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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델이 신경질적으로 심핵을 내던졌다.
거친 흙바닥에 나동그라진 심핵은 한번 제대로 그의 심기를 거슬러 보겠다는 듯 반짝반짝 윤이 나는 몸체 위로 카델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추었다.
“아하하! 나 마족의 심장은 처음 봐.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은데?”
그의 옆에는 치유를 마친 라이돈과 루멘이 서 있었다. 라이돈은 카델이 던진 심핵 앞에 쭈그려 앉아 열심히 그것을 관찰했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반짝이는가 싶더니, 냅다 심핵을 낚아챘다.
심핵을 꽉 쥔 손바닥 위로 냉기가 피어올랐다. 곧 심핵의 겉면을 덮는 얼음이 생성되었으나, 그의 마력이 심핵의 내부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우와, 단단하네.”
“장난치지 마라.”
루멘이 몸을 숙여 심핵을 빼앗아 들었다. 집중적인 치유술을 받은 덕에 처참했던 상처는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라이돈에게서 빼앗은 심핵을 다시 카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내 검기도, 황혼 기사단의 성검술도, 대장의 마법도 심핵엔 타격 하나 줄 수 없어. 다른 방법을 물색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잖아. 없는 방법 찾겠다고 시간 낭비하는 동안 심핵은 다시 에르고를 부활시킬 거야. 주민들의 마물화를 막을 방법은 심핵을 파괴해서 에르고를 완벽하게 죽이는 것뿐이라고.”
미리 챙겨 온 약초로 바닥난 마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그런데도 심핵을 파괴할 수 없었다. 끝까지 심핵을 둘러싼 ‘보호막’을 깨부수지 못한 것이다.
불행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었다.
‘부활한 에르고를 제한 시간 내에 처치할 수 있을까? 만약 놈이 그대로 도주해 버린다면……. 아니, 어차피 심핵을 깨지 못하면 모든 게 반복될 뿐이잖아.’
머리가 터질 것처럼 지끈거렸다.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이건 산 넘어 태산이었다. 차오르는 압박감을 버티기가 힘들다.
지그시 입술을 깨문 카델이 악의 근원이 따로 없는 심핵을 우울하게 내려보고 있던 그때.
“단장!”
저 멀리서부터, 반이 결 좋은 은발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그는 무사해 보이는 카델의 모습에 기뻐하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고, 카델은 반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인상을 구겼다.
“내가 적당히 하고 도망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서…….”
본인도 찔리기는 하는지, 반은 우물거리며 변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카델은 얕은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여기저기 관심을 쏟기에는 신경이 너무도 예민했다.
“됐어. 저기 들어가서 치유술부터 받고 와.”
“이제 뒷정리만 남은 거죠? 저도 도울게요. 가벼운 상처라 굳이 치료받을 필요는 없을…… 아, 맞다. 단장, 분신에서 이런 게 나왔는데, 한번 봐주세요.”
만약 반이 카델이 아닌 루멘에게 먼저 다가갔다면. 아니, 바닥에 처박힌 심핵의 존재를 눈치채기만 했더라도. 그가 카델의 앞에서 해맑은 얼굴로 파편을 꺼내 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창 불타오르는 카델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으니까.
하지만 반은 카델이 마족을 완벽하게 해치웠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며, 자신이 얻은 보라색 파편이 무언가 희귀한 보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좋은 것은 뭐든 단장에게.
그것이 반의 모토였기에, 그는 당당하게 파편을 꺼내 들었던 것이다.
반에게서 파편을 받아 든 카델의 손이 떨렸다. 물론,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심장 뿌리고 다니고 지랄이야, 미친놈이…….”
“……단장?”
“하나 부수는 것도 못 해서 이 꼴인데 덤으로 2개 더 추가? 장난해? 중요한 거면 한군데에 모아 두라고, 이 비효율적인 새끼야.”
뼈아픈 패착, 부하의 납치, 사지를 찢고 불태워도 되살아나는 징그러운 에르고의 생명력,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줄어드는 제한 시간과 진전 없는 작업.
그 모든 실패와 압박감이 어우러져 카델의 인내심을 갉아먹고 있었다.
반은 난생처음 듣는 카델의 흉흉한 욕설에 멈칫하며 눈치를 살폈고, 뒤편에 있던 루멘이 슬쩍 턱짓하며 그를 불러냈다.
“참 완벽한 타이밍에 적절한 선물을 주네.”
