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7화 (297/521)

「기사 ‘루멘 도미닉’의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현재 호감도: 92/100」

뒤이어 떠오른 시스템 창은 제법 높은 호감도를 표기해 주었다. 하지만 카델은 그런 것 따위 중요치 않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일 뿐이었다.

“뭐? 고마워? 그 자식이 고맙긴 뭐가 고마워? 너 나 없는 사이에 세뇌라도 당했냐? 그 새끼가 네 머리에 뭐라도 심었어? 어디 봐! 찾기만 해, 이번엔 말로 안 끝날 거니까!”

잘 정돈된 머리를 헤집는 거친 손길에도 루멘은 무력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지금 그의 안에선, 프로치 도미닉이라는 악몽 같은 존재가 빠르게 지워지고 있었다.

연회장은 그 어떤 황금 궁전을 갖다 붙여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질 좋은 대리석과 보석, 비단을 아끼지 않았고, 내놓는 음식마다 진미. 전국에서 초청한 음악가들은 듣기만 해도 몸이 흐물거리는 아름다운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며 연회의 흥을 돋웠다.

그러나 이 공들인 연회보다도 화려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연회에 참석한 귀빈들의 존재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 화이트 왕국과 둥켈하이 왕국의 수장을 제외하고, 동맹국의 수장은 모두 이곳에 모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제국에 초대된 왕족, 호위를 위한 유명 기사들까지 한데 모였으니. 그야말로 별들의 축제였다.

이토록 별이 많으면 그중에도 유독 빛나는 별이 존재하는 법이다.

“하하, 예. 다속성 마력은 어린 시절에 자연스럽게 터득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간엔 제가 흑마법사의 혈통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것 같던데. 혹시 경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허허, 그럴 리가요. 전부 시기 어린 헛소문이 아닙니까. 전 그런 질 낮은 사람들관 다릅니다.”

“물론이지요. 명망 높은 암철 기사단의 단장님이 아니십니까.”

“적린 기사단의 위세만 할까요.”

카델은 부하들 없이 홀로 연회장에 왔다. 기댈 수 있는 아군이 없어 불안하지만, 그만큼 관심은 덜하리라 예상했건만. 완전히 빗나갔다.

사람들은 각국의 수장만큼이나 카델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제국의 루키에게 보이는 계산적인 호의인가 했으나, 곧 다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희 폐하께서 카델 경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왕국의 기사단장인 저보다도 흥미를 느끼시는 것 같아, 조금 질투가 날 정도였습니다.”

“데번 폐하께서요?”

제이토 데번이라면 마전 회담에서 카델에게 설명을 요구했던 왕 중 한 명이었다. 제대로 된 설명 대신 악독한 적룡을 내놓은 탓에, 제이토에겐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카델이 의아해하며 되묻자, 데번 왕국의 기사단장, 몰레프가 목소리를 낮춰 은밀하게 속삭였다.

“적룡의 가호를 받는 인간이시라죠? 이곳에 참석한 분들은 대부분 회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알 사람은 전부 안다는 소리죠.”

카델은 몰레프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이내 가식적인 미소를 꾸며냈다.

‘그렇군. 쿤라 때문이라는 거구나.’

하긴, 회담장에서 그렇게 날뛰어댔는데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제국 측에서 그 일을 비밀에 부쳐 달라 부탁한 것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퍼져 나가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되면 공식적인 제국의 전력이 너무 압도적으로 뛰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쿤라의 가호는 카델이 받았지만, 그는 제국을 지키는 기사였으니. 갓 임시 동맹을 맺은 지금, 한 국가의 전력만 부각되는 건 분명 좋은 흐름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기심까지 억누르긴 힘들 테지.

“약간의 호의를 받고 있을 뿐, 적룡과 깊은 관계를 맺은 건 아닙니다. 이 가호 역시 인간계를 돕기 위해 내린 것이죠. 전 운 좋게 얻어걸렸을 뿐입니다.”

“운이 좋은 건 제국입니다. 적룡의 가호를 받은 카델 경을 기사로 두었으니. 하하……. 데번 왕국은 언제나 경에게 열려 있음을 알아 주세요.”

농담처럼 웃으며 말하고 있으나, 안에는 무시할 수 없는 진심이 담겼음을 안다. 카델은 의중이 모호한 웃음을 흘리며 자연스럽게 몰레프의 곁을 벗어났다.

‘피곤하네. 지금은 이렇게 어영부영 넘길 수 있어도, 마계 전쟁이 끝나는 날엔…….’

만약 전쟁이 끝난 시점에도 쿤라의 가호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모두의 반응은 지금처럼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전쟁 후의 일. 감당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다. 때문에 카델은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하기보다는 회피를 택했다.

그렇게 카델이 몰려드는 관심을 온 힘을 다해 무시하고 있을 무렵.

“든든하시겠습니다. 제국의 기사단장이 적룡을 등에 업고 있다니.”

수장들 틈에 섞인 데릭 역시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입을 연 남자를 가볍게 일별했다. 스니벡 공국의 렌 소멀즈 대공. 북방의 거친 환경 때문인지, 그저 타고난 성정인지. 한 나라의 수장치고는 언행이 투박한 편이다.

“글쎄요. 가호를 받은 기사단장마저도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니. 조금 부담스럽긴 하군요.”

“그렇습니까……. 혹시 적룡을 업은 카델 경이 제국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지요? 과한 힘은 과한 욕심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그가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지켜봐야 아는 겁니다, 대공.”

“지켜보지 않아도 훤히 보이는 게 있지요.”

렌과 데릭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 다 호의적인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것이 연기일 뿐임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억측이 심합니다, 소멀즈 대공. 어찌 됐건 지금 적린 기사단장은 전쟁을 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인물입니다. 그 후의 일이야 오스마 황제께서 알아서 처리하시지 않겠습니까.”

제이토 데번이 중재에 나섰으나, 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작게 코웃음을 치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전쟁 후 국가가 약해진 틈을 타 반란을 도모하는 자들을 숱하게 봐 와서 그렇습니다. 평범한 인간도 그리하는데, 적룡을 등에 업은 자가 그런 생각을 못 하겠습니까? 충성은 공포에서 시작되죠. 허튼 생각 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압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은은한 술기운과 카델의 존재에 대한 질투,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 대한 불안감. 그것들이 한데 뭉쳐 렌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저자의 출생도 알지 못하는군요. 일부러 공표하지 않은 듯한데, 혹시 범죄자의 핏줄인 겁니까? 그렇다면 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그런 자들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

“제국의 정세에 관심이 많은 듯하군요, 대공. 우리는 통일국이 아니라 임시 동맹국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참견이 과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참견이라뇨, 이건 그저 걱정되는 마음에……!”

“제국이 스니벡 공국에게 걱정받는 처지였다니, 미처 몰랐습니다.”

렌의 말을 끊은 데릭이 입꼬리를 올렸다. 여전히 웃는 낯이었으나, 상대를 담아내는 새까만 눈동자는 차게 식어 있었다. 그 냉혹하기 짝이 없는 시선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렌이 바쁘게 움직이던 입을 멈췄다.

데릭은 그런 그를 짧게 응시하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 듯 술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걱정은 모두 마계 전쟁으로 몰아 두지요. 인간계가 무너지면 왕좌 또한 부질없는 법. 승리만을 바라봅시다.”

정치는 다스릴 인간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죽는다면 반란이든 약탈이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계의 침략 앞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했으므로, 그들은 각자의 속셈을 접어 둔 채 술잔을 맞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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