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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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근육이 한 줄 한 줄 모조리 뒤틀리며 찢겨 나가는 고통이었다. 마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맞댄 양손이 덜덜 떨렸다. 꽉 다문 잇새로 기어코 핏물이 흘렀다.

카델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술식이 완전해질 때까지 버텨야 해. 라이돈을 확실하게 가두고, 루멘과 함께 도망간다.’

성공한다면 전부 생존할 수 있다. 고지가 코앞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해내야만 했다.

“대장!”

“먼저 도망치고 있어!”

“뭐? 말도 안 되는―”

“30초만 뛰어! 그때까지 안 오면 데리러 와. 더 이상 사족 붙이면 날려 버릴 테니까, 닥치고 뛰어, 루멘!”

제일 마음 편한 것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동안 루멘과 반이 먼저 도주하는 것이었지만. 루멘이 순순히 말을 들어 먹을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 또한 함께 도망칠 각오를 해 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게 물렁한 면이 있는 루멘은 도망가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대장을 버리고 이 짐 덩이를 택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한 루멘이 땅을 박찼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따라 카델은 그제야 참았던 기침과 함께 한 움큼 핏물을 토해 냈다. 후두둑 떨어지는 핏물이 흙바닥을 질펀하게 적셨다. 충혈된 두 눈과 간헐적인 각혈, 경련하는 전신이 숨을 거두기 직전의 발악처럼 보였다.

‘버텨. 버텨. 버텨. 버텨.’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 죽을 생각도 없다. 이 세계든 저 세계든, 어떤 식으로든 멀쩡히 살아 있는 쪽이 좋았다. 그러기 위해선, 술식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카델이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 보기도 전.

“나 좀 꺼내 줄래?”

감옥 안에서부터 터무니없는 부탁이 들려왔다. 카델은 순간 힘이 풀리려던 것을 간신히 다잡은 채 인상을 구겼다.

“꺼내긴 뭘 꺼내. 지금 내가 꺼내 줄 수 있는 건 네 심장 정도야.”

“아니, 이거 농담 아니야.”

“난 농담 같냐?”

“아니, 작은 인간아. 지금 날 안 꺼내면, 너희 몰살당해.”

“자신감도 그 정도면―”

“원로들이 움직이고 있어. 에이든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나 봐.”

뭐? 예상 밖의 충격 발언에 술식이 흐트러졌다. 찰나의 방심은 고작 벼락 한 줄기 정도의 빈틈을 만들어 냈을 뿐이나, 라이돈은 놓치지 않고 그 틈새 밖으로 손을 뻗었다.

“거짓말 아니니까 믿어도 돼.”

“……내가 널 어떻게 믿지?”

“안 믿으면 죽을 테니까. 하지만 나한테 잡힌다고 죽지는 않잖아? 잘 생각해 봐.”

카델의 시선이 감옥의 틈새로 빠져나온 라이돈의 새하얀 손끝에 닿았다.

‘이미 30초는 지났어.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면 루멘이 되돌아올 거야.’

그사이에 요정족이 들이닥친다면? 기껏 시간을 번 보람도 없이 전멸이다. 라이돈을 가두기 위해 모든 마력을 짜냈으니 반전의 여지도 없다.

‘하지만 라이돈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그가 이 감옥을 빠져나오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겪어 본바, 라이돈은 이런 자잘한 거짓말을 보태 가며 상황을 모면해 보고자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재미만 있으면 갇혀 있든 공격당하든 좋다고 상대하지. 그렇다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카델이 피로 흥건해진 입가를 쓱 닦아 냈다.

“널 풀어 주면 네 동족에게 죽임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 넌 우릴 잡아 두고 싶어 하잖아.”

“잡아 두고 싶은 거지, 죽는 걸 보고 싶은 건 아닌데. 마음이 바뀌었거든. 그리고 작은 인간아.”

“카델이야. 징그럽게 부르지 마.”

“응, 카델. 뭐가 됐든 날 빨리 풀어 주지 않으면 너희 정말 죽어.”

이미 술식은 흐트러진 지 오래였다. 카델은 입 안을 짓씹으며 안에 고인 피를 땅바닥에 뱉어 냈다. 그리고 서서히 거둬지는 마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라이돈을 향해 말했다.

“흐응,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그럼 한번 해 봐. 네가 싫어하는 게 내 죽음이라면, 그것도 꽤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그 대가로 붙잡혀 주기는 싫었다. 라이돈에게 붙잡히는 거나 요정족에게 죽임당하는 거나 카델에겐 그게 그거였다.

그래서 그는 라이돈이 뭔가의 설득을 하기도 전, 그대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라이돈이 이쪽을 지키는 건 지키는 거고, 일단 탈출은 해야겠다.

잠시 멍한 얼굴로 그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던 라이돈이, 이내 크게 웃으며 비행을 재개했다.

“카델! 정말 최고야! 좋아해!”

귓가를 울리는 우렁찬 고백에 피범벅이 된 카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더 힘 빠지는 발언이라니. 혀를 차며 달려 나가자, 얼마 안 가 맞은편에 있는 루멘과 그가 업은 반이 보였다. 아예 처음부터 멀리 가지도 않았는지, 루멘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재빠르게 달려왔다.

“너 왜 여기까지밖에 못 왔어? 다리에 모래주머니라도 달았어?”

“불안해서 뛸 수가 있어야지.”

루멘의 불만스러운 시선이 카델의 상태를 살폈다. 척 봐도 좋지 못한 몰골에 루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대장, 상태가…….”

“상태는 나가서 걱정해. 요정족이 움직이고 있어. 꾸물거리다간 몰살이다.”

그런 루멘의 어깨를 밀치며 말하자 헛웃음이 들려왔다. 가지가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카델 또한 동감이었다.

“그래서. 저 거대 요정은? 저걸 상대하면서 도망쳐야 하는 거야?”

“아니. 자기가 우릴 지켜 주겠단다.”

“그걸 믿어?”

“안 믿으면 어쩌겠어. 지켜 준다는 전제하에 열심히 도망치는 수밖에.”

라이돈이 이쪽을 출구의 코앞에서 포획할 생각이든, 요정족을 설득해 볼 생각이든.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하나. 도주였다.

카델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젖 먹던 힘까지 불어넣으며 루멘과 함께 내달렸다. 전력 질주를 하는 만큼 바깥의 풍경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겠으나, 당연하게도 그런 기적은 벌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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