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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지 않는 카델을 치료하기 위해 제국의 이름난 치유사들이 모조리 동원됐다. 전투에서 입은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 문제인 것 같다는 진단에도 치유사들이 발길을 끊는 일은 없었다.
일주일. 무려 이레 동안이나 카델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그건 그저 쿤라가 카델의 의식을 붙들어 두었기 때문일 뿐이었지만, 다른 이들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루멘과 라이돈, 가르엘은 치유술이 이루어지는 때에도 고집스럽게 카델의 옆을 지켰다. 폭발 직전의 갑갑함을 해소하고자 수련을 하거나, 황제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아니면 최대한 카델과 붙어 있으려 노력했다.
반과 요젠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중간에 가르엘이 반을 찾아봐야겠다고 나섰으나, 루멘이 막았다. 요젠은 찾아갈 방도조차 없었다.
기사단의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항상 의도치 않게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곤 하던 라이돈의 웃음소리도, 일상 같던 말다툼도, 카델의 당찬 작전 회의도. 무엇도 없는 기사단은 서서히 경직되어 갔다.
그리고 정확히 팔 일째 되는 날. 카델이 의식을 되찾았다.
“카델!”
“대장…!”
“단장님, 정신이 들어요?”
새벽같이 카델의 침소에 모여든 세 남자가 그를 둘러쌌다. 카델은 멍한 얼굴로 몇 차례 눈을 깜빡이다, 하나같이 조급한 표정을 한 제 부하들을 훑어 내렸다.
“너희…….”
한 마디 꺼내는 것도 쉽지 않을 만큼 입 안이 건조했다. 카델이 목을 쥐며 인상을 찌푸리자, 루멘이 곧장 물을 건넸다. 느리게 입술을 축인 카델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오래 누워 있었는지 머리가 묵직했다.
“제국에 돌아온 건가…? 나 얼마나 누워 있던 거야?”
“일주일이요.”
“……오래도 누워 있었네.”
생각보다 많이 흐른 시간에 카델이 쓴웃음을 지었다. 쿤라에게 미리 언질을 받긴 했지만, 체감상으론 하루도 지나지 않았었다.
‘하긴. 처음 꿈을 꿨을 때도 그랬지. 쿤라를 만난 건 아주 잠깐이었지만 깨어나니 아침이었어.’
카델이 다 마신 물컵을 낚아채 아무렇게나 던진 라이돈이 그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답지 않게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괜찮아, 카델? 아픈 데 없어? 마력은?”
“아무렇지도 않아. 많이 걱정했어?”
“그걸 말이라고 해, 대장?”
“치유사로서의 무력함을 극한까지 느낄 수 있던 보람찬 시간이었죠.”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자신 역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를 썼던 시간이었지만, 그들에게 말도 없이 걱정을 끼쳐 버렸다.
카델은 그들의 염려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기로 했다.
“몸이 다친 것도 이유긴 하지만, 사실 쿤라를 만나고 왔어. 무의식 상태에서 접촉했다고 해야 하나. 현실과는 흐르는 시간이 달라서 일주일이나 지났는지도 몰랐네.”
“그 도마뱀이랑? 왜? 또 귀찮게 굴어?”
귀찮게 군 건 오히려 이쪽이 아닐까. 어색한 웃음을 흘린 카델이 고개를 저었다.
“마계에 관해서 할 얘기가 있다더라고. 겸사겸사 내 회복도 도와주고. ……어쨌든, 걱정하지 않아도 돼. 불편한 곳은 전혀 없으니까.”
의심쩍은 눈길이 닿아 왔으나, 카델은 보란 듯이 제 가슴팍을 두드리며 건강을 증명하려 했다. 실제로도 그의 몸은 약간의 두통을 제외하곤 날아갈 것처럼 가볍기만 했다.
그제야 한시름 놓은 부하들이 바짝 힘주었던 어깨를 늘어뜨렸다. 라이돈은 아예 침대에 올라가 카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붙었다. 루멘의 잔소리도 깔끔하게 무시했다.
카델은 제 품에 파고들어 눈을 감는 라이돈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안심한 듯 풀어진 얼굴이 못 본 새 제법 수척해져 있었다. 살짝 거칠어진 뺨을 가만가만 쓸어내리다,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가르엘과 루멘을 번갈아 본 그가 뭔가를 망설이듯 입술을 달싹였다.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보이지 않던 인물. 마땅히 행방을 물어야 한다.
