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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에르고의 목숨을 앗아 가기 위한 마법이었다. 자칫했다간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될 수 있었기에, 모든 마력을 한 점에 집중시켰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마법이었으나, 그만큼 효과는 뛰어날 것이었다.
그러나.
“네놈은! 네놈들은! 결코 이 몸을 죽일 수 없다. 죽일 수 없단 말이다……!”
에르고는 도무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저력을 발휘했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괴물이야?’
불 회오리는 외부에서 날아드는 점액을 전부 차단했다. 그러니 에르고가 장전해 둔 마법은 카델의 마력을 뚫을 수 없었다.
문제라면 에르고 그 자체였다.
그는 전류에 포박당하고 불 회오리에 휩싸인 상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 마력을 따라 샘솟는 점액이 카델이 애써 범위를 줄인 회오리 내부를 가득 메워 균형을 흔들고 있었다.
‘이대로 에르고의 마력을 이기지 못하면 회오리의 궤도가 비틀린다. 그것만큼은…….’
손을 벗어난 마력의 회수는 불가능하다. 특히 이 불 회오리는 카델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낸 마법.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테다.
만약 궤도의 수정이 불가능한 회오리가 주민들과 성기사들이 있는 임시 주둔지를 덮친다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나?’
회오리를 통제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마력을 꺼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에르고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게 된다.
‘늪의 파괴도 아직이야. 이대로 물러나면 타격이 너무 커.’
어떻게든 버텨 보는 수밖엔 없는 건가.
카델이 갈등하는 사이, 회오리는 허리를 꺾으며 휘청이고 있었다. 회오리를 위협하는 방대한 양의 마력이 느껴졌다.
‘선택을 해야…….’
한 번의 선택이 치명타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신중하고도 빠른 결단이 필요한 상황. 카델은 흘러내린 코피에 젖은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그 순간.
“기사단! 성검술 제2식을 전개하라!”
가르엘을 선두로 한 황혼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릉!
가르엘의 명을 따라 일시에 검을 뽑아 든 기사들이 일렬로 멈춰 서고, 그들의 검이 똑같은 각도로 하늘을 가리켰다. 검 끝을 향해 모여드는 눈부신 섬광.
이어지는 영창과 함께, 작은 점에 불과했던 섬광이 날카로운 공명음을 동반하며 점차 선명한 형태를 띠었다.
피잉—
열대로 정렬한 섬광은 곧 횡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경계선이 되었다. 계속되는 영창을 따라 그것은 폭과 길이를 늘리며 한 면을 만들어 갔다.
이윽고 완성된 거대한 벽. 백색의 마법진이 새겨진 거대한 벽은 카델과 그들 사이의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카델은 벽 너머에 있는 것이 임시 주둔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도 모르게 움직인 시선이 가르엘을 향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카델과 눈을 맞추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제 마음껏 싸우셔도 됩니다.”
“……그것참 고맙군요.”
대놓고 뒷짐을 지고 있는 꼴이 얄밉기는 하나, 회오리를 막아 줄 벽이 생긴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 것은 사실이었다. 어차피 지금 원군이 합세해 봤자 회오리의 컨트롤이 까다로워질 뿐이다.
‘이제 남은 건 모들렌 경이 무사히 늪을 파괴하는 것뿐이야. 늪은 에르고 마력의 정수다. 타격이 만만치 않을 테지. 거기에 모들렌 경을 보호하던 장막을 거둬 분산돼 있던 마력을 전부 회오리에 쏟아붓는다면.’
발악만으론 버텨 낼 수 없을 거다.
슬슬 떨림이 느껴지는 양팔에 바싹 힘을 주며, 카델이 다시금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남은 시간 08 : 10 : 06」
그는 제한 시간이 간당간당할 때까지 이 전투를 끌고 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콰아아아—
지상의 진동도, 느껴지는 부하들의 마력도, 전부 무시한 채 술식의 파괴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늪을 꽉 메운 채 솟구치는 빛기둥을 올려다보며, 모들렌은 천천히 검을 뽑아냈다.
“성공했다…….”
한층 짙어진 다크서클이 그가 느끼는 피로를 짐작케 했다. 성공적으로 늪을 파괴한 모들렌이 묵직한 몸을 움직여 구멍 위로 빠져나왔다.
“카델 경! 늪을 파괴했습니―”
그러나 상쾌한 지상의 공기를 제대로 들이마셔 보기도 전. 그의 머리 위로 두꺼운 불줄기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났다.
경악한 모들렌이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자, 가까운 곳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모들렌. 조심해야지. 나만큼 잘생긴 게 아니면 남자에게 머리털의 존재는 아주 중요한 거라고.”
“가, 가르엘 단장님?”
가르엘과 성기사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는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한 성검술 제2식, [심판대]를 발견하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롭게 충당된 기사들과 가르엘 단장까지 합세했다. 가르엘의 능력을 아는 그로서는 이보다 충만한 안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마른침을 삼킨 모들렌이 다시 카델을 찾았다. 홀로 마족을 견제하며 장막의 유지까지 해 주고 있었으니, 상당히 무리했을 거다. 가르엘 단장이 와 주었으니 이제는 물러나도 된다고, 모들렌을 그리 말하려 했다.
그러나.
“성공하셨군요, 모들렌 경. 장막을 거둬 갈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피해 주시길!”
내내 그를 둘러싸고 있던 바람결이 사라지며, 동시에 눈 안 가득 화려한 불의 향연이 들어찼다. 모들렌의 말문이 막혔다.
“저게…….”
처음 확인했던 불 회오리는 그대로였다. 그 자체로도 대단한 마법이긴 했으나, 지금은 더한 것이 추가되어 있었다.
바로 회오리를 휘감고 있는 또 다른 불줄기. 거대한 용의 형태를 띤 화염 마법이었다.
회오리를 휘감은 화룡이 불규칙적으로 아가리를 벌려 회오리 안쪽을 파고들었고, 그 안을 한바탕 헤집은 후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화룡은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회오리를 지탱하는 듯도, 그저 안에 든 것을 농락하는 듯도 했다. 마치 자아가 깃든 듯한 불줄기의 탐욕스러운 움직임에, 모들렌이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대단한 마법사라고 생각은 했지만…….’
소문으로만 들었던, 화염계 대마법사 마밀 키파. 마법 하나로 마물 수백 마리를 일망타진했다는 그 전설적인 인물의 싸움을 지켜본다면 바로 이런 느낌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마법이었다. 모들렌은 구멍을 빠져나오자마자 자신을 위협했던 불줄기가 용의 꼬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크아아! 크아아아악!”
그리고 그 화염 속에 갇혀 끊임없이 악을 내지르는 마족의 존재 또한.
빈틈없이 타오르는 불꽃은 내부의 그 어떤 것도 비치지 않았으나, 모들렌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죽어 가고 있군.’
더 이상의 반항은 무의미하다. 마족은 여기서 죽는다. 이 자비 없는 화염 속에서 멀쩡히 살아 나올 수 있는 생명은 존재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