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521)

쿠구구구—

대기가 진동했다. 강렬한 진동에 몸속까지 그 떨림이 전해졌다. 한계까지 속도를 높인 카델의 필사적인 시선이 이 불길한 변화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곧 그의 눈 안으로, 하늘의 중심에서부터 뻗쳐 오는 거대한 얼음 장막이 들어찼다.

“저건 대체…….”

결계였다. 불청객을 가두기 위해 숲을 통째로 삼켜 버린, 무식할 정도로 광범위한 결계. 무서운 속도로 땅과 가까워지는 결계를 올려다보며, 카델의 절망적인 눈빛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루멘. 그리고 여전히 의식을 잃은 반.

‘……이건 진짜 너무하네.’

카델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빌어먹을 선택의 순간이 찾아와 버렸다는 것을.

죽고 싶지 않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사람보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가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카델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살고 싶었다.

‘결계의 완성 속도가 너무 빨라. 이대로 달리기만 한다면 아무리 운이 따라도 탈출할 수 없다.’

평범한 달리기로는 결계가 완성되기 전까지 탈출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속도 증가 버프를 일행 전원에게 걸어 볼 수도 없다. 카델의 남은 마력으로는 한 명분의 버프를 걸어 주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무리해서 마법을 펼쳐 봤자 루멘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 덩이가 늘어날 뿐이다.

텁텁한 입 안으로 핏물이 고였다. 카델은 묽은 피가 섞인 침을 뱉어 내곤 입가를 문질렀다.

‘끌어낼 수 있는 마법은 한 방 정도.’

한 톨도 남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한 마력이었다. 그것을 전부 긁어낸다 해도, 해 볼 수 있는 마법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카델은. 지금 자신이 어떤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명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광범위 결계라고? 요정이란 족속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게 종특인가? 대장, 내 손 잡아. 여기선 최대한 빠르게 돌파하―”

“루멘.”

그는 내밀어진 루멘의 손을 응시했다. 수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굳은살이 잔뜩 박인 단단한 손바닥. 돌아오는 시선이 의아했다. 루멘은 답을 기다리면서도 어서 잡으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하지만 카델은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루멘에게 업힌 반의 등 뒤로 손을 올렸다.

‘만약 무사히 스토리의 최종 장을 볼 수 있다면, 마지막엔 꼭 이 둘이 있었으면 좋겠어.’

가끔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충성을 바치는 반과, 얄밉지만 믿음직스러운 루멘을 데리고. 이 세계의 끝을 보고 싶었다. 함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

그것이 카델의 선택이었다.

“대장……?”

카델이 크게 숨을 골랐다. 잘게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문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루멘을 향해 말했다.

“루멘. 날 믿어?”

“허? 이 상황에서 그런 얘길 왜…….”

“대답해. 날 믿어?”

뜬금없는 질문 속에서 무언가 이상한 기류라도 감지한 것인지. 루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또 무슨 기행을 벌이려고.

그가 담아낸 카델의 표정에선 숨길 수 없는 결연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불안했다. 카델은 언제나 그의 예상을 벗어났고, 언제나 그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놀라기보다 안도하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숲을 벗어나 함께 살아났다는 것에 대해, 웃으며 안도하고 싶었다.

“대장이 쉽게 죽지 않을 사람이란 건 믿어.”

얼핏, 카델의 입가로 옅은 미소가 스친 것도 같았다.

“그거면 됐어.”

나지막한 대답과 함께 반이 업힌 등을 타고 어마어마한 풍압이 느껴졌다. 몸통을 꿰뚫을 기세로 끼쳐 오는 묵직한 강풍.

그 힘을 버티지 못한 루멘과 반의 몸체가 전방을 향해 튕겨 나갔다. 거의 발사되듯 공중에 뜬 몸에 의식을 잃은 반의 무게까지 더해지니, 아무리 루멘이라도 쉽사리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크윽!”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며 밀려 나간 루멘이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반동을 버텨 냈다. 힘겹게 정신을 차린 그가 곧장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켰으나.

엉망이 된 루멘이 서 있는 곳은, 더 이상 숲속이 아니었다.

그곳은 숲의 바깥.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얼음 장막을 발견한 루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게 무슨…….”

빠르게 장막의 앞으로 달려 나간 루멘이 그 위를 힘껏 내리쳤다.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들 만큼 강한 한기가 느껴졌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장! 카델!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식한 주먹질을 따라 장막이 잘게 울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장막 위로는 작은 실금조차 생겨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루멘은 계속해서 장막을 내리쳤다. 계속해서 카델의 이름을 불렀다.

충격을 따라 찢어진 손마디에서 피가 흘렀다. 불투명한 장막 위로 짙은 핏자국이 찍히고, 흐릿하게 번졌다.

이럴 수는 없었다.

장막을 내리누르는 주먹이 덜덜 떨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그가 이번에는 검을 뽑아 들었다. 요령 없는 검술이 장막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나와. 나오라고.”

까득, 이가 갈릴 정도로 꽉 깨문 턱 근육이 도드라졌다. 매서운 일격이 반복되었으나, 장막에서는 깡깡거리는 볼품없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나와!”

잘 벼려졌던 검날이 무뎌지고, 잔뜩 힘을 준 팔 근육이 꼬여 경련할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검을 후려쳤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 장막을 부술 수 없다. 카델을 꺼내 올 수 없다.

그 단순한 깨달음이 숨통을 옥죄는 듯했다.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뿌리박혀 있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었다. 어긋나선 안 되는 감정이었다.

짧게 숨을 뱉은 루멘이 장막을 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새까만 머리칼을 움켜쥐고, 엉망이 된 검을 땅 위로 처박았다.

“이러지 마……. 제발…….”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지독한 무력감이 루멘의 전신을 뒤덮었다. 언제나 당당하던 눈빛에 여유가 사라지자, 가장 밑바닥에 있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두려움.

루멘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 끔찍한 감정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