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드립니다! 돌발 퀘스트 ‘뜻밖의 위기’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스토리의 흐름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명성이 3 증가하였습니다.]
‘이 난리를 피워 놓고 보상이 고작 명성 3? 지독하다, 지독해.’
카델은 쪼잔하기 그지없는 시스템에게 속으로나마 엿을 날리며 고개를 돌렸다.
반의 공격은 떨어진 아쉬브카의 팔에서 나온 흡혈충까지 모조리 섬멸했고, 마법사들은 놈이 약해진 틈을 타 단숨에 봉인을 마무리 지었다. 기습적이었던 마족의 등장을 깔끔하게 차단한 것이다.
맡은 봉인을 처리하였으니, 이제 남은 것은 수도 라니아로 복귀해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성으로 돌아가는 길. 카델은 짧게나마 루멘과의 재회를 즐겼다.
“여기까지 추적해 오느라 힘들진 않았어?”
“그다지. 갔을 때 없을까 봐 걱정은 했지.”
“그냥 성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면 금방 돌아갔을 텐데.”
“있어 봤자 불편한 관심만 받았을걸. 뭐,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람한테 돌아가는 게 더 급하기도 했고.”
루멘이 은근한 미소와 함께 카델을 내려보았다. 그의 장난기 담긴 눈빛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카델은 왠지 모르게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어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딱 필요할 때 등장했으니까. 괜찮은 선택이긴 했어.”
얼버무리듯 말하자 루멘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뒤편에서 반과 라이돈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음침한 녀석이라 일부러 위기를 기다렸다가 등장한 걸지도 몰라요, 단장. 속지 마세요.”
“맞아, 카델. 내가 말했잖아? 조금만 기다렸으면 내가 구해 줬을 거라니까? 남의 활약을 가로채다니. 얍삽해, 루멘.”
“못 본 사이에 둘 다 헛소리가 늘었군. 실력이나 늘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루멘의 빈정거림에 반과 라이돈이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농담인지 진심인지 모를 험악한 말들을 주고받기 바빴고, 카델은 사이에서 버티는 대신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빠져나오기를 택했다.
그들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부하였지만, 이럴 때면 같은 편이라는 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싸울 거라면 차라리 다른 기사단이 없는 곳에서 은밀하게 싸우길 바랐다.
‘그건 그렇고……. 왜 안 뜨지.’
카델은 슬쩍 눈을 굴려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는지를 점검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루멘이 돌아왔는데, 그가 입단했다는 시스템 창이 뜨지 않다니.
‘혹시 특별히 더 해야 할 일이라도 있는 거야?’
임명식이라면 황제에게 미리 언질을 두어 한꺼번에 해결 보았고, 루멘도 가문에서 돌아오는 날 적린 기사단의 일원이 되겠노라 말했으니. 원래라면 루멘이 합류한 그 시점에 바로 시스템 창이 떠올라야 옳았다.
‘오류라도 난 건 아니겠지.’
사실 굳이 시스템이 못 박지 않아도 루멘은 자신의 사람이었다. 그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황실로 복귀하고 다시 확인해 보자. 어쩌면 이번에도 황제에게 개인적인 허락을 받아야 한다든가, 그럴 수 있으니까.’
단원 영입은 카델의 개인적인 권한이었으나, 혹시 모를 일이었다. 뭐든 꼼꼼해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
카델은 시끌벅적한 부하들과 조금 더 멀리 떨어지며 어서 그들의 다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이동 마법은 대량의 마력이 소비될뿐더러 3대대나 되는 기사를 한꺼번에 이동시킬 만한 범위도 못 됐다. 때문에 그들은 총 3개의 도시를 거쳐 약 10일간의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원래라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첫 번째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황제의 전언이 닿았다.
[각 대대장과 적린 기사단은 준비된 이동 마법을 통해 속히 복귀하라.]
미리 도시를 찾아와 대기하고 있던 열 명의 마법사는 오로지 그들의 이동 마법을 위한 인원이었다. 보통 때였다면 황제의 배려에 기뻐했겠으나, 시기가 시기인지라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성에 도착한 직후.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가르엘 경이 실종됐다고요……?”
카델이 믿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으나, 근위대장 인셀은 무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너진 봉인에서 고위 마족이 출현했다고 한다. 다행히 마족 토벌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실종되었다는 정보다.”
황혼 기사단이 맡은 봉인은 제4구역의 산간 지대에 있었다. 알리티스처럼 비교적 탁 트인 지형이라면 몰라도, 산속이라면 실종의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카델은 가르엘의 신변이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어려운 인간이 아니던가. 그보다는.
‘혹시 신분을 정리하고 온다는 소리가…….’
확신에 찬 단언의 결과가 이것일까 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아, 아니겠지. 평범하게 모들렌 경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작위도 어떻게든 정리하고, 그런… 그런 깨끗한 상태로 입단하겠다는 소리잖아?’
설마 본인을 실종 상태로 꾸며 내 어영부영 황혼 기사단에서 벗어날 생각이겠는가.
