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건 어떤 기분이야?”
건조한 물음에 요젠의 고개가 돌아갔다. 질문을 던진 장본인에게선 이어지는 말 없이 부지런히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려왔다.
요젠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덤덤한 시선이 와 닿았다. 악명 자자한 암살자가 지척까지 다가왔음에도 카델의 심장 박동은 한결같이 평온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글쎄. 내 기사단 앞에서 영영 사라져 줬으면 하는 사람은 있지.”
불쑥 손을 뻗어 얼굴을 매만지자 손끝으로 움찔 떨리는 부드러운 피부가 닿아 왔다. 그 위로 윤곽을 덧그리며 표정을 유추했다. 단정한 입꼬리와 구김살 없는 눈매. 살짝 당황한 듯한 얕은 숨결이 느껴진다.
“별거 없어.”
“넌 익숙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처음은 달랐을 거 아니야.”
“처음?”
“암살자라도 처음은 있을 테니까.”
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고개를 기울이던 요젠이 카델을 만지던 손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언제나처럼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쾌해. 세상을 더럽히는 지저분한 기름 막을 한 겹 걷어 낸 기분이야.”
실로 암살자다운 대답이었다. 첫 살인에 저 정도 감상을 남기지 못한다면 암살자의 재능은 없는 거겠지. 천부적이란 말을 이런 곳에 사용해도 되는 걸까. 짧게 고민하던 카델이 읽던 서류를 모아 책상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제 앞에 가까이 선 요젠을 보았다.
“네 타깃은 사는 지역을 가리지 않아?”
“주로 둥켈하이에서 고르긴 하지만, 가리지 않아.”
“마이뉴 왕국은?”
“몇 명 죽여 봤어.”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 카델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요젠의 옷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현재 그는 평소 입는 칠흑색의 야행복이 아닌, 기사단의 단복 차림이었다. 타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탓에 카델이 직접 그의 치수를 재 주었는데, 사이즈가 틀릴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딱 맞아떨어졌다.
개인적으로 요젠에겐 이런 새하얀 단복보단 새까만 암복이 잘 어울렸으나, 비율이 좋아서인지 이쪽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요젠, 넌 프로치 도미닉을 알아?”
“알아.”
“그 후작을 어떻게 생각해?”
“루멘 도미닉의 아버지잖아.”
“루멘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면?”
제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손을 잡아챈 요젠이 카델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옷에서 떨어뜨린 손을 꺾어 자연스럽게 깍지를 낀 그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죽여 볼 만한 사람.”
“……흐음. 그래?”
“아직 타깃은 아니야. 그보다 더러운 돼지들은 차고 넘치니까. 순서가 많이 밀려 있거든.”
“그렇구나.”
“네 타깃이야?”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짧게 숨을 들이켠 카델이 이내 맑게 웃으며 요젠을 밀어 냈다. 자연스럽게 손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요젠을 지나쳐 가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난 사람을 죽인다고 상쾌함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아서. 물론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그럼 일이 너무 복잡해지지.”
“나한테 부탁해도 돼.”
“그런 일을 시키진 않을 거라고 했잖아.”
“내겐 별거 아닌 일인데도?”
“그래.”
단호하게 잘라 내자 요젠도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요젠에겐 익숙한 일일지라도, 카델에겐 아니었다.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카델은 자신을 짓누르는 수많은 책임감 위에 또 하나를 얹을 생각이 없었다.
“내 방식으로 할 거야. 그 남자가 루멘의 인생에 참견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완전히 꺼 버리겠어.”
“……네 방식도 궁금하네. 기대할게.”
기대할게, 라니. 설마 자신이 프로치 도미닉을 상대하는 걸 지켜보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슬며시 차오르는 불안감에 뒤를 돌자, 분명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요젠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진 채였다.
“……갈 때 인사 정도는 해 주면 안 돼?”
누가 보면 혼잣말하는 미친 사람인 줄 알겠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유령처럼 사라져 버린 요젠의 은밀함에, 카델이 맥빠지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누웠다.
묵직한 눈꺼풀을 멍하니 문지르고 있자니 검게 변한 시야 너머로 켜켜이 쌓인 문제들이 두서없이 날아들었다.
프로치 도미닉은 물론 얼마 뒤에 열릴 정상회담, 다음 메인 퀘스트인 마계 전쟁의 발발, 상대해야 할 마족의 정보, 그리고…….
‘……반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요젠한테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 아니야. 도움이 필요하다면 요젠이 먼저 말해 줬겠지. 잘살고 있을 거야, 반은.’
의식을 되찾은 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으나, 그럼에도 반에 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반이 이탈했다는 시스템 창이 둥둥 떠올라 철창처럼 그를 가뒀다. 자신을 떠난 반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자신을 기억해 줬으면 하는 욕심이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반이 떠났으니 이제 기사단에 한 자리가 비어.’
마계 전쟁이 코앞이다. 한 명이 빠진 상태로 맞닥뜨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퀘스트가 아니었다. 반을 떠나보냈으니 새로운 기사를 들여야 옳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카델은 도무지 새 단원을 들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데려오고 싶은 기사도 없었고, 그가 반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놔두고 싶지도 않았다. 쿤라의 가호가 생겼으니 기사 한 명의 빈자리쯤은 어떻게든 채워지지 않을까. 그런 안이한 생각만 들 뿐이었다.
“……됐어.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반이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새 사람을 들일 고민을 한단 말인가. 스스로가 불쾌해진 카델이 몸을 뒤집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당장 닥친 일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그게 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