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9화 (15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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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브는 구속되었으나, 그럼에도 그녀를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방에 퍼진 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기는 끈질기게 방어막의 역할을 수행했고, 카델이라고 마기의 움직임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셀레브 토벌은 기대보다 더디게 흘러가며 시간 싸움으로 이어지는 듯했으나.

반이 투입되며, 그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광전사인가? 대체 어떻게 저런 오라를…….”

“지금이 감탄하고 있을 때는 아닐 텐데? 뒤처지지 않게 기사단의 저력을 보이자고!”

그는 셀레브를 감싼 사슬을 받침대 삼아 뛰어오르며 그녀의 육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화련]의 사슬은 전부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큰 상관은 없었다. 카델이 반의 움직임에 맞춰 부분적으로 화력을 줄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기를 머금은 오라는 탐욕스럽게 성장하며 범위를 넓혀 갔다. 폭주의 위험이 있을 만큼 방대한 양이었으나, 반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라는 마기에 쉽게 영향을 받는 기운이나, 마기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때문에 두 가지 기운은 결코 융합될 수 없었고, 필연적으로 강한 기운이 약한 기운을 밀어내게 돼 있었다.

그리고 현재. 더욱 강한 기운은 반의 오라였다. 셀레브를 방어해 주어야 할 마기는 그렇게 반의 오라에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퀘스트 성공 확률 : 80%」

난무하는 검기와 범람하는 오라, 형형히 빛나는 대검의 날, 사슬 사이의 틈을 헤집는 명확한 일격. 그 모든 것을 집요하게 담아내며, 카델은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훔쳤다.

‘남은 건 20%. 고작 20%다. 버텨야 해.’

그렇게나 필사적으로 버텨 왔으나 결국 마력 고갈 상태에 진입했다. 이미 한 번 마력을 잃었다가 간신히 회복한 상태인 만큼, 이번 타격이 육체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반은 끔찍한 상처를 달고도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었고, 라이돈은 자신을 지키려다 의식을 잃었다. 그가 부하들의 희생에 보답할 방법은 단 한 가지.

승리를 안겨 주는 것.

퀘스트를 성공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도, 이 모든 것이 기사단 승격을 위한 과정이라는 인지도. 전부 흐릿해졌다. 이제 카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단장의 의무를,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겠다는 집념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카델의 의지는, 셀레브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캬아악! 이 빌어먹을, 빌어먹을……!”

마기로 몸을 보호한 채 사슬을 끊어 내겠다는 계획은 오라 사용자의 등장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마기를 밀어낼 정도의 오라라니. 보통 인간이라면 진즉에 오라에 잠식되어 미쳐 버렸을 텐데도,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르는 검사에게서는 약간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 방 한 방이 징그러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치명상이었으며, 기사들의 공격 또한 옅어진 마기를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단시간에 마력의 수준을 끌어올렸냔 말이다, 마법사 놈.’

성가시고 불쾌하나 자신을 넘어설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신을 묶어 둘 수 있다면, 기껏해야 10초 남짓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고 없이 그녀의 몸을 휘감은 사슬에서는, 예상을 몇 배는 웃도는 응축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자그마한 인간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같잖은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발길질 한 방이면 모조리 쓸려 나갈 열등한 족속임에도, 온몸이 결박된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이곳에 소환되고 처음으로, 셀레브는 조급함을 느꼈다. 그녀는 이곳에서 죽을 수 없었다. ‘시작’을 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벗어나야 해. 하지만 그 전에…….’

셀레브의 표독스러운 시선이 카델을 향했다. 죽여 두어야 했다. 살려 두었다간 훗날 실행될 계획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건방진 놈들!”

그녀는 주변에 퍼진 마기의 위로 최대한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오라에 밀려났던 마기가 다시금 몰려들며 주변을 어둡게 물들였다.

빠르게 차단된 시야에 여기저기서 당황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소린의 지휘에 금세 진정이 되기는 했으나, 더 이상 섣부른 공격은 날아들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은 셀레브의 몸을 타고 오르는 반과 사슬의 불꽃뿐. 셀레브는 자신을 위협하는 오라와 마력을 느끼며 안광을 번뜩였다.

거인화 해제.

낌새를 느낀 반은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착지했고, [화련]은 빠르게 줄어드는 육체를 조이기 위해 면적을 좁혀 갔다.

셀레브는 자신의 꽁무니를 쫓는 [화련]을 피해 높이 날아올랐다. 지면은 온통 어두운 마기에 덮여 있었으나, 그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비쳤다.

몰아치는 화염 사슬과 그 시작점에 자리한 카델.

“마계를 위해 죽어 줘야겠어.”

단번에 죽여야 했다. 필요한 것은 빠르고 정확한 한 방. 목표를 포착한 셀레브의 주먹으로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마기의 정수가 고였다.

