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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액이 흘러넘친 바닥 위로 투명한 바람 장막이 생성됐다. 모들렌은 당황한 기사들에게 소리 높여 후퇴를 명했고, 그들은 카델의 보호 아래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미리 마법을 장전해 뒀나.’
카델이 장막을 거두기가 무섭게 곳곳에서 틀어막혔던 점액 기둥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기둥들의 사이에서, 에르고의 자그마한 동공이 번뜩였다.
“죽음을 자초하는 재주 하나는 높게 쳐주지.”
“입 닥쳐. 난 싫은 놈 목소리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올라와.”
카델이 양손 위로 마력을 응축했다. 영창 없는 마법이 곧장 정면을 향하며, 매서운 칼바람이 에르고가 자리한 민가를 휩쓸었다.
자비 없이 몰아치는 바람결이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반쯤 허물어진 목제 건물을 무자비하게 할퀴어 댔다. 폭풍에 휩쓸린 듯 단숨에 무너져 내린 건물. 지붕도, 벽도 사라진 휑한 공간에 남은 것은, 바닥에 덩그러니 선 에르고뿐이었다.
마력을 거둔 카델이 에르고에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모들렌 경. 저 녀석이 서 있는 곳 아래에 늪의 형태를 한 마법진이 있을 겁니다. 그걸 통해 위험한 마법을 영창 없이 사용하니, 우선적으로 부숴야 해요.”
“세상에 그런 마법진이 존재한다니…….”
“마족이잖습니까. 나름의 비기겠죠.”
“위험성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늪이 있는 곳까지 무사히 접근할 방법이 없어요. 장막을 유지한 채 움직인다면 마법진을 해제할 마력이―”
“엄호는 제게 맡겨 주시죠.”
카델이 곧장 모들렌의 몸을 감싸는 바람 장막을 생성했다.
바로 전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남자였다. 영창의 기미는 없었다.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싼 마력의 흐름에 모들렌의 눈이 동그래졌다.
카델은 그런 모들렌을 지나쳐 뒤편의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점액에 노출된 전원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제가 엄호할 수 있는 건 모들렌 경 한 분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주민들의 보호를 맡아 주시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황혼 기사단은 수많은 전장을 휩쓸며 성장한 강인한 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금 다친 것으로 전력에서 제외되기를 바라는 나약한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모들렌은 카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현재 기사들은 상당한 마력을 소모해 자가 치유는 물론 원거리 공격조차 불가했고, 다친 몸으로 끝없는 점액 폭탄 속에서의 근접전은 무리였다. 차라리 임시 주둔지의 기사들과 인원 교체를 하는 편이 나았다.
그동안 이쪽은 고작 자신과 카델, 두 명이서 마족을 상대해야겠으나.
‘……느껴지는 마력이 범상치 않아. 실패할 것 같지는 않군.’
카델의 차분한 고동색 눈동자는 아무런 두려움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동요를 숨길 수 있는 자는 몇 없다. 믿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가르엘 단장님이 도착하실 때까지 확실하게 마을을 지켜야 한다. 임시 주둔지의 기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너희는 주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서둘러라!”
기사들은 물러나기 싫은 기색이었으나, 그렇다고 모들렌의 명령에 불복하진 않았다. 카델은 기사들이 이동하기 전, 그중 한 명을 붙들어 세웠다.
“주둔지에 제 부하가 있을 겁니다. 마력의 회복을 돕는 약초가 있으니, 부상당한 성기사들에게 나눠 달라고 말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황혼 기사단의 성기사로서 경의 은혜는 결코―”
“빨리 뛰어가세요.”
“넵!”
그렇게 기사들이 물러나고. 카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에르고를 주시했다. 그는 기사들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어떤 공격도 개시하지 않고 있었다.
‘도망가도 상관없다는 눈치군. 어차피 주둔지의 주민들은 마물로 변할 테니, 일망타진할 기회라고 여기는 건가.’
「남은 시간 09 : 23 : 09」
시간은 충분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에르고를 찾아냈으니, 남은 9시간 안에 녀석을 처치하기만 하면 된다.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내 주지.’
더는 말도 안 되는 실수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공격을 전부 막아 드릴 테니, 모들렌 경은 붙잡히지 않고 저 구멍 아래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카델이 턱짓한 곳에 있는 것은, 처음 에르고가 등장할 때 뚫린 거대한 구멍이었다. 분명 늪은 저 아래에 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마족의 공격이 제가 아닌 카델 경에게 집중될 수도 있어요.”
“그럼 더 잘된 일이죠. 제 특기는 보호가 아니라 반격이니까요.”
가볍게 구부린 손안으로 푸른 전류가 덩어리졌다.
“그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람 장막을 생성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엔 전류라니. 설마 다속성 마법사?
놀란 모들렌이 반사적으로 입을 열기도 전. 카델이 만들어 낸 전류 덩어리를 바닥에 내리꽂듯 던졌다.
“신호를 드릴 테니 바로 뛰세요.”
충격을 따라 확 펼쳐진 전류가 에르고가 있는 전방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뿌리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진 전류는 서로의 몸체를 가로지르며 유연하게 나아갔고.
“잔재주를 부리는군.”
에르고는 전류를 차단하기 위해 점액을 난사했다. 점액에 맞은 전류 줄기는 그 안에 갇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묶인 전류는 일부일 뿐이었다. 대부분은 자유롭게 바닥을 헤엄치며 공격을 회피했으니.
“뭣……!”
그리고 순식간에 에르고의 발치까지 도달한 전류가 뒷걸음질 치는 그의 발목을 휘감았을 때.
“지금입니다!”
카델은 에르고를 잡아챈 전류의 위로 마력을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