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1화 (23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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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보는 좀 모았어? 뜬소문이라도 좋으니 영면의 사자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정보면 다 말해 봐.”

침대에 걸터앉은 카델이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방 안을 가득 채운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영면의 사자.

카델이 숨겨 두었다던 부하의 이명을 처음 들었을 때, 부하들의 반응은 전부 회의적이었다. 그들은 영면의 사자와 카델 사이의 인연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고, 어디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지 모른다며 소름 끼쳐 했으며, 언제 마음이 바뀌어 모두를 죽일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 세계에서 영면의 사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악명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이는 카델과 라이돈 뿐인 듯했다.

“한 명씩 붙잡고 물어봤더니 다들 눈치만 보고 도망가던걸. 재미없어서 전부 얼려 버릴까 했는데, 참았어. 대단하지 않아, 자기? 칭찬해 줄래?”

바닥에 길게 누운 라이돈이 종이 가방 안에서 꺼낸 복숭아를 관찰하며 말했다. [환상의 날개]를 착용한 상태인 그는, 날개가 없고 키가 원래보다 조금 작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신분을 들키지 않게 알아서 외형을 바꾸라고 했건만. 참으로 성의 없는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 신화에나 나올 법한 미모로 곳곳을 쏘다녔으니, 분명 눈에 띄었을 것이다.

“반이랑 루멘은? 뭐 없어?”

카델의 물음에 두 남자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며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둥켈하이 사람들은 입이 무겁더라고요, 단장.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소리밖에 안 하고…….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찾는 건 포기하죠.”

“대장이야말로 정말 정보가 없는 거야? 영면의 사자와 함께하기로 약속했을 정도면 그자의 다음 행선지 정도는 알아뒀어야지. 이렇게 되면 찾아낼 방법이 없겠어. 막막하네.”

반과 루멘은 자신들은 어떠한 정보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쓸데없이 말을 늘였다. 카델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의 인중이나 귀 같은 부위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카델의 빤한 눈빛을 버티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풉, 소리를 낸 가르엘이 황급히 주먹으로 입가를 가렸다. 웃음을 참느라 바들거리는 가르엘을 일별한 카델은, 조금 어이없는 심경이 되었다.

‘얘넨 뭘 또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못해.’

누가 봐도 정보를 알고도 숨기는 자들의 태도였다. 평소에는 늠름하고 믿음직스럽기만 하던 부하들의 하찮은 면에, 결국 카델도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반쯤 먹은 사과를 내려 두며 반과 루멘을 번갈아 보았다.

“얘들아. 우리한테 뭐가 생겼는지 잊은 모양인데.”

카델이 자신의 가슴께를 가볍게 눈짓하자, 단원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곳에는 마름모 모양으로 세공된 붉은 보석이 박힌 펜던트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산을 떠나기 전, 쿤라가 나누어 준 힘의 일부. 즉 ‘적룡의 가호’가 물질화된 것이었다. 특별한 때가 아닌 이상, 쿤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힘의 일부로써 카델과 기사단을 지켜준다.

“실험해 봤잖아? 적룡의 ‘비늘 갑옷’은 웬만한 공격으로는 금도 안 가. 영면의 사자가 아무리 대단한 암살자라 한들, 적룡의 비늘까지 한 방에 깨부술 순 없다고. 애초에 다짜고짜 이쪽을 공격하지도 않을 테지만.”

카델이 말에 담긴 의도에, 먹히지도 않을 거짓말을 하던 두 남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카델은 그런 그들을 위해 친절히 쐐기를 박아 주었다.

“아니야. 뭐, 그렇게 무서우면 관둬. 나도 새 단원 때문에 너희가 바짝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원하지 않고. 너희의 심신 안정을 위해서라면…… 포기할 테니까.”

진심으로 아쉽지만, 겁 많은 너희를 위해 악명 높은 암살자의 영입은 그만두겠다. 그리 말한 카델은 반과 루멘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확히 10초가 흐른 뒤.

“……생각해 보니까 꽤 쓸 만한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네요.”

“너도 그런가? 나도 마침 그럴듯한 정보가 하나 떠올랐는데.”

스리슬쩍 서로 간의 비밀스러운 약속을 깬 반과 루멘이 운을 떼고. 그들의 옆에 있던 라이돈은 그새 다 먹은 복숭아씨를 입 안에서 굴리며 말했다.

“흐응, 둘 다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들은 게 있으면 처음부터 말하라고. 한심하네!”

*

반과 루멘이 가져온 정보는 요젠 바르딕타의 위치를 특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카델은 그들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신중하게 눈빛을 가라앉혔다.

“다섯 개 가문에서 닥치는 대로 호위 인력을 끌어모으고 있단 말이지.”

