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씨발씨발씨발!’
머릿속이 욕설과 절망으로 가득 찼다. 카델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 낼 생각도 못 한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단장……. 저희, 계속 똑같은 곳을 돌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말 그대로였다. 그들은 20분 동안 계속해서 똑같은 공간을 맴돌고 있었다.
헤매는 것이 5분을 넘어갔을 때부터 주변의 나무 기둥에 보이는 족족 흠집을 내 두었다. 그리고 15분간 똑같은 흠집을 보고, 보고, 또 봤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나무 기둥에 주먹을 내리꽂고 싶었지만, 반을 부축하고 있기에 불가능했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숲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분노도, 어서 반을 안전한 곳에 보내야 한다는 조급함도, 20분을 헤매는 내내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루멘에 대한 걱정도 전부 카델의 숨통을 옥죄어 왔다.
모든 불운이 책임감이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멀쩡히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계속 걸어 봤자 소용없겠네.”
그리 말하며 반의 발목을 살피자, 빨갛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물든 붕대가 보였다. 분명 회복력을 높여 준다고 했는데. 저렇게 금방 피로 흥건해져서야 붕대를 감은 의미가 없다. 위생적이지 못하지 않은가.
‘되는 게 없어.’
한숨을 집어삼킨 그가 반을 나무 그늘에 앉혀 둔 뒤,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지금은 무작정 걸어 다니며 체력을 허비하는 것보다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편이 나았다.
‘반이라면 몰라도 난 웬만해선 길을 헤매지 않아. 분명 이동하던 중에 환각 함정을 밟은 거다. 어디서부터 걸렸는지는 짐작도 안 가지만……. 환각도 일종의 마법이니, 마법진 탐색을 해 보면 위치를 찾을 수 있겠지.’
그 마법진을 신속하게 해제한 뒤 숲을 빠져나간다. 지금으로선 그 외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릎을 굽혀 흙바닥에 손을 올린 카델이 정신을 집중했다. 마력의 운용은 마밀과의 수업을 통해 전보다 훨씬 능숙해졌다.
가느다란 바람결이 고요한 미풍을 동반하며 카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 위로 한 차례 마력을 불어 넣자, 바람이 회오리치며 솟구치더니 이내 여덟 방향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펄럭이던 로브와 머리칼이 서서히 가라앉고. 눈을 감은 채 탐색에 집중하던 카델의 미간이 작게 구겨졌다.
‘……뭐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당혹감에 요동치는 고동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마법진은 고사하고 마력 한 줄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렇게 오래 똑같은 곳을 헤매고 있는데. 환각 마법이 확실한데.
예상이 벗어나자 심장이 거세게 뛰어 댔다. 한 가지 계획이 틀어지면 그다음 계획을 생각해 내면 되는데도, 카델은 평소처럼 머리를 굴릴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괴로운 표정으로 씨근덕거리는 반에게로 가닿았다. 탐색 마법을 펼치던 손을 천천히 주먹 쥐자 흙모래가 거칠게 쓸려 왔다.
‘이런 곳에서 낭비할 시간은 없어.’
다시, 다시 해 보자.
혀로 바싹 마른 입술을 쓸어내린 카델이 탐색 마법의 준비를 재개했다. 그리고 일렁이는 바람이 다시금 그의 주변을 감싸던 순간.
“꺄하하하!”
“아하하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듯 숲을 울렸다.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카델이 준비했던 마력을 곧장 회수했다. 반 또한 대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카델은 빠르게 반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한 뒤,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뭐지? 요정족인가?’
인적 없는 숲에서 시끌벅적하게 웃어 댈 수 있는 존재는 요정족 이외에 딱히 없다. 카델은 반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눈을 부릅떴다.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에 벌겋게 충혈된 눈이 강박적으로 굴러갔다.
“웃겨! 웃겨!”
“재밌어! 재밌다고!”
듣기 싫은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는데, 정작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양옆, 위아래를 이 잡듯 살펴도 마찬가지였다.
선제공격을 해야 하나? 공격을 연막 삼아 이 목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은?
‘아니. 아직 위치도 파악 못 한 상태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더 성가신 일을 당할 수 있어.’
게다가 반이 당했다던 ‘투명 덫’의 존재도 간과할 수 없었다. 지금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펴야 할 때. 현재 반은 전투 불능의 상태이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핑!
그들의 앞으로 날카로운 ‘얼음 창’이 날아와 박혔다. 정확히 한 뼘의 거리를 남기고.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친 카델이 공격의 궤도를 찾아 휙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쪽은 상대방의 위치도, 정확한 정체도 모르는 상태. 반면 상대방은 이쪽의 위치도, 인원수도 전부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위협사격을 행한 이유는…….
아무래도 재미겠지. 자신들이 우위를 선점한 상황을 즐기고 싶은 거다.
“다음이야! 다음엔 죽어!”
“무조건 죽어!”
이 녀석들은 자신과 반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모습도 안 비치고 숨어 있는 주제에…….’
까득, 이를 간 카델이 ‘얼음 창’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한쪽 손을 펼쳤다.
무영창의 화염 마법.
카델의 손바닥 위에서부터 피어오른 불씨가 거대한 물뱀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여러 갈래로 흩어져 갔다. 막힘없는 불길이 가지와 이파리를 태우고, 그늘 속을 헤집었다. 환한 불꽃이 잔뜩 열받은 카델의 서늘한 얼굴을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닥치고 튀어나와!”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실컷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릴 생각인 거라면, 어울려 줄 마음은 한 톨도 없었다. 들끓는 마력의 흐름과 함께 마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지금까지는 요령 없이 마력을 끄집어 써 댔으니 마법을 쓰면 쓰는 대로 족족 에너지가 빠져나갔겠지. 하지만 이제부터 그런 무식한 방법은 내다 버리도록 해라.’
카델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구부러진 손안으로 점점 거세지는 불길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네가 가진 모든 속성을 하나의 술식에 엮어. 그 술식이 복잡하고 촘촘할수록, 그 회로가 엉키고 엉킬수록. 넌 한 줌의 마력으로도 기함할 만한 마법을 뽑아낼 수 있을 게다.’
불길은 끝없이 뻗어 나갔고, 사그라지는 대신 그대로 궤도를 꺾어 사방을 들쑤시며 불태웠다. 그것은 꼭 자아가 깃든 생명처럼, 숲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다속성 마법사가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이유지. 술식만 제대로 다룬다면, 너 같은 놈들의 마력은 무한대나 마찬가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