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말하자면, 카델은 부하들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떤 기분으로 그들을 보아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단정 지을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어쩌면 성별을 떠나 같은 인간에게 이처럼 깊은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처음이나 다름없는, 막 싹을 틔운 감정들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카델은 무작정 산을 타고 내려갔다. 동료들이 어디쯤 있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폭포를 감상하며 휴식하던 대낮이 그저 꿈만 같았다. 어둑해진 하늘과 그늘진 숲속은 그의 기분처럼 악몽 같은 습함과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의무적으로 움직여 산길을 가로지르다,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걸음을 멈췄다. 차게 가라앉은 잿빛 눈동자가 천천히 사위를 둘러보았다.
곧이어 빼곡한 나무 사이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 역시 카델을 발견하고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가 카델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자, 함께 끌려온 붉은 실이 흔들렸다.
“……가르엘.”
“지금쯤이면 얘기가 끝났을 것 같았어요. 즐거운 시간이었나요?”
가르엘에게 운명의 반지를 주었던 것도, 자신의 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는 것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카델은 제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뒤늦게 의식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르엘은 카델의 상태를 탐색하듯 그를 훑어 내리며 큰 보폭으로 다가왔다. 카델은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응시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갈무리하려 노력했다. 카델 라이토스의 의지를 배제한, 순수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단장님이라면 적룡과도 원만한 대화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대화 중에 찾아가 봤자 곤욕만 치를 테니, 밤이 오기 전까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죠. 다른 동료들은 전혀 몰랐을 테지만.”
가르엘은 중지에 끼웠던 반지를 빼 카델에게 돌려주었다. 반지를 받아 든 카델이 가볍게 마른침을 삼켰다.
“반 경은 제가 반지 받는 걸 지켜봤으니까, 내놓으라고 화내면 어쩌나 했는데. 그걸 떠올릴 경황도 없어 보이더군요. 지금도 루멘 경과 함께 이 잡듯이 산을 뒤지고 있을 거예요.”
몸에 바짝 힘을 준 채 신중하게 가르엘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부유하는 감정들을 정리했다.
그의 태도를 보아 부하들의 신상에는 이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다음으로는, 적룡과 함께 사라진 단장을 걱정하며 몸을 혹사했을 부하들에 대한 걱정이 번졌다. 라이돈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감정의 근원조차 자신의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공포가 몰려왔다.
“……단장님. 표정이 안 좋은데. 싸움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상처를 봐줄까요?”
“괜찮아. 싸우지 않았어.”
“그럼 안 좋은 얘기를 들었나. 단원들을 인질로 삼아 말도 안 되는 요구라도 하던가요? 적룡이…… 뭔가를 강요했어요?”
가르엘의 질문에는 조심스러운 기색이 있었다. 그는 무사히 돌아온 카델을 환대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움츠러든 그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카델에게선 적룡과 대화를 나눴다는 데서 오는 고양감이나 흥분 따위를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적룡과 카델은 분명 처음 만난 사이일 테다. 그런 사이에 짧은 대화로 상대를 우울감에 빠지게 할 만한 주제가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을 짐작할 수 없었기에 카델의 상태가 의아하기만 했다.
최악이래 봤자 오랜 무료함에 질린 적룡이 흥미로워 보이는 카델을 탐내고, 부하를 살리고 싶다면 이곳에 남으라는 억지를 부리는 정도가 아닐까. 그뿐이라면 카델은 분명 어떻게든 부하들을 만나 대책을 논의하려 했을 텐데.
지금의 카델에겐 대화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지친 듯 느리게 고개를 저으며 쥐고 있던 반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무사히 산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놔주겠대.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았어.”
가르엘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카델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밝혀내겠다는 듯 집요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카델은 얌전히 그의 시선을 받아 냈다. 안대를 벗은 가르엘은 평소와 다른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가 누구도 함부로 해치지 않을 인물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왼쪽에 자리한 검은자위가 제비꽃처럼 영롱하던 홍채의 색을 탁하게 물들였다.
그 어두운 눈을 바라보다, 카델은 문득 가르엘이야말로 자신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를 영입할 당시, 카델은 그에게 자신의 밑바닥을 꺼내 보였다. 감동을 위해 꾸며낸 말도,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쓴 말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을 말했고, 이기적인 욕심을 더했다.
욕심이 욕심이란 것을 숨기지도 않았다. 자신이 이기적인 인간임을 인정했다. 그의 앞에서 자신은 늠름한 단장이 아닌 특별한 운명에 끌려가는 지친 인간일 뿐이었다.
카델 라이토스답지 않은 그 무력함은, 분명히 자신의 것이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은 오로지 제 것이었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다음은?
“가르엘.”
“네.”