“메이슨, 도커, 파릴리안, 혼타, 케인슈타인. 이 가문들은 여러 추문에 얽혀 있어요. 그들의 움직임이 정말 영면의 사자의 암살에 대비하기 위함이라면, 그 추문들이 사실일 확률이 높겠군요.”

가르엘의 말에 카델은 산맥을 넘기 전 나누었던 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쓰레기 같은 귀족을 죽여요. 기준은 그자만이 알겠지만, 보통 인망 없는 귀족을 노려서, 평민들 사이에선 제법 인기가 좋다고 들었어요.”

다섯 개 가문은 둥켈하이에 ‘영면의 사자’가 돌아왔다는 소문만으로 한껏 위축되어 호위를 늘리고 있다. 자신들이 그의 타깃이 될 만한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했다.

그들에겐 안된 일이었으나, 카델로선 기회였다.

‘죽을 만한 놈이 그렇게 특정돼 있다면 요젠을 만나기는 훨씬 수월해지겠지. 하지만 만약 그 다섯 가문 중 요젠이 나타나는 곳이 없다면…….’

그땐 정말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요젠은 분명 탐나는 인재였으나, 그의 영입을 위해 메인 퀘스트까지 무시한 채 둥켈하이에 머무를 수는 없다.

‘탐탁지 않긴 해도 쿤라의 힘을 얻었으니까. 기사 영입이 그렇게 간절한 것도 아니야.’

일종의 보험이 생긴 셈이었다. 생각을 마친 카델이 결정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마침 후보도 다섯이겠다, 각자 한 가문씩 맡아 보면 되겠네.”

“예? 한 가문씩 맡아 보자니…….”

카델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반을 향해 말했다.

“오랜만에 용병 행세나 해 보자고.”

적린 기사단은 큰 화제성과 함께 신성처럼 등장한 제국의 주요 세력이었으나, 급부상한 만큼 많은 사람에게 얼굴이 알려지진 않았다. 신문에 실린 그들의 특징만으로 단번에 정체를 파악하기는 힘들었고, 단복을 벗은 상태라면 더더욱 그랬다.

‘적어도 이 다섯 가문은 저번 임명식 연회 때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가르엘의 정보였으니 확실했다. 그러니 목표 인물들에게 그들이 적린 기사단이라는 사실을 들킬 위험은 적었다.

문제랄 것은 존재감이 기사단을 뚫고 나오는 라이돈과 루멘, 가르엘. 이 세 남자였다. 라이돈은 환상의 날개를 사용한다 쳐도, 남은 두 남자가 문제였다.

그들은 얼굴이 다방면으로 팔린 귀족이었고, 심지어 가르엘은 사망 처리된 고인이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한들, 자신의 신변을 보호할 자를 의심한 고용인이 가면을 벗어 보라 요구한다면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그러한 카델의 고민은, 당사자들의 호언장담으로 마무리되었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장. 처세술 정도는 질리도록 배워 왔다고. 의심한대도 빠져나갈 방법은 무수하니, 쓸데없는 고민은 마.”

“그래요, 단장님. 여차하면 제 마기를 사용해서 가면을 벗기면 저주를 받게 될 거라고 협박해 보죠. 단장님이 하사한 흑마법사 역할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연기쯤이야.”

그들은 본인들의 정체가 발각될 일은 없으며, 만약 그런 위기가 닥친대도 신분을 숨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다 약속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기사단은 각자가 맡은 가문으로 향했다. 뽑기를 통해 반은 메이슨 가문을, 루멘은 도커 가문을, 라이돈은 파릴리안 가문을, 가르엘은 혼타 가문을, 마지막으로 카델은 케인슈타인 가문을 맡았다.

‘케인슈타인 백작가가 의뢰비를 가장 많이 준다고 했지. 경쟁이 치열하겠는걸.’

카델은 미리 위치를 알아둔 케인슈타인 백작의 저택을 향하며 입가의 근육을 풀었다.

저택 앞에 도착하자 적지 않은 수의 인파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정체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델이 자연스럽게 인파 속에 섞이자, 몇몇 사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아무도 카델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나, 저들끼리 속닥거리는 소리는 들려왔다.

“저놈은 마법사인 모양인데? 검도 없고, 덩치도 작고.”

“뭐? 마법사? 젠장, 왜 마법사가 끼어들고 난리야. 마법사들은 이깟 의뢰 없이도 잘 먹고 잘살잖아.”

예상대로 이들은 전부 케인슈타인 백작의 호위를 맡기 위해 모인 용병들인 모양이었다. 카델은 마법사가 자기 자리를 빼앗는다며 투덜거리는 사내들의 험담을 무시한 채 대기했다.

