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6화 (236/521)

그것은 살이 찢기는 소리 같기도 했고, 피가 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실제로 카델은 자신의 얼굴에 튀어 오른 축축한 액체의 정체를 두말할 것도 없는 피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가 간신히 트인 숨통에 헐떡이며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수십 개의 비늘이 박힌 요젠이 아닌, 비늘을 집어삼킨 채 녹아내리는 그의 분신이었다.

반사적으로 목을 감싼 카델이 시선을 옮겼다. 고통에 일그러진 눈 안으로 어느샌가 케인슈타인 백작의 뒤편으로 이동한 요젠의 모습이 보였다.

‘바꿔치기를 한 건가.’

요젠은 처음 분신이 있던 위치에서 그와 똑같은 자세로 백작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네.”

나지막이 중얼거린 요젠이 사시나무 떨듯 바들대는 백작의 오금을 건드렸다. 살짝 쳤을 뿐임에도 백작은 잔뜩 겁을 먹은 채 과장스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왜 내 작업을 막는 거야? 이 돼지 새끼에게 돈을 받았어?”

백작은 요젠이 입을 막고 있지 않음에도 비명 하나 지르지 못했다. 입을 대신해 그의 머리칼을 쥐어뜯듯 움켜쥔 손길 때문일 수도, 독극물처럼 몸을 마비시키는 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카델은 그런 백작과 요젠을 번갈아 보았다.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숨을 쉴 때마다 까끌까끌한 이물감이 느껴졌고, 계속해서 잔기침이 튀어나왔다.

‘이 상태론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겠어.’

백작의 목숨줄은 이미 요젠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였다. 바로 장막을 쳐 준다고 해도, 요젠의 암기가 장막을 뚫지 못하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카델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 짜냈다.

“그러는 너야말로 왜 백작을 죽이려는 건데.”

카델의 물음에 요젠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나 입꼬리는 여전히 작위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눈이 가려져 있는 탓에 기묘한 표정을 한 요젠의 심리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붙들고 있던 백작의 머리채를 좌우로 느리게 흔들었다.

“이건 인간이 아니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백작은 틀림없는 인간이었으므로, 요젠이 말하는 ‘인간이 아니다’의 의미는 ‘인간성의 부재’일 테다.

요젠이 쓰레기 같은 귀족들을 죽여 왔다는 건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슈타인 백작은 죽어도 싼 악행을 저지른 것일까? 대체 무엇을?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백작을 일별했으나, 백작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두렵다는 듯 눈을 감은 채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지하실은 돼지의 먹이통이야.”

요젠의 말투는 느긋하며 여유가 넘쳤다. 하지만 백작을 다루는 손길은 아니었다. 그는 백작의 머리채를 위로 끌어당기며, 꿇어앉은 백작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곤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난 백작의 등을 망설임 없이 찔렀다.

“끄아악! 아악! 끄아아아!”

자지러지는 비명이 지하실을 시끄럽게 울렸다. 카델의 경악한 시선이 백작의 옆구리를 뚫고 나온 단검에 닿았다. 요젠이 가차 없이 단검을 빼내자, 상처에서부터 질척한 암기와 피가 뒤섞인 기묘한 색의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곳에서 백작은 자기가 수집한 어린아이들을 먹어 치웠거든.”

“……뭐?”

“어느 때는 순결을 먹었고, 어느 때는 미래를 먹었지. 육체와 영혼을 모조리 탐식했어. 그렇게 잔뜩 먹어 치우고, 빈 껍데기만 남은 아이들은 가차 없이 버렸어. 꼭 가축처럼.”

지금 자신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카델은 백작이 찔렸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동안 요젠은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 대는 백작의 눈앞에 검날을 들이밀었다. 바로 앞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암기에, 백작은 그제야 입술을 깨물며 비명을 삼켰다.

“쓰레기장에 버리기도 했고, 암시장에 팔기도 했지. 어떤 마법사에게 실험체로 기증하기도 했다던데. 사실이야?”

요젠이 고개를 숙여 묻자, 백작은 검에 찔리지 않기 위해 한껏 몸을 뺀 채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한 것이다.

‘……말도 안 돼.’

백작은 웬만한 아이보다도 겁이 많아 보였다. 그러니 저 긍정도 요젠의 비위를 맞춰 살아남으려는 발악이 아닐까. 애써 부정해 보았으나, 머리는 이미 백작의 만행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백작이 아이들을…….”

“겁탈했어. 학대했고, 그걸 즐겼어. 그러니 인간이 아니지. 이건 사료와 오물도 구분하지 못하는 덜떨어진 돼지 새끼에 불과해.”

깔끔한 결론에 카델의 말문이 막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눈앞에서 인간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케인슈타인 백작은 말 그대로,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요젠의 말에서 왜곡된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고, 백작의 위축된 태도는 그 모든 것을 긍정했다.

