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521)

<마법 속성 배분>

보유 포인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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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20/100

얼음: 0/100

번개: 10/100

바람: 20/100

대지: 0/100

빛: 0/100

암흑: 0/100

‘지금까진 불과 바람을 같은 비율로 사용해 왔어. 덕분에 마법의 경로를 쉽게 조절할 수 있었지만, 파괴력이 성에 차진 않았지.’

다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절대적인 이점이었으나, 가지고 있는 모든 포인트를 하나의 속성에 쏟아부었을 때보다 마법의 위력이 약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겪어 왔던 모든 전투 속에서, 카델이 파괴력의 한계를 절감했던 때는 단 한 번. 에르고의 심핵을 상대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셀레브는 고위 마족. 에르고보다 격이 높은 존재였고, 여기서 속성 포인트를 애매하게 분배한다면 한 끗 차이로 목숨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이제는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 줘야지. 뭐, 만약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아이템이 있으니까.’

즉 가장 우위에 둘 속성을 골라야 했다. 현재 20포인트를 준 속성은 두 가지, 불과 바람. 두 속성을 번갈아 살피던 카델은, 망설임 없이 ‘불’ 속성을 선택했다. 화염계 대마법사인 스승을 두고 다른 속성을 고집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겪어 본바 그와 가장 잘 맞는 속성이기도 했다.

마력이 품은 속성의 비율이 변경되며 잠깐 손끝이 저릿해졌다. 가볍게 손끝을 구부린 카델이 강해진 화염에 약간의 바람을 섞어, 관문의 벽과 너머의 상공을 아우르는 불의 장막을 생성했다.

광범위한 크기를 자랑하며 타오르는 장막. 존재만으로 지레 겁먹게 되는 위용이었으나, 레드 맨 군단의 움직임에서 망설임이나 주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검기에 썰리고, 얼음에 꿰뚫리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관문만을 향하고 있었다.

“흐응, 잡는 맛이 안 나네. 힘이 돌아온 기념으로 열심히 놀아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없으면 지루하잖아!”

상공에서 닥치는 대로 마법을 난사하던 라이돈이 투덜거렸다. 생긴 것만 봐서는 겉에 바람만 스쳐도 쓰라리다며 뒤집어질 것 같은데, 통각이 없는 건지 꿋꿋이 참는 건지 레드 맨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눈앞에서 동족이 죽어 가도, 제 팔다리 한쪽이 잘려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셀레브의 명령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양, 고집스레 나아갈 뿐이었다.

기대 밖의 무료함에 라이돈의 눈길이 움직였다. 그가 바라보는 이는 셀레브. 넘쳐흐르는 마기로 레드 맨을 양산하고 있는 고위 마족이었다.

“……흠. 어쩔까.”

카델은 싸우지 말라고 했지만, 어딜 봐도 레드 맨보단 저 여자가 더 흥미로워 보인다. 조금만 건드려 볼까?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얼룩진 표정과 함께 그를 둘러싼 냉기가 한층 짙어졌다.

그러나 라이돈이 공격을 개시하기도 전. 마치 그의 돌발 행동을 예측하기라도 한 것처럼, 타이밍 좋게 카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돈! 잠깐 돌아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

제국의 국경선을 지키는 남쪽 관문에 마물 군단이 등장했다.

그 소식이 전달된 즉시, 제국은 다수의 마법사를 통한 이동 마법으로 ‘호계(護界) 기사단’의 제1, 제4, 제5대대를 관문 근처로 이동시켰다.

‘호계 기사단’은 황실의 직속 기사단 중 그 규모와 전투력이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전력. 고작 마물을 처리하는 데에 투입되는 인원으로는 과한 감이 있었으나, 장소가 국경선 근처인 데다 마물이 나타난 경위 또한 심상치 않았다. 확실한 상황 파악과 토벌을 위한 인원 배치였다.

각 부대의 대대장은 페리온 마을에서 차례차례 소환되는 기사들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곳에 머물렀다. 멀찍이서 관문과 하늘을 가린 채 드리워진 불꽃이었다.

“적린 용병단이 와 있다는 얘기는 사실이었나 보군.”