온갖 부정한 것이 자신의 몫이라면, 단원들을 향한 마음은? 그 따스함은 전부 카델 라이토스의 몫이란 말인가? 빛나는 사람이니 빛나는 감정을 품을 수 있었던 걸까? 그것만큼은 아니길 바랐다.
“키스해 줘.”
그랬기에 카델은 절박하게 가르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자신이 느껴 왔던 모든 애정이 진실이길 바랐다. 그와는 서로 간 비밀이 없는 사이니, 이번에도 제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게 해 주었으면 했다.
“키스해 줘, 가르엘.”
느닷없는 요구에 가르엘은 퍽 당황한 듯했다. 언제나 느긋하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그는 카델의 의중을 가늠하듯 눈매를 가늘게 늘이더니, 제 옷깃을 쥔 손등을 쓸어내리며 낮게 속삭였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까.”
“응.”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네요.”
카델의 모든 행동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했으나, 표정만큼은 초연했다. 스킨십에 낯부끄러워하던 남자는 어딘가로 떠나 버린 것만 같았다. 사실 눈앞의 남자는 카델이 아닌 같은 껍데기를 쓴 다른 무언가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으나, 그럼에도 카델은 카델이었기에. 가르엘은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손등을 쓸던 손이 부드럽게 카델의 뺨을 쥐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꺾고, 가볍게 입술을 포갰다. 마른 입술이 거칠었다. 그 버석한 감촉을 느끼듯 짧게 입술을 누르다, 입을 벌려 카델의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조심스럽게 입 안의 점막을 빨자 카델의 입술도 함께 벌어졌다.
카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눈꺼풀 아래 굴러가는 눈동자의 움직임이 도드라졌다. 꼭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방황하는 사람처럼 불안정해 보였다.
혀끝을 세워 머금은 아랫입술을 훑었다. 그것이 간지러운지 카델의 속눈썹이 움찔 떨렸다. 가르엘은 카델과의 입맞춤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의욕적으로 그 모든 장면을 눈 안에 담았다. 그의 허리를 끌어당겨 몸에 바짝 밀착시키고, 방황하는 카델의 손을 잡아 제 목을 두르게 했다.
카델의 입술을 살짝씩 잘근거리다, 작게 인상을 쓰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제야 꾸물꾸물 눈꺼풀을 올리는 카델의 눈을 응시하며, 가르엘은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멈추려면 지금뿐이에요. 조금이라도 싫다면 말하세요.”
가라앉은 잿빛 눈동자가 가르엘의 상기된 얼굴을 훑듯 작게 움직였다. 카델은 그의 종류 다른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의 목을 끌어 내려 강하게 입술을 비볐다. 명백한 긍정이었고, 가르엘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임하는 카델과 능숙한 가르엘의 키스는 제법 야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혀와 혀가 얽히며 뭉개지는 모습이 몽땅 드러났고, 혀와 턱 끝을 한입에 집어삼키기도 했다. 축축하고 질척이는 소리가 서로의 귓전을 울렸다. 호흡을 위해 간간이 늘어지는 타액 사이로 달뜬 숨결이 이어졌다.
가르엘은 카델을 나무 기둥에 밀어붙인 채 정신없이 그를 탐닉했다. 카델 역시 이성을 잃은 것처럼 성마른 손길로 가르엘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그는 가르엘에게서 풍기는 체취나 자신의 치열을 훑고 점막을 빠는 압력 따위에 집중했다.
쾌감만을 느끼려 했다. 이 세계를 보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제 역할이었으니. 생각하지 않고 그저 느낀다면, 카델 라이토스의 의지는 끼어들 수 없다. 이 쾌감에 중독되고, 이 쾌감을 선사하는 가르엘에게 애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애정일 것이다.
자신의 안에서 카델 라이토스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진짜 주인공인 그에겐 미안한 얘기였지만, 그래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델의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이 허리로 내려왔다. 잘록한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린 그가 강하게 하체를 밀착해 카델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끼워 넣었다.
카델의 입 안으로 삽입하듯 혀를 밀어 넣은 그가 틈 없이 맞물린 입술과 살짝 눌린 코끝에 힘을 주었다. 빠듯해진 입 안에서 가르엘의 혀가 입천장을 짓누르고, 깊숙한 곳을 자극했다. 카델은 제 입 안을 마음껏 희롱하는 가르엘에게 되도록 저항하지 않으려 했으나, 점점 숨이 가빠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카델이 호흡을 위해 살짝 고개를 비틀자, 가르엘이 한 손으로 그의 양 뺨을 쥐었다. 손끝에 힘을 주어 카델의 입술을 벌린 그가 천천히 혀를 빼냈다. 마중하듯 따라 나온 혀를 부드럽게 빨아당기고, 반쯤 풀린 카델의 눈가를 문질렀다.
“이 이상은 허락해 주지 않겠죠?”
“……비양심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