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3화 (273/521)

밤이 깊었다. 카델은 마차를 찾았지만, 그들을 늪지대로 데려다줄 마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걸어가기엔 먼 거리였다. 그는 불 꺼진 골목에 이동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마력을 쏟는 손은 덜덜 떨렸고,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띌 만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반은 그 모든 장면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카델은 제 목숨을 건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좀 전의 침착함은 온데간데없이, 공포에 질식할 듯 힘겨워 보였다.

“이리 와.”

마법진을 완성한 카델이 손짓했다. 반은 말없이 그를 응시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법진이 발동되며 눈부신 빛이 시야를 가렸다.

“저쪽으로 가면 보일 거야. 저기쯤에 있었어.”

도착한 곳은 늪지대의 중앙. 봉인진 부근이었다. 카델은 불덩이를 띄워 앞을 밝혔다. 마도구 장화를 신고 오지 않았기에 금세 바지춤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늪을 피해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거동이 불편해졌음에도 카델은 꾸역꾸역 나아갔다. 늪의 가장자리를 밟고 미끄러져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그때마다 번번이 뒤에 있던 반이 그를 잡아 주었으나,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넘어진다는 것도, 늪이 위험하다는 것도.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오로지 쿤라를 만나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그런 그를 쫓아가던 반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서서히 멈춰 선 그가 카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황금색 눈동자 위로 말로 형용하지 못할 감정들이 아른거렸다.

“……단장.”

나지막한 부름에 그제야 카델이 몸을 세웠다. 반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 거리를 가늠하다, 그에게로 다가갔다. 얇은 손목을 쥐고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힘없이 돌아간 몸이 반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저 혼자 갈게요.”

그는 잘게 떨리는 카델의 등을 달래듯 쓸어내렸다. 애처로운 몸을 힘주어 끌어안고, 조심스레 떼어 냈다. 눈물로 엉망이 된 뺨을 가만히 문질렀다.

뭐가 그렇게나 무서운 걸까. 그렇게나 무서우면서, 어째서 필사적으로 알리려 하는가.

“이쪽으로 쭉 가면 되는 거죠? 혼자 만나고 올게요. 단장이 말했던 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던 그거. 물어보면 되는 거잖아요.”

알고 싶지 않았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임에도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카델이 이리도 괴로워하는 것이 자신의 무지 때문이라면. 아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단장은 돌아가요.”

멍한 얼굴 앞에서 어렵사리 미소를 지었다. 어깨를 쓸어내리고, 그를 지나쳐 갔다. 따라오는 기척은 없었다. 등에 닿는 시선이 희미해질수록, 반의 표정은 불안함으로 굳어 갔다.

이윽고 저 멀리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에, 어찌할 도리 없이 심장이 뛰어 댔다.

*

“우웁… 우웨엑……!”

골목 어귀의 벽을 짚고 한참 헛구역질을 해 댔다. 먹은 것이 없어 연신 위액만 토해 내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더듬었다.

“허윽… 우욱…!”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종류의 두려움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전부 말했음에도 짐을 덜어 냈다는 개운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서웠다. 공포스러웠다. 쿤라에게 변명의 여지도 없는 자신의 죄를 듣게 될 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가 비칠 경멸이, 미치도록 두려웠다.

뇌가 바짝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 깜깜해지기를 반복했고,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쿤라에게 진실을 들었을 때보다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흐으…….”

구석에 쭈그려 앉아 볼품없이 흐느끼다,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삼켰다. 비척비척 일어난 그가 잠시 숨을 골랐다.

어두운 길목을 빠져나와, 반이 있을 방향을 돌아보았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진실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어떨까.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다고, 네 말대로 스트레스 때문에 이상하게 군 것뿐이라고.

상상했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카델은 더 이상 반을 속일 수 없었다. 그의 충성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순간부터, 예견된 마지막이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성으로 되돌아갔다. 치미는 충동을 참듯 몇 번이나 주먹을 그러쥐었으나, 그게 전부였다.

*

새벽 내내 반을 기다렸지만 그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잠도 잘 수 없었다. 침대 위에 웅크린 채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괴로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만 가지 상상을 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메마른 떨림만이 지속됐다. 쓰린 속이 뒤틀렸다.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들자, 기어코 맞이한 아침의 햇살이 비쳐 들었다.

오지 않았다. 이탈을 알리는 시스템 창도 없었다. 쿤라를 찾아가지 않았나? 가는 척만 했던 건가? 그런 거라면 어떡하지. 다시 쿤라에게 끌고 가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모르는 척…….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곳은 문이 아니었다. 반사적으로 돌아간 고개가 침대 옆에 난 창을 향했다. 작은 요정의 모습을 한 라이돈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뻐근한 다리를 움직여 창문을 열자, 곧장 인간형으로 돌아온 라이돈이 카델을 끌어안았다.

“하아, 보고 싶었어, 자기! 어제 찾아가려고 했는데, 루멘이 쉬는 거 방해하지 말라고 막는 거야. 또 혼나고 싶냐길래 참았어. 잘했지? 푹 쉬었어?”

