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521)

“기사단! 장막의 술식을 강화하라! 퇴로를 차단해!”

마구잡이로 쏘아진 점액의 여파로 지붕은 휑하게 뚫려 있다. 그 살벌한 공격을 방어하느라 기사단은 제대로 된 전투에 돌입하지도 못했다. 장막 생성에 참여하지 않은 이는 모들렌뿐이었고,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눈앞의 마족을 놔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검을 휘둘렀다.

“부단장님, 마력의 소모가……!”

그러나 시간은 황혼 기사단의 편이 아니었다.

성기사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반쪽짜리 마법사에 불과했다. 그들이 다룰 수 있는 마력의 양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 부족함을 검술로 보충하는 것이 성기사란 존재였다.

그런데도 무리해서 마력을 쥐어짜 내는 것은, 에르고와 검술의 상성이 최악이기 때문.

그들은 점액을 차단하는 보호막과 그 위에 덧씌워져 에르고의 퇴로를 차단하는 광범위 장막을 이중으로 유지하기 위해 바닥난 마력을 어떻게든 긁어모으고 있었다. 공격을 위해 보호막 밖에 선 모들렌은 날아드는 점액에 검기를 흩뿌리며 외쳤다.

“마지막까지 마력을 쏟아부어라! 그 후엔 육탄전에 돌입한다.”

독을 다루는 원거리 마법사. 근접전에 들어서면 얼마 안 가 궁지에 몰릴 게 뻔하다. 그러나 장막이 사라졌다고 허겁지겁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성기사단이고, 기사는 어떠한 위기에도 물러남이 없는 법이다.

‘카델 경은 아직 멀었나…….’

이런 때엔 검술도 마력도, 자신보다 한참은 위인 가르엘 단장의 힘이 간절했으나. 아직 하첼란 마을에 있을 그보단 카델의 합류를 바라는 편이 나았다.

“슬슬 어울려 주기도 질리는군.”

가래가 끓는 듯한 지저분한 목소리. 모들렌이 날린 검기를 전부 차단한 에르고가 느긋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오만한 태도에 모들렌이 이를 갈았다.

“여유 부리지 마라. 네놈이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일은 없을 테니.”

진심이 담긴 차가운 단언에도 에르고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이곳을 살아 나갈 수 없는 건 너희들이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그들이 있던 집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에르고의 피부를 뒤덮은 점액의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땀처럼 뚝뚝 흘러내린 점액이 바닥을 적셔 갔다.

중심을 잡기 위해 하체에 힘을 주던 모들렌의 시선이 문득 아래를 향했다. 진동을 따라 서서히 벌어지는 나무 바닥의 틈새. 그 너머에는, 끓는 물처럼 부글거리는 점액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기사단의 장막은 바닥까지 보호하진 못했다. 모들렌이 부하들을 향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당장 밖으로 빠져나가!”

범람하는 점액에 나무판자가 들썩였다. 낌새를 눈치챈 기사들이 황급히 장막을 거두며 후퇴를 시도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크윽!”

“부, 부단장님! 점액을 피할 수가……!”

그들의 도주보다 점액의 상승이 빨랐다.

점액을 보호할 장막도, 피할 공간도 없다. 흘러넘치는 점액에 기사단의 부츠가 맥없이 녹아내렸다. 뒤이어 노출된 발바닥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동반했다.

하지만 고통에 무너져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다면, 곧 지하의 점액이 바닥을 뚫고 폭발할 것이었다.

“무시하고 뛰어라!”

지금 보호 마법을 영창해 봤자 늦는다. 발이 짓이겨지더라도 탈출이 우선이었다.

그리 판단한 모들렌이 멈춰선 기사들의 등을 떠민 그 순간.

콰아아—

출구에 근접해 있던 기사 한 명의 발밑에서부터, 굵직한 점액 기둥이 솟구쳤다.

“으아아악!”

“스텐!”

처절한 비명은 3초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기사를 삼킨 기둥이 빠르게 추락한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녹아내린 부하의 모습에, 모들렌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어떻게 이런…….’

아무리 불리한 싸움이었다지만, 자신들은 황혼 기사단이었다.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승리해 왔고, 수도 없는 위기를 넘어왔다.

수많은 전투를 이겨 낸 황혼 기사단의 단원. 어디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인물이, 이토록 쉽게, 이토록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보호 마법을 시전해야 했나? 처음부터 장막의 유지를 명령해야 했나? 마력이 아슬아슬하다고는 해도, 그쪽이 더 안전했을지 모른다. 적어도 부하가 저런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들렌이 자신의 판단에 대한 의심으로 굳어 있는 동안에도, 에르고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흔들리는 바닥에서부터 또 한 번의 점액 기둥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모들렌의 바로 코앞이었다.

“디체, 피해!”

뒤늦게 반응한 그가 입을 열었으나, 한 박자 늦은 목소리는 눈앞의 기사에게 닿지 못했다.

“맙소사…….”

발바닥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사들은 비명 대신 경악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황혼 기사단원으로 살아가며,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허망한 죽음. 그 비참한 감각이 그들의 전신을 옥죄고 있었다.

절망에 휩싸인 시선이 가라앉는 점액 기둥 속,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동료의 자리를 향했다.

하지만.

“흐, 흐어어…….”

처음의 기사와 달리, 두 번째 기둥을 정통으로 맞은 기사는 멀쩡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빠진 얼굴을 한 그의 주위로 투명한 장막이 드리워 있었다. 장막을 뚫지 못한 점액이 겉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장막……?”

“다들 어서 빠져나오십쇼!”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날아든 침착한 외침. 빠르게 돌아간 모들렌의 시선이 출구를 향하고.

“모들렌 경! 어서요!”

그의 떨리는 눈 안으로, 그토록 기다려 왔던 마법사, 카델이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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