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521)

사실상 완벽한 퀘스트 파훼법을 구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사단 승격 퀘스트는 확실히 오스마 제국에서 진행되었고, 카델을 기사단장으로 인정해 주는 곳 또한 오스마 제국이기는 했다.

하지만 퀘스트가 진행되기 전까지, 제국에서 카델의 위치는 황족 암살을 시도해 멸문한 가문의 서자. 쉽게 말해 역적의 반쪽짜리 후손이었다. 최대한 몸을 사려야 했다.

되도록 퀘스트 시작 시점에 맞춰 등장하는 편이 낫겠으나, 언제나 그렇듯 카델은 퀘스트가 시작되는 시점을 알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앞선 퀘스트들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해치우며 서둘러 제국으로 향한 것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내 예상보다 승격 퀘스트가 느리게 진행된다면 곤란한데. 오스마 제국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들킬 위험이 커질 거야.’

아무리 꼭꼭 숨기고 다닌다 한들, 적지에 숨어든 도망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겠는가.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세가의 서자였으니, 분명 얼굴도 많이 팔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멀찍이서 기회만 노리고 있다간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컸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결국 카델은 도박을 감행했다.

“걱정 마세요, 단장. 누군가 단장을 잡아가려 한다면 제가 전부 처리할게요.”

“아니, 처리하면 일이 복잡해지거든.”

“수배범이었어, 카델? 멋있는데!”

“큰 소리로 말하지 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퀘스트의 시작은 놓칠 수 없다. 그러니 들킬 때 들키더라도 오스마 제국 내에 머물러야 했다.

스타트 장소는 분명 출입국을 관리하는 관문 근처. 그 근방에 숙소를 잡고 버텨 보기로 했다.

카델은 며칠간 질리도록 탄 마차에서 내려 단단한 땅을 디뎠다. 조금 떨어진 곳에 제국의 국경선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관문이 보였다. 카델 라이토스의 고향이 코앞이었지만, 별 감흥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퀘스트를 위해 거쳐 갈 장소일 뿐.

비장한 낯으로 관문을 노려보던 그가 마부에게 값을 치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정말 관문 안쪽까지 데려다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마차 타고 들어가는 편이 검문도 훨씬 간단하게 끝나는데요.”

“아뇨, 괜찮습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요.”

“뭐, 그러시다면야…….”

약속된 돈을 받은 마부는 곧장 오스마 제국의 관문을 향해 이동했다. 카델은 멀어지는 마차가 일군 흙먼지 속에서, 로브의 후드를 단단히 뒤집어썼다. 당연하게도, 그는 얼굴을 훤히 드러낸 채 관문을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경계가 느슨하네요.”

“다행이지. 경비병이 많으면 라이돈의 부담이 늘어났을 테니까.”

주의 깊게 관문을 관찰하던 반이 근무 중인 경비병의 수를 넷으로 확신했다. 카델은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라이돈에게로 다가갔다. 꼼꼼히 라이돈의 얼굴을 살피던 그가 곱슬기 도는 머리칼을 헝클이듯 매만지고는, 한층 순진해진 인상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반한테 시선이 쏠렸을 때 환혹술을 걸어. 알았지?”

라이돈은 몇 번이고 ‘시선 끌 짓 하지 말고 얌전한 동생 노릇을 하라’며 주의를 주는 카델에게 건성으로 긍정의 표시를 보였다.

“알겠다니까, 카델.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환혹술을 거는 것보단 깔끔하게 죽이는 쪽이 나을 것 같지만.”

“전혀 낫지 않으니까 말 들어.”

괜한 의심이나 탐색을 피해 관문을 넘어가기에 라이돈의 환혹술보다 편리한 것은 없었다. 봉인이 해제된 후의 라이돈은 마력이 두 배 이상 뛰어오른 데다, 마법의 시전 속도까지 단축됐다. 핀하이족의 토지가 아니기에 무영창 무시전이라는 버프를 얻지는 못하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니 고작 인간 4명에게 거는 환혹술은 무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라이돈 쪽에서 먼저 ‘제국 전체에 환혹술을 걸어 주겠다’며 뻗댔으나, 카델은 가볍게 무시했다. 마력 낭비일뿐더러 제국 전체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기도 싫었다.