“단장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저렇게 화난 단장은 처음 보는데…….”
루멘은 조소를 머금은 채 반이 알지 못한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반의 안색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냥 혼자 가지고 있을 걸 그랬군.”
“파괴법을 알아냈을 때 꺼냈으면 예뻐해 줬을지도.”
반은 자신이 건넨 파편을 바닥에 처박은 채 무자비한 불길을 쏟아 내는 카델을 보며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내렸다.
“가서 치료나 받아.”
본인 명령도 안 듣고 버티는 꼴을 보면 대장이 정말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으니까.
그리 말하는 루멘은 얄밉기 그지없었으나,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자칫했다간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델이 고혈압으로 다시금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결국 반은 순순히 황혼 기사단을 찾아 이동했다.
“카델 화내는 거 무섭네! 숲 안이었다면 내가 어떻게든 부숴 줬을 텐데. 아쉬워라.”
“……날아서 환혹의 숲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지?”
“글쎄? 이틀이나 사흘?”
카델이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을 굴려 오른쪽 상단을 흘겼다.
「남은 시간 07 : 02 : 56」
남은 시간은 7시간.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엔 애매하고, 상식적인 방법을 밀어붙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카델은 뜨거워지는 머릿속을 냉철하게 가라앉히려 애썼다.
‘부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말도 안 되게 촉박한 시간이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 에르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이쪽이야. 시간 내에 심핵을 파괴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게임 속에서 에르고의 스킬, [심핵 보호]가 만들어 낸 보호막은 그 두께가 상당했다. 보통은 기사단의 ‘필살기 수치’를 모아 가장 공력이 높은 캐릭터의 각성 스킬로 한 번에 파괴했고.
‘당시에 내가 즐겨 썼던 각성기는 요젠의 필사(必死)였지.’
암살자 포지션 기사의 [필사]는 상대의 보호막을 단박에 꿰뚫는 어마어마한 딜량을 가졌기에, 사실 플레이어였던 그에게 에르고의 [심핵 보호]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간단히 깨부수고 체력이 1 남은 녀석에게 평타 한 대만 때려 주면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요젠도, 필사를 대체할 스킬도 없어.’
부하들은 최대 각성을 하지 못한 B급과 A급인 데다, 유일 S급인 라이돈은 능력치가 반감된 상태.
‘내가 7성의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당장 사용할 만한 스킬도 변변찮았다. 떠오르는 마법이 한 가지 있긴 했으나, 장소가 적절하지 못했으며,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데에 반해 리스크가 너무 컸다.
“하…… 미치겠네…….”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본 카델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답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그렇게 서서히 해탈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카델의 옆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진전은 있습니까?”
가르엘이었다. 웬일로 술병을 지참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시원스러운 미소와 딱 벌어진 어깨가 어우러져 어딘가의 성격 좋은 귀공자처럼 비쳤다. 한쪽이 가려진 그의 눈매는 묘하게 상대방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나른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카델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보시다시피.”
카델은 그을린 땅 위의 반들거리는 심핵을 눈짓하며 말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피해 과장되게 손부채질을 한 가르엘이 허리를 숙여 심핵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매끈한 겉면을 훑어내리며 말했다.
“치유 작업도 대충 끝나 가니, 한번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 보죠. 회복도 다 안 된 몸으로 괜히 힘 빼고 있지 말고요.”
“……그게 낫겠군요.”
“그건 그렇고…….”
건네준 심핵을 주머니 안에 우악스럽게 쑤셔 넣는 카델을 바라보며, 가르엘이 한쪽 눈을 휘었다.
“다음에 만날 땐 단둘이서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아쉽게 됐네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작업이었다. 카델은 그런 가르엘의 반반한 낯짝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차갑게 대꾸했다.
“정말 아쉬운 건 이런 상황에서조차 실력 발휘를 안 하는 어딘가의 단장이겠죠.”
“……흠? 그게 어디의 단장일까요?”
“저보단 가르엘 경이 더 잘 알 것 같습니다만.”
가르엘이 제 실력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도 돌파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위기였다.
“진지하게 돕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그런 시답잖은 농담은 넣어 두십쇼. 필사적인 사람 바보 만들지 말고.”
돌아선 등에서 찬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잠시 넋 놓고 카델의 뒷모습을 좇던 가르엘이 이내 머쓱한 표정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나 어지간히 쓰레기 같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