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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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외부 봉인 구역에 보내질 줄은 몰랐는데요. 너무 굴리는 거 아닌가요, 황제 놈?”

“야, 누가 들을까 겁난다.”

“그렇다고 황제 새끼라고 부를 순 없잖아요, 단장.”

“……차라리 그냥 황제라고 불러.”

임시로 머물게 된 여관에서 카델은 두 부하와 함께 쪽지의 내용에 대해 논하는 중이었다.

[인테 설원의 봉인을 점검하라.]

간단명료한 내용이었다. 반은 사람을 개처럼 굴리고 있다며 황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으나, 카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마 황제가 나름대로 배려해 준 것 같아.”

“예? 배려요?”

“봐 봐, 인테 설원은 이쪽에 있잖아.”

카델은 테이블에 펼친 지도의 한 점을 가리켰다. 봉인이 자리한 인테 설원은 대양 너머의 고산 지대에 있었다.

“원래라면 둥켈하이 왕국 측에서 직접 점검하게 됐을 거야. 이곳이 인테 설원과 가장 가까우니까. 물론 둥켈하이의 그림자 기사단은 아직 제국 내 봉인 구역에 있을 테니, 여유가 생긴 우리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테 설원을 짚고 있던 손끝이 대양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화이트 왕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길 가려면 필연적으로 화이트 왕국을 거쳐야 해.”

“……가르엘 경의 장례식에는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거군.”

“그럴 의도가 아니었대도 상관없어. 라이돈이 잘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됐으니까.”

뿐만 아니라 가르엘이 합류한 상태에서 다음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다음 퀘스트는 외부 봉인 구역에서 발생했지. 여기선 인테 설원부터 시작하는 모양이니, 제대로 대비해야겠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퀘스트 진행 구역을 직접 선택할 수 있었다. 총 세 구역 중 한 곳을 고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테 설원이었다. 결국엔 전부 돌게 되므로 우선순위를 정할 뿐이지만, 플레이어마다 각기 다른 선택지를 준다는 점이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었다.

‘남은 기사도 하루빨리 영입하고 싶은데.’

마계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온전한 기사단을 꾸리는 것. 그것이 카델의 목표였다.

‘……아무래도 그놈은 만나기 힘들겠지. 암살자를 어디서 무슨 수로 찾아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기사를 찾아보는 게 낫겠어.’

게임 속 카드 덱을 완벽히 구현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특별히 노리는 기사를 찾아내는 것도 어려웠고. 지금껏 좋은 기사들을 잘 만나 왔으니, 이번에도 운이 따라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카델이 반과 루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일단 화이트 왕국으로 이동하자. 최대한 빨리 가르엘 경과 라이돈을 합류시켜서, 인테 설원의 봉인까지 해치우자고.”

오스마 제국에서 화이트 왕국까지 정직하게 이동한다면 보름은 걸릴 것이다. 반면 황혼 기사단은 이동 마법으로 돌아갔으니, 가르엘의 장례식까지 남은 기간은 최소 이틀. 정직하게 이동해서는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이동 마법을 사용해야만 날짜를 맞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그들을 위한 마법사를 보내지 않았고, 현재 기사단 내의 마법사는 카델뿐이었다.

“단장,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꼭 장례식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대장. 괜히 해 본 적도 없는 이동 마법 사용하다가 이상한 곳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게 더 큰일이니까.”

“단장의 마법이 잘못될 리 없잖아. 단장을 너와 똑같은 수준으로 생각하지 마라.”

“어디 지옥에 떨어져도 똑같은 소리 할 수 있나 보자고.”

카델은 서로를 까 대기 바쁜 두 부하의 사이에서 차분히 숨을 골랐다. 마법진의 문양을 점검하는 눈빛이 제법 날카로웠다.

‘이론은 완벽해. 마법진도 깔끔하게 그려졌고.’

루멘의 말대로, 카델은 단 한 번도 이동 마법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이동 마법은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대량의 마력이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아주 많았다.

마밀처럼 숙련된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 여러 마법사가 모여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능하다면 카델도 부하들의 손을 빌리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부하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으니.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지 못한다면 가르엘의 장례는 고사하고 보름이 넘는 시간을 길바닥에 버려야 했다. 효율을 중시하는 카델에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허벅지 위로 식은땀 고인 손바닥을 문지르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화이트 왕국 내에 도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마력이 부족하면 근방에 떨어질 수도 있어.”

“이동 마법이 실패하면 각자 다른 곳에 도착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난 마물이 없는 쪽으로 떨어뜨려 주면 좋겠는데, 대장.”

카델이 눈을 홉뜨며 노려보아도 루멘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타당한 걱정이라는 태도에 불쑥 짜증이 치솟았으나, 그렇다고 당당히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었다.

“저 심신 미약한 귀족 도련님 말은 무시해요, 단장. 전 설사 지옥에 떨어진대도 전혀 상관없으니까요.”

“……둘 다 조용히 해.”

지금까지 해낸 마법이 몇 갠데 이동 마법 하나를 못 하겠는가. 슬슬 오기가 생겼다. 카델은 마법진 안으로 부하들을 불러모으며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한다.”

카델은 몸 안의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며 마밀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이동 마법? 마력만 거창하게 사용하지, 까 보면 별거 없다. 그냥 마법진 전체에 필요한 만큼의 마력을 한 번에 확 불어넣으면 돼.”

“그게 끝이에요? 뭔가 팁이라든지…….”

“넌 똥 싸는 데도 팁이 필요하더냐? 그냥 확 내보내. 그게 끝이다.”

그의 더럽기 짝이 없던 비유를 떠올리며, 카델은 체내의 마력을 마법진 위로 모조리, 한 번에, 확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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