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521)

관문 방어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용병단이니, 황제 폐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일단 함께 성으로 이동하며 셀레브와 마법진에 대해 논의하자, 는 것이 소린의 입장이었다.

그는 용병단 전원을 데려가고 싶어 했으나, 카델은 부하들의 상태가 좋지 못하니 치료를 받은 뒤 따로 이동하는 것을 권했고, 소린은 수긍했다. 먼저 이동하는 것은 카델뿐이었다.

그렇게 현재, 두 남자는 마차 안에 마주 앉아 성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걸 마시게. 원기를 회복해 주는 물약이니 기운이 날 거야.”

물약을 받아 든 카델이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차에 올라타기 전에 간단한 치유술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론 턱도 없이 부족했다. 그의 몸은 당장이라도 누울 곳을 찾고 싶다는 듯 흐물거리기만 했다.

“……고맙습니다.”

카델은 병의 뚜껑을 열고, 매끈한 입구 위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 일련의 과정을 소린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어질 상황을 기다리는 것처럼 집요하기까지 한 시선이었다.

그렇게 기울어진 물약이 입 안으로 흘러들기 직전. 카델은 가벼운 어투로 물었다.

“황족 암살 시도라는 건, 말 그대로 암살이 시도에 그쳤다는 뜻이겠죠?”

“……이상한 걸 묻는군.”

“아직 살아 있습니까?”

닿아 오는 빤한 눈길에 소린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느리고도 정직한 반응에 카델은 작게 웃으며 약병의 입구를 문질렀다.

“암살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한 가문의 일원을 모조리 죽이려 드는 건 조금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쁜 마음으로 사람을 해치려던 인간은 마땅한 죗값을 치러야겠지만요. 일가족이 전부 동참한 것도 아니잖아요? 가족이래도 타인은 타인이니까.”

“고작 목숨 하나로는 그 죗값을 치를 수 없었다. 암살을 시도한 대상이 이 땅의 군주이신 황제 폐하의 아버지, 선황 폐하의 친동생이셨으니.”

그렇다면 황제의 숙부라는 말이려나. 카델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난 뭐, 신이라도 죽이려 들었나 했는데.”

“…….”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린과 눈을 맞춘 카델이 주저 없이 물약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말끔히 빈 병을 소린의 앞으로 던졌다. 반사적으로 병을 낚아챈 그가 작게 미간을 구기고. 카델은 싱긋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굳이 이런 거 안 주셔도 얌전히 갔을 텐데요.”

팔짱을 낀 채 마차 내벽에 머리를 기대자, 서서히 현기증이 몰려왔다. 카델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어서 약효가 돌기를 기다렸다.

수면제인지 뭔지. 이동하는 내내 이 갑갑한 남자와 대면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정신을 잃는 편이 나았다.

*

“오늘은 참으로 특별한 날이군.”

커다란 창 앞에 뒷짐을 지고 선 남자가 바깥으로 두었던 시선을 돌렸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회백색의 머리칼과 짙은 눈썹, 우뚝 선 콧날과 단정한 느낌을 주는 얇은 입술.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난 주름은 옅은 웃음기를 따라 피부에 그림자를 새겼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중후한 매력이 도드라졌다.

젊을 적의 수려했을 외모가 그려지는 중년의 미남자. 오스마 제국의 황제, 데릭 오스마.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뒤편에 선 근위 대장을 향하고 있었다.

“호계 기사단이 고위 마족 셀레브를 추적 중이라고 합니다. 만약 놓친다 해도 마족이 소환되었다는 마법진은 남아 있으니,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짐의 기사들이니 빈손으로 돌아오진 않겠지.”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자, 안에서 구겨진 종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릭은 그 작은 종이를 엄지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벌써 흥미로운 소식을 들고 온 기사도 있으니.”

“흥미로운 소식이라면……?”

“이번 전투에 외부의 용병단이 참전했다지?”

“예. 적린 용병단이라고 합니다. 화이트 왕국에 출몰한 마족을 토벌한 집단으로, 비공식적으론 마이뉴 왕국의 신전에서 마녀를 해치웠다는 정보도 입수되었습니다.”

“그래, 그래.”

근위 대장은 무언가를 숙고하듯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데릭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직 자세한 정보가 전달되진 않았으나, 이번 전투에 적린 용병단의 단장이 크게 공헌했다고 합니다. 마법사인 데다, 최소 6성 이상의 실력을 보유했으리라 예상된다더군요.”

