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521)

카델의 눈앞으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3명이라고……?’

뜻밖의 타이밍과 예상 밖의 인원수에 멈칫한 것도 잠시. 그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던 카델의 시야 속으로, 저 멀리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붉은 연기가 들어왔다.

신호탄의 붉은 연기. 위치는 반이 이동했던 북서쪽 방면이었다.

“저건……! 반!”

신호탄은 도망칠 수 없는 위기가 닥쳤을 때 발포하기로 약속된 것이었다. 반의 성격이라면 웬만한 일로는 절대 신호탄을 사용하지 않을 텐데.

내내 불길한 예감에 시달려서였을까. 사색이 된 카델이 곧장 신호탄이 쏘아진 방향을 향해 달렸다.

‘신호탄을 쏘면 바로 지원하기로 했으니 루멘도 올 거야. 물론 루멘 쪽엔 별일이 없다는 전제하지만…….’

요정족이 등장한 건가? 아니면 숲에 사는 마물이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반이 상대하기에도 벅찬 상대라니. 대체 정체가 뭘까? 너무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복잡한 생각이 얽혀 들기 시작하자 카델이 거칠게 머리를 털어 냈다. 생각이 과해지면 우선순위를 정하기 힘들어진다. 지금은 위기에 처한 반을 도와 숲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다른 추론은 필요 없다.

억겁과도 같았던 3분 남짓의 시간이 흐르고. 카델은 나무 둥치에 기대앉은 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

“……단장.”

한달음에 달려가자 새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고통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싶어 꼼꼼히 상태를 살피자, 접어 올린 바짓단 아래 드러난 발목이 보였다.

발목에는 양옆으로 움푹 팬 기다란 상처가 나 있었는데, 살가죽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벌어진 데다 손상된 근육 사이로 뭉툭한 발목뼈까지 드러난 상태였다. 반이 움찔거릴 때마다 검붉은 핏물이 울컥울컥 차오르며 신발과 아래의 흙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그 끔찍한 상처를 발견한 카델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바, 발목이……. 어떻게 된 거야? 공격당했어? 요정이야?”

“덫에 걸렸어요.”

“덫?”

“수풀 근처를 뒤지다가…….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밟자마자 갑자기 형체가 드러났어요. 억지로 덫을 벌려서 해제하니 그대로 부서져서 사라져 버렸고요.”

투명한 데다 한 번 사용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덫이라고? 전혀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여유롭게 덫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반의 상태가 심각했다.

카델은 일단 짐 가방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 반에게 쥐여 주고, 그의 옆에 놓인 대검을 들어 검날을 감싼 붕대를 풀어냈다.

이 붕대는 튜토리얼 퀘스트의 보상이었던 [퀸의 붕대]였다. 상처에 두르면 회복력이 높아지니 발목에 감아 두는 편이 나았다. 기다란 붕대를 풀어서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상처를 조심스럽게 감아 냈다.

“으윽…….”

상처에 가해지는 압박감이 괴로운지 반이 나무 기둥에 뒷머리를 댄 채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덜덜 떨리며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 자식, 덫에 걸렸으면 바로 불렀어야지! 또 무식하게 혼자 버티고 있었던 게 분명해.’

바닥에 번진 피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반이 말했던 수풀 근처로 예상되는 부근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핏자국도 마찬가지였고. 혼자 버텨 보려다 상처가 점점 심각해지자 뒤늦게 신호탄을 쏜 게 틀림없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네.”

“무리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도, 지금은 숲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야. 더 있다간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일어나 봐. 잡아 줄게.”

반은 내밀어진 카델의 손을 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친 오른쪽 발목이 땅을 딛자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 짧은 신음과 함께 중심이 기울어졌다. 카델은 그런 반의 허리를 감싸 안고, 팔을 어깨에 둘러 부축했다. 자신보다 훨씬 몸집이 컸기에 눌리는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우는소리를 낼 타이밍이 아니었다.

“조금만 참아 줘.”

앓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꽉 깨문 반의 입술을 보자 심장이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나 때문이야.’

이 숲에 온 것은 온전히 자신의 성장을 위한 일이었다. 용병단에 도움이 되는 퀘스트도 아니었고, 메인 스토리의 진행을 위한 과정도 아니었다. 기사들의 성장을 위한 수련은 더더욱 아니었고.

그저 마밀이 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힘든 훈련 없이 단번에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탐욕을 위해 부하를 희생시킨 것뿐이었다.

말이 되는가? 최악이었다. 카델은 이대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무탈하게 약초를 얻고 숲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양심이 약간 찔리는 정도로 넘어갔겠지만, 반이 다쳐 버렸다. 그럼 더 이상 양심에 찔리는 정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진짜 주인공이었다면 힘을 얻겠다고 자기 부하를 위험한 곳에 밀어 넣는 행동 따윈 절대 안 했어.’

욕심에 눈이 멀어 용납 못 할 짓을 해 버렸다. 그 사실이 너무도 끔찍해서, 카델은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장…… 미안해요…….”

“……뭐?”

“제가 멍청하게 덫에 걸려 버리는 바람에…….”

왜 이 녀석은 발목이 달랑거리는 상태에서도 저렇게까지 착해 빠진 발언을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꼴을 당하게 만든 단장이 원망스럽지도 않은 걸까?

스스로가 역겨워 참을 수 없었다. 카델은 반이 더 사과하기 전에 먼저 단호하게 끊어 냈다.

“멍청한 건 네가 아니야. 괜한 소리 말고 체력이나 아껴. 속도가 느리니 생각보다 오래 걷게 될 거야.”

카델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 자기혐오는 이 위기를 넘기고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 땅에 머리를 박고 죽어 봤자 힘든 것은 자신이 아니라 반일 테니.

그는 기대 오는 반이 편할 수 있도록 최대한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힘을 주어 걸었다. 그리고 그동안, 쓸모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좀 전에 보았던 시스템 창에 대해 떠올렸다.

‘영입 가능한 기사가 3명이나 있었지. 3명……. 제대로 찾을 시간이 없었다곤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어. 근처에 있었다면 분명 뭐라도 느껴졌어야 하는 건데.’

반이 쏜 신호탄에 정신이 팔려서일까. 근처에 있다는 알림과는 달리 요정족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루멘을 만났을 때만 해도 금세 찾아낼 수 있었기에 더욱 비교됐다.

‘아, 그래. 루멘. 걘 어딨는데 아직도 안 나타난 거지?’

반이 신호탄을 발사하고서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나 카델이 반을 발견하고 상처를 수습하는 동안에도 루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 정도 스피드면 금방 왔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간신히 침착함을 되찾았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심장이 불안한 고동을 만들며 뛰어 대기 시작했다.

‘설마 루멘도.’

아직 루멘은 신호탄을 발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긍정적인 현상일까?

반은 덫에 걸렸을 뿐 다른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신호탄을 쏠 여유가 있었다. 만약 루멘이 신호탄을 쏠 여유도 없을 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거라면? 그래서 반을 찾아오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 거라면?

‘진짜 돌아 버리겠네.’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카델은 점점 무거워지는 반을 부축하며 땀에 흠뻑 젖은 이마를 대충 닦아 냈다.

‘일단 반부터 밖으로 빼낸다.’

다친 반을 데리고 루멘을 찾으러 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은 반의 탈출에 집중해야 할 때.

그리 판단한 카델이 차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 내며 부지런히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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