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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신호를 보내고 정확히 15분을 기다렸으나 반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반이 신호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보고도 찾아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뜻. 두 가지 다 좋지 못한 가정이었다.
결국 둘은 숲의 탐색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방향을 나눠 흩어지는 대신 함께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루멘, 너 진짜 루멘 맞지?”
“계속 옆에 있었는데 그럼 가짜겠어?”
“네가 환혹 마법에 안 당해 봐서 그래. 진짜 감쪽같다니까?”
걷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주변을 꼼꼼하게 탐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거기다 옆의 동료가 환영인지 아닌지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카델은 자신이 언제 신경 과민증에 걸려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카델의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던 루멘은,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정 불안하면 손이라도 잡고 가든지. 잡은 손까지 가짜로 바꿔치기하진 못할 거 아니야?”
“그럴까?”
“……응?”
“좋은 생각 같아. 줘 봐, 손.”
순전히 놀려 먹을 생각이었는지, 예상외의 간단한 수락에 루멘이 멈칫했다. 하지만 카델은 진심이었다. 그는 남자와 손을 잡는다는 행위보다는, 옆에 있던 동료가 한순간에 환영이 되어 버리는 쪽이 더 끔찍했다. 유원지 귀신의 집에 들어가면 평소엔 욕이나 하며 틱틱거리던 친구와 얼싸안고 위기를 헤쳐 나가는 상황과 비슷했다.
기어코 루멘의 한쪽 손을 낚아채 깍지까지 낀 카델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 옆에서 떨어지지 마. 알았지?”
“……대담하네, 대장.”
“헛소리 말고. 알았지?”
“알았어.”
꽉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던 루멘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반의 환영이 죽었던 것이 어지간히 트라우만가 보다 싶으면서도, 이러는 행동이 썩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을 걸었을까.
잔뜩 굳은 카델의 표정과는 달리 내내 여유롭던 루멘의 눈빛에 일순 이채가 스쳤다. 그는 맞잡은 손을 당겨 계속 나아가려던 카델을 저지한 뒤, 천천히 깍지를 풀었다.
“내 뒤로 와, 대장.”
“기껏 보내 줬더니 또 왔잖아?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인간이야?”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에이든이었다. 그는 불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카델을 노려보다가, 곧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선 루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얜 못 보던 앤데. 새로운 부하?”
“요정족은 처음 보는군. 대장, 얘야? 환각 마법을 걸어서 괴롭힌 게.”
루멘은 검의 손잡이를 쥔 채 에이든을 턱짓했다. 카델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마주친 게 에이든인가. 나쁘지 않은걸.’
만약 처음부터 라이돈을 만났다면 뭔가의 준비도 없이 곧장 격한 싸움이 시작됐을 것이다. 루멘이 요정족을 상대할 요령을 찾기도 힘들어졌을 테지.
하지만 에이든이라면 만만하다.
“흠, 그럼 죽여도 돼?”
루멘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허락만 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저 자그마한 요정을 단칼에 베어 내겠다는 오만한 태도였다. 그 태도가 에이든을 자극한 듯, 앙증맞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다채롭게 변했다.
“누가 누굴 죽인다는 거야? 인간인 네가? 나를?”
“요정족 언어는 인간이랑 좀 달라? 왜 한 번에 알아듣지를 못해, 조그만 게.”
경쾌하게도 웃은 루멘이 허락을 구하듯 카델을 일별하자 카델은 짧게 눈을 굴렸다. 길게 본다면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편이 낫겠으나, 당장 놈들의 환각 마법에 당해 갖은 지랄은 다 떨어 댔던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으니.
“날개 하나만 잘라.”
명료한 대답에 루멘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어려운 걸 시키네.”
푸른 눈동자가 에이든의 움직임을 좇아 움직였다. 에이든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하찮은 전력 취급을 당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는지,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양손을 뻗었다.
“인간 주제에 건방 떨지 마!”
그러자 저 작은 몸집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광대한 마력과 함께, 일곱 개의 얼음 창이 일시에 발사됐다. 정확히 루멘을 노린 공격이었다.
“뭣……!”