뿐만 아니라 용병단에 요정이 소속되었다는 정보도 있었으나, 워낙 믿기 힘든 이야기인지라 정확한 확인이 필요했다. 그전에는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좋으리라. 그리 판단한 근위 대장의 앞으로, 덤덤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라이토스의 핏줄이라더군.”

“……예?”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낸 근위 대장이 뒤늦게 당혹감을 감추려 했지만, 데릭은 틈을 주지 않았다.

“소린 살라모가 사람을 잘 못 볼 확률과 그 불확실한 정보를 황제인 내게 거름망 없이 전달할 확률이 얼마나 높다고 보는가?”

“그건…….”

없다. 잘 못 봤을 확률은 있을지라도, 소린 살라모는 확증도 없이 그런 예민한 정보를 전달할 인물이 아니었다.

근위 대장이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자 데릭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검은 눈동자가 반질거렸다.

“쓰인 내용으로 짐작건대, 카를로 라이토스의 서자인 듯하더군. 그 녀석이라면 짐도 기억하지. 젠가가 천재 중의 천재라며 질리도록 자랑을 해 댔었거든.”

“……폐하.”

“그 소리가 영 허풍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기분 좋은 과거를 회상하듯, 장난스럽게 눈가를 접은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도착하는 대로 지하 감옥에 수감하도록 해. 나머지 용병 무리도 마찬가지다.”

그의 말투에 날이 서 있지는 않았으나, 근위 대장은 왜인지 서늘해진 등골을 느끼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

도주 사흘째.

반은 뻑뻑한 눈꺼풀을 문지르며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앞으로 4일인가.”

카델의 부탁대로 충분한 치료를 받은 뒤 여관을 찾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상처를 회복해 보기도 전, 기사단의 움직임이 묘해졌다.

반은 용병단의 누구보다도 적의와 긴장감에 예민했고, 그랬기에 곧바로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은 멀리서부터 자신과 라이돈을 포위하고 있었다. 치료에 전념하던 치유사들 역시 조금씩 치유술의 강도를 낮추며 마력을 회수했다.

도주를 결정하는 데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라이돈의 의식이 어렴풋이 돌아왔었다는 것. 반은 카델의 이름을 팔아 라이돈을 작은 요정의 모습으로 변신시킨 뒤, 그대로 기사들의 포위망을 뚫었다.

도중에 작은 싸움이 있기는 했으나, 큰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제국 내부로 진입한 반은 하루에만 3번씩 여관을 바꿔 가며 도망자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실은 그대로군.”

처음 착용했을 때부터 가파른 곡선을 그리던 붉은 실은 조금씩 안정되는가 싶더니, 이틀째 변화가 없었다. 잔잔한 떨림만 계속될 뿐이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인지 그저 피로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게다가 라이돈 역시 첫날을 제외하고는 내내 눈을 뜨지 않았다. 결국 죽은 건가 싶어 몇 차례 확인해 보았으나 다행히 숨은 제대로 붙어 있었다.

“약을 그렇게 먹였는데도 눈뜰 기미가 안 보인다니. 네놈이 정신을 차려야 몰래 정찰이라도 보낼 거 아니야.”

보이는 회복 약이란 약은 모조리 쓸어 담아 라이돈의 입 안에 퍼부었으나,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수도 없이 사라지기를 바랐던 요정이었건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간절히 라이돈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싸구려 침대 한구석을 차지한 라이돈은 정말이지 인형처럼 미동도 없었다. 그 얌전한 모습을 지켜보던 반이 짧게 혀를 차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작은 정사각형의 창문 너머로 바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쳤다. 반은 그중 자신들을 쫓는 병사가 없는지 유심히 살폈다.

“……2시간 정도는 눈 좀 붙일 수 있겠군.”

고된 전투의 피로를 풀 틈도 없어, 며칠째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현재 그의 컨디션은 최악 중의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평은 없었다. 이 불편함을 버텨야지만 카델을 만나러 갈 수 있다. 만약 그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디 있든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했으니. 여유로운 휴식 따윈 희망도 하지 않았다.

“단장은…….”

어디에서 뭘 하는 걸까.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만이 반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들끓는 한숨을 집어삼킨 그가 힘없이 침대를 향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다른 여관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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