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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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아이와 함께 집에 머무르게 했고, 라이돈은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해 반의 옆에 붙여 두었다. 그렇게 카델은 루멘과 함께 마을의 민가들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출입문마다 펴 발라진 점액을 피해 화염 마법으로 문을 불태웠고, 내부를 탐색해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발견한 생존자는 곧장 집 밖으로 끌어내 반과 라이돈이 있는 집으로 이동시켰다.

그 지독한 노동을 스무 번쯤 반복하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카델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사용한 마력은 그리 많지 않지만, 생존자를 찾고 그들을 옮기는 육체노동이 힘겨웠다. 아무리 대부분의 일을 루멘에게 맡겼다고 한들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그는 여전한 악취, 여전한 고요 속에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렴풋이 떠오른 보름달이 기다란 구름에 가려 흐릿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마을 주민 전원 사망이라…….’

퀘스트의 실패 페널티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퀘스트야. 나한테 뭘 바라는 거냐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매번 끔찍했던 페널티이긴 했지만, 용병단의 손해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갈 줄이야.

떨리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퀘스트의 성공 조건은 이 역병의 전파자인 마족을 처리하는 거겠지. 그걸 실패한다면, 지금까지 발견한 생존자는 전부 죽는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족을 쓰러뜨리지 못한다고 해도, 주민들을 보호할 수단은 많다. 적린 용병단이 나서서 주민을 보호해도 되고, 화이트 왕국의 근위병들이 나설 수도 있다.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무시한 채 한 번에 우르르 사망한다는 것은 너무도 억지스러웠다.

‘시스템이 어떻게든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겠다는 엄포인가? 그 마족을 해치우지 않는다면, 무조건 다 죽여 버리겠다는 거야?’

시스템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

물론 이 시스템은 현실 세계에 살던 자신의 영혼을 게임 속으로 끌고 올 정도의 힘은 있었다. 시스템이 가진 힘은 그야말로 미지. 그렇지만 처음의 ‘빙의’를 제외하고, 시스템이 이 세계에 과도한 간섭을 행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페널티도 전부 퀘스트의 실패로 인해 벌어질 흐름을 예견한 것에 가까웠지.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런 흐름이 발생하게 된다는 쪽이 더 현실적이야.’

전원 사망의 흐름이라니. 병세의 악화, 죽이지 못한 마족의 습격 등등, 떠오르는 일이라면 많다.

하지만, 전부 막지 못할 절대적인 흐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개를 내린 카델이 단단하게 가라앉은 눈을 빛냈다.

‘언제나처럼 실패는 염두에 두지 않아. 하지만 이런 다짐 하나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내걸 수는 없다. 페널티를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는 수밖에.’

다수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다. ‘무조건 클리어할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 따위의 의욕으로 넘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퀘스트의 성공 여부를 떠나, 페널티의 비극을 피해 보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는 해 두어야 했다. 그것이 이 세계의 생명을 위한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

결연한 자세로 등을 돌리자, 그의 앞으로 마지막 생존자를 운반하고 온 루멘이 다가왔다. 그 또한 반나절을 뛰어다니며 축 늘어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날랐다. 힘들 법도 하건만, 조금 숨이 거칠 뿐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이 없었다.

“여기 서서 뭐 해, 대장. 추우니까 들어가자.”

“생존자들 상태는 어때?”

“대부분 의식이 없어. 더 먹일 수 있는 기력단도 없고.”

“그래…….”

“우리끼리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화이트 왕국의 관문을 넘어가서 직접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은데.”

동의하는 바였다. 카델 또한 다 죽어 가는 주민들을 놔두고 범인을 찾아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간 ‘역병 전파자’를 찾기도 전에 주민들이 몰살당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카델이 말했다.

“가장 급한 건 치유사야. 이 사달을 벌인 마족에 대해선 짐작 가는 바가 있으니 어떻게든 처리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론 주민들을 치료할 순 없겠지.”

“마족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다고?”

“대충은. 위치까진 모르지만, 라이돈이 마족의 냄새를 맡을 수 있잖아. 시간만 들이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기왕이면 치유와 전투 능력을 전부 갖춘 신성 기사단을 불러오는 편이…….”

화이트 왕국의 신성 기사단.

본인이 직접 뱉은 말이면서, 엄청난 소리를 들은 것처럼 카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되뇌며 놀란 얼굴로 굳었다.

그리고 갑자기 끊긴 대화에 루멘의 의아한 시선이 닿아 올 무렵. 카델은 절로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지? 화이트 왕국! 화이트 왕국에는 그 녀석이 살잖아!’

연달아 터진 사건 때문이었을까.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

「히어로 오브 나이츠」 속 카델의 최애.

[타락 성기사, 가르엘 몬자시]

치유 능력과 전투 능력을 전부 갖춘 성기사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태생 S급 기사. 힐이면 힐, 딜이면 딜!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데다 스킬 하나하나 버릴 게 없어 카델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던 그 녀석!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카델은 우두커니 선 루멘의 어깨를 확 잡아챘다. 그러고는 당황한 그의 몸을 앞뒤로 흔들며 외쳤다.

“루멘! 무조건 왕국 직속 성기사단! 직속 성기사단을 불러와야 해!”

“뭐?”

“굳이 부풀리지 않아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직속 성기사단을 보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알겠어?”

“그걸 왜 나한테―”

“도미닉가의 차남이잖아, 너! 너 정도는 되는 애가 심각성을 설명해야 듣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어? 날이 밝는 대로 곧장 관문을 넘어서 지원을 요청하도록 해.”

무언가 항의하려는 루멘의 어깨를 거세게 두드리며, 카델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난 우리 임시 단원의 능력을 믿어. 할 수 있다, 루멘!”

루멘은 엄지를 추켜세우며 환히 웃는 카델을 향해 헛웃음을 뱉었다. 하지만 카델은 거리낄 게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물은 단 한 사람. 언제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남몰래 고대하던 그의 1등 기사였으니.

‘가르엘 몬자시……. 그 녀석이 있다면 생존자들의 보호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

치솟는 기대감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카델은 자꾸만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꾹 누르며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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