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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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이 통했다!

카델은 거의 기절 상태에 가까운 반을 질질 끌며 걸음을 재촉했다. 에이든은 예상보다 순순하게 그를 보내 줄 것을 약속했다.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에이든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집요하게 지켜보며 이동한 결과.

그들은 더 이상 똑같은 장소를 맴돌지 않았다. 풍경이 변화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 반도 반이지만 루멘이…….’

루멘은 강하다. 목적이 분명한 녀석이니 목숨을 쉽게 포기할 리도 없고, 그 성정과 실력이라면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카델은 바싹 마른 입술을 꽉 깨물며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았다.

‘거길 벗어난 지 얼마나 지났지? 이쯤 됐으면 슬슬 바깥이 보여야 하는데.’

숲이 어두우니 바깥의 환한 풍경은 더욱 눈에 잘 들어올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바쁘게 고개를 돌리던 때였다.

“이 인간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야?”

카델의 바로 뒤편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귓가를 간질이는 숨결. 조금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카델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선 채 눈만 굴려 뒤를 살폈다. 등 뒤의 공간을 타고 묘한 한기가 느껴졌다.

“……건들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왜? 재밌는 걸 보여 주겠다며. 난 에이든처럼 생각이 많지 않아서,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좋아. 즐겁거든.”

에이든과의 대화를 알고 있다. 녀석과 함께 있던 다른 요정인가? 하지만 그때 들었던 웃음소리와는 목소리가 다르다.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기사? 그렇다면 시스템이 알려 줬던 세 녀석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는 걸까. 설마 지금도?

‘아니. 에이든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게 확인했다.’

돌아온 긴장감에 카델의 눈빛이 거칠어졌다. 그는 반을 감싸 안은 손끝에 힘을 주며 숨을 몰아쉬었다.

‘어떤 놈이지? 등급은? 하위라면 바로 공격해도 승산이 있어.’

반을 보호할 장막을 생성하고, 본격적으로 붙는다면. 숲의 출구가 가깝고 일대일의 대치 상황이라는 전제하에 승산은 충분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최대한 안전하게 빠져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 자식은 동료가 풀어 준 인간을 굳이 따라와 자극하는 인성의 소유자였다. 좋게 좋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곤 기대도 안 한다.

“원하는 게 뭔데?”

“재밌는 걸 보고 싶어.”

“싸우고 싶다는 건가?”

“음,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나는…….”

새로운 요정은 말꼬리를 흐리며 뜸을 들였다. 카델은 그동안 아주 조금씩 반의 몸을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반과 녀석의 사이로 장막을 생성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네가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는 게 더 즐거울 것 같아.”

“……뭐?”

돌연, 카델의 옆을 스치는 한기와 함께.

푸욱.

살가죽이 꿰뚫리는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단, 장…….”

낌새를 느낀 것은 그때였다. 여태 간신히 걸음만 옮기고 있던 반의 몸뚱이가 천천히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카델의 멍한 시선이 한 박자 늦게 반의 모습을 담아냈다.

초점이 완전히 사라진 탁한 황금색 눈, 살짝 벌어진 입술, 그 사이로 울컥 차오르는 핏물. 그리고…….

“반……?”

그의 가슴을 관통한 두꺼운 얼음 창을.

카델의 떨리는 눈동자가 망연히 담아냈다.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벌써 30분은 넘게 지난 것 같은데.

루멘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숲을 가로질렀다. 아무리 걸어도 비슷한 길, 비슷한 나무만 보이니 기분이 영 찜찜했다.

그 찜찜한 기분 탓에 오감은 평소보다 배로 날카로워졌다. 풀잎이 쓸리는 작은 소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눅눅한 습기의 비린내.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내 찾고 있는 카델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 있긴 한 거겠지?’

약속된 10분이 지나고도 카델은 불꽃을 쏘아 올리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시간 감각이 이상해졌나 싶어 몇 분을 더 머무르며 탐색을 지속해 보았지만, 소득 없는 기다림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카델은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시계까지 들고 갔으니 시간을 놓쳤을 리는 없는데.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 정도. 카델이 신호를 보낼 수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이곳은 ‘금지된 숲’이었다. 10분씩 치고 빠진다는 카델의 계획은 겉보기엔 꽤 그럴싸했지만, 그것만으로 숲의 모든 위험 요소를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다.

결론을 내린 루멘은 그 즉시 카델을 찾아 나섰다. 혼자 숲을 빠져나간다는 선택지도 있기는 했으나, 그는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를 임시 대장을 두고 도망갈 만큼 글러 먹은 인간은 아니었다.

‘반 헤르도스가 같이 있다면 상황이 심각하진 않겠지만, 그놈이 있는데도 30분 넘게 소식이 없을 리는 없어.’

아니꼬운 녀석인 것과는 별개로 실력만은 쓸 만한 놈이었다. 카델 역시 재능이 뛰어난 마법사이니, 두 명의 전력이라면 어디 가서 맞아 죽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 더더욱 카델은 혼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반 또한 자신처럼 신호를 보내지 않는 카델을 찾는 도중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여러 가정을 떠올리며 카델이 맡았던 북쪽을 찾아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

멀지 않은 곳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루멘은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조금씩 이동했다.

‘무슨 소리지? 뭔가 엄청나게 떨어지는 소리가……. 폭포? 아니야, 물소리는 아니다. 좀 더 날카로워. 유리 조각…에 더 가까운 소리야. 하지만 이런 숲속에서 유리 조각이 끊임없이 떨어질 리는 없는데. 대체…….’

소리와 가까워질수록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일종의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낸 순간.

“죽여 버리겠어!”

절규에 가까운 찢어지는 외침과 함께, 익숙한 인형 하나가 그의 시야 속으로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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