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225/521)

“제가 이 세계를 떠나면 카델 라이토스가 죽는다는 말입니까…? 왜, 왜요? 왜 죽는 건데요?”

적룡은 성급하게 물어 오는 카델을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이름이 카델 라이토스였나. 예전 마계 전쟁에서 그 가문이 꽤나 힘을 썼다고 들었는데. 아직 건재한 모양이로군.”

“대답해 주십쇼!”

“……반쪽짜리 영혼이 오래 산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그 영혼의 탄생 목적은 다른 영혼과 결합하는 것이니, 제 본분이 끝나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

“그렇다면 제가 이 세계에 남아야만 카델 라이토스의 영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니.”

제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답답한지, 적룡이 작게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반쪽짜리 영혼과 결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네 영혼 또한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반쪽은, 글쎄. 네 세계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만약 네가 이 세계에 머물기를 택한다면 떨어져 있던 나머지 영혼이 그 몸을 차지할 테고, 카델 라이토스의 영혼은 밀려나 소멸하게 될 거다. 결과는 똑같아.”

지금까지 적룡이 하는 모든 말을 예상할 수 없었지만, 이번 발언보다 충격적인 것은 없었다. 카델은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힘이 빠진 몸이 비틀거렸으나, 벽면을 짚고 꾸역꾸역 버텨 섰다.

적룡은 애처롭게 떨리는 카델의 등을 빤히 응시하다, 비웃음 섞인 어조로 말했다.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지 모르겠군. 네겐 명분이 필요한 게 아니었나?”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이 세계에 남고 싶잖나. 사랑하는 존재가 생겼고. 난 네 욕심을 정당하게 만들어 줄 명분을 제공해 줬을 뿐이야. 네가 뭘 선택해도 그 영혼은 죽지만, 남지 않으면 그 인간의 육체까지 죽게 된다. 단순하게 생각해.”

추잡한 속내를 들춰내듯 거리낌 없는 태도에 카델이 빠득 이를 갈았다. 사납게 고개를 돌려 적룡을 노려보았으나,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실제로도 아무렇지 않을 테다. 치가 떨리도록 불쾌했지만, 적룡의 말은 온통 사실뿐이었으니까.

결국 카델은 울분을 씹어 삼키며 시선을 돌렸다. 벽면을 짚은 손끝을 타고 아릿한 고통이 번져 왔다.

‘카델 라이토스의 영혼이 반쪽짜리라는 건, 그래. 그럴 수 있어. 게임이니까.’

게임 속 주인공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플레이어였다. 주인공이 홀로 움직이고 그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쳐다보기만 하는 게임은 없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카델 라이토스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반씩 결합하였다는 것쯤은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아도 카델 라이토스는 죽을 운명이라는 건…….’

너무 끔찍한 사실이었다. 이미 빼앗아 버린 그의 몸을 돌려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떠났을 때 죽은 단장의 시체를 끌어안고 슬퍼할 부하들 때문에?

전부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자신이 이곳에 남기를 택했을 때. 카델 라이토스의 영혼이 사라지고, 온전한 신여환이 되었을 때. 그들을 애틋하게 여겼던 절절한 마음이, 전부 카델 라이토스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까 봐. 낯선 세계에서의 삶을 후회로 이어 가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디에도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사방이 꽉 막힌 방에 갇혀 서서히 질식하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택해도 괴로운 결말뿐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부터 빙의해선 안 됐다. 차라리 트럭에 치인 뒤 바로 죽어 버렸어야 했다.

오로지 끝을 보기 위해 아득바득 버텨 온 그였으나, 이제는 그 간절함마저 옅어지고 있었다. 기대되기는커녕 두렵기만 한 미래를 회피하고 싶었다.

카델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숨을 골랐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껏 들은 모든 진실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피하려 하면 할수록, 그 모든 진실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정신이 조각조각 부서져 먼지처럼 흩날리는 기분이었다.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으나,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질리지도 않고 떠오른 시스템 창 때문이었다.

[인물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히든 기사 ‘쿤라’와 조우하였습니다. 그의 호감을 얻어 영입을 시도해 보십시오.]

카델이 피식거리며 웃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적룡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선을 느낀 카델이 홱 뒤를 돌았다. 그는 거진 실성한 사람처럼 조소를 흘리며 허공을 손가락질했다.

“당신 이름이 ‘쿤라’입니까?”

“……그 힘이 알려 주던가? 놀랍군. 내 이름을 아는 이는 이 세계에서도 몇 되지 않는다만.”

“그래요…. 놀랍네요.”

작게 중얼거린 카델이 허벅지에 손을 올린 채 허리를 굽혔다. 숙인 고개 아래서는 더 이상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이 히든 기사랍니다. 영입해 보래요. 시스템은, 당신이 내 아군이 되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히든 기사라…….”

