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2화 (23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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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케인슈타인 백작은 자신의 호위 인력에게 따로 방을 배정해 주었다. 배려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도록 자신의 옆을 지키라는 무언의 압박에 가까웠다.

카델이 배정받은 방은 창고로 쓰던 것을 급히 비워 청소한 듯 퀴퀴한 곰팡내와 먼지로 가득했다. 제국의 기사가 되어도 이런 각박한 환경에서 벗어나질 못하다니. 지독한 박복함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텁텁한 공기 속에서 한참을 대기하던 카델은, 자신을 부르러 온 하인을 따라 저택의 홀로 이동했다.

‘합격자들은 다 여기 모인 모양이네.’

홀 안쪽에는 과도하게 튼튼해 보이는 용병 스무 명과 그들의 옆에서 까탈스러운 표정을 짓고 선 마법사 다섯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맞은편에는 처음 보았던 집사장, 호위 기사 첼시와 한, 그리고 케인슈타인 백작으로 추정되는 남자 한 명이 자리했다.

목숨이 노려질 정도로 찜찜한 짓을 저지른 귀족이라기에 더러운 인상을 예상했으나, 생각보다는 무던한 외모였다. 적당히 포동포동하고, 적당히 부유해 보였다.

카델의 시험관이었던 한은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케인슈타인 백작에게 무언가를 속닥였다. 자신에게 따라붙는 백작의 오묘한 눈빛을 느끼며, 카델은 최대한 뒷줄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계신 분이 바로 여러분이 앞으로 10일간 목숨 바쳐 지켜 드려야 할 메이스 케인슈타인 백작님이십니다. 예를 갖춰 주십시오.”

예상대로 저 평범한 남성은 케인슈타인 백작이 맞는 모양이었다. 카델은 건성으로 예를 차리며 최대한 백작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괜히 눈에 띄었다가는 원래 목표완 동떨어진 귀찮은 일을 떠안을 수 있었다.

‘설마 마수석 좀 부순 것 가지고 귀찮게 굴진 않겠지? 제발 그러지 마라. 난 요젠만 만나면 된단 말이야.’

요젠이 백작을 습격하는 그 순간, 어떻게든 그에게 접근해 입단을 권유하는 것. 그것이 카델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일단 호위를 맡긴 했으나, 그를 진심으로 보호할 마음은 없었다.

돈이 궁하지도, 백작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뒤가 구릴지도 모를 자를 진지하게 지킨다는 것이 더 이상했다. 만약 카델 라이토스라면 생판 남의 목숨을 위해 열을 올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더더욱 사절이다.

“지금부터 인원을 배정할 테니, 호명된 분은 하인들의 안내를 따라 각자의 위치로 이동해 주십시오.”

차례차례 불려 가는 용병들은 각각 식당, 서재, 응접실 등 백작의 평소 동선에 맞춘 장소에 배정되었다. 카델은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며, 백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꿀을 빨 수 있기를 기도했다.

‘이왕이면 정원처럼 트인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저택 안에 내내 서 있으면 갑갑할 거 아니야.’

게다가 게으름 피우기도 요원해질 테다. 그런 염치 없는 생각을 하며 야무지게 농땡이를 피울 계획을 세우고 있을 무렵.

“다음. 카를로 카를로스.”

카델이 별 고민도 없이 즉석에서 지은 가명이 불렸다. 그가 불렸을 때는 이미 모든 인원이 각자의 위치로 떠난 뒤였다.

묘한 불길함을 느끼며 앞으로 나가자, 한이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뭐야. 뭘 봐. 왜 웃는데.’

께름칙하게 고개를 끄덕인 카델이 집사장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정확하고도 간결한 어투로 카델의 새 배정지를 알려 주었다.

“카를로 씨는 케인슈타인 백작님의 옆을 지키십시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떨어져선 안 됩니다. 대신 다른 용병들의 세 배가 되는 돈을 받게 될 테니,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군요.”

기쁘기는 개뿔. 정말 개뿔이었다.

카델은 고상하게도 밥을 처먹는 백작의 뒤통수를 흘기며 차오르는 분을 삭였다.

얼떨결에 케인슈타인 백작의 개인 호위를 맡게 된 카델은, 사흘 내내 백작의 강박적인 안전 과민증에 시달려야 했다.

