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8화 (308/521)

‘그놈들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카델은 반의 품에 안긴 채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상점의 바깥. 쥐새끼 한 마리 나다니지 않던 길가에는 창고에서 보았던 ‘작은 마족’들이 무수히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건물의 지붕, 노점의 매대, 좁은 골목의 틈새까지 가득 메운 채 환호하듯 일제히 괴성을 내질렀다.

꼭 소인들의 투기장에 들어선 검투사가 된 기분이었다. 반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포위한 마족들을 보는 그의 표정이 낭패로 물들었다.

“……달릴게요, 단장.”

“뭐? 저놈들을 뚫고 가겠다고?”

“일일이 상대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아요. 몇 마리 달라붙더라도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놈들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모르잖아. 당장 이 길목을 벗어나더라도 마을 전체에 퍼져 있는 거라면 어차피 전투는 불가피해. ……내려 줘.”

“지금 그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거예요.”

장막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하던 카델이었다. 저 수많은 마족을 상대할 마법을 전개한다면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다. 때문에 반은 카델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으나, 카델은 단호하게 그의 어깨를 밀어 냈다.

“네 상태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시간 끌어 봤자 우리만 불리해져, 반.”

자신도 자신이었지만, 반의 상태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시간 동안 내내 폭주 상태에 돌입해 있었고, 이성을 잃은 채 끊임없이 싸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부로 몸을 굴렸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카델이 단호하게 나서자, 망설이던 반은 결국 카델을 내려 주었다. 마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놈들의 괴성이 서서히 잦아들며,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구잡이인 것 같으면서도 조심스러웠고, 협동력이 강했다. 자칫 한눈을 팔았다간 순식간에 잡아먹히리라.

“마법을 준비할 테니까, 견제 부탁해.”

다리에 힘을 주어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카델이 잠시 풀었던 장막을 다시금 생성했다. 대검을 고쳐 쥐던 반은 자신을 둘러싼 바람결에 미간을 좁혔다.

“적룡의 방어막은 꺼내지 않는 건가요? 계속 장막을 유지하면 단장의 마력이…….”

“아, 그거. 잠깐 압수당했어.”

“예?”

“지금은 못 써.”

황당하게 바라봐도 어쩔 수 없다. 쿤라의 결계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어차피 지금은 쓰지도 않으니 나눠 준 힘을 회수해 작업 속도를 높이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당시엔 별생각 없이 힘을 돌려주었는데,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더 버텨 볼 걸 그랬다.

쓰게 웃은 카델이 광역기 [화마의 화살]을 준비했다. 이런 몸 상태로 [화마의 화살]을 전개하는 건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끝까지 의식을 집중하지 못하면 마법은 실패한다. 도중에 혼절하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마법도 마찬가지인 만큼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 번. 카델은 자신에게 남은 기회가 딱 한 번뿐임을 알았고, 그 한 번을 자신의 궁극기로 채우기를 결심했을 뿐이다.

‘모 아니면 도야. 만약 실패하고 쓰러진다면 반에게 모든 걸 맡겨야겠지만…….’

어쭙잖은 마법 몇 번 써 대다가 맥이 빠져 후들대는 것보단 낫다. 이 기술을 성공시킨다면, 마을을 벗어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다.

그렇게 카델이 체내의 마력을 끌어 올릴 무렵. 반은 조금씩 접근해 오는 마족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놈들의 체구에 맞춰 땅을 긁듯이 대검을 휘둘렀으나.

“히야앗―!”

“햣!”

놈들은 높게 도약하거나, 미리 파 둔 땅굴에 몸을 숨겨 검기를 회피했다. 얄미울 만큼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심지어는 공격을 피한 뒤 저들끼리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기상을 대할 때완 태도가 딴판이야.’

무기상을 먹어 치웠을 때처럼 거침없이 돌격하리라 예상했으나, 놈들은 신중하게 이쪽의 전력을 살피려 들었다.

저 징그러운 녀석들에게 강약을 구분할 지능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반이 끈질기게 다가오는 마족들의 움직임을 묶어 두기를 몇 분.

“됐어.”

카델의 마법이 완성됐다.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맹렬한 불꽃. 카델의 짧은 손짓에, 매달려 있던 불화살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방대한 마력이 담긴 공격에 마족들은 서둘러 몸을 숨겼으나, 소용없었다. 바닥을 가득 채운 물량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의 불꽃은 놈들을 사정없이 불태웠고, 땅굴 속까지 거침없이 파고들어 기어코 숨통을 끊었다.

그의 마법 앞에서 작은 마족들은 끔찍한 식인귀가 아닌 이미 짓밟혀 버린 개미 떼처럼 무력하기만 했다. 아군을 완벽하게 피해 간 공격은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물론 지금의 카델에게는 마을의 건물을 지키며 마족만을 공격할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내부에 숨어 있을지 모를 놈들의 씨를 말리기 위함도 있었으나.

‘이 공격만… 이것만 무사히 끝내면…….’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화마의 화살]을 개방한 찰나, 몸의 힘이 쑥 빠지며 눈앞이 하얘졌다. 예상보다도 좋지 못한 상태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반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는 강박적인 의지.

오로지 정신력으로 끌어간 마법 속에서 적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화마의 화살]이 끝을 보였을 때.