이유 모를 식은땀이 흘렀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 낸 카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적룡, 쿤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카델이 전한 시스템의 문구를 곱씹는 듯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자신을 그저 ‘조금 특별한 기사’ 정도로 분류한 시스템에게 분개할까. 기분 나쁜 힘이라며 대항할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가 시스템을 적으로 분류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이딴 빌어먹을 시스템 따윈 사라지는 편이 나았다. 지금껏 자신이 붙들어 오르고 있던 것은 동아줄이 아니었다. 위에서는 지옥 불이, 아래에선 불기둥이 솟구쳐 타들어 가는 썩은 줄일 뿐이었다.

끝없이 절망하는 카델의 앞에서, 쿤라가 보인 반응은 다름 아닌 폭소였다. 카델은 동굴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시끄러운 웃음소리에 와락 미간을 구겼다.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그 힘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제 나름대로 분류하고 있는 모양이군. 아주 흥미로워. 그것이 봤을 때 이 몸은 숨겨진 등장인물이라는 건가? 이 몸이 그 힘을 찾아내 즐거운 만큼, 그 힘도 흥분한 모양이야.”

예상과 빗나가는 호쾌한 태도였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쿤라의 모습에, 카델의 내면으로 어두운 감정이 파고들었다.

자신을 실패한 도자기처럼 내던져 깨부숴 놓고는, 그 안에 들어 있던 보석을 발견해 기뻐하는 꼴을 보는 것 같았다. 자진해서 진실을 듣기를 바랐으면서도 그랬다.

자신의 모든 불행을 흥미로 치부하는 그의 태도가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이 막막한 진실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그게 즐겁습니까? 시스템에게 당신은 만들어진 세계의 부속품일 뿐이에요. 내 세계에서 당신은 카드 쪼가리에도 못 들어가는 어설픈 캐릭터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 사실을 알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겁니까? 당신이 이곳에서 얼마나 대단한 권능을 가졌든, 그건 다 하잘것없다는 얘기인데. 그게 좋아요? 아니면 용도 현실 회피라는 걸 하는 건가?”

독처럼 쏘아 대는 카델의 말에 즐거운 기색이 만연하던 쿤라의 얼굴에는 냉소가 번졌다. 그는 카델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전부 알고 있다는 듯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이 세계가 네 세계의 망상일 뿐이라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얘기지 않나. 네 세계라고 유일하게 실존하는 현실일 것 같은가? 이곳이 누군가의 망상에서 뻗어 나온 세계라 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즐겁고 흥미롭지. 이 우주 전체가 우주 밖의 누군가가 만들어 낸 한낱 피조물이라면, 그것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보장하는 것도 없거든.”

쿤라는 일그러진 카델의 얼굴을 마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네가 좁은 세계에 갇혀 살길 원한다면 말리지 않으마. 대부분의 존재가 한 세계보다도 작은 찰나의 순간에 자신을 가두곤 하니. 너 역시 그런 것이겠지. 특별한 경험을 한 보람은 없어지겠다만.”

“잘난 듯이 말하지 마세요.”

카델은 자신이 지껄이는 모든 말들이 치기 어린 망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순순히 기를 꺾기가 싫었다. 끝까지 쿤라에게 맞서고 싶은 것은, 그가 말한 진실에 대한 반항심일지도 몰랐다.

쿤라는 작은 인간의 하찮은 반항심에 어울려 주는 대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긴 머리칼을 쓸어올린 그가 제대로 설 힘도 없어 다리를 받치고 있는 카델을 느긋하게 훑어보았다.

“고려해 보지.”

“잘난 척하지 않는걸요?”

“속 좁은 인간이로군. 시스템의 권유를 말하는 거다.”

히든 기사를 영입하는 것은 분명 카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적룡이었다. 적룡의 힘을 얻는다는 건 천군만마 부럽지 않은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카델은 전혀 즐거운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거부하고 싶다는 듯 입술을 잘근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 투명한 반응에 쿤라는 시스템이 자신을 ‘히든 기사’로 분류했을 때보다도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지금 네 모습을 과거의 그놈들이 봤다면 배가 불러 터진 인간이라며 욕을 해 댔을 거다.”

“……언제까지 고려할 건데요? 전 하루빨리 이 산을 벗어나야 합니다. 데려와야 할 기사도 있고요. 생각해 보니 그 기사를 데려오면 당신이 들어올 자리는 없겠네요.”

“어느 모로 보나 내가 들어갈 자리를 빼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만. 뭐, 설령 그게 문제라도 상관은 없다. 다 생각이 있으니.”

쿤라는 어떻게든 거절하겠다는 의지가 도드라지는 카델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의 팔을 쥐어 바로 세웠다.

“네가 산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답을 주마.”

“……저희가 산에서 내려가는 동안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 주십쇼.”

“대체 이 몸을 무어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쿤라는 자신을 어딘가의 무뢰한 보듯 하는 카델의 불온한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만을 말해 준 유일한 존재임에도 말이다.

참으로 배은망덕한 인간이라 생각하며, 그는 카델을 동굴 바깥으로 잡아끌었다.

“네 동료가 정신 사납게 산을 헤집고 있어. 어서 돌아가 남의 집을 들쑤시는 예의 없는 행동을 멈추라고 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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