하지만 얼음 창이 닿기도 전, 루멘의 신형이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사라진 루멘을 대신해 뒤에 가려져 있던 카델이 공격 범위에 그대로 노출됐다. 카델은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불의 장막을 펼쳐 공격을 차단했다. 뜨거운 불길에 닿은 얼음 창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동그래진 눈을 굴려 루멘의 위치를 파악하던 에이든이 재빨리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언제 이동한 지 모를 루멘이 반쯤 뽑힌 검을 납검하고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그를 향해 곧장 다음 공격을 시전하려던 에이든. 하지만 손안에 뭉쳐 있던 마법이 발사되기도 전, 그의 작은 몸뚱이가 한 차례 크게 기울었다.
“……?”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불균형한 비행의 감각에 멈칫한 에이든이 날갯짓에 박차를 가했으나. 몸은 계속해서 기울어지고 있었다. 당황하는 에이든을 향해 눈웃음을 친 루멘이 그의 아래쪽을 가리켰다.
“뭔가 떨어뜨린 것 같지 않아?”
아직 경계심을 놓지 않은 에이든의 시선이 머뭇머뭇 루멘이 가리킨 방향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팔랑.
낙엽처럼 부드럽게 춤을 추며 떨어지는, 익숙한 날개 한쪽이 자리하고 있었다.
몸집만큼이나 앙증맞은 반투명의 날개. 그것을 발견한 에이든의 눈과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거의 반사적으로 날개를 향해 하강한 그가 바닥에 떨어진 날개를 움켜쥐었다.
“마, 마, 말도…… 말도 안 되는…….”
“걱정 마. 하나 더 잘라서 양쪽 다 똑같이 만들어 줄게.”
네 개의 날개 중 하나가 떨어졌다. 대체 어느 시점에 공격을 당한 것인지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된 스피드란 말인가?
잘려 나간 날개를 품에 안은 채 충격에 빠져 있던 에이든이 불시에 비행하기 시작했다.
일단 후퇴해야 한다! 제대로 된 비행을 할 수 없는 한, 이 싸움은 불리했다. 먼저 공격을 받았으니 동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될 것이었다. 복수는 그 후에—
“어딜 가.”
하지만 완전한 도주를 꿈꾸기도 전.
에이든의 주위를 감싸며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뒤로 물러서는 것도 할 수 없는 강풍.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위를 조여 오는 바람의 풍속에 짓눌려 꼼짝없이 갇혀 있는 것뿐이었다.
괴로워하는 에이든의 앞으로 카델이 다가왔다. 그는 자신이 가둔 요정에게 서늘한 표정의 얼굴을 들이밀며 삐딱하게 말했다.
“내가 말했었지. 숨은 네 친구들, 끌어낼 거 아니면 얌전히 있도록 잘 관리하라고. 사람 말이 장난 같아?”
“이, 이 더러운 인간 놈이……! 감히 환혹의 숲에서 핀하이족을 건드리고도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살아 나가려고 널 잡은 거 아니겠니.”
짜증스레 일갈하자 에이든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카델은 [바람 감옥]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는 에이든과 그가 소중히 끌어안은 날개 한쪽을 훑어보고는, 짧게 혀를 차며 물러섰다.
“더 대화하기도 싫으니까 하나만 물을게. 너희가 환영으로 만들어 냈던 내 부하, 어딨는지 알아?”
“내, 내가 그걸 왜…….”
“아나 보네. 말해 봐. 어딨어?”
“누굴 바보로 알아? 그걸 순순히 말하면 네놈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한숨이 나왔다. 카델은 나오는 대로 한숨을 푹 내쉰 뒤, 막연히 생각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 에이든을 용병단에 영입시킬 확률은 0에 수렴하겠다고.
“널 가둔 이 마법, 바람 감옥이라고 해. 풍압으로 대상을 가두는 속박 마법인데…… 속박 범위를 한계까지 줄이면, 풍압을 못 버티고 터져 죽어.”
“…….”
“어때. 순순히 말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짐작이 가?”
또 한 번, 에이든의 입 밖으로 딸꾹질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