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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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과 라이돈이 사흘간의 괴로운 도주 생활을 보내고 있을 무렵.

카델 역시 기나긴 고난의 시간을 감내하고 있었다.

사방이 틀어막힌 지하 감옥. 창 하나 나지 않은 갑갑한 공간은 춥고, 어둡고, 외롭고, 갑갑했으며, 없던 정신병도 찾아올 만큼 우중충했다.

말 걸어 주는 이가 없음은 물론, 식사는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정체불명의 빵 한 덩이와 미지근한 야채수프 한 그릇이 전부였다.

소린이 건넨 약을 마시고 의식을 잃은 뒤, 눈을 뜨자마자 이곳이었다. 적어도 황제와 대화할 기회 정돈 주어질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 그저 넋을 놓고 있었다.

‘이 이상한 팔찌 때문에 마력도 못 쓰고. 사람을 가둬 놨으면 왜 가뒀는지, 뭘 하면 풀어 주는지, 기다리면 누가 오는지 정도는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쇠고랑처럼 양팔에 달린 은색의 팔찌가 마력의 분출을 방해하는 탓에 마법을 통한 탈옥이 불가능했다. 감옥의 유일한 출구인 철문에는 상단에 한 뼘만 한 구멍이 있었으나, 그나마도 쇠창살이 달려 있었고, 문에 닿기만 해도 전류가 흘러 접근조차 불가했다.

이 완벽한 고립 상태가 사흘이나 지속되었으니. 카델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성공 확률이 87%라는 건 실패 확률이 13%라는 거잖아. 내가 지금 그 13%의 확률을 뚫고 실패라도 했다는 거야?”

87을 이기는 13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이래서 확률이 싫다. 모든 게임에서 ‘확률’이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했다.

‘설마 이대로 감옥에 처넣고 말려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스토리 진행 불가라는 페널티가 사실은 감금을 의미한다든지…….’

아직 퀘스트의 성패는 알 수 없었으나, 이런 흐름이라면 수월하게 ‘실패’로 나아갈 것 같았다. 골이 아파지는 듯해 카델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압박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든. 이대로 얌전히 감옥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애초에 황제에게 대화의 의지가 있었다면 사람을 보내거나 직접 찾아왔겠지. 이렇게 방치하진 않았을 거야.’

만약 자신의 처우를 고민하는 중이라 해도, 이런 방치가 긍정적인 의미일 리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다.

“여길 나가야 해.”

하지만 어떻게?

챙겨온 짐도 없고, 쓸 만한 물건도 없고, 마력도 막혔다. 하나뿐인 문은 건들기만 해도 온몸에 전기가 흘러 통구이가 될 텐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그럴싸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카델이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때.

저벅. 저벅.

고요한 지하 감옥을 가로지르며,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 카델이 그 소리에 집중했다.

‘누구지……? 오늘 식사는 이미 끝났는데.’

정직하게 다가온 발소리는 카델이 갇힌 감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틈 아래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카델은 게슴츠레 눈을 뜨며 문 구멍 너머로 비친 인물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잠시 뒤. 너머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낸 카델이 놀란 목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드레프 경……?”

손님의 정체는 다름 아닌 드레프였다.

문 앞에 선 그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더니, 한참 뒤에야 들고 있던 등불을 철문의 구멍 앞으로 끌어왔다. 노르스름한 불빛이 드레프와 카델의 얼굴을 환하게 비쳤다.

“드레프 경이 여긴 왜…….”

“이유는 묻지 말고. ……당신 진짜 라이토스야? 카를로 라이토스의 서자, 카델 라이토스?”

카델 아버지의 이름이 카를로였던가. 자신의 이름은 카델이니 그게 맞겠지.

잠시 고민하던 카델이 고개를 끄덕이자, 드레프가 짜증스레 뒷머리를 헝클였다. 굳은 얼굴 위로는 초조함과 망설임이 엉망으로 뒤섞여 있었다.

“어쩌자고 라이토스가 제국에 돌아와서는.”

“저기, 드레프 경. 더 질문할 게 없으면 바깥 상황부터 알려 주시죠. 기껏 관문 지켜 놨더니 사흘이나 지하 감옥에서 방치당하고, 슬슬 속상해지려고 하거든요.”

“……안됐지만 그쪽은 뒤로 밀려났어. 우선순위가 아니거든.”

“예……?”

돌아온 라이토스의 핏줄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당황하며 드레프에게 다가가려던 카델은, 문 앞에 닿기 직전에야 전류의 존재를 깨닫고서 가까스로 멈춰 섰다.

“세계 곳곳에서 마족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소환 마법진이 등장한 건 제국이 유일한데도, 여기저기서 마족이 튀어나오는 모양이야.”

“혹시 마계 봉인에 이상이 생긴 건가요?”

“아직 몰라. 하지만 그 일 때문에 황제 폐하께서 6대국에 파견을 요청하셨지. 각국의 대사가 하나둘씩 도착하고 있으니, 곧 마계 봉인 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거야. 그래서 그쪽이 아직도 아무런 조치 없이 여기 갇혀 있는 거고.”

드레프의 설명을 듣는 카델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런 전개가 스토리에 포함되었냐 묻는다면, 답은 ‘모른다’였다. 봉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이 힘을 합친다는 것까지는 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카델 라이토스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느냐?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정말 13%의 확률이 승기를 거두기라도 한 것일까. 급격히 차오르는 불안감에 카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쇠창살 앞으로 한계까지 고개를 빼낸 그가 드레프를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듣자 하니 한창 바쁠 때 같은데. 드레프 경은 왜 절 보러 오신 겁니까?”

“…….”

“도와주시려는 거죠?”

첫 만남부터 까칠하고 건방진 녀석이었으나, 근본이 글러 먹은 인간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 지하 감옥에 굳이 기어들어 와 남의 처지를 비웃을 만큼 되바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카델은 믿고 싶었다.

드레프는 그런 카델을 가만히 응시하다,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비틀린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삐져나왔다.

“설마 황제 폐하의 암살을 꿈꾼다든지, 가문의 복수를 위해 돌아온 거라든지, 하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여기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일 만큼 세상 물정 모르진 않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만약 그런 포부를 안고 찾아온 거라면, 누구보다 먼저 내 손에 죽을 테니까.”

무언가를 계속 구시렁대던 드레프가 열쇠를 꺼내 들었다. 열쇠 구멍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던 그는, 마치 선언이라도 하듯 카델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걸로 빚진 건 없는 거다.”

전장에서 몇 번이고 카델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는 생명의 은인이 말라 죽는 것을 손 놓고 지켜볼 성미는 못 됐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발각된다면 기사단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공모자의 죄까지 뒤집어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카델은 그런 드레프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 내며 답했다.

“자고로 빚이란 건 이자가 붙기 마련입니다, 드레프 경. 이왕이면 안전하게 성 바깥까지 데려다 주시죠.”

“뭐……? 같이 죽자는 거냐? 도망은 혼자 가!”

“사방이 적일 텐데 어떻게 혼자 도망을 갑니까? 빚을 너무 쉽게 청산하는 거 아니에요?”

그 뻔뻔스러운 태도에 헛웃음을 뱉은 드레프가 신경질적으로 열쇠를 구멍에 쑤셔 넣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리고. 철문을 확 열어젖힌 그가 우두커니 선 카델을 향해 턱짓했다.

“지름길을 알려줄 테니까 거기로 가. 어떻게 최대한…… 시선은 끌어 주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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