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5화 (26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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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멘의 회복을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먼 거리더라도 정직하게 마차를 타고 이동했겠으나, 봉인 관리를 위한 출정인지라 시간을 빠듯하게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카델은 마력 보유자인 라이돈, 가르엘과 함께 잉마르 늪지대와 인접한 ‘레민 왕국’까지 이동 마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늘어난 인원수만큼 이동 마법의 시전자도 늘어났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레민 왕국에서, 카델 일행은 뜻밖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제국 황제의 전보를 받고 급히 준비한 탓에 엉성한 면이 있지만,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군.”

“아닙니다, 폐하. 넘치는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레민 왕국의 국왕은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신하를 통해 기사단을 왕성으로 초대했다. 미리 국내에 있는 이동 마법진 발생지를 파악해 사람을 보내 둔 것이다. 잉마르 늪지대로 출발하겠다는 전보를 받은 황제가 레민 국왕에게 미리 기사단의 등장을 알린 모양이었다.

카델은 국왕이 하사한 귀한 물약과 늪지대 탐사에 도움이 될 만한 마도구들을 눈여겨보며 겸손을 떨었다.

“잉마르 늪지대는 항상 마물이 기승을 부리는 탓에 왕국의 오랜 골칫거리였네. 이번 봉인 문제로 그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지. 늪지대의 봉인이 깨진다면, 이 나라는 닥쳐올 마물과 마족들을 감당할 재간이 없어. 부끄럽지만 그것이 현실이지. 언제쯤 기사단이 잉마르 늪지대를 확인하러 와 줄까 전전긍긍 기다리던 차에 그대들이 와 주어 천만다행이야.”

“저희로 마음이 놓이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그럼.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 기사단이 아니던가. 내 살면서 요정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네.”

비록 라이돈은 국왕의 면전에 대고 재미없는 곳이라 투덜대며 성을 떠나가긴 했으나, 요정이란 존재가 그 무례한 첫 만남을 미화시킨 모양이었다. 국왕은 어색하게 미소 짓는 카델을 보며 말을 이었다.

“보도된 것관 달리 단원이 한 명 더 있더군.”

“예. 새롭게 들인 부하입니다. 실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더 있습니다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서…….”

“신분? 죄인이기라도 한가?”

“뒷세계에서 활동하던 암살자로, 연이 닿아 들이게 됐습니다.”

“……암살자라.”

국왕은 난데없는 암살자의 등장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카델은 그의 당혹감을 알아채지 못한 척 뻔뻔하게 굴었다.

요젠의 영입으로 기사단이 완성되었으니, 세간에 가르엘과 요젠의 존재를 알릴 때가 되었다. 약소국이긴 하나 국왕은 국왕. 그에게 새 단원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면, 소문은 금세 퍼지게 될 테다.

“걱정 마십시오, 폐하. 제 단원인 이상 함부로 사람을 해치게 두진 않습니다.”

“……물론 알고 있네. 그럼, 오늘은 성에서 쉬며 마력을 보충하고 내일 떠나는 게 어떤가. 늪지대의 지리에 능통한 녀석을 붙여 주겠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나 카델은 군말 없이 국왕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체력을 보충한 다음, 완벽한 상태로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리라. 오랜만의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제프는 레민 왕국의 정찰대장으로, 뛰어난 수색 능력과 날쌘 몸놀림, 실수 없는 업무 수행 방식을 인정받아 잉마르 늪지대를 관리하는 주요 인물로 배정되었다.

그 개인의 전투 능력은 특출하지 않지만 생존력 하나는 굉장히 뛰어나서, 주기적으로 늪지대에 파견을 나가면서도 여태껏 큰 상처 한 번 입지 않은 인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제프는 봉인을 관리하러 온 제국의 기사단을 안전하고도 확실하게 안내해 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사단과 함께 나아갈수록, 자꾸만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말 내가 필요하긴 한가?’

적어도 잉마르 늪지대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성을 보유했다고 생각했건만. 그들에겐 딱히 전문가가 필요 없어 보였다.

