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남짓의 수색.
어느 정도 예상했다시피, 소득은 없다. 카델은 욱신거리는 허벅지를 두드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그들이 있는 장소는 바스킨 마을과 인접한 작은 숲이었다. 라이돈의 후각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더 마족의 냄새가 짙은 곳을 찾아온 결과였다.
“날개만 사용했어도 훨씬 편하게 갔을 텐데. 카델은 고난을 즐기는 편이야?”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태평하게 걸어가던 라이돈이 물었다.
“그딴 걸 즐기겠냐.”
편하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카델도 굴뚝같다. 하지만 잠깐의 편의를 위해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노릇. 설설 고개를 저은 그가 라이돈을 타일렀다.
“굳이 그런 아티팩트까지 동원해서 네 외형을 바꾼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 세계에서 네 날개를 자랑스럽게 펼치고 다니는 건 아직 일러. 괜한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딱히 보는 인간도 없는 것 같은데.”
“없어도 마찬가지야. 우린 지금 마족을 찾고 있는 거잖아? 대놓고 하늘을 날아다니면 그쪽에서 먼저 우릴 찾아낼걸.”
“우와, 치밀해라!”
칭찬인 건지 비꼬는 건지. 샐샐 웃는 낯짝에 괜히 기분이 떨떠름해졌다. 짧게 혀를 찬 그가 척척 나아가는 라이돈의 뒤를 따랐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으나, 카델은 이번 사태의 범인이 마을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 한들, 근처에만 있다면 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게임 속 [아군 증식]은 스킬을 시전하자마자 곧바로 마물이 소환됐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모돼. 그동안 계속 옆을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 놈은 혹시 모를 충돌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을 거다.’
가벼운 싸움의 가능성조차 배제하며 소모된 마력을 충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바스킨 마을의 함락 과정을 들었을 때부터 느꼈지만, 필시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일 테다.
‘그런 성격을 다루는 게 제일 까다로운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냅다 들이받는 부류는 상대하기 쉽다. 상대적으로 침착하게 받아칠 수 있는 이쪽이 유리하니까.
하지만 신중하게 본인의 한계를 파악하며 그에 맞는 최선의 행동을 추구하는 부류는 다르다. 아무리 카델이 대부분의 적에 대한 공략법을 숙지했어도, 상대는 알고 싸워도 힘겨운 마족이다. 반격의 수까지 염두에 두며 상대하기는 버겁다.
‘결국 마지막까지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쪽이 승기를 거머쥐게 될 거야. 상대의 기술이라면 전부 파악하고 있으니, 당황하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인 카델이 비장하게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동안 별말 없이 앞서 걷던 라이돈이 휙 뒤를 돌았다.
“카델!”
“……엉?”
“나 코 아파.”
“코가 아프다고?”
뜬금없는 발언과 함께 터벅터벅 다가온 라이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제 코끝을 톡톡 건드리며 씩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소년이었다. 천사가 따로 없는 해사한 얼굴에 말문이 막히길 잠시. 정신을 다잡은 카델이 부드럽게 뻗은 라이돈의 코를 살피며 말했다.
“상처는 없는데.”
“상처는 없어. 하지만 계속 역겨운 마족 냄새에 후각을 곤두세웠잖아. 당장 코가 썩어 문드러진대도 이상할 게 없을걸?”
“마족 찾을 때까지만 잘 붙잡고 있어 봐.”
“하하, 농담이지?”
농담 반 진담 반이다. 라이돈의 코를 혹사시킨 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수색을 멈출 생각은 없다.
잠시 고민하던 카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럼 조금만 쉴까?”
“휴식은 필요 없어. 그것보다는…….”
말꼬리를 늘어뜨린 라이돈이 불쑥 팔을 뻗어 카델의 목을 감싸 왔다.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힘을 따라 허리를 숙이자, 라이돈의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늘게 휘어진 눈매 속 붉은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뽀뽀해 줘.”
“뽀…… 뭐?”
“뽀뽀해 주면 나을 것 같아. 빨리.”
뽀뽀라니. 그런 쓸모없는 단어가 이 세계에도 존재했단 말인가.
굳어 버린 카델이 멀뚱히 라이돈을 바라보자, 그가 조르듯 턱 끝을 올렸다. 만년빙도 녹아내릴 법한 애교였다. 그 여우 같은 표정을 고스란히 눈 안에 담아내며, 카델은 생각했다.
‘잊고 있었네. 이 게임 정체성.’
질리도록 싸워 대느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여성향’ 게임 속이라는걸.
반과는 어떻게든 플래그를 세우지 않기 위해 애를 썼었고, 루멘과는 투덕거리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초반을 제외하곤 이런 깜짝 이벤트가 발생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라이돈은 그의 새로운 부하였다.
‘이거…… 해 줘야 하나……?’
카델은 그답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예전의 그였다면 헛소리 말라며 박치기나 날리고 말았겠으나.
‘호감도가 오르면 충성도도 오르잖아?’
현재의 그는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상태였다. 적당한 선에서라면, 여성향 게임의 농간에 놀아나 줄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입단할 새 기사들의 기본 충성도는 반만큼 높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멋진 단장의 모습을 꾸며 내는 것보다 이러한 간단한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 훨씬 손쉬울 테니까.
‘게다가 지금 라이돈은 귀여운 동생 같을 뿐이고…….’
동생한테 하는 뽀뽀쯤이야 그다지 거북스럽지도 않다. 190이 넘는 거구의 본체였다면 상당히 망설여졌겠으나, 지금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깜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라이돈은… 뭐랄까. 아역 배우로 활동하는 친척 동생을 보는 듯하달까.
빠르게 결심을 마친 카델이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손길로 라이돈의 복슬복슬한 머리칼을 쓸어 올리더니, 드러난 이마 위로 다가간 입술이 가벼운 쪽 소리를 냈다.
입맞춤은 짧은 소리만큼이나 빠르게 끝났다. 훅 물러난 카델의 시야 속으로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라이돈의 얼굴이 들어찼다. 카델을 끌어당기던 팔이 스르륵 내려갔다.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헤집던 카델이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됐지? 해 줬으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이쯤 하고, 빨리 마족이나 찾아 줘.”
본체는 잊자. 본체는 잊어.
최선을 다해 기억 속 라이돈의 본체를 지워 낸 카델이 시선을 돌리고. 그와 동시에, 반가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기사 ‘라이돈’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현재 호감도: 47/100」
고심해 실행한 스킨십이 제 몫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받자 내장까지 간지러워졌다. 팔뚝을 벅벅 문지르며 고개를 털어 내는데, 함박웃음을 머금은 라이돈이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정말 해 줄 줄은 몰랐는데. 카델이라면 저리 꺼지라고 밀칠 줄 알았거든! 아하하!”
거의 그럴 뻔하긴 했지. 예전이라면 밀치고도 남았다. 카델이 아무 말 없이 볼만 긁적이고 있으니, 귓가로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닿아 왔다.
“다음엔 제대로 된 걸 기대할게.”
이건 못 참겠다. 진저리를 친 카델이 바싹 들러붙은 라이돈을 거칠게 밀쳐 냈다. 순순히 밀려 난 라이돈의 실없는 웃음소리가 둘 사이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