“단장!”

본분을 다한 카델은 그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뜨겁게 열이 올랐던 몸이 이제는 오한이 들 만큼 차게 식었다. 반은 신음 한 번 흘리지 못한 채 푹 고꾸라지는 카델을 급히 끌어안았다.

“단장, 단장! 정신 차려 봐요!”

“빨리, 도망…….”

무의식에 가깝던 중얼거림마저 뚝 끊겼다. 반은 축 늘어진 카델을 몇 차례 흔들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사위로 바짝 타들어 간 마족 시체가 낭자했다. 모조리 죽은 것인지 위험을 느끼고 몸을 숨긴 것인지는 몰라도, 당장 도망가지 않으면 카델이 시간을 벌어 준 의미가 사라진다. 그랬기에 반은 무모한 카델의 행동을 타박하는 대신, 그를 둘러업고 서둘러 마을을 빠져나갔다.

세찬 뜀박질 아래 마족 시체가 부러지고 터지는 역겨운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으나, 전부 무시했다. 그보다는 자신의 등에서 힘없이 덜렁거리는 카델의 미약한 체온이 더욱 신경 쓰였다.

‘다음 마을까진 얼마나 가야 하는 거지? 만약 그곳에 치유사가 없다면……. 아니, 그때까지 단장이 버틸 수 있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카델의 상태가 이렇게까지 나쁜 줄 알았다면 동굴에서 밤을 보내는 대신 한시라도 빨리 다른 마을을 찾아가 치료를 부탁했을 것이다. 내색하지 않았기에 몰랐다. 그는 의식적으로 상처를 숨겼고, 자신은 보지 않으려 했다. 자신이 그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싫었으니까.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했다.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기가 무섭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데에 회의감이 들었으나,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다. 카델도, 여환도. 모두 본인보다 동료를 우선시했으니.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그런 두 남자에게 보호받고, 구원받았다. 참으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더는 예전 같은 희생적인 관계에 만족할 수 없다. 여환도 그걸 알아야 했다.

“제기랄…….”

한참을 이동했지만 새로운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평원이 끝나 가고, 저 멀리 산이 보였다. 설마 저 산을 넘어야 마을이 나오는 것일까.

‘다른 놈들에게 연락이라도 보낼 수 있었다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를 데리고 마을까지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곤 주인의 몸을 좀 먹는 빌어먹을 오라뿐이라니. 쓸모가 없었다.

무력함은 카델을 짊어진 채 꾸역꾸역 산을 오를 때까지도 이어졌다. 한시도 쉬지 않고 숨 가쁘게 산을 올랐으나, 생각보다 경사가 높은 탓에 많이 이동하지 못했다. 기억도 안 나는 시간 동안 마물을 상대하며 축난 체력은 한계를 드러냈고, 갈수록 희미해지는 카델의 숨소리는 그의 정신을 좀먹었다.

“해가 뜰 때까지만 기다릴 거예요. 버텨 줘요.”

완전히 해가 저물어 시야 확보가 어려워졌을 때에서야 산행을 멈췄다. 적당한 야영지를 찾지 못해 굵직한 나무 아래 천을 깔고 카델을 눕혔다.

핏기 없는 얼굴과 잘게 떨리는 몸에선 흥건한 식은땀이 묻어 나왔다. 그나마 깨끗한 옷자락을 골라 뜯어낸 뒤, 수통의 물을 적셔 카델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간간이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그 소리라도 다행으로 여겨졌다.

체온이 떨어진 것인지 카델이 자꾸만 몸을 떨었다. 그런데도 마땅히 덮어 줄 것이 없었다. 간신히 피운 모닥불의 화력을 높여 보았지만, 떨림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망설이던 반은 곧 카델의 옆에 누워 그를 꼭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신 팔을 문지르고,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버틴 것이 몇 시간. 조금씩 어둠이 걷히며, 새벽의 습한 공기가 흘러들었다. 예민해진 눈빛이 짙은 푸른색의 하늘을 훑었다.

‘……이 정도면 움직일 수 있겠어.’

땅이 제대로 보일 정도면 됐다.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반은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체온을 나눈 덕인지 카델의 얼굴은 이전보다 편안해 보였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반이 급한 손길로 풀어둔 짐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안에 들어 있던 물약이 우수수 굴러떨어졌다.

“……?”

입구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바닥을 뚫고 떨어진 것이었다. 가방의 아랫면을 들여다보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난 구멍이지?’

적어도 마을에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가방 안의 물건들이 몽땅 사라졌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산행 도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가방 안의 물건을 확인한 반의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물건은 그대로다. 이 정도 크기의 구멍이 났는데 이제껏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았을 리 없어.’

그렇다면 구멍은 이곳에서 야영했던 그 몇 시간 안에 생겼다는 말이 된다. 내내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뭔가가 다가오는 기척은 없었다.

불쾌한 긴장감이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랐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히야아앗!”

다시는 듣고 싶지 않던 괴성이 귓전을 울리고. 반사적으로 돌아간 시선의 끝에서, 반은 눈을 의심케 할 장면을 마주했다.

그것은 끝없는 불화살 속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작은 마족. 그 끈질긴 녀석의 번식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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