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521)

“카델, 빨리. 내 날개 돌려줘.”

카델은 제 앞으로 다가온 라이돈의 목걸이를 대충 움켜쥐고는, 심각한 얼굴로 반을 올려보았다.

“지원군은? 부르러 간 거야?”

“네. 방어는 저희 쪽에서 맡을 테니, 지원군을 요청해 달라고 했어요. 적린 용병단이라고 하니까 길게 붙들진 않더라고요. 과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단장. 저 여자, 마족이죠?”

“그냥 마족이 아니야. 혈통 좋은 고위 마족이지. 진짜배기라고 보면 돼.”

“왜 저희가 가는 곳마다 마족이 있는 건지. 저주라도 걸린 걸까요.”

반의 한탄에 카델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게임 스토리가 그런 것을 어쩌겠나.

‘상황이 급전개되긴 했지만, 아직까진 나쁘지 않아.’

현재 용병단의 명성은 60.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지금껏 개고생하며 이뤄 왔던 업적은 퀘스트 시작부터 빛을 발해, 관문의 경비병들을 계획대로 움직여 주었다. 시작 자체는 순탄했다.

반을 통해 관문 쪽의 움직임을 간단하게 전해 듣는 동안, 카델은 라이돈의 변신을 풀어 주었다. 본래의 몸집으로 돌아온 라이돈이 길게 기지개를 켜더니, 마법진 위에 둥실 떠오른 셀레브를 턱짓했다.

“카델, 저 마족 죽일 거야? 꽤 힘들 텐데.”

“당장 죽이는 건 욕심이지. 우린 지금부터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관문을 지킨다. 관문을 넘어가면 바로 민가가 있어. 대피가 이루어지기 전까진 절대 넘어가게 둬선 안 돼.”

그것이 기사단 승격 퀘스트의 핵심이었다. 단순한 마족 토벌이 아니라, 그녀의 공격을 방어하며 제국의 입구를 지키는 것.

‘버티다 보면 제국의 기사들이 합류할 거야. 합류하면, 그때부턴 이쪽의 저력을 똑똑히 증명해야 해. 적린 용병단이 제국 수호에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는 증명을.’

게임 속 승격 퀘스트에는 ‘기여도’라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진행되는 전투 속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여도’를 달성하지 못하면, 퀘스트는 실패한다. 그 전에 셀레브나 마물에게 전멸해도 마찬가지.

기여도 달성과 관문 방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었고, 그 때문에 수도 없는 리트라이를 겪었다.

‘기여도는 토벌한 마물의 수와 셀레브에게 입힌 데미지의 총합이야. 그러니 해야 할 일은 명확한 편이지.’

최선을 다해 싸운다. 언제나처럼, 질리도록 싸우면 되는 거다.

셀레브는 그런 카델 일행을 똑바로 응시하며, 양손 가득 마기를 머금었다. 검은자위가 탁한 빛을 띠며 번들거렸다.

“아아, 인간들에게 깜짝 선물을 줄 생각에 설렜는데. 시작부터 이렇게 많은 방해물이 있을 줄이야.”

그녀의 손을 감싸던 마기가 액체처럼 흘러내리며 마법진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레드 맨의 시체로 가려져 있던 마법진이, 처음과 같은 진한 자색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니, 즐길 거리가 많다고 해야 하나?”

뒤이어 나타난 것은, 그 빛을 빨아들이며 등장한 새로운 레드 맨 군단. 눈 깜짝할 새 충전된 적군의 전력에, 카델의 얼굴 위로 애매한 미소가 떠올랐다.

기여도 가늠을 위한 데미지 파악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와 달리, 시스템은 게임 속 ‘기여도’를 그대로 구현해 주었다.

「적을 처치하여 클리어 확률을 높이십시오.」

「퀘스트 성공 확률: 3%」

어떤 식으로 확률을 높여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마물과 마족에게 입힌 데미지의 총량. 그것이 기준이었다. 그러니 때맞춰 나타난 이 시스템 창은, 무리한 전략이나 필요 이상의 체력 소모를 막을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도우미인 셈이었다.