백작은 본인이 움직이는 시간은 물론이고, 잠자는 시간까지 카델이 옆에 보이지 않으면 빽빽 비명을 질러 댔다. 덕분에 카델은 백작의 침실에서 그가 잠든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백작의 기상 한 시간 전부터 미리 문 앞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아오, 꼴 보기 싫어 죽겠네.’

백작의 지랄병 때문에 하루 네 시간 취침을 반복했더니 가뜩이나 약한 몸이 점점 쇠해지는 듯했다. 카델은 묵직한 눈꺼풀을 비비며 초인적인 힘으로 하품을 삼켜냈다.

어서 저 빌어먹게 굼뜬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젠 듣기만 해도 속이 텁텁해지는 백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 서 있으니 힘들겠군. 마법사들은 대부분 체력이 좋지 못하다고 하니, 자, 여기 앉게. 페린, 식사를 하나 더 내오게나.”

백작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빈자리를 가리켰으나, 카델은 작위적인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현재 그는 너무 피로한 나머지 입맛까지 뚝 떨어진 상태였다. 빨리 식사를 마치고 본인이 서재에서 일을 처리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졸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배려일 테지만, 백작에게 그런 눈치가 있을 리 없었다.

카델이 자리에 앉자 하인이 식기를 세팅했다. 그릇에는 구운 야채와 닭고기, 신선한 과일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평소였다면 되는대로 입에 욱여넣어 체력을 비축했겠으나, 지금은 그저 접시에 코를 박고 잠이나 자고 싶었다.

“들게나. 느긋하게 아침을 즐길 생각이니, 자네도 급히 먹을 필요는 없네.”

백작은 제법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권유했다.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기에 얌전히 포크를 들었으나, 속에서는 폭죽 같은 욕설이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넌 나랑 같이 밥을 먹고 싶냐? 밤마다 엄마 잃은 오리 새끼처럼 카를로! 카를로는 어딨느냐! 온갖 비명은 다 질러 댔으면서? 낯짝 한번 더럽게 두껍네.’

이대로면 요젠이 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백작을 암살할 것 같았다. 카델은 닭고기를 백작의 살점처럼 잘근잘근 씹어 넘기며 차오르는 살의를 억눌렀다.

고역 같은 식사를 마친 후엔, 곧바로 백작의 업무 시간이었다. 카델은 서재 한구석에 자리한 작은 의자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는 백작에게로 고개를 고정했다.

적어도 백작이 일에 완전히 몰두할 때까지는 정신을 잡아 두고 싶었으나, 자꾸만 눈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뚝뚝 떨어지는 고개를 연신 치켜들던 카델이 결국 체념하듯 눈꺼풀에 힘을 풀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거의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던 카델은, 백작의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발작처럼 깨어났다.

“뭐, 뭡니까?”

하도 요란한 비명을 들어서인지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 댔다. 빠르게 시선을 옮겼으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백작은 보이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카델이 서둘러 책상으로 달려가자, 곧 볼품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백작의 모습이 드러났다.

“지금 뭐 하시는…….”

“내, 내 얼굴을, 얼굴을 만졌네! 얼굴을 만졌단 말일세!”

“얼굴을 만졌다고요…?”

누가, 어디서, 왜냐는 질문은 필요치 않았다. 얼굴을 만지는 행위는 ‘영면의 사자’가 타깃에게 남기는 일종의 낙인. 카델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낙인이 찍힌 자는 요젠의 암살 대상이 된다.

요젠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으나, 카델은 그것에 대한 어떠한 감상도 느낄 수 없었다. 이어진 백작의 기묘한 행동 때문이었다.

패닉에 빠진 백작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제 상의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미친 사람처럼 성급한 손길이 얇은 셔츠를 찢듯이 잡아당겼다. 그 힘을 버티지 못한 단추들이 투두둑 뜯겨 나가며, 전혀 보고 싶지 않던 백작의 속살이 드러났다. 기습처럼 백작의 가슴팍을 보게 된 카델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저건…….’

정확히 백작의 심장 부근에 번진 새까만 반점. 무언가의 기운이 스며든 것처럼 피부 안쪽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듯도 했다. 백작 역시 제 가슴팍에 자리한 주먹만 한 반점을 발견하곤 더욱 끔찍한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때마침 소란을 듣고 몰려온 병사와 용병들을 향해 마구 윽박질렀다.

“영면의 사자가 내 저택에 침입했다! 어서 찾아내!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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