“아하하! 하늘에서 마물이 쏟아져!”

“흐음, 이걸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적당히 하라고 해야 하는 건지…….”

잉마르 늪지대에는 수많은 마물이 서식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고, 중심부로 갈수록 더 강한 마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긴 늪지대의 초입. 조금만 조심하면 마물을 맞닥뜨리지 않은 채 이동할 수 있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건만.

현재, 제프는 총 23마리의 마물 시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현상을 목도하는 중이었다. 기겁하는 그에게 기사단장인 카델은 ‘제 부하의 배려입니다, 제프 경. 너무 놀라지 마세요’라는 황당한 발언을 했다.

듣도 보도 못한 배려에 당황하긴 했으나, 어떻게든 익숙해지긴 했다. 만약 국왕 폐하에게 ‘가능하다면 기사단 암살자의 정체를 파악해 보라’는 임무를 듣지 못했다면 내내 패닉에 빠져 있었을 테다.

‘범상치 않은 암살자인가 보군. 내가 알아채지도 못한 마물을 포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놈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족족 죽여 버리다니. 도대체 저 기사단은 얼마나 대단한 거물들로 구성된 거야?’

며칠 내내 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제국의 신성 세력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아우라가 있었다. 기사에 적힌 외적 특징은 말 그대로 단순한 외형 묘사일 뿐. 제프는 만약 그들과 똑같은 외적 특징을 가진 사람을 백 명씩 모아 둔다고 해도 누가 ‘진짜’인지 분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사에 언급되지 않았던 단원도 마찬가지야. 이상한 가면까지 써 가며 싸매고 있는 데도 거센 기운이 느껴지는군.’

괜히 제국의 소수 정예라 불리는 게 아닌 듯했다. 저들에게 제 필요성을 증명해 내고 싶어진 제프는 의욕적으로 늪지대를 헤쳐 나갔다.

그리고 그런 제프의 뒤를 한참 동안 따르며, 카델은 반과 함께했던 체력 단련의 효과를 절감하는 중이었다.

‘그래, 이거지. 이게 인간의 체력이지!’

비록 늪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장화를 착용하고 중간에 기력 물약을 마시긴 했지만, 이런 환경에서 계속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장족의 발전이었다.

카델은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늪지대를 둘러보았다. 잉마르 늪지대는 보통 늪지대보다 훨씬 우중충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겼다. 맨땅보다 늪의 면적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물론, 수초의 색도 탁했다. 심지어 어떻게 자라났는지 의문스럽기만 한 나무가 경로를 방해해서 한 길로 나아가기도 힘들었다.

‘나무에 이파리가 하나도 없네.’

그나마 늪지대의 초입에는 푸른 초목들이 듬성듬성 자리했다면, 지금은 마계에서나 보일 법한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만 보였다. 늪지대 중심부에 독 포자를 흩뿌리는 마물이라도 있는 걸까.

카델이 께름칙한 기분을 느끼며 미간을 좁히자, 눈치 빠른 제프가 말을 붙여 왔다.

“며칠 전부터 이랬습니다. 원래 늪지대 중심부로 갈수록 기운이 험해지긴 했지만, 나름 생명이 사는 곳이니 이렇게까지 전부 메마르진 않았거든요.”

“원인은 찾지 못한 건가요?”

“예. 폐하께서 정찰대를 몇 차례 보내 수색하긴 했지만, 별다른 문제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봉인이 약해져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게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죠.”

봉인에 균열이 생겨 흘러나온 마기 때문에 식물들이 생기를 잃어버렸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지만, 카델은 그럴 확률은 낮다고 판단했다.

‘일반적인 마기만으론 생기를 빼앗을 수 없어. 게다가 봉인에 균열이 생겼다면 마물도 지금보단 많이 보였어야 해.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한적해지는 느낌이니……. 아직 봉인엔 문제가 없을 거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 가정이 카델의 머리를 스쳤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우뚝 멈춰 서고는, 자신을 돌아보는 부하들과 제프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가 한발 늦은 것 같군요. 안쪽엔 이미 마족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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