‘퀘스트 성공 확률이 고작 3%라……. 갈 길이 멀군.’

현재 용병단 앞에 나타난 레드 맨의 숫자는 대략 50. 그들은 ‘관문을 파괴하라’는 셀레브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곧장 진군했고, 셀레브는 계속해서 마법진 위로 마기를 떨어뜨렸다. 그렇게 그녀의 마기를 머금은 마법진은 또 다른 레드 맨 군단을 생성해, 숨 쉬듯 간단하게 군단의 물량을 늘리는 중이었다.

카델은 각 맞춰 진군하는 레드 맨의 앞으로 불의 장막을 생성하며 용병단을 이끌었다.

“되도록 셀레브와는 엮이지 마. 저놈을 처리하는 건 지원군이 도착한 이후다.”

“셀레브요? 저 마족 이름이 셀레브인가요? 설마 마계 전쟁 당시의…….”

“맞아. 그 셀레브.”

세월이 지나도 세븐 나이츠의 저명함이 여전하듯, 세계의 존속을 위협했던 이들의 악명 또한 계승되고 있다. 그때의 끔찍했던 절망과 공포가 흉터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봉인돼 있어야 할 놈이 어째서…….”

생각지도 못한 마족의 정체에 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멀찍이서 자유롭게 비행하며 레드 맨이 보이는 족족 얼음 창을 날려 대던 라이돈. 그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카델의 곁으로 하강했다.

“있잖아, 카델. 방금 떠올랐는데, 지원군으로 온 인간들이 날 발견해도 괜찮은 거야? 매번 들키지 말라고 잔소리했잖아.”

“이젠 상관없어. 제약 건 상태로 싸워도 될 만큼 만만한 상대도 아니고.”

본래라면 라이돈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기사단 승격이 종료된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루트라고 판단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을 세웠을 당시에는, 루멘이 있었다. 라이돈 없이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유명 세가의 차남. 화제성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루멘이 자리를 비운 현재. 라이돈까지 모습을 숨긴다면, 적린 용병단은 단장 하나와 단원 하나로 이루어진, ‘용병단’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기사단 승격이 우스워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카델은 부족한 단원과 용병단의 존재감을 충족시킬 수단으로 라이돈을 택했다. 요정보다 용병단을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게다가 이번 퀘스트가 실패하면 라이돈을 내보일 기회도 잃게 되니 배수의 진을 친 셈이었다.

‘기여도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많으니까.’

게임 속 스토리를 따라간다고 이 세계가 게임처럼 단순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흘러갈 사건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기반을 다져 두어야 했다.

‘서두르지 말자. 빙의한 이래 최대 난관이야.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낭떠러지다.’

하나씩 차근차근. 마음을 가라앉힌 카델이 용병단에게 [바람의 길]을 걸어 주었다. 배는 빨라진 움직임으로 레드 맨 군단을 앞지른 그들이 곧장 관문으로 내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셀레브는 끊임없이 레드 맨을 생성해, 관문 앞에서 돌아본 군단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쉴 새 없이 일렁이는 붉은 물결 같기도, 움직이는 재앙의 요새 같기도 했다. 열을 맞춰 전진하는 놈들에게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카델은 관문을 포위하듯 몰려오는 마물을 살피며 짧게 숨을 골랐다.

“지금부터 난 관문을 보호하는 장막을 유지한다. 너희 둘은 접근하는 마물을 처리해 줘. 몇 번 말했지만, 셀레브와의 충돌은 최대한 피하고.”

“네, 단장.”

“아하하! 기대된다!”

셀레브는 아직 레드 맨 군단을 양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니, 처음부터 장막의 크기를 과도하게 늘릴 필요는 없다. 혹시 모를 원거리 공격과 셀레브의 기습에 대비할 정도의 두께와 범위면 충분.

카델은 체내의 마력을 끌어모으는 동시에, ‘내 정보 창’을 열었다. 무려 고위 마족을 상대하며 기여도까지 챙겨야 하는 퀘스트였다. 여태 아껴 두었던 속성 포인트를 사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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