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 냄새?
코끝을 가볍게 문지르는 라이돈을 바라보며, 카델은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핀하이족이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고는 해도, 역겨운 마족의 냄새라면 딱히 정보를 얻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어요.’
요정 왕 하이론은 마족의 움직임을 ‘냄새’로 알아챌 수 있다고 했다.
‘핀하이족은 마족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이 바스킨 마을에 마족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말이 된다.
‘아니면 아직 이곳에 그 마족이 남아 있든가. 조심해야겠는걸.’
아직 마족의 정체는 알지 못하나, 그들은 게임 내 등장하는 그 어떤 마물보다도 강력했다. 데폴로 신전의 마녀만 해도 그렇다. 만약 카델이 그 마녀의 공략법을 알지 못했다면. 루멘과 반은 물론, 카델의 생사 또한 불분명했을 것이다.
금세 불안해진 카델이 라이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마족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도 느껴져?”
“으음…….”
잠시 턱을 치켜들고 공기를 들이마시던 그가 이내 못 참겠다는 듯 혀를 빼물었다.
“사방에서 나. 이 마을 전체가 역겨워.”
……마을 전체가? 마족이 마을 전체를 채울 만큼 많단 말인가? 그럴 리가. 아직 마족들이 본격적으로 무리 지어 활동할 시기는 아닐 텐데.
마계 해방 스토리는 주인공이 정식 기사단이 된 시점부터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그 전까지는 해방의 전조만 보이며 단서를 남겨 둘 뿐.
그렇게 카델이 기억도 안 나는 스토리 흐름에 대해 고민하는데, 앞서 걷던 반이 돌연 그를 불렀다.
“단장! 이것 좀 보세요!”
외침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어느 민가 앞에 서 있는 두 부하의 모습이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니 반이 민가의 정문을 가리켰다.
작은 뜰 하나 딸리지 않은 낡은 목재 건물.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허물어진 집이었으나, 그것보다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이건…… 대체 뭐지?”
정문이 낡다 못해 썩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 거무죽죽한 나무문을 응시하는 카델의 표정 또한 점차 어두워졌다.
‘문이 까맣게 썩어 들었어. 단순히 오래됐거나 관리가 안 됐기 때문이 아니야. 썩은 부위에 펴 발라진 이 녹색 액체……. 이게 원인인 것 같은데.’
칙칙하게 썩어 든 검은 자국이 문 곳곳에 잔뜩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뭉쳐 있는 녹색의 점액질. 상당한 점성으로 들러붙은 점액질은 검은 자국을 따라 문 전체를 뒤덮었다.
“흠? 이 냄샌가 본데?”
함께 문을 관찰하던 라이돈이 대뜸 말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이내 확신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액에서 마족의 냄새가 나. 바깥 세계에선 마족이 내키는 대로 침도 뱉고 다니는구나? 아하하! 더러워라!”
이곳이 마계 뒷골목도 아니고, 마족들이 심심할 때마다 여기저기 침을 뱉고 다닐 리는 없다. 그러나 카델은 사실을 정정해 주는 대신, 라이돈의 말에 주목했다.
‘심각한 악취, 녹색의 점액질. 마족의 침?’
스토리에 관해서는 전혀 기억나는 바가 없었지만. 떠오른 키워드를 조합해 보자면, 짚이는 범인이 있기는 했다.
‘분명 그런 더러운 특성을 가진 마족을 상대해 본 기억이 있단 말이지.’
스킬은 물론 생긴 것도 불쾌해 첫 공략을 제외하곤 무조건 오토 전투를 돌려 뒀었다.
대충 후보를 추려 낸 카델이 불안함에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동안 나름의 결론을 내린 듯, 루멘이 검집 위로 손을 올렸다.
“뭔가 수상하군. 일단 내부를 확인해 보지.”
그 거침없는 행동에 반이 인상을 구겼다.
“설마 문을 통째로 베어 낼 생각이냐?”
“이 더러운 문에 대고 노크를 할 순 없잖아.”
“그렇다고 남의 집을 마음대로 부숴? 귀족 도련님 손에는 금칠이라도 되어 있나? 더러운 게 묻으면 그냥 닦아 내면 될걸.”
반은 ‘깔끔한 척은 제일가는 도련님’이라며 루멘을 비난했고, 루멘은 ‘그럼 네가 노크하든가’라며 빈정거렸다.
그리고 그런 둘을 라이돈이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침에 닿으면 다 썩어. 손이든 칼이든.”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핀잔을 주기에는, 라이돈은 그들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 자명한 요정족. 마족을 냄새만으로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니, 점액에 대한 정보 또한 정확할 것이다.
라이돈은 조용해진 둘을 헤치며 앞으로 나섰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문 앞을 기웃거리던 그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불시에 손을 뻗어 점액을 쿡 찍었다.
“너 뭐 하는―!”
“야!”
방금 ‘그 침에 닿으면 다 썩어.’라고 말한 장본인이 아니던가? 상식 밖의 행동에 반과 루멘이 기겁하며 라이돈을 잡아끌었다.
라이돈은 뒤로 질질 끌려가면서도 점액이 닿았던 자신의 손끝만 살펴보았다. 그의 손가락 위로는 얇은 얼음이 골무처럼 씌워져 있었는데, 손톱만큼 묻은 점액이 지글거리며 그 얼음을 녹여 내고 있었다.
가볍게 손을 털어 얼음과 함께 점액을 떨쳐 낸 라이돈이 고개를 돌렸다.
“흐음. 역시 지금 마력으로는 힘들겠네. 카델!”
“……응?”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문을 통째로 태워 버려야 할 것 같아.”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카델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라이돈의 말을 따라 문으로 옮겨 간 시선이 사뭇 진지했다.
‘밖을 돌아다니는 주민은 한 명도 없었어. 그렇다는 건 전부 어딘가로 피신했거나, 아직도 집 안에 있다는 소리겠지. 만약 후자라면…….’
노크조차 할 수 없게 문 전체가 점액으로 뒤덮여 있다. 의도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외부의 도움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결계. 당연하게도, 보호가 아닌 고립의 용도다.
‘집 안에서 이렇다 할 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사람이 있다면 좋은 징조는 아니군.’
기척을 낼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마족의 점액으로 뒤덮인 마을. 좋은 예감이 들 리 없다.
일행을 뒤편으로 물린 카델이 마력을 끌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어쩌면, 이미 다 죽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