없는 것이 반뿐이라면 몰라도, 요젠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설마 자신이 없는 사이 요젠마저 기사단을 이탈한 건 아니겠지.
긴장감을 감춘 카델이 순진한 말투를 꾸며냈다.
“반이랑 요젠은? 어디 간 거야?”
평소였다면 곧장 돌아왔을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두 남자의 어두운 표정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카델은 필사적이기만 했다.
반과 요젠의 행방을 들은 뒤, 카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루멘과 가르엘은 그것이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카델은 누구보다 먼저 반의 ‘이탈’을 확인했으니까.
실컷 울었다. 부하들의 입장에서 봤을 땐, 무려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울어 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나 괴로움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쳐선 안 됐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카델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요젠은 알아서 돌아올 거야. 원래부터 자유로운 녀석이었으니까, 필요할 때 오겠지. 그리고 반은…….”
턱턱 막히는 숨을 고르고,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보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카델은 품을 파고든 라이돈의 머리칼을 의미 없이 헤집으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떠난 거야. 찾지 않아도 돼.”
“……예? 떠났다니, 그게 무슨…….”
카델의 입에서 저런 소릴 들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가르엘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루멘만이 납득하며 시선을 내리깔 뿐. 카델은 깨어나기 전부터 미리 생각해 둔 간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미 끝난 얘기야. 반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고, 나도 허락했어.”
“아무리 그래도 인사하나 없이 전투 중에 갑자기 떠난단 말입니까? 진짜 분사기를 처리한 건 반 경이에요. 부상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을지도―”
“가르엘.”
“……단장님.”
“반은 떠났어. 갑작스러워서 놀랐겠지만,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돼.”
단호한 어투에 가르엘도 더는 말을 얹지 못했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카델은 애써 목소리의 톤을 올렸다.
“조만간 네가 흑마법사 출신이라는 소문을 흘릴 거야. 눈총은 받겠지만 귀찮게 접근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너도 마음 놓고 쉬어. 또 나한테 치유술 쓴다고 무리했을 거 아니야.”
잠시 그런 카델을 빤히 응시하던 가르엘은, 이내 옅은 미소와 함께 제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다행이네요. 가면 쓰고 돌아다녔더니 숨만 쉬어도 주목을 받던데.”
“원래도 이목은 잘 끌었잖아.”
“그렇죠, 뭐. 아무래도 미남이니까.”
가르엘이라고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하는 카델의 노력을 모를 리 없었다. 단장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것 또한 단원의 일이었으니. 지금 이곳에서 부하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는 그였다. 때문에 가르엘은 부러 쓸데없는 농담을 던져 카델의 기분을 풀어 주려 했다.
“말수 적은 흑마법사라는 말도 해 주세요. 제 목소리가 익숙한 기사들이 몇 있을 거거든요.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지만 의심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래. 귀찮게 말 거는 사람한텐 저주를 건다는 얘기도 퍼뜨릴게.”
“이런, 왕따가 되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가르엘과 몇 마디를 나누다, 루멘을 바라보았다. 루멘의 표정에선 별다른 동요가 비치지 않았다. 반이 떠났다는 사실을 안다면 꽤 놀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루멘은 이전부터 자신과 반 사이의 관계가 틀어졌음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걸 외면하고 있던 건 나뿐이었나.’
모든 걸 알고도 자신을 평소처럼 대하는 반을 보며, 이것의 그의 선택이라면 따라 주겠다는 다짐이나 했다. 그런 선택을 내릴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별을 회피한 것이다.
씁쓸함에 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카델은 옆에서 곤히 잠든 라이돈을 토닥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잤는데도 또 졸리네. 완전히 회복됐단 걸 알리면 또 일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 둬야겠어.”
“라이돈 치워 줄까?”
“아냐, 그냥 둬. 피곤해 보이는데.”
“……그럼 쉬어. 치유사는 알아서 물려 두지.”
카델이 다시금 몸을 눕히자, 루멘과 가르엘은 조용히 방을 떠났다. 금세 적막해진 방 안에서, 카델은 잡념을 몰아내듯 라이돈의 숨소리에 집중했다. 얼굴을 마주 보고, 가볍게 이마를 맞댔다. 닿아오는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조금씩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걸로 된 거야.’
자신에겐 반의 선택을 바꿀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를 화려한 삶 속에서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으나, 그가 자신의 옆에선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보내 주는 것이 옳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카델은 근심 없이 잠든 라이돈의 뺨을 가만가만 쓸어내리며, 얼마 없을 휴식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