁을 해 봐야지. 사실 카델이 주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지만, 화난 척 굴면 당황한 자신의 인간은 제법 달콤한 보상을 내줄 테다.

벌써부터 카델의 곤란한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 아래, 라이돈은 쉬지 않고 카델의 모습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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