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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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게는 오라를 다룰 수 있게 된 후부터 언제나 시도를 꿈꿔 왔던 기술이 있었다. 실현이 가능하다면 대단한 위력을 자랑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시도조차 부담스러운 기술.

그 기술이 성공한다면 자신은 백 퍼센트의 확률로 광전사의 힘에 잡아먹히고 만다. 그것이 반이 여태껏 어떤 전투에서도 그 기술을 시도하지 않은 이유였다.

한번 광전사에 힘에 잡아먹히면 그 이후를 장담할 수 없다. 과거, 그는 자신과 같은 광전사를 몇 차례 조우했다. 그들의 최후 또한.

그들은 언제나 굶주린 짐승처럼 피를 원했고, 원할 때마다 인간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살육했다. 그들에게 생명은 의미가 없었다. 의미가 있는 것은 본능의 부름일 뿐.

인격과 자아를 잃은 살상 병기.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모든 것을 죽이고 싶어 하는 광전사는, 결국 모두가 죽여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들의 최후는 인간이 아니었으며, 하다못해 짐승도 못 되었다. 반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과거라면 몰라도 카델과 함께하는 지금은 더더욱. 그런 비참한 최후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술의 연마를 포기한 채 언젠가 광전사의 힘을 제대로 다루게 된다면, 그때라면 그 기술로 단장을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기대하던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오라에 침식당하던 정신을 건져 냈다. 비록 카델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그의 손을 잡고 끝도 없는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순간. 반은 자신의 내면에 공존하는 또 다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끌려다니기에 급급했던, 친숙하고도 두려운 힘이었다.

‘정말 날 지켜 주고 싶다면, 네 의지로 싸워.’

대부분의 기억이 사라졌지만, 카델의 그 말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이건 내 힘이다. 내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내 힘이야. 휘둘려선 안 돼.’

바깥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은 처참했다. 들이닥친 마물이 마구잡이로 마을을 처부수고 있었다.

반은 장막이 있던 외부로 나왔지만, 이곳에 황혼 기사단은 없었다. 만약 그들을 보았다면 당장 어딘가로 피신해 몸을 보호하라고 했겠지만.

‘기사단이니 제 한 몸 간수할 능력은 있겠지.’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반은 자신이 내면의 주도권을 되찾은, 이 낯설고도 개운한 감각을 잊기 전에. 모든 것을 끝장낼 생각이었다.

대검을 움켜쥔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주변을 물들인 붉은 오라. 하늘까지 뻗친 오라는 평소보다 배는 많은 양을 자랑했으나, 그저 고요하게 일렁일 뿐이었다.

모두 반의 의지 아래, 그의 뜻을 따르고 있다.

피는 충분히 모아 두었다. 대량의 오라를 개방한 그가 곧장 혈류검을 발동하고. 새빨갛게 물든 검신에서부터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은 낮은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혈검술 제2식. 사자(死者)의 강]

반은 하늘 위로 대검을 치켜들었다.

모든 것은 그의 의지로. 지금이라면 할 수 있었다.

창공을 가린 드높은 피의 파도. 100미터는 족히 넘을 법한 그 어마어마한 파도를 발견하자마자, 카델은 곧바로 임시 주둔지를 찾았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설마 사자의 강을 쓸 줄이야.’

물론 반의 스킬이 대부분 광범위 공격에 특화되어 있긴 했다. 강해질수록 공격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는 것 또한 당연하겠지.

하지만 코앞에서 목격한 그 장대한 기술은 카델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간신히 발을 뗄 수 있었던 건, 그 기술이 반의 것이라는 걸 인지한 덕분이었다.

쿠구구구—

밀려드는 피의 파도가 마을을 덮치기 시작했다. 카델은 주둔지를 감싼 장막을 강화하며 뻥 뚫린 문 너머를 응시했다.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짙은 피 냄새와 살기 어린 오라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광전사인가 보군요.”

가르엘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델과 눈을 맞추며, 틀렸냐는 듯 고개를 까딱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들이 쓰는 오라에선 피비린내가 나거든요. 강할수록 냄새가 짙어지니……. 과연, 카델 경의 말대로 대단한 기술을 쓰려나 봅니다.”

당연하다. [사자의 강]은 반이 가진 광범위기 중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필살기에 가까운 기술. 반의 공격은 단 한 마리의 마물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광전사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이죠?”

“그럼요. 몇 번 겪어 봤습니다. 지금처럼 진하게 풍기는 오라의 냄새도요.”

“그렇군요.”

“……부하를 버리려는 겁니까?”

뜬금없는 물음에 카델이 인상을 구겼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 정도의 오라를 끌어낸다면 광전사의 정신이 버티지 못합니다. 제가 몇 없는 광전사와의 만남을 똑똑히 기억하는 건, 그들이 강했기뿐만이 아니에요. 그 강함이 아쉬울 정도로, 쉽게 죽어 버렸기 때문이죠.”

가르엘이 봐 온 광전사들에겐 대의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통해 평화를 지키고자 했고, 평화를 위한 희생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힘이 닿지 않는 곳까지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한계를 뛰어넘은 힘을 끌어낸 대가로 그들은 미쳐 버렸고, 종국엔 죽고 말았다. 거룩한 대의에 맞지 않은 처참한 죽음이었다.

광전사를 부하로 두었다면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신경이 곤두설 만큼 압도적인 힘과 살기는, 분명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가르엘 경은…….”

카델은 잠시 신중하게 말을 고르더니, 가까스로 욕설과 비난이 제외된 문장을 완성했다.

“혼자만의 판단으로 너무 먼 곳을 보려 하는 경향이 있군요.”

“……이런. 이번에도 제가 틀렸나요?”

“네. 틀렸습니다.”

제 부하는 죽지 않아요.

단호한 대답을 끝으로, 주둔지를 감싼 장막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대지를 후려치며 범람하는 피의 파도.

거센 피의 물결이 장막 바깥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르엘은 내부를 흔드는 강한 진동 속에서, 새빨갛게 물든 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막힘없이 대지를 뒤흔드는 파도. 그 안에 가득 담긴 강렬한 오라의 흐름이 느껴졌다.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고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오라의 양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떻게 부하의 안전을 믿을 수 있는가?

자신이 단원을 신뢰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어딘가 맹목적이기까지 한 확신이었다. 그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뿐일까?

눈앞에 펼쳐진 오라의 범람과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장막을 강화하는 카델. 두 모습의 조화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가르엘 경! 거기서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좀 도우십쇼!”

상념에 잠겨 있던 가르엘을 깨운 것은 루멘이었다. 그는 벽에 처박힐 뻔한 주민을 끌어내며 짜증스레 외쳤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가르엘이 그를 돕기 위해 합류했다.

오라에 밀려 장막이 조금씩 찢어지려 했다. 카델은 최소한의 마력으로 장막을 보수하며 이 파도가 어서 주둔지를 지나치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시야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진동과 몸이 욱신거리는 충격이 사라지고, 시끄러운 굉음마저 희미해진 순간.

「기사 ‘반 헤르도스’ 각성 퀘스트 완료!」

「축하드립니다! 기사 ‘반 헤르도스’가 최대 등급을 달성했습니다.」

「기사 ‘반 헤르도스’의 호감도 및 충성도 제한이 해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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