“자, 그럼 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어서 이동해. 둘은 지금부터 사이좋은 형제니까, 손 꼭 잡고. 반, 떫은 표정 금지야.”

카델은 억지 미소를 짓는 반과 맞잡은 손을 신나게 흔들고 있는 라이돈의 등을 떠밀었다. 멀어지는 두 남자의 사이로 ‘손이 거칠어서 기분 나빠.’라든가 ‘이 일만 끝나면 죽여 주지.’ 따위의 대화가 들리는 듯했지만,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

반은 맞잡은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꽉 움켜쥐었다. 이대로 으스러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의 주인은 반의 무식한 악력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되레 얄밉게 웃어 대기나 했다.

“손 부러지면 카델한테 이를 거야.”

“웃기는군. 단장이 네놈 편을 들어 줄 것 같아?”

“그럼, 내 인간인데.”

거슬리기 짝이 없는 요정이었다. 감히 자신의 단장에게 내 인간이니, 결혼을 했다느니. 같은 단원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묻어 버렸을 텐데.

살벌하게 눈을 부라리며 당장이라도 라이돈을 찢어 버릴 듯 노려보던 그는, 관문과 가까워졌음을 확인하곤 억지로 표정을 풀었다. 여전히 은은한 분노가 느껴지기는 했으나, 원래도 날카로운 인상이었기에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다.

“거기. 멈추십쇼.”

관문 앞에 다다르자 기다렸다는 듯 경비병 한 명이 다가왔다. 꼼꼼한 시선이 반과 라이돈을 훑어 내리다, 꼭 맞잡은 손을 확인했다. 둘의 생김새는 전혀 달랐으나, 나이대나 화려한 외관으로 보아 친척 혹은 형제인 듯싶었다.

경비병은 반이 메고 있는 대검을 유심히 바라보다, 옆에 달린 가방을 턱짓했다.

“안에는 뭐가 들었습니까?”

“마물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전리품을 비싸게 매입해 준다는 사람이 있다길래 찾아왔고요.”

“……용병입니까?”

“네.”

딱딱한 대답에 경비병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는 반의 옆에 있는 어린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어린아이를 데리고요?”

“마물을 토벌하다 길 잃은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아이의 부모가 이곳 오스마 제국에 있다기에, 전리품을 판매할 겸 찾아온 거죠.”

반은 카델이 알려 준 대사를 줄줄 읊으며 무성의하게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라이돈은 해맑은 얼굴로 경비병을 올려다보며 애교스럽게 고개를 까딱였다.

천사와도 같은 눈부신 외모에 경비병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귀여운 아이는 어딜 가든 상대방의 경계심을 허무는 법이었다.

“이런, 아이가 고생이 많았겠군요. 보아하니 어느 귀족가의 아이 같은데. 가문의 이름을 알려 주면 저택의 위치를 안내해 드리죠.”

“아…….”

분명 이런 상황을 대비한 제국의 귀족가 이름도 들었는데. 발음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올라와 슬쩍 흘려 넘겼더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반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미루는 동안, 라이돈은 관문 너머에 띄엄띄엄 자리한 세 명의 경비병을 살펴보았다. 눈앞의 남자까지 한 번에 환혹술을 걸려면, 지금이 딱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망설임은 필요 없다. 곧장 마력을 끌어 올리자, 붉은 눈동자 위로 익숙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보여 줘야 할 것은 출입자 하나 없는 한산한 관문. 지속 시간은 넉넉잡아 15분 정도.

카델의 주문을 떠올린 라이돈이 지체 없이 환혹술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의 마법이 채 발동되기도 전.

키이잉—

그들의 뒤편에서부터, 끔찍한 쇳소리를 동반한 환한 빛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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