자신이 며칠간 옆에 붙어 경호했던 인물의 정체가 그런 끔찍한 괴물이었다니. 뒤늦게 지하실의 풍경이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한 사람이 자기엔 과하게 넓은 침대나, 방음이 잘 되는 철제문, 용도를 알 수 없던 기다란 테이블, 무기라고 생각했던 각종 도구.

속이 거북했다. 원초적인 거부감이 느껴졌다. 인간이길 포기한 자에게서 풍기는 악취에 메스꺼움을 참을 수 없었다.

“혹시 법에 맡기라고 설득할 생각이야? 뭐가 됐든 살인은 나쁘니까, 라는 뻔한 말로.”

“…….”

“그러지 마. 넌 모르겠지만, 둥켈하이 만큼 귀족에게 너그러운 나라는 없거든.”

상처를 지혈하지 못한 백작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갔다. 그는 이제 자신의 눈을 찌를 듯 다가온 단검이 아닌, 카델을 보고 있었다. 카델을 향해 살려 달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비명을 참기 위해 세게 깨문 입술 새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빨리 죽여야지. 살아남은 아이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게 둘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설마 아직도 백작을 지키고 싶은 거야?

그리 묻는 요젠의 음성에선 짙게 깔린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요젠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작은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런 짓을 벌인 이를 살리고 싶지도, 그를 위해 힘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입이 떨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으니 당장 저 녀석을 죽이라는 말이. 사람을 죽이라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죽음이 어색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동안 수많은 마물을 죽여 왔다. 인간과 비슷한 마족도 죽여 봤다.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 할지라도, 생명의 경중이라는 철학적인 고뇌를 이딴 곳에서, 저딴 인간을 위해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망설여지는 것은 왜일까. 얄팍한 도덕성 때문일까?

“나는…….”

카델은 괴로운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거칠어진 목소리를 냈다. 무의식적으로 백작의 시선을 피한 채 바닥을 응시했다. 그러나 카델이 뒷말을 잇기도 전.

“사, 살려 주게! 날 죽이게 놔두지 마! 내, 내가 잘못했다는 건 잘 알아.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 다신 그러지 않겠네! 반성하겠어! 이곳에서 살아 나간다면 자진해서 죗값을 받겠네! 그러니,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여태 얌전히 찌그러져 있던 백작이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카델의 낯빛에 떠오른 경멸을 읽고 조급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는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에 매달렸다.

요젠은 그를 저지하지도, 위협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리에 붙들어 둔 채 카델의 대답을 기다리듯 침묵할 뿐이었다.

“난…….”

백작이 이곳에서 살아남아 그의 말대로 죗값을 치르게 된다면.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평생을 봉사하며 살아간다면. 그렇다면 그를 살려도 좋을지 모른다.

그건 그가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쥐여 주는 일이었다. 그 기회를 통해 그는 전에 없이 건실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겁이 많은 인간이니, 보복을 걱정해서라도 평생 꾸며진 인간성을 연기할지도 몰랐다.

자신이 가르엘에게 말했듯, 세상에 일관적인 선악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가 갱생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기회는 무한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기회가 돌아간다면, 누군가의 기회는 사라진다. 카델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백작은 기회를 얻을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다. 정작 기회가 필요했던 아이들은 처참하게 짓밟히며 죽어 갔다. 백작에게 기회를 준다면 단지 그가 갱생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뿐이지만, 기회를 빼앗는다면 그의 죽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사람들이 생기리라.

지극히 개인적인 저울질이었으나, 도저히 그 결과를 외면할 수 없었다.

“지키지 않아. 마음대로 해.”

배신감에 찬 백작의 비명이 처절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카델은 차마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작의 비명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 생각했어.”

단검이 움직이는 소리도,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예고도 없이 뚝 끊긴 백작의 비명과 함께, 그의 육체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을 뿐이다.

순식간이었다. 백작의 목숨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공간을 채운 지독한 침묵에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리자, 시야 끄트머리로 요젠의 발끝이 걸렸다.

“이젠 나도 네 이름이 궁금해졌는데.”

고개를 들자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요젠의 깔끔한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완벽한 호선을 그리고 있는 그의 입매에, 카델은 문득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넌 내가 별로 무섭지 않나 봐.”

“……무서워해야 할 이유가 있나? 날 도와주고 있는 사람인데.”

“보통은 무서워하던데. 네 숨소리는 안정적이네. 듣기 편해.”

그때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를 직접 마주한 지금. 카델은 요젠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카델. 카델 라이토스.”

한 번이라도 헛발을 디딘다면, 그가 가진 깊이 모를 악의에 속절없이 빠져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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