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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델은 거의 눈이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안쪽이 온통 점액 범벅이군요. 조심하세요, 단장.”
수색하는 민가의 내부마다 녹색 점액이 가득했다. 처음 생존자들을 구출할 땐 보이지 않던 흔적들이었다.
‘생존자들을 전부 한곳에 몰아넣는 바람에 남은 집들은 완전히 방치 상태였어. 그걸 이용해 여기저기 대놓고 헤집어 놓은 거야.’
최소 인력을 제외한 모두가 그를 추적하느라 바쁜 틈을 타 안전한 장소를 선점한 것이다. 뚝뚝 떨어진 점액 사이로 흩뿌려진 핏자국을 발견한 카델이 이를 갈았다.
어둡게 색이 바랜 핏자국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에르고에게 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녔을 라이돈을 생각하니 절로 울화가 치밀었다.
“……다음 집으로 가자.”
흔적도 과하게 남겨 둔 데다, 마땅히 몸을 숨길 만한 장소도 없다. 이곳은 교란용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 판단한 카델이 미련 없이 집을 나서려던 순간.
쿵!
바닥이 울렸다. 멈칫한 카델이 반을 바라보고. 반 또한 울림을 감지한 듯 몸을 바로 세웠다.
“움직이지 마세요, 단장.”
반이 대검을 빼 들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울림이 일었을 때.
콰지직!
반의 검날이 망설임 없이 바닥을 꿰뚫었다. 힘을 주어 오라를 개방하자, 검신을 붉게 물들인 오라가 창처럼 날카롭게 뻗쳐 바닥 아래의 공간을 마구잡이로 내리찍기 시작했다.
쾅! 투쾅!
요란한 소음을 따라 집 안이 진동했다. 격렬한 오라의 몸부림을 버티지 못한 나무판자가 부서지며 아래의 텅 빈 공간이 차츰 드러났다.
새까만 지하를 간헐적으로 비추는 붉은 오라의 폭풍. 카델은 낙뢰처럼 내리찍히는 매서운 오라 사이에서, 처량하게 나뒹구는 작은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다. 오라가 비춘 엷은 금발 머리를 확인한 카델이 급히 팔을 뻗었다.
“라이돈!”
기겁한 외침과 함께 반의 오라를 막는 불의 장막이 생성됐다.
“라이돈이요……?”
뒤늦게 외침을 들은 반이 즉시 오라를 회수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둠 속을 살피자, 카델이 만들어 낸 불의 장막 아래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마족은 없는 것 같아. 일단 내려가 보자.”
만약 이곳에 에르고가 있었다면 분명 장막을 생성했을 거다. 음침하게 기척을 숨기려 했어도, 라이돈이 맥없이 오라에 공격당하도록 두진 않았겠지. 그토록 탐내던 먹잇감이 아니던가.
무슨 연유에서인진 모르나, 에르고는 라이돈을 이곳에 홀로 버려두었다. 카델은 망설임 없이 지하로 몸을 던졌고, 반 또한 그를 뒤따랐다.
어두운 시야를 밝히기 위해 곧장 여러 개의 불덩이를 생성시킨 카델이 고개를 돌렸다. 좁은 지하 속에서 라이돈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바닥에 웅크린 작은 소년을 찾아낸 카델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반은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에 주위를 경계했고, 카델은 쓰러져 있는 라이돈을 일으켰다. 작은 불꽃에 비친 얼굴이 엉망이었다.
‘애를 얼마나 쥐어팬 거야? 제정신이야?’
척 봐도 심한 일을 당한 꼴을 보니 속이 타들어 갔다. 눈을 가려 둔 하얀 천은 검붉은 핏물에 흠뻑 젖었고, 드러난 뺨과 이마에는 여기저기 날카로운 물건으로 긁힌 듯한 상처가 났다. 게다가 입 안에 대체 뭘 물린 건지, 한가득 부푼 뺨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으부붑! 우붑!”
“이제 괜찮아, 라이돈. 안심해도 돼.”
카델은 계속해서 무언가 말하려 하는 라이돈의 뺨을 눌러 입을 벌렸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빼 주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라이돈이 여태 머금고 있던 것의 정체를 발견한 순간. 카델은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으퉤퉤! 퉷!”
라이돈은 그런 카델의 위로 물고 있던 것을 그대로 뱉어 냈다.
주름진 마디, 기다랗고 뭉툭한 뼈대, 뜯긴 단면 아래로 너덜거리는 살점. 더 살펴볼 것도 없다. 이것은 손가락이었다.
카델은 두툼한 손가락 세 개가 허벅지를 타고 굴러떨어지는 둔탁한 감각에 발작적으로 몸을 털었다.
“으엑, 맛없어.”
“소, 손가락을 왜 물고 있어!”
“카델, 팔 좀 풀어 줘.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패닉에 빠진 카델을 대신해 묶인 팔을 풀어 준 것은 반이었다. 그는 카델의 주변에 떨어진 손가락을 발끝으로 툭 건드리며 인상을 구겼다.
“네 손가락이냐? 라이돈.”
라이돈은 대답 대신 본인의 멀쩡한 열 손가락을 쫙 펼쳐 보였다. 그러고는 눈을 가린 흰 천을 거칠게 풀어 헤쳤다.
뒤이어 드러난 붉은 눈동자.
‘저건…….’
그를 확인한 카델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자꾸 건들길래 입 닿는 대로 물어뜯었더니 저렇게 모였어. 죽일 기세로 때리더니, 결국 죽이지도 못하고 그냥 떠나 버리더라! 아하하!”
피투성이였다. 다 터진 실핏줄이 흰자위를 붉게 물들였고, 목적이 분명한 상처들이 아슬아슬하게 눈가를 스쳐 자리 잡고 있었다.
카델은 그런 라이돈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가까이서 살피니 가느다란 사선을 따라 미묘하게 어긋난 동공의 형태가 눈에 띄었다.
“너 눈이…….”
“응?”
“눈…눈 보이는 거 맞아? 나 보여? 라이돈,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언뜻 봐도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카델은 혹시라도 라이돈이 영영 앞을 볼 수 없게 될까 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도, 라이돈의 시선은 똑바로 카델을 향했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미소 지은 그가 카델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재밌는 표정 하고 있네, 카델. 내가 걱정됐어?”
“……보이는구나.”
참았던 숨을 내쉰 카델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라이돈은 그런 카델의 머리 위로 짧게 입을 맞췄다.
“많이 걱정했구나.”
그리고 간지러운 웃음소리를 따라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