카델의 머리 위로 마구 입을 맞춘 라이돈이 살짝 몸을 떼어 냈다. 카델은 그를 보지 않고 있었다. 평소라면 귀찮아하든, 달래 주든, 뭐라도 반응이 돌아와야 하는데.

넋 나간 것처럼 멍한 얼굴에 라이돈이 고개를 갸웃했다. 허리를 숙여 카델과 시선을 맞춘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카델? 어디 아파?”

“……아니. 괜찮아.”

“흐음…….”

괜찮지 않은 것이 빤히 보였다. 하지만 짐작 가는 이유는 전혀 없었다. 라이돈이 끌어낼 수 있는 추론이라곤 카델이 어제의 전투로 기력이 쇠해 맥을 못 추린다는 것 정도였다.

카델을 살피는 것을 멈춘 라이돈이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내 방으로 가자. 카델 음식도 내 방으로 가져오라고 했으니까, 같이 먹어.”

카델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은 독단적인 행동이었으나, 라이돈의 태도는 당당하기만 했다. 카델이 화내지 않으리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큼성큼 방을 빠져나가려는데, 카델이 라이돈의 팔을 잡고 버텼다.

“라이돈.”

“응?”

“혹시…….”

눈을 내리깐 채 입술을 달싹거렸다. 카델은 대단한 것이라도 묻는 것처럼 작게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 어디 있는지 알아…?”

“반?”

“못 봤어?”

“봤어.”

팔을 잡은 손에서부터 떨림이 전해졌다. 카델을 바라보는 라이돈의 눈빛이 오묘해졌다. 그는 몸을 돌려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카델의 턱을 잡고 들었다. 붉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일그러진 카델의 표정을 담아냈다.

“흐응, 반이 이상한 짓이라도 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어디서 봤는데?”

“밖에서 혼자 수련하고 있던데.”

반이 돌아왔다. 그 사실만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댔다. 돌아왔으면서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반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역시 쿤라를 찾아가지 않은 건가? 아니면, 쿤라가 제대로 얘기해 주지 않은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전부 듣고서도 믿지 않았나…….’

모든 걸 알고도 아무런 원망을 토해 내지 않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생각을 정리 중인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되레 뻔뻔해 보이진 않을까?

생각할수록 아득해져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혼내 줄까?”

어느샌가 가까워진 라이돈의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찼다. 카델은 그제야 제 모습이 이상해 보이리란 걸 인지하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으나, 그것이 최선이었다.

“누가 누굴 혼내 줘. 반은 잘못 같은 거 안 저지르거든.”

“근데 왜 그런 표정이야.”

“내 표정이 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이 없는 것뿐이야.”

“있잖아, 카델.”

라이돈은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 카델의 어깨를 감쌌다. 미끄러지듯 움직인 손이 상박과 손목 안쪽을 쓸어내리며 카델의 손을 잡았다. 단단히 깍지를 낀 그가 카델의 이마 위로 짧게 입을 맞췄다.

“난 카델을 괴롭게 만드는 녀석은 누구라도 용서 안 해.”

“…….”

“넌 내 인간이니까.”

그리 말한 라이돈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카델의 뺨과 눈꺼풀에 몇 차례 더 입을 맞춘 그가 잡은 손을 흔들었다. 카델은 그런 라이돈의 맑은 눈을 멍하니 응시하다,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배고프다. 방으로 가자.”

“좋아! 카델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종류별로 가져오라고 했어.”

“그냥 네가 다양하게 먹고 싶었던 건 아니고?”

“아하하! 정답이야!”

라이돈의 손에 끌려 방을 나섰다. 하루를 종일 굶고 빈속까지 게워 냈으니 배가 고파야 마땅하건만. 사실 카델은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아침부터 자신을 찾아온 라이돈을 돌려보낼 수 없었을 뿐이다.

라이돈의 뒤에서 얌전히 그를 따르던 카델이 갑자기 멈춰 선 등에 코를 박았다. 얼얼한 코를 감싼 채 미간을 좁히자, 라이돈이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반, 벌써 수련 끝난 거야? 그렇게 조금밖에 안 움직여서 언제 강해지려고?”

“조금도 안 움직이는 네놈보단 나아.”

반의 목소리였다. 간신히 진정됐던 심장이 다시금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카델은 라이돈의 뒤에 붙어 마른침을 삼켰다. 도저히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비 거는 라이돈에게 몇 마디 대꾸해 주던 반은, 그의 뒤에 선 카델을 일별했다.

“단장.”

익숙하던 호칭이 더없이 무겁게 다가왔다. 앙다문 입술에 간신히 힘을 풀고, 쭈뼛거리며 라이돈의 뒤에서 빠져나왔다. 곧장 마주치는 시선에 또 한 번 심장이 떨어졌다.

“……반.”

어떤 표정일까. 무표정? 날 선 표정? 불쾌한 표정? 체념? 여러 얼굴을 그려 냈으나, 막상 드러난 반의 얼굴엔 언제나와 같은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어제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평범하게 카델을 대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 아무렇지 않은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기에, 카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온 힘을 다해 연기하는 것뿐이었다.

“……응. 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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