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라이돈’의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현재 호감도: 50/100」
그 어이없는 호감도 상승이 라이돈의 무사 탈환을 증명하는 듯해, 카델은 숙인 고개 아래서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저분한 입술을 단장에게 들이밀지 마라.”
“요정의 축복인데?”
“웃기지 마.”
“반도 해 줄까? 자, 머리 줘.”
“꺼져.”
질색하는 반과 호쾌하게 웃어 대는 라이돈. 카델은 여전한 둘 사이에서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급했던 라이돈은 확보했어. 남은 건 에르고 토벌뿐이다.’
「남은 시간 10 : 05 : 47」
10시간.
에르고는 분명 마을 어딘가에 은신 중이다. 라이돈과 함께 있지 않다는 점이 의외이긴 했으나, 마구잡이로 손가락을 물어뜯는 흉포한 요정과 함께 시간을 때우기는 어려웠을 테다. 라이돈을 이곳에 숨겨 둔 채 가까운 은신처를 찾아 떠났겠지.
좁은 마을을 수색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찾아낸 에르고를 죽이는 방법.
‘반도, 루멘도, 황혼 기사단도 있어. 열 시간 안에 에르고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 가정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군.’
에르고의 상태는 처음부터 완벽하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격렬한 전투까지 치렀으니, 확연하게 약해졌을 것은 분명하다. 승산은 있다.
‘무조건 시간 내에 해치워야 해.’
절대 이 거지 같은 페널티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한 카델이 몸을 일으켰다.
“반, 임시 주둔지로 라이돈을 데려다줘. 기사단에게 치유술을 부탁하면 될 거야. 그동안 난 이 주변을 수색…….”
하지만 말을 다 끝맺기도 전. 카델의 굳은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루멘……?’
지상과 이어진 붉은 실. 여태 잠잠하던 마력의 실이,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진동하고 있었다.
⚔️
“루멘 경!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기사단! 장막을 펼쳐라!”
루멘은 자글자글 타들어 가는 흉갑을 벗어 던지며 눈을 치떴다.
‘저놈이었군.’
세 번째 민가를 수색하던 중, 지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기척을 감지한 루멘은 곧장 몸을 물리려 했으나, 함께 수색 중이던 몇몇 기사들의 움직임이 굼떴다. 결국 그들을 밀치며 보호한 대가로, 루멘은 지하에서 치솟은 점액의 일부를 뒤집어써야 했다.
기습적인 점액 기둥을 타고 등장한 마족. 에르고는 영창 중인 성기사들과 그 앞을 지키고 선 루멘을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군. 우둔한 종족이니 끝까지 알아채지 못하리라 예상했건만. 끌끌.”
곧 기사단과 루멘을 감싸는 돔 형태의 장막이 생성됐다. 빛의 마력을 머금은 투명 장막이었다.
“접근전은 불리합니다. 마법사가 필요해요. 이곳은 저희가 막을 테니, 카델 경을 불러와 주시죠.”
모들렌이 검을 빼 들며 말했다. 고요한 영창과 함께 그의 검날에 신성한 빛줄기가 휘감겼다.
흉갑까지 녹여 낸 점액이다. 모들렌의 말대로 평범한 접근전이 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 최고의 수는, 점액에 닿을 위험이 현저히 낮은 원거리 마법사의 참여.
모들렌의 제안은 타당했다. 하지만 루멘은 선뜻 알겠다며 움직일 수 없었다.
‘대장은 이미 한 번 저 마족에게 당한 전적이 있어. 아직 완벽하게 회복한 것도 아니고, 간신히 중독 상태에서 벗어난 것에 불과하다.’
말다툼이 남긴 어색한 감정의 응어리 때문에 카델을 마주하는 일을 꺼리는 것이 아니었다. 루멘은 또다시 카델이 마족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그리고 그동안, 에르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늪에 소량의 마력을 불어 넣었다. 황야에서 다뤘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넉넉한 마법을 준비해 둔 참이었다. 그가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리자, 늪에서 튀어나온 점액 덩어리들이 무차별적으로 민가의 내벽과 빛의 장막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퍽! 퍽!
점액에 뚫린 나무판자는 빠르게 썩어 들어갔고, 장막은 흘러내리는 점액을 따라 조금씩 구멍이 뚫렸다. 장막의 복구 속도와 점액의 발사 속도가 비등비등했다.
“장막 유지에 집중하라! 루멘 경의 퇴로를 확보해!”
모들렌의 검에 맺힌 빛이 눈 부실 정도로 환하게 응축됐다. 그가 선택한 기술은 찌르기. 한 점을 노린 찌르기를 따라 응축된 빛이 날카로운 검선을 그리며 쏘아졌다.
피잉—
폭발적인 근력과 그를 뒷받침해 주는 빛의 마력. 두 가지 힘의 결합은 웬만한 무인이 아니고서야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속을 이루어 냈다. 한 박자 늦게 번진 섬광의 잔상이 공격의 마무리를 알리고.
루멘은 본능적으로 모들렌의 검술에 시선을 빼앗겼다. 자신조차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이 고작일 공격이었다. 이것을 보통 이하의 체술을 가진 마법사가 피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 생각했으나.
“인간, 인간, 인간……. 조잡한 것들의 향연이로구나. 너희는 나를 죽일 수 없다.”
그의 경이로운 일섬은 에르고가 만들어 낸 점액 장막에 가로막혔다. 후드득 떨어지는 점액 너머로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역겨운 얼굴이 드러났다.
모들렌의 눈가가 짧게 경련했다. 그 역시 자신의 공격이 이토록 쉽게 차단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서둘러 주셔야겠습니다, 루멘 경.”
다시 한번 모여드는 빛줄기. 조용히 읊조리는 모들렌의 침착한 목소리에, 루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의 힘이 필요하다.’
적당히 몸을 사리며 내빼서는 절대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이었다. 에르고는 등장부터 아군의 경계심을 바싹 끌어 올리고 있었다.
여전히 카델의 상태가 불안하긴 했으나, 그는 용병단의 단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승패를 의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신이 아니겠는가.
‘이번엔 함께 싸울 수 있어.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지켜 주면 되는 거다.’
환혹의 숲에서처럼, 지원군을 부르기 위해 바스킨 마을을 떠났을 때처럼. 뒤늦게 알아챈 사고에 무력함과 울분을 느낄 일은 없다.
“조금만 버텨 주십쇼.”
그대로 등을 돌린 루멘이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반지와 이어진 붉은 실은 맞은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속도라면 늦을 일은 없어.’
빛의 장막을 빠져나온 그가 붉은 실이 만들어 낸 가느다란 길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 유명한 황혼 기사단. 그곳의 부단장이 내지른 일격을 너무도 손쉽게 막아 낸 마족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게 불안한 예감을 떠안은 채 실을 따라 나아가려던 순간.
끄르륵. 꾸룩.
무언가 질척이며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뒤편에서부터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루멘은 날아드는 살기를 피해 재빠르게 몸을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스치는 거대한 점액 덩어리. 곧장 검집에 손을 올린 루멘의 표정이 구겨졌다.
“네놈이 어떻게…….”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에르고. 황혼 기사단이 붙들고 있어야 할 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