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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사막’은 수도 아르헴과 국경선 가장자리의 도시, ‘도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카델의 목표는 사막에서 라이돈의 봉인을 무사히 해제한 뒤, 도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갑갑한 터번을 고쳐 쓴 그가 마밀을 돌아보았다. 팔짱을 끼고 선 마밀은 온 얼굴에 불만을 덕지덕지 펴 바른 채 카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마밀 님. 한층 강해진 제 모습을 기대해 주세요!”
“죽을 거면 곱게 죽거라. 괜히 꿈자리 뒤숭숭하게 만들지 말고.”
“응원 감사합니다!”
카델은 넉살 좋게 웃으며 마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돌아서려는데, 마밀이 그를 붙들어 세웠다. 여전히 권태감이 아른거리는 얼굴이었으나, 카델을 보는 눈빛은 제법 진중했다.
“피의 사막에서 뭘 찾아야 하든, 절대 나흘을 넘기지 말거라. 지금 네 능력으론 네 번째 밤을 넘길 수 없어. 알겠느냐?”
“명심할게요.”
“……미래를 꿈꾼다면 망자가 되어선 안 돼.”
카델에게서 젠가 라이토스를 떠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어깨를 쥔 마밀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카델은 그의 조언에 보답하듯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반과 루멘, 라이돈. 셋은 미리 불러 놓은 마차 안에서 카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카델이 반의 옆자리에 올라타자 함께 대기 중이던 마부가 곧장 말을 몰았다.
“피의 사막은 아르헴 관문 너머에 있어. 우린 낮에 도착할 테니까, 보초병의 순찰 시간은 피해 갈 수 있겠지. 진입 자체는 쉬울 거야.”
카델은 반이 내민 호두를 받아먹으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우리의 목표는 라이돈의 봉인을 풀 ‘균형의 신전’을 찾는 거야. 라이돈이 신전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하니까, 위치도 모르고 마냥 헤맬 일은 없겠지.”
“그렇다곤 해도 한계가 너무 명확해. 사막엔 쉴 곳도 없는 데다, 낮의 모래 폭풍과 밤의 마물들을 계속 상대해야 하니까.”
“맞는 말이야.”
루멘을 짧게 일별한 카델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적당히 며칠 둘러보다가 아르헴으로 돌아온다는 계획은 불가능해. 라이돈이 되돌아가는 길까지 찾을 순 없을 테니까. 그러니 최대 나흘까지만 버티고, 그 후엔 도른으로 빠져나간다.”
가만히 이야기를 경청하며 카델에게 줄 호두를 까고 있던 반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모래폭풍 속에서 길을 찾는 건 힘들 텐데요, 단장. 도른이든 아르헴이든 시간 맞춰 찾아가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괜찮아. 미리 손을 써 뒀거든.”
그리 말한 카델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검지에 끼워진 익숙한 모양의 반지. 그를 발견한 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반지는……!”
“마밀 님과 나눠 꼈어. 우리가 피의 사막에 가 있는 동안, 마밀 님은 도시를 빙 돌아서 도른으로 가실 거야. 그러니 우린 사흘 뒤에 붉은 실을 따라 이동하면 돼.”
제법 괜찮은 계획이었다. 루멘은 그 정도면 마음 놓고 갈 수 있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고, 라이돈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창밖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리고 반은, 산산이 조각난 호두 껍데기를 움켜쥔 채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단장의 운명은 왜 이렇게 많은 거냐구요…….”
피의 사막은 낮 내내 지독한 모래 폭풍이 몰아친다고 하지만, 사막 전체가 폭풍의 범위 내인 것은 아니었다.
포인트는 폭풍의 경로를 최대한 피해 주변을 탐색하는 것. 피치 못하게 폭풍을 마주치게 된다면, 몸을 숨길 장소를 찾거나 마법 장막을 전개해야 한다.
‘뭐, 당연히 모래 폭풍을 제외하고도 탐색이 힘들 만한 요소는 많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래도 이 바람은 너무 심하지 않나?’
