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피곤한 날 습격해 온 것이 괘씸해 놀리듯이 말하기는 했으나, 카델은 요젠이 자신을 봐줬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불 마력에 암흑을 섞어서 기척을 최소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요젠 정도 되는 놈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어. 결정적인 순간에 일부러 암기를 거둔 것도 그렇고…….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해 봐도 되는 건가.’
애초에 거절만을 위한 습격이었다면 방식은 지금보다 거칠었을 테다. 그렇다고 요젠의 공격이 만만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본래 능력치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봐준 습격이었다.
카델은 녹아내리는 암기 속에서 요젠을 응시했다. 여전히 작위적인 미소가 떠오른 입꼬리가 작게 들썩인다 싶더니, 곧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네가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 며칠 동안 뒤를 밟았거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던 반의 말도 그랬지만, 습격을 위한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는 미행이 필수였을 테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려던 카델이 문득 차오른 의문에 한쪽 눈을 찡그렸다.
“최근에는 딱히 싸운 적이 없는데. 강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인테 설원.”
“……인테 설원? 설마 거기서부터 따라왔던 거야?”
“꽤 긴박한 싸움인 것 같던데.”
요젠이 엘비와의 전투를 지켜봤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히 멀리 떨어져 있던 걸까? 가까운 거리였다면 엘비의 ‘마계의 탑’ 또한 그를 알아채고 입장 가능한 인원수에 변동을 주었을 것이다. 아니면 엘비조차 요젠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던 건가.
‘어떻게 생각해도 똑같이 섬뜩하잖아.’
카델은 닭살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입술을 축였다. 어찌 됐든 그 전투로 요젠은 이쪽의 능력을 꽤 높이 평가해 준 듯하니.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럼 내가 네 기준치에 들어맞았다는 소리지?”
“물론. 널 포함해 기사단의 다른 단원들도 충분히 강했어.”
“좋아. 그렇다면 다음은 네 차례네.”
눈을 가리고 있기에 어딜 봐야 할지가 애매했다. 잠시 방황하던 카델의 시선이 요젠의 입술을 향했다.
“내 방식으로 인간을 지킬 준비가 됐어?”
답변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요젠은 속 모를 태도로 침묵을 고집했고, 카델은 고집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를 응시하다 조급한 표정으로 방 안을 훑었다. 거의 모든 암기가 불타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부터, 암기에 막혀 있던 바깥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그거 반 목소리였지…? 욕…한 건가?’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머리를 말리고 돌아온 반은 열리지 않는 문에 당황했을 테고, 이어서 동료들을 불러냈을 것이다. 모두가 갑작스레 격리된 단장의 구출을 위해 난동을 피우고 있겠지.
암기가 사라지자마자 들이닥칠 부하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에, 카델은 대답을 독촉할 요량으로 요젠을 바라보았다.
“빨리 말하는―”
“나는 인간을 좋아해.”
“……?”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좋아했어. 그들이 드물게 보이는 선의가 좋았거든.”
의중을 알 수 없는 발언에 카델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서 확실한 대답을 듣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요젠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들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선의를 죽이는 것들을 혐오해.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은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세계의 선을 참혹하게 짓뭉개니까. 그것들이 없다면 내가 바라는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거든.”
“…….”
“선을 키우는 건 또 다른 선의 성장일까, 악의 죽음일까. 널 만난 뒤부터 계속 고민했어.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
천천히 다가온 요젠의 손이 카델의 뺨을 더듬듯 쓸어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카델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내 카델과 이마를 맞댄 그가 조용히 말했다.
“너와 함께한다면 선의 성장도, 악의 죽음도. 전부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승낙의 말이라고 생각해도 돼?”
“네 말대로 마족의 죽음을 일 순위로 해 볼게. 물론 부가적인 살인은 내 마음이야. 네가 시킨다면 다른 인간도 죽여 줄 순 있어.”
“내가 살인을 시킬 일은 없어.”
“그럼…….”
과하게 가까운 거리감에 카델이 주춤거리자, 요젠은 맞대고 있던 이마를 떨어뜨리고 그의 팔을 쥐었다. 팔 위에서 미끄러진 손이 카델의 손을 맞잡고는,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네 방식이 내 방식보다 더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길 바라. 기대에 못 미친다면…… 응. 난 인연 없는 타인이 내 얼굴을 기억하는 걸 못 참으니까.”
그의 협박 섞인 승낙과 함께, 기다리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S급 기사 ‘요젠 바르딕타’ 영입 완료!]
[현재 기사단 코스트: 24/25]
요젠 영입에 성공했다. 영입이 이렇게 빠르고 순탄해도 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우선 지금은 의심을 접어 두기로 했다.
‘다른 녀석들 영입이 심각하게 어려웠던 것뿐이지, 요젠이 비정상인 게 아니야. 생각해 보면 이쪽도 라이돈 때만큼이나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았다고.’
하도 극악한 난이도에 시달리다 보니 이젠 어떤 게 평균인지도 가물가물했다. 카델은 요젠의 손을 한 번 힘주어 쥐고는, 자연스럽게 미소 지었다.
“와 줘서 고맙다, 요젠. 너에겐 내가 삶의 가치를 키우기 위한 수단일지 몰라도, 기사단에 들어온 이상, 나에게 너는 소중한 동료이자 부하야.”
“…….”
“그러니 언젠가는 너도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짧게 입맛을 다신 카델이 무언가를 망설이듯 요젠의 눈치를 보다,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몸을 더듬는 게 네 습관이라면 바꾸라고 강요는 않겠지만, 다른 동료들 앞에서는 좀… 자제해 주라. 걔네가 그런 데 좀 민감하거든.”
개인적으로 부담스럽다는 것은 둘째 치고, 다른 부하들에게 오해를 산다면 모두가 불편해질 것이다. 카델은 요젠이 다른 동료들과 충돌 없이 잘 어우러지기를 바랐다.
혹시 기분 나빴으려나. 힐끔거리며 요젠의 반응을 살폈으나, 그의 입가엔 여전한 미소가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이게 내 ‘보는 방식’인걸.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만지는 수밖에 없어.”
“그, 붕대를 풀면 되지 않을까? 혹시 강해지기 위한 수련 같은 거니?”
“……아, 이거.”
지극히 타당한 지적에도 요젠은 당황한 기색 없이 붕대를 풀어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익숙해서 감고 다니는 것뿐이야. 달라지는 건 없어.”
양 눈꺼풀의 중앙을 세로로 가로지른 두 개의 흉터. 카델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 길고 깊은 상흔을 응시했다. 아무리 봐도 사고로 난 상처 같지 않았다. 누군가 고의로 시력을 잃게 하기 위해 눈을 찌른 흔적이었다.
“……누가 이런 거야?”
눈을 가린 것은 능력 향상을 위한 일종의 수련이거나, 가르엘처럼 감추고픈 비밀이 있기 때문이거나, 그냥 멋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부 아니었다.
카델이 진지하게 상처의 출처를 묻자, 요젠은 별것 아니라는 듯 간단히 답했다.
“내가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