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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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때, 그들이 있는 곳은 신전의 안이 아니었다.

“……사막?”

사막의 한가운데.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도 없이 펼쳐진 황갈색의 모래뿐이다. 당황한 카델이 급히 두리번거리자,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 역시 카델을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설마 이것도 시련의 일부일까요?”

“첫 번째 시련을 통과했으니, 이걸 두 번째 시련의 시작으로 보는 게 맞겠지. 설마 신전 바깥으로 쫓겨날 줄은 몰랐지만.”

내리쬐는 태양과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 평범한 호흡조차 불가한 기온에 숨이 절로 턱턱 막혔다. 카델은 벌써부터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듯한 기분에 인상을 구기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 옆에서, 반은 미묘한 표정으로 사막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미심쩍은 것을 발견한 듯 좁혀진 미간에 그림자가 졌다.

“왜 그래? 뭐 문제라도 있어?”

“음…….”

말없이 몇 번이고 사막을 둘러보며 생각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피의 사막’이 아닌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피의 사막이 아니면 어딘데.”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봐요, 단장. 피의 사막은 낮에 모래 폭풍이 끊이지 않아요. 저희도 그 지독한 모래바람을 뚫고 왔으니 확실하잖아요? 하지만 여긴…….”

바람 한 점 없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앞이 뿌옇게 흐려질 만큼 강렬한 열기뿐.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카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막을 빠져나갈 시도는 안 하는 게 좋겠네.”

“네. 아마 이곳도 첫 번째 시련의 방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같아요. 거슬릴 정도로 현실감 있긴 하지만.”

가짜로 만들어진 사막이라. 대체 이곳에선 뭘 해야 하는 걸까? 아직까진 마물의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고, 가 볼 만한 유적지나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걸어 보자. 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렇게 카델과 반은 무작정 사막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천을 뚫고 들어오는 무자비한 자외선에 맥이 풀릴 지경이었다.

“단장, 물 마시세요.”

반은 곧 녹아내릴 것처럼 흐물거리는 카델에게 물통을 건넸다. 힘 빠진 손을 들어 가볍게 입 안을 적신 그가 미지근한 물의 온도를 아쉬워하며 물통을 되돌려 주었다.

“너도 마셔.”

“전 별로 목 안 말라요.”

“허이고, 또 시작이네.”

“네……?”

“됐고, 빨리 마시기나 해.”

물통을 가슴팍 위로 후려치듯 떠넘기자, 반이 당황하며 물통을 받아 들었다.

“진짜 괜찮아요, 단장. 물은 최대한 아껴야죠. 단장은 쉽게 지치니까, 수분 충전이 중요해요.”

“네 몸이나 아껴. 난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까, 너까지 내 상태 걱정하면서 참을 필요 없다고.”

“하지만…….”

“지금 단장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거야?”

“그, 그럴 리가요!”

“그럼 마셔.”

자리에 멈춰 선 카델이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반을 응시했다. 마시는 걸 보기 전까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러운 시선이었다.

머뭇거리던 반이 결국 물통을 살짝 기울여 입술을 축이자, 카델이 물통의 바닥을 잡고 홱 치켜들었다.

왈칵 쏟아진 물에 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델은 급히 물통을 떼어 낸 채 입을 가린 그의 빵빵해진 볼을 확인하곤,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사막에 온 내내 물 두 모금이 끝이었어. 모를 줄 알았지? 계속 그러면 진짜 혼날 줄 알아.”

어쩔 수 없이 입 안에 든 물을 삼킨 반이 금세 가벼워진 물통을 흔들며 울상을 지었다.

“아직 버틸 만했는데…….”

“그건 단장인 내가 판단해.”

이어지는 반의 변명을 깔끔하게 무시한 카델이 걸음을 재개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걸었을까. 마물은 커녕 태양을 피할 그늘조차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막을 끊임없이 횡단하던 카델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장난해? 시련 끝날 때까지 계속 걷기만 하라는 거야?”

시스템은 분명 이번 시련을 ‘신뢰의 시련’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끝도 안 보이는 사막 속에서 믿을 게 뭐가 있겠는가? 서로를 신뢰하며 마라톤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더위와 바닥을 치는 체력에 머릿속이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듯했다. 반 역시 꽤 많은 체력을 소모했기에 새어 나오는 숨이 거칠었다.

“대체 저희한테 원하는 게 뭘까요. 설마 사막을 끝까지 횡단하라는 건 아닐 테고.”

“감도 안 잡혀. 아마 루멘이랑 라이돈 쪽도 똑같은 시련을 받고 있을 텐데……. 그쪽은 뭐 알아낸 거 없으려나.”

“이번에도 각 팀이 시련을 받는 공간은 구분된 걸까요?”

“글쎄. 혹시라도 같은 공간에 있다면…… 이 넓은 사막에서 상대 팀을 찾아야 한다든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내용만 아니었으면 좋겠네.”

그런 거라면 마음껏 얼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라이돈 쪽이 어떻게든 이쪽을 찾아내길 바라는 편이 나았다.

‘확 그냥 얼음 속성이나 찍어 버릴까.’

지금 심정으로는 남은 속성을 얼음에 부어 온몸에 냉기를 두르고 싶었다. 그렇게 카델이 점점 흐려지는 이성을 따라 ‘내 정보 창’의 열람을 고심하던 그때.

“……단장.”

카델보다 몇 걸음 앞서고 있던 반이 몸을 세웠다. 그의 똑바른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짙은 아지랑이의 결을 따라 일렁거리는 두 개의 인형.

반과 함께 그 실루엣을 주시하던 카델의 얼굴 위로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여 떠올랐다. 단숨에 활기를 되찾은 그가 맞은편을 향해 격하게 팔을 흔들었다.

“루멘! 라이돈!”

인형의 정체는 바로 흩어져 있던 그의 부하. 루멘과 라이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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