‘내 기척을 눈치채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실패는 없어. 저 마법사를 죽이고, 일단은 후퇴를…….’

그러나 셀레브가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 지면의 형태가 기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마구잡이로 뒤틀리고, 일그러지고, 휘몰아쳤다. 지면이 마치 물에 퍼진 물감처럼 변칙적인 곡선을 그리며 응어리지고 있었다.

명확하게 포착했던 카델의 모습은 물론, 다른 기사들의 모습까지 전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졌다.

갑자기 왜, 라는 의문은 필요가 없었다.

“그 요정놈이…….”

환혹술. 의심할 거리도 없는 환혹술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단 말인가. 다 죽여 놓은 놈이었다. 다 죽은 자식이었단 말이다!

챠르르르릉!

기어코 그녀의 기척을 감지한 [화련]이 오른 발목을 휘감았다. 느껴지는 지독한 열기와 감당 못 할 인력에, 셀레브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질렀다.

“어째서! 어째서! 아아아악!”

그리고 그것이, 카델이 들을 수 있는 셀레브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퀘스트 성공 확률 : 87%」

「메인 퀘스트 ‘시작되는 침공’이 일시 중지됩니다.」

「기록된 성과를 분석 중입니다. 퀘스트 결과가 나올 때까지 ??? 시간이 소요됩니다.」

아슬아슬했던 메인 퀘스트는 일단락되었고, 카델에게 남은 것은.

“발목을 자르고 도망갈 줄이야…….”

[화련]이 붙잡았던 셀레브의 발목이었다. 카델은 제 손안에 들린 차가운 살갗의 감촉에 인상을 찌푸렸다.

게임에서도 퀘스트 종료 시점에 셀레브가 살아 있었던가? 혹시 기여도를 백 퍼센트 충족시키지 못해 살아남은 것은 아닐까?

‘……아니. 이후에도 셀레브를 상대했던 기억은 있어. 원래 퀘스트에서는 아마 마법진을 통해 도망갔던 것 같은데……. 내가 그걸 부숴 버렸으니 아예 다른 경로로 떠난 건가.’

뭐가 됐든 셀레브의 생존은 예정된 것이었다. 아쉬움을 삼킨 채 ‘성공 확률 87%’라는 애매한 숫자에 대해 고민하려던 때, 떨어져 있던 반이 달려왔다.

“단장! 얼굴에 피가…….”

우려 섞인 시선에 카델이 멋쩍게 웃으며 코피를 훔쳤다. 기어코 마력 고갈 현상이 나타난 탓에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폭혼]을 사용했을 때보단 나았기에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런 카델의 미련함을 알고 있다는 듯, 반은 작게 미간을 좁혔다. 카델의 몸을 쉬이 건드리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던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치유사한테 가보죠. 전부 관문 너머에 모여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찾아가면 될 거예요.”

“라이돈도 거기 있어?”

“제가 깨어났을 땐 근처에 있었어요. 아마 계속 치유술을…….”

스치듯 보았음에도 살벌한 꼴이었다. 자신을 돌보던 치유사의 두 배는 됨직한 인원수가 라이돈을 둘러싸고 있었으니. 적어도 며칠은 깨어나지 못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라이돈은 깨어 있었고, 심지어 전투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은 전장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따라 축 늘어진 날개가 흔들렸다. 자꾸만 기울어지는 몸에는 전혀 힘이 없었고, 안색 역시 창백했다. 뒤늦게 라이돈을 발견한 카델이 서둘러 달려 나가 그를 부축했다.

“라이돈! 왜 여기 있는 거야? 괜찮아? 설마 지금도 기절한 상태인 건…….”

“……카델.”

라이돈은 힘 빠진 손으로 카델의 뺨을 덥석 움켜쥐고는, 그의 고개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얼굴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다. 반쯤 풀린 몽롱한 시선에는 집착과 비슷한 집요함이 어려 있었다. 그렇게 한참 카델의 상태를 점검하던 라이돈이 대뜸 말했다.

“괜찮아……?”

거의 잠꼬대에 가까운 웅얼거림이었다. 제정신인 게 맞긴 한 건지. 도통 가늠이 안 되는 그의 상태에 카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 퍽 걱정스럽기도 했다.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독이듯 말하자 라이돈의 눈매가 설핏 휘어졌다. 옅은 미소와 함께 카델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떨어지고, 몸이 기울었다. 카델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무게감에 놀라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라, 라이돈……? 라이돈!”

“기절했어요. 그러게 왜 여기까지 나와서는.”

반은 카델의 위로 무너지는 라이돈의 팔을 낚아채 제 어깨에 둘렀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몸뚱이를 성의 없이 부축한 그가 사색이 된 카델을 향해 말했다.

“안 죽었으니 걱정 마요, 단장. 관문으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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