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7화 (27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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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리셀라 고원에 도착한 것은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슬슬 노을이 지는 시간. 원래라면 적당한 데에서 야영하며 날이 밝는 대로 다시 이동했겠으나, 기사단은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 이러다간 마족이 소환진에서 나온대도 봉인이 무사하지 못할 거다.’

기사단보다 먼저 등장했음에도 봉인을 건들지 않았던 멘델과는 다르다. 멘델은 특수한 경우였다. 그는 봉인을 부수기 전에 인간을 흡수해 보호막을 견고히 한 뒤, 만전을 기하려 했다. 집요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기에 욕심을 부린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특수한 일이 두 번 벌어질 리는 없다. 기사단이 마족보다 늦는다면, 봉인은 무조건 파괴된다.

‘아직 눈에 띄는 마물은 없어.’

당장 봉인이 깨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건 내부의 마족이 봉인을 뚫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든가, 외부의 마족이 봉인진에 접근하고 있든가. 둘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흐응, 이번에는 봉인진이 꽤 크네?”

한편, 카델의 명령으로 상공에서 봉인진을 찾고 있던 라이돈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번 잉마르 늪지대에서 보았던 봉인진은 너무 작고 볼품없었다. 등장한 마족도 쉽게 격파당한 탓에 자신이 제대로 나설 기회가 없었고.

이번에는 조금 다르려나?

봉인진은 현 기사단의 위치로부터 약 500m 앞에 위치했다. 늪지대의 봉인진보다 3배는 커 보이는 몸집. 저 정도라면 충분히 즐거운 싸움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이돈은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을 빛내며 카델에게 정보를 전하기 위해 고도를 낮췄다.

그러나.

“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뿐하기만 했던 몸에, 묵직한 무게감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날개에서부터.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려 제 날개를 확인한 라이돈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우와, 이건 또 뭐야?”

투명하게 반짝이던 그의 날개가, 어두운 암석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홀로 떠오른 상공에는 적이라 할 만한 것도, 위협적인 요소도 없었다. 그런데 이 난데없는 석화는 뭐란 말인가?

놀라운 발견과 함께, 라이돈의 몸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석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날개의 절반을 뒤덮은 암석이 이제는 라이돈의 날개뼈에까지 마수를 뻗었다.

“시작부터 재밌게 구네.”

피어오른 냉기가 날개뼈를 감싸는 얼음 장막을 펼쳤다. 공격적으로 진행되던 석화는 그의 장막까지 뚫어 내진 못했다. 라이돈은 가까스로 날개가 통째로 굳어 버리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으나.

“아하하! 스릴 있어!”

뿌리만 남은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을 리 없었다. 라이돈은 그야말로 벼락같은 속도로 지면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

유성, 일까? 유성이 떨어지는 장면은 원래 세계에서도 본 적 없다. 다채롭게 물든 초저녁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의 궤적. 카델의 눈이 멍하게 풀렸다. 노을빛과 뒤엉키며 낙하하는 유성의 모습은 환상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환상에 오래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다. 카델은 기사단 중 누구보다도 상황 파악 능력이 뛰어난 사내였으니.

“……루멘. 뛰어.”

“갑자기 어디로 뛰라는 거야?”

“가서 라이돈 받아!”

난데없이 떨어지는 유성을 목격할 확률보다는, 멀쩡히 날아다니던 라이돈이 추락할 확률이 더 높았다. 카델은 다급히 루멘의 등을 밀치며 하늘을 가리켰다.

“저놈이 또……!”

뒤늦게 라이돈을 발견한 루멘이 추락 지점을 향해 섬광처럼 튀어 나가고, 나머지 단원들 또한 서둘러 뒤를 따랐다.

“아하하! 떨어진다!”

임시방편으로 몸에 얼음 장막을 둘렀으나, 추락의 충격을 상쇄시키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이 속도로 바닥에 처박힌다면 꼼짝없이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라이돈의 얼굴에선 이렇다 할 공포나 불안은 떠올라 있지 않았다. 적절한 대책이 있어서라기보단, 그저 ‘죽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효력 없는 직감일 뿐이었으나, 이번에도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데자뷔가 느껴지는 것 같지 않나?”

라이돈은 제 아래에 짓눌린 루멘의 등을 짚고 해맑은 웃음소리를 냈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와아, 카델이 바람 마법으로 낙속을 늦추지 않았으면 나란히 터져 죽었을 거야. 루멘이랑 사이좋게 지옥행이라니, 전혀 재미없잖아.”

“정말 죽여 버리고 싶군.”

라이돈은 상쾌하다는 듯 어깨를 돌리며 눈웃음을 쳤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카델 일행을 향했다.

“라이돈! 루멘! 둘 다 괜찮아?”

놀란 얼굴이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루멘과 멀쩡히 손을 흔드는 라이돈을 살폈다. 겉으로만 보면 라이돈이 아니라 루멘이 추락한 것 같았다.

“이런, 루멘 경. 결국 부러졌나요?”

“그냥 치유술이나 써 주시죠.”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찬 가르엘이 곧장 루멘에게 치유술을 전개했다. 카델은 자신을 안으려 드는 라이돈을 피해 그의 몸을 확인했다.

“이건…….”

“몸이 무거워, 자기. 부술 방법 없어?”

석화된 날개. 그것을 발견한 카델의 안색이 굳었다.

‘역시 이미 등장해 있었군.’

얼음 장막이 등을 보호하고 있지만, 날개는 전부 석화됐다. 그나마 날개만 석화된 것이 다행이었다. 혹시나 싶어 우둘투둘한 암석 위로 마력을 불어넣어 보았으나,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굳은 날개를 움켜쥔 카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족이 먼저 이쪽을 발견한 모양이네.”

상대를 석화시킬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한 고위 마족.

팔라익.

녀석이 이번 메인 퀘스트의 주인공이었다.

[메인 퀘스트 ‘정지된 세계’ 수락 완료!]

[퀘스트를 클리어 하여 스토리를 진행하십시오. 보상이 주어집니다.]

[실패 시, 기사단 전원 행동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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