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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준비됐지?”
하루 동안 방을 빌려준 노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카델은 반과 루멘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만.”
반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으나, 루멘은 아니었다. 잠시 시간을 달라며 멈춰 선 그가 뜬금없이 두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 하냐?”
카델이 묻자 뒤늦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루멘이 덤덤하게 답했다.
“기도.”
“기도……?”
“국경선 사이니까 마이뉴 왕국의 데폴로, 화이트 왕국의 세보, 둘 모두한테 기도했어.”
“안 어울리게 웬 기도야.”
“걱정 마, 대장 목숨도 잘 부탁해 뒀으니까.”
루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자, 카델은 별 싱거운 놈을 다 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와중에 반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았다는 게 참 루멘다웠다.
카델 일행은 미리 봐 둔 위치를 따라 한 시간가량을 걸어서 이동했고, 곧 지평선을 가득 메운 거대한 숲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이 환혹의 숲…….’
푸른 상록수가 우거진 숲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빼곡한 이파리에 가려 볕이 잘 들지 않았다. 숲의 입구까지 도달한 카델은 곧바로 수색에 돌입하는 대신, 그 앞에서 반과 루멘을 불러 세웠다.
“제한 시간은 10분이야. 10분이 지나면 내가 하늘에 불을 쏘아 올릴 테니까, 그걸 보면 바로 숲을 빠져나와야 해.”
“약초를 찾든 못 찾든 상관없이?”
“상관없어. 내가 구하는 약초는 숲의 초입에 있다고 했으니까, 만약 못 찾았다면 일단 나와서 다른 방향을 탐색해 보면 돼. 이곳은 오래 머무를수록 좋지 않은 곳이라고 하니까.”
아무리 악명 높은 숲이라지만 들어가자마자 봉변을 당할 확률은 극히 낮다. 때문에 카델은 일명 ‘벨튀 작전’을 세웠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약초가 자라난다는 숲의 초입을 확실하게 탐색한 뒤, 제한 시간이 지나면 곧장 숲을 탈출한다. 그 후 적당한 텀을 두고 처음과 떨어진 방향의 초입 탐색을 재개. 하나의 약초라도 얻어걸릴 때까지 깔짝거려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작전이었다. 모양새가 빠지긴 하겠으나 생존율만 높다면야 상관없다.
“다시 한번 보여 줄 테니까 눈에 잘 새겨 둬.”
카델은 마밀이 그려 준 그림을 내밀며 일행의 눈에 약초가 익숙해지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반과 루멘에게 각각 가야 할 방향을 정해 주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꼭 신호를 주셔야 해요, 단장. 꼭이에요.”
“알겠어, 알겠어. 너도 위험하면 내가 준 신호탄 꼭 쏴야 한다.”
반이 맡은 방향은 북서쪽. 카델은 몇 번이고 약속을 받아 내는 반에게 새끼손가락까지 걸어 주고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약초 찾으면 사례금 주기로 한 거 잊지 마, 대장.”
“안 주면 약초도 안 줄 거잖아.”
“당연하지. 우리 관계는 임시잖아?”
“그럼 그냥 입 다물고 찾기나 해.”
“정 없어라.”
루멘이 맡은 방향은 북동쪽. 워낙 움직임이 빠른 남자이니 도주 실패의 걱정은 없었다. 카델은 무언가 더 말하려 하는 루멘의 등을 밀쳐 떠나보냈다.
카델이 맡은 곳은 북쪽이었다. 제한 시간이 10분이니 수색 범위를 광범위하게 잡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얻는 것이 없다면, 서쪽이나 동쪽으로 이동해야겠지.
맡은 방향을 따라 착실하게 이동하는 두 부하를 지켜보며. 카델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림자가 가득 드리운 어두침침한 숲. 아직 안으로 발을 뻗지도 않았건만, 기분 나쁠 정도로 불안한 예감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그것이 숲의 분위기 때문인지 질릴 정도로 겁을 주던 마밀의 경고 때문인지는 몰랐다.
“가자.”
하지만 예감은 예감일 뿐. 확실한 것은 없었고, 이제 와서 포기할 생각도 없다.
마음을 굳게 먹은 카델이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으, 추워.”
숲은 겉보기만큼이나 어두컴컴했고, 온도가 매우 낮았다. 대낮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랬다. 카델은 얄팍한 로브를 한껏 끌어모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분위기도 우중충하고……. 아무리 악명 높은 숲이라지만 일단 요정족이 사는 곳이잖아? 걸맞은 청량함 정도는 느껴져도 되는 거 아니냐고.’
숲의 분위기만 보아서는 요정족이 아니라 마족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괜히 투덜거리며 주변을 꼼꼼히 살피니 누가 죽음의 숲 아니랄까 봐 칙칙한 독버섯이나 이끼, 썩어 가는 정체불명의 알껍데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어코 뻣뻣하게 굳어 있는 다람쥐의 사체까지 발견해 버린 카델이 허허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미치겠네…….’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한 긴장감과 시간제한으로 인한 촉박함, 혼자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실시간으로 정신력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정신 쇠약 디버프에 걸린 캐릭터가 이런 기분이겠지.
‘5분쯤 지났으려나.’
그는 품 안에서 작은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을 위해 드라키움에서 구입한 고급 회중시계였다. 시간을 확인한 카델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정확하게 5분 남았다. 그 안에 소득을 내지 못하면 이 찝찝한 숲을 또 뒤져야 해.’
제발 약초 좀 보여 줘라! 카델은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마밀의 말대로라면 그가 얻어야 할 약초, ‘증폭의 풀’은 분명 숲의 초입에서 자라난다. 애초에 환혹의 숲 깊숙이 들어갔다가 살아 나왔다는 사람 자체가 없다. 그러니 숲 깊숙한 곳에서 자라는 약초였다면, 먹어서 효과를 본 사람도 없었을 테다. 가지고 나오질 못하는데 어떻게 먹겠는가.
하지만 ‘증폭의 풀’은 물량이 적고 희귀할 뿐, 효능이 연구되고 효과를 본 사람이 약초의 가치를 전파할 만큼의 공급은 있었다. 확실하다. 비록 그 수가 적고 찾기가 힘들더라도, 약초의 발생 지점은 분명 숲의 초입일 것이다.
그렇게 조급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시야를 넓혀 보려던 순간.
「가까운 곳에 영입 가능한 기사가 존재합니다.」
「인원수: 3」