미리 준비한 터번을 쓰고, 코와 입을 천으로 단단히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몸을 후려치는 모래 알갱이들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의 강풍이었다. 카델은 모래바람에 흐려진 시야를 어떻게든 확보해 보려 눈을 부릅뜨기 바빴다.
“라이돈, 뭐 느껴지는 거 없어?”
“흐음, 색다른 기운이 감지되기는 하는데…… 너무 옅어. 대략적인 방향만 겨우 알 수 있는 수준.”
사막에 들어서자마자 라이돈의 외형을 바꾼 마법은 풀어 주었다. 그의 날개가 필요한 때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카델은 모래에 두들겨 맞기 바쁜 가련한 두 쌍의 날개를 일별하곤 갑갑한 한숨을 내쉬었다.
사막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벌써 신전을 찾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목적지가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소리가 달가울 리 없었다.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든 곳이다. 제법 체력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만이었던 모양이다. 카델은 있는 힘껏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다리를 움직였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전진에만 집중하자, 어느 순간 조금씩 바람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모래 폭풍이랑 멀어졌나……?’
희망적인 생각을 품고서 슬쩍 앞을 보니, 정면을 가린 널찍한 등판이 보였다. 반이었다. 그는 앞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막아 주며 카델이 조금이라도 쉽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감동하며 올려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가볍게 고개를 돌렸다. 천 사이로 겨우 드러난 눈이 카델을 향해 살가운 호선을 그렸다.
안타깝게도 탐색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들이 이동하는 경로에 모래 폭풍이 근접해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근처에 동굴이 있었기에, 용병단은 곧장 동굴의 안쪽으로 피신했다.
“와, 장난 없네 진짜.”
모래바람은 동굴 깊숙한 곳까지 미치진 않았다.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코까지 끌어 올렸던 천을 풀어 헤친 카델이 인상을 구겼다.
“괜찮아요, 단장? 입 좀 헹구세요.”
함께 꽁꽁 싸맨 천을 느슨하게 풀어낸 반이 물병을 건넸다. 거절하지 않고 한 모금을 머금은 채 텁텁한 입 안을 훑었다. 모래 섞인 물을 뱉어 내니 그제야 조금 상쾌해졌다.
“폭풍이 언제 지나갈지 모르겠군.”
동굴 입구에서 바깥을 살피던 루멘이 말했다. 사막의 기후 변화에 능통한 자가 없었기에 누구 한 명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라이돈만이 비관적인 발언을 뱉어 낼 뿐.
“폭풍은 몰라도 곧 해가 저무려나 봐. 마물 냄새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게…… 정말 역겹네!”
“라이돈, 주위에 마물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
“당장 이 동굴에만 해도 열 마리는 넘는 것 같은데.”
웃음 섞인 대답에 카델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얼마 걷지도 못했는데 벌써 마물 상대할 시간이라니. 효율이 너무 안 좋아.’
모래바람 때문에 탐색에 속도를 올리기도 힘들고, 무리해서 움직인다면 밤에 나타날 마물을 상대할 체력이 부족해진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최대한 빨리 신전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나.’
피로한 얼굴을 문지르자 들러붙은 모래가 까끌까끌하게 피부를 긁어내렸다.
“모래바람이 점점 세지는데. 꽤 큰 폭풍인 모양이야, 대장.”
“……오늘 밤은 꼼짝없이 여기서 지내겠네.”
폭풍을 헤치고 사막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보다는 동굴 안에서 나타나는 마물을 처리한 뒤, 폭풍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그럼 미리 불을 피워 두죠.”
사막의 밤은 상상 이상으로 춥다. 그를 대비해 미리 ‘마력 주입용 모닥불’을 사 두었다. 반이 가방에서 두 뼘 정도 크기의 나무토막을 꺼내 바닥에 내려 두었다. 양 끝이 정갈하게 정돈된 두툼한 나무토막이었다.
카델이 그 위에 작은 불덩이를 만들어 올리자, 불씨를 머금은 나무토막이 순조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처음의 5배는 커진 불씨가 열기를 증폭시켜 동굴 내부의 온도가 상승했다.
동굴 벽면에 기대앉은 카델이 모닥불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마음만 급하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이럴 땐 편히 휴식이나 해 두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