카델은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뺨을 쓸었다. 그 옆의 소린은 진중한 낯으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인셀에게 물었다.
“지원이 필요하겠군요. 4구역은 마물이 없더라도 위험한 짐승이 자주 출몰하는 곳 아닙니까.”
“그래. 전투에 지친 몸으로 수색과 복귀를 함께 처리하긴 힘들 거다. 일단 키바 고원에 머무르며 가르엘 몬자시 경을 수색한다고 했으니, 지원군을 보내야겠지.”
“저희 대대가 가겠습니다.”
“아니. 적린 기사단을 보내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이다.”
난데없는 호명에 카델이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인셀은 아무런 사적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시선으로 카델을 응시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직접 지명하셨다고요.”
“소수 정예이니 이동 마법을 사용하기에 용이할 거다. 시간이 없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곧장 이동하도록. 황혼 기사단의 수색과 하산을 도와라.”
소도 이렇게까지 쉼 없이 일을 하진 않을 거다. 하루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지원을 나서라니. 이쪽도 고위 마족을 상대한 탓에 피로가 잔뜩 쌓여 있는데 말이다.
카델은 절로 불퉁해지려는 표정을 숨기려 애썼다.
‘황제가 개처럼 굴릴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시작부터 단물을 빨아 댈 줄이야.’
그렇다고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충성을 증명하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약속이었으니까.
‘뭐, 됐어. 가르엘의 일이니 내가 직접 나서는 편이 낫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가르엘이 진짜 실종된 것이라면 피곤해 죽더라도 찾아야 했고, 터무니없는 자작극이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적린 기사단에게 내려진 형벌 같은 두 번째 임무를 받아들이려는 카델의 뒤에서, 내내 얌전하던 드레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희 쪽도 고위 마족을 상대하느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닌데요. 연달아 임무를 나간다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드레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카델을 훑어 내렸다.
“적린 기사단장은 이번 임무에서 대량의 마력을 운용했고,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집니다. 고작 하룻밤 쉬어서는 컨디션 난조로 되레 이쪽이 트러블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걱정하는 건지 그저 못 미더운 건지. 애매하기만 한 드레프의 주장에도 인셀은 단호했다.
“폐하의 명령이시다. 철회는 없어. 카델. 자네도 이 결정에 불만이 있는가?”
“……없습니다.”
“출정 전에 치유사를 보내 둘 테니 상처가 있다면 치료해라.”
드레프는 순순하게 구는 카델이 답답한 듯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상당히 불만스럽다는 태도였으나, 소린이 자연스럽게 인셀의 주의를 끌었다.
“다른 곳이라도 지원이 필요하다면 저희가 움직이겠습니다. 대원들이 복귀하려면 10일 정도 소요될 테니, 개인으로라도 지원하죠.”
“일단은 대기해라. 곧 호계 기사단장이 돌아올 테니, 너희는 그와 함께 행동하게 될 거다. 그리고 마틴. 자네는 마탑으로 이동하도록. 마법진 분석의 경과를 지켜봐라.”
각자에게 임무를 하달한 인셀은 볼일이 끝나자마자 칼같이 방을 빠져나갔다. 마틴도 곧장 마탑으로 이동했고, 소린도 대원들에게 전할 편지를 작성하겠다며 떠났다. 남은 것은 심통 맞은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선 드레프와 카델뿐이었다.
모두를 따라 방을 나서려던 카델은 결국 드레프의 사춘기 조카 같은 표정을 무시하지 못했다.
“왜 또 그럽니까? 제가 낡고 지친 몸으로 남의 기사단 호위나 해 주러 떠나는 이 상황이 그렇게 마음이 안 들어요? 걱정되나 봅니다?”
“무, 무슨 헛소리야, 갑자기!”
“걱정 마시죠. 힘들기야 하겠지만, 제 부하들이나 저나 어디 가서 쓰러지진 않을 겁니다.”
자신의 속내를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어조에 드레프는 왁왁거리며 시끄럽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카델에겐 일말의 타격도 없었다.
“용병 출신이라고 말 잘 듣는 개처럼 배 뒤집어 깔 필요 없어. 부당하고 불편한 일이라 생각되면 그렇다고 말을 하라고.”
“제가 그런 거 말 못 하고 살 성격 같아요?”
“그건 아니지만…….”
“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그럼 전 내일을 위해 쉬러 갈 테니, 경도 푹 쉬어 둬요.”
카델은 그대로 드레프를 지나쳐 방을 빠져나가려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계속 그렇게 말 놓으면 나도 그냥 편하게 한다.”
“뭣……!”
“불만이면 먼저 격식 차리든지.”
카델이 설렁설렁 손을 흔들며 문밖을 나서자, 뒤에서부터 기가 찬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여튼. 애는 애라니까.’
처음에는 짜증만 나는 건방진 녀석이었는데. 자주 보니 정이라도 든 건지, 역시 동생들에게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 같았다.
“자, 그럼 어디 이 비극적인 정보를 전달하러 가 볼까.”
아무것도 모르고 쉬고 있을 가련한 부하들에게 이어질 노동을 예고해 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