제1대대의 대대장이자 총지휘관인 소린이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제5대대의 대대장 드레프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정신머리가 가출한 거지. 고작 용병단 따위를 믿고 국경선을 버려? 침입을 알릴 병사만 보내고 죽을 각오로 맞서 싸워야 할 거 아니야.”

“한 번도 본 적 없던 마물에 인원도 고작 네 명뿐이었다고 했네. 적린 용병단 정도면 명성 자자한 신흥 세력이니,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만.”

“흥, 그래 봤자 근본 없는 용병이야. 지들이 관문을 지켜 봤자 얼마나 필사적으로 지키겠냐고. 꼬리 말고 내빼기 전에 우리가 도착했으니 다행이지.”

소린이 드레프의 신랄한 비판을 묵묵히 들어 주는 동안, 뒤편에 있던 제4대대의 대대장 제리엘이 끼어들었다.

“뭘 그렇게까지 까내려? 난 요즘 여기저기서 ‘적린 용병단’ 얘길 떠들어대니 궁금해 죽겠던데. 도대체 거기 용병단장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길래 세기의 천재라고 칭송받는 건지.”

“황혼 기사단장 가르엘 몬자시가 극찬을 한 실력자라지.”

“나 참, 다들 환상이나 품고 말이야. 그래 봤자 용병이라고, 용병! 돈만 주면 당장 마물 편에서 싸우래도 싸울걸.”

제리엘은 드레프의 빈정거림에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얼마 안 가 각 부대의 모든 기사가 이동에 성공했다. 소린은 부대의 최전방에서 말을 몰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적의 정확한 규모와 능력을 모르는 만큼, 섣부른 대피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지목한 기사들은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페리온의 주민들을 통제하여 관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관리하라.”

우렁찬 대답이 대기를 울렸다. 지체 없이 말머리를 돌린 소린이 그대로 관문을 향하려던 때였다.

돌연, 생소한 목소리 하나가 기사단의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 적린 용병단이 관문을 공격하는 마물을 토벌 중이니까, 근처에 사는 인간은 전부 멀리 도망쳐. 굼뜨게 굴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

농담처럼 장난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말투.

난데없는 환청에 기사들의 얼굴 위로 뚜렷한 의문과 혼란이 떠올랐다.

“잘 전달했어?”

“당연하지.”

“이상한 소리 안 했지? 적린 용병단이 관문을 지키고 있으니, 피해를 입기 전에 멀리 대피하라는 얘기만. 딱 그 말만 했지?”

“계속 캐물으면 매력 없어, 카델. 난 분명히 전달했으니까, 다시 싸우러 간다.”

신나게 날개를 펄럭이며 떠나가는 라이돈의 뒷모습을 보며, 카델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전달했으면 입소문은 확실히 탈 거야.’

퀘스트 성공의 기준은 명확했으나, 그것만으로 닥쳐올 미래를 감당하기엔 불안 요소가 많았다. 이곳은 카델 라이토스의 고향이자, 그의 수배지. 게임처럼 조건만 충족되면 모든 게 해결되는 흐름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현재 카델은 그 어떤 곳보다 살벌한 적진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생존을 위한 보험은 필수였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이것. ‘입소문을 통한 용병단의 업적 각인’이었다.

만약 전투 중 제국의 기사가 카델의 정체를 알아챈다면, 이번 토벌에 적린 용병단이 참여했다는 사실도 알리지 못한 채 잡혀갈 가능성도 있었다. 그 끔찍한 미래를 방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통제가 힘든 ‘입소문’을 활용한 것이다.

‘대피한 주민들은 적린 용병단이 관문을 수호한 덕에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었다고 생각할 거야. 이야기가 널리 전파될수록, 내 신변이 위험해질 확률은 낮아진다.’

생명의 은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소문이 번지면 번질수록, 카델의 목숨 줄이 질겨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걸 위해 카델은 라이돈의 [환언(幻言)]을 사용했다. 라이돈의 목소리는 관문 근처의 주민들에게 카델이 바라는 바를 똑똑히 각인시켰다.

‘이상한 내용만 안 섞었다면 말이지.’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부턴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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