앉을 자리가 없었기에 슬슬 다리가 저렸으나, 다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 저택의 집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시죠.”

카델은 뭉쳐 선 지원자들에게 떠밀리듯 저택의 대문을 넘었다. 집사는 잘 가꿔진 앞뜰에 사람들을 모아 두고는, 저택 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어서 등장한 이는 케인슈타인 가문의 호위 기사였다.

곰처럼 거대한 몸집을 가진 남자는 모인 인원을 엄중한 시선으로 훑어내리곤,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인슈타인 백작님을 모시는 저택의 호위 기사, 첼시 오스턴이라 하오. 지금부터 그대들은 간단한 시험을 치르게 될 거요. 마법사는 왼쪽으로, 나머지는 오른쪽으로 움직이시오.”

첼시의 말에 잠시 웅성거리던 지원자들은 곧 각자의 위치를 찾아갔다. 당연하게도, 오른쪽을 차지한 인원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왼쪽에는 카델을 포함한 아홉 명의 마법사가 전부였다.

‘생각보다 쉽게 들어갈 수 있을지도.’

신분을 숨겨야 하는 입장인지라 능력을 전부 보일 수는 없다. 지원자가 많은 만큼 합격이 까다로우리라 예상했는데.

‘이쪽 세계에선 마법사가 귀한 설정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어.’

인원을 나눈 뒤, 첼시는 자신의 부하를 불러 마법사들에게 보내고, 본인은 왼쪽으로 이동했다. 나눠서 시험을 치를 생각인 듯했다.

마법사 쪽에 선 한이라는 기사는 그들에게 사람 머리만 한 구슬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건 ‘마수석’이라고 합니다. 마력을 빨아들여 흡수하는 돌인데, 들어간 마력의 농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져요. 이 돌을 빨간색으로 맞춰 주시면 됩니다.”

카델은 손안에 들린 구슬의 묵직함에 놀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대련이라도 시키나 했더니. 생각보다 별것 없는 시험이었다.

‘이래 봬도 7성 마법사라고. 이깟 돌 색 맞추는 것쯤이야 잠꼬대로도 가능하지.’

그렇다고 너무 빠르게 색을 맞추면 눈에 띌 것이다. 카델은 괜히 뜸을 들이며 다른 마법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덟 명의 마법사는 신중한 표정으로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곧바로 빨간색을 만든 마법사는 없었고, 초록색과 노란색, 그리고 검은색이 있었다. 한이 검은색을 만든 마법사를 일별하며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기에, 검은색이 가장 좋지 않은 색임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힘든가?’

몇 분을 기다려도 빨간색은 나타나지 않았다. 카델은 슬슬 시험의 난이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한은 아직도 마력을 불어넣지 않고 있는 카델에게 눈치를 주었다.

‘저렇게 힘든 거면 슬슬 시도해 봐야겠는데.’

급하다고 마력을 왕창 부을 순 없으니, 일단 소량의 마력만 흘려 넣어 볼 생각이었다.

‘지금 내 마력 속성 비율이…….’

바로 어젯밤, 마지막 남은 [순환의 물약]을 복용해 속성을 변동했다. 현재 그의 속성은 불과 바람, 암흑이 4:2:2의 비율을 이루고 있었다. 원래라면 암흑이 1이었겠지만, 과거 마밀에게 해독을 부탁했던 암흑 마법서 덕에 적당한 비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으음, 무난하게 바람만 써 볼까.’

암흑은 눈에 띌 테니 할 거라면 비율도 낮고 속성도 무난한 바람이 나았다. 생각을 마친 카델이 마수석에 소량의 바람 마력을 흘려 넣었다. 너무 색이 변하지 않는다 싶으면 조금씩 양을 늘릴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부질없었다. 마수석이 곧장 빨간색으로 변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

마력을 흘려 넣기가 무섭게 마수석에 금이 가더니, 카델이 손쓸 틈도 없이 반으로 뚝 갈라진 것이다.

“어…….”

카델은 반 갈라진 마수석을 양손에 움켜쥔 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수석을 어딘가 숨겨야 하는 게 아닐까, 뒤늦은 고민이 들었으나 이미 시험관의 눈에 띈 후였다.

한은 진땀을 흘리고 있는 카델의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오더니, 눈구멍이고 콧구멍이고 할 것 없이 커다랗게 확장한 얼굴로 두 동강 난 마수석을 낚아챘다.

“하, 합격입니다! 당장 합격입니다!”

당장 합격이란 건 대체 무슨 말인가. 카델은 입이 떡 벌어진 다른 마법사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뒤로한 채 거의 끌려가다시피 저택의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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