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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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련(火鍊)]

사슬의 형태를 한 불꽃은 효과적으로 셀레브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전신을 포박한 사슬에 셀레브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고, 그녀의 몸부림 또한 무용했다.

악에 받친 고함이 시끄럽게 머리를 울리자 카델은 벌겋게 충혈된 눈에 힘을 주었다.

‘화력은 밀리지 않아. 이제 필요한 건 내가 셀레브를 붙들어 둘 동안, 놈을 해치울 전력이다.’

총 60의 속성 포인트를 전부 ‘불’에 쏟아부었다. 그것으로 셀레브를 잡아 두는 데 성공했으나, 문제는 모든 마력을 사용해야 간신히 포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화련]을 유지하며 다른 공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마력이 바닥나기 전에 누군가 셀레브를 처리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셀레브를 견제하던 호계 기사단이 관문을 넘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드레프의 명령 덕이었다.

“이 틈에 마족의 숨통을 끊어라!”

“우오오오!”

돌격한 기사들의 공격이 쇄도하며 전장의 마기가 빠르게 걷혀 갔다. 사슬에 묶인 셀레브는 모든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 내며 괴성을 질러 댔다.

“전부 꺼져! 감히 날파리들이 이 몸에게……!”

그녀는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임에도 마기를 둘러 피해를 줄이고 있었다. 카델은 그런 셀레브를 묶어 두기 위해 끊임없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아군이 합류한 상황임에도 카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퀘스트 성공 확률 : 67%」

기여도 때문이었다.

‘관문 수호가 최우선이니 이 방법을 택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기여도를 올릴 수 없어.’

부하들이 빈사 상태인 현재, 기여도를 올릴 수 있는 인물은 카델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맡은 역할이 셀레브의 구속이었으니. 기여도를 올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기사단의 토벌을 방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기사단이 셀레브를 죽여도, 죽이지 못해도 문제군.’

죽인다면 저조한 기여도로 퀘스트를 마무리 짓게 될 것이고, 죽이지 못한다면 셀레브는 관문을 부술 것이다.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마력 고갈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아슬아슬했다. 어느 것을 우선으로 쳐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떠밀리듯 일을 추진할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는 영원히 얻지 못하리라.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저건…….”

무리 지은 호계 기사단의 공격 속에서, 익숙한 검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짙게 깔린 마기를 집어삼키듯 탐욕스레 날아드는, 붉은색의 오라.

그 익숙한 힘의 주인을 찾아낸 카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분명 반이었다. 이 전장에서 저토록 선명한 오라를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은, 반 헤르도스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심각한 치명상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회복되었을 리가 없는데.

불안한 의문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잔뜩 몸집을 불린 검기가 셀레브를 난도질했다.

「퀘스트 성공 확률 : 69%」

순식간에 2%가 상승한 기여도를 따라 셀레브의 몸부림이 격해졌다. 카델은 잠시 느슨해졌던 긴장을 바싹 조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단장!”

호계 기사단의 도열을 뚫고, 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핏물에 엉긴 은색의 머리칼이 엉망으로 흩날리며, 붉게 물든 눈동자는 카델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회복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였다. 그의 복부를 덮고 있던 마기는 걷혔으나, 그 위에 감긴 붕대는 봉합되지 못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흥건했다. 오라 또한 많은 양의 마기와 감화되어 불안정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카델은 그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을 타박할 새도 없이, 카델을 발견한 반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점차 좁혀지는 거리에 카델은 자신을 감싼 사슬을 흩뜨렸다. 반은 그대로 사슬의 틈을 파고들어, 카델을 꽉 끌어안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카델은 말을 꺼내는 대신 그의 허리에 팔을 감고, 단단히 마주 안았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끓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죄송하다니. 그는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몇 번이고 감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었다. 적어도 카델에게는 그랬다. 그런데도 반은 죄인처럼 연신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고, 그러면서도 카델을 놓아 주지 않았다.

맞닿은 배에서부터 축축하고 뜨거운 감촉이 번져 갔다. 피였다. 벌어진 상처가 짓눌려 고통스러울 텐데도 반은 필사적으로 카델을 끌어안았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카델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어 반의 푹 숙인 고개를 쓰다듬을 뿐.

“혼자 둬서 죄송해요. 혼자 싸우게 해서 죄송해요. 혼자 버티게 해서-”

“사과하지 않아도 돼.”

“……죄송해요.”

“너 은근히 고집 있는 거 알지.”

작게 웃은 카델이 조심스레 반을 떼어 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카델은 그의 뺨을 반죽처럼 멋대로 문지르다, 훅 끌어당겼다.

불시에 가까워진 거리에 반의 눈이 벌어졌다. 카델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반과 이마를 맞댔다. 코끝으로 닿아 오는 단단한 콧대의 감촉을 느끼며, 놀란 듯 떨리는 숨소리에 집중했다.

“넌 내가 지금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를 거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시야 가득 반의 눈동자가 들어찼다. 붉은 물결 너머로 어렴풋이 비치는 황금색 눈동자가, 옅은 떨림을 품은 채 카델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델은 그 안에서 혼란과 기쁨, 불안과 설렘 따위의 상반된 감정들을 읽었다. 자신의 것과 꼭 닮은 감정이었다.

“사과는 내가 해야 해, 반. 널 다치게 만든 것도, 다친 네가 다시 싸우는 걸 말리지 않으리란 것도. 전부 사과할게.”

“……말했잖아요, 단장.”

반은 자신의 얼굴을 감싼 카델의 손을 무엇보다 소중히 움켜쥐고서 천천히 끌어 내렸다. 그리고 조금 거리를 벌려, 보다 또렷하게 카델을 마주했다.

“제 모든 건 단장을 위한 거니, 마음대로 써 달라고. 엉망으로 망가지더라도…… 전 기쁠 거예요.”

반의 눈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오로지 카델의 앞에서만. 카델을 위해서만 지을 수 있는 미소.

그 한결같이 다정한 미소 앞에서 카델은 생각했다. 자신이 이 세계에서 반 헤르도스를 선택한 것은, 고된 여행길을 걱정한 신의 자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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