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521)

[화사군(火巳群)]

순식간에 형성된 수십 마리의 화염 뱀 무리가 카델의 발 아래에서 구불거렸다. 짧게 숨을 고른 그가 뱀 무리의 위로 새로운 마력을 주입하며 속삭였다.

“최대한 오래 버텨 봐.”

손길을 거둔 카델이 뱀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불줄기들이 앞을 가로막은 얼음 기둥을 모조리 녹여 내며 막힘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단 한 명.

“흐응, 이게 전력이야?”

라이돈은 자신을 노리며 몰려오는 수십 개의 불줄기를 발견하곤 비스듬히 입꼬리를 세웠다. 빠르게 얼음벽을 생성한 그가 뱀들의 움직임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그들은 두꺼운 얼음벽조차 손쉽게 녹여 내리며 통과했다.

싸늘하게 굳은 시선이 맞은편의 카델을 향했다. 자신을 남겨 둔 채 달아나는 뒷모습에, 라이돈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

다행인지 아닌지, 라이돈의 공격은 반과 루멘의 전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공방은 자연스럽게 전투의 공백을 낳았고, 카델은 그 틈에서 반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루멘의 말로는 우리를 죽이는 것 자체가 시련의 내용이라는 거야?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사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분명 그런 뉘앙스였어요.”

“……참담하네.”

설마 시련의 내용 자체가 동료의 살해였을 줄이야. 완벽하게 믿기는 힘들었으나, 그런 거라면 둘의 행동도 앞뒤가 맞기는 했다.

반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카델을 가만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대로라면 저희가 당할 텐데.”

무거운 목소리에 카델이 고개를 들었다. 둘 사이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 카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계속 머뭇거렸다간…….”

“저놈들이 진짜 루멘과 라이돈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고.”

마주친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카델은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 반의 얼굴을 응시하며, 차분히 말을 꺼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저놈들이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조금은요. 나타난 타이밍이나 막무가내인 태도나……. 특히 단장을 망설임 없이 공격한다는 게 걸려요.”

“그래. 만약 저 둘이 들었다는 시련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쪽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기습한다는 건 이상해. 라이돈이라면 몰라도 루멘은 그러지 않았을 거야.”

반은 답답하다는 듯 마구 뒷머리를 헝클였다. 현재의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이상하긴 확실히 이상해요. 하지만 가짜라고 단정 짓기엔 사용하는 힘이…… 기분 더러울 정도로 똑같아요. 가짜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투도 빌어먹게 똑같고요.”

“……그게 문제지. 어쩌면 세뇌 같은 걸 당한 상태일 수도 있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

말투나 전투법까지 흡사하니, 간단한 질답으로 정체를 꿰뚫어 보기는 힘들 것이다. 말로 해결할 수 없다면, 직접 공격해 보는 수밖에 없다. 진짜라면 죽을 테고, 가짜라면 사라질 테니.

하지만 저들이 가짜든 아니든. 카델의 부하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 쉽게 살해를 결정할 순 없었다. 게다가.

‘그곳에 가짜는 없어요. 명심해요, 카델.’

‘스텔라가 했던 말이 신경 쓰여.’

가짜가 없다는 것은, 혹시 이 상황을 염두에 둔 경고였을까?

그렇다면 더더욱 섣부르게 위해를 가할 수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카델이 얼음 기둥 뒤에 숨겼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이진 말고, 패 보자. 정체가 뭐든 일단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보자고.”

한편 같은 시각.

카델이 있던 사막과 똑같은 장소에서, 루멘과 라이돈 역시 ‘시련을 위해’ 달려드는 동료와 대치하는 중이었다.

혈류검을 개방한 반과 초반부터 마력을 아끼지 않으며 다속성 마법을 난사하는 카델. 광범위 공격에 특화된 두 남자의 합동 공격은 작은 빈틈도 내어 주지 않았고, 그 맹공 속에서 루멘과 라이돈은 착실하게 지쳐 갔다.

“반부터 잡아야겠어.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눕힐 테니, 대장 쪽은 얼음으로 움직임을 구속해, 라이돈.”

루멘의 턱 끝을 타고 투명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시선이 뜨거운 사막을 더욱 화끈하게 달구는 화염 마법과 그 너머의 카델을 향했다.

‘저건 대장이 아니야. 적어도 정신이 멀쩡하진 않은 상태다. 무슨 일을 겪었는진 모르겠지만……. 죽일 순 없으니 제압하는 수밖에.’

위협 좀 당했다고 이쪽까지 살기등등하게 맞붙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델이다. 그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인물이 아니었고, 동료에게 함부로 칼을 겨누는 남자도 아니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죽으라고 달려드는 것은 카델답지 않다. 그러니 그가 가짜이든 세뇌당한 상태이든, 최우선은 제압이었다.

날카롭게 움직인 눈동자가 정면의 반을 응시했다. 바스킨 마을에서의 전투처럼 방대한 양의 오라를 휘감은 그가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루멘을 주시하고 있었다.

“……네놈은 죽인다고 딱히 죄책감이 들 것 같진 않지만 말이야.”

자신이 떠난 뒤, 카델의 곁을 가장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는 반 헤르도스뿐이라고. 루멘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반을 죽이는 것 또한 곤란하다.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루멘이 발도술의 시동을 걸었다. 기동 준비를 마친 몸이 하체에 힘을 주며 자세를 낮추었다.

반을 담아낸 푸른 눈동자가 시리게 번뜩였